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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10화 (210/236)

<제210화>

“허, 허허허. 이, 이거 참….”

황이서가 말이 안 된다는 얼굴로 미국의 대스타를 보았다.

며칠 전 엘븐 라비의 방문부터 오늘은 루케 크롬블까지.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려는 걸까.

로또를 샀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지금 이 상황은 로또 이상의 성공을 GH 엔터와 올리오스에게 선물해줄 것이 분명했다.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거 같은데,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황이서는 방금 들은 믿을 수 없는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 되물었다.

“올리오스의 미국 활동에 힘을 얹고 싶다고 했네. 이번에 미국 활동까지 생각해서 앨범을 제작했다고 들었는데, 영어 버전도 만들었다고?”

“그렇습니다.”

“도와주겠네.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내가 직접 필드에 나가는 건 좀 그렇고, 나와 연결된 프로덕션을 소개해 주겠네. 괜찮은 작업자들이 많아.”

루케 크롬블의 지원 사격이라니.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해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이런 질문도 웃겼다.

세계적인 스타인 크롬블이었다.

그가 하고 싶다면 적어도 음악계에선 뭐든 할 수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궁금했다.

올리오스의 어떤 점을 좋게 보고 선택했는지를.

“옛날 우리 모습이 떠오르더군.”

옛날 우리라면, 루케 크롬블이 처음으로 데뷔했던 록밴드인 스피어.

전설적인 그룹이었다.

각 분야의 천재가 모여 만든 록밴드.

현대의 유행을 만든 최고의 그룹.

그는 올리오스를 자신의 빛나는 과거에 비유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극찬이었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노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주름이 보이도록 인자한 미소를 지은 그는 이내 더는 묻지 말라는 듯한 얼굴을 했다.

“알겠습니다. 이거 참 당황스럽네요.”

“그럼 서로 협력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지?”

크롬블의 말에 황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네.”

크롬블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황이서는 땀이 흥건한 손을 쥐락펴락했다.

“후우,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일흔이 넘은 노인에게서 어마어마한 패기가 느껴졌다.

이게 한 시대를 주름잡은 사람의 힘이겠지.

‘미쳤네. 진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케 크롬블의 지원 사격이라.

올리오스의 시작은 생각보다 순조로울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황이서는 이번에 쏟아진 기사를 보았다.

-루케 크롬블 ‘한국 팬들의 열광에 감사해.’

-루케 크롬블 ‘올리오스는 잠재력이 높은 가수, 분명 미국에서도 통할 것.’

이를 시작으로 루케 크롬블과 올리오스에 관한 기사가 줄을 이었다.

국내부터 해외까지.

올리오스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난리였다.

루케 크롬블이 직접 칭찬했다는 기사에, 올리오스가 인정을 받았다는 말에, 골든 콘서트에 함께 한 가수니까 예의상 한 말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아주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어쩐다는 얘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원했던 건, 앨범 활동 전의 어그로와 앞으로 미국 활동을 위한 유명세.

적어도 황이서는 그랬다.

루케 크롬블과의 인연은 그런 걸 생각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윤택수 회장과 나름대로 인연이 있는 것 같으니….

‘복 터진 거지.’

황이서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자리를 잡았다.

* * *

최고의 하루였다.

대스타와 함께 공연하는 것도 모자라 그의 칭찬을 받았다.

“역시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선생님도 보셨죠?”

엘븐 라비가 내 옆에 딱 붙어서 말했다.

“아직 미국으로 안 갔나?”

“선생님 공연을 보고 가야죠. 어떻게 그냥 가겠습니까.”

엘븐 라비가 루케 크롬블의 공연에 대해 입이 아플 정도로 떠들어댔다.

열 마디 중 열 마디가 칭찬이었다.

왜 이번 무대가 대단했는지, 얼마나 상징성이 있었는지, 자신은 이런 무대를 못 만들 거라느니.

“후우, 저는 진짜 한참 멀었습니다.”

전형적인 미국인 제스처를 하는 미국인의 감상이라.

“쓸데없는 말을 하는군. 이미 어제 그렇게 좋은 공연을 보여 줬으면서.”

“보셨습니까?”

“조금.”

“오호, 어떠셨습니까?”

“모질이가 기타를 쥐고 둥기당기 추고 있던데?”

“모질이라서 다행이네요. 저는 스스로가 멍청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미국식 조크인가.

나는 엘븐 라비와 말하는 크롬블에게 말했다.

“이제 돌아가시는 거군요.”

두 시간 뒤에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이륙할 거다.

우리는 대선배를 배웅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따라왔다.

이제 내일이면 우리도 신곡 활동을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니겠지.

그러는 동안 프로듀서와 크롬블이 소개해준 프로덕션은 미국 활동에 대한 추가적인 협상에 들어갈 거다.

몇 달 전부터 이어졌던 계획에 크롬블의 힘이 더해졌다.

우리의 활동에 많은 도움을 줄 거라 확신했다.

“서울이 재밌는 도시긴 하지만, 나는 내 고향 샌프란시스코가 조금 더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넉살좋게 미소를 지은 크롬블의 말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미국에 가면 또 뵐 수 있습니까?”

“글쎄, 자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미국 성적에 따라 달라질 거라는 얘기군요.”

“그래. 형편없으면 올 생각 말게. 자네들 모두.”

크롬블이 올리오스 멤버들을 가리켰다.

“나는 어설픈 아마추어에게 투자한 게 아니니까.”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뼈가 있었다.

“선생님께서 직접 지원을 하시다니, 놀랍네요.”

“자네도 지원을 받고 싶은 겐가?”

“됐습니다. 이번에 무대를 본 것만으로도 이미 영광이에요. 하하핫.”

엘븐 라비의 눈이 우리를 향했다.

“솔직히 나도 너희 무대를 즐겁게 봤다.”

엘븐 라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확실히 직접 눈으로 보니까 즐겁더라. 우습게 볼 게 아니야.”

한차례 웃은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럼 미국에서 또 보겠네?”

“아마 그러겠지.”

“어쩌면 제대로 한 판 붙을지도 모르겠어.”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그대로였다.

나를 보는 눈빛에 힘이 가득했다.

야수의 눈빛이었다.

어떻게든 승리하겠다는 검투사의 눈빛.

“또 빌보드 1위 먹으려고?”

“그게 말처럼 쉽나. 하지만 노려볼 만하지.”

그가 우리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즐거웠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잊지 않을 거야. 그리고 미국으로 왔을 때는 긴장해야 할 거다.”

선전포고였다.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미국에서 목 씻고 기다려. 그 명성 우리가 따줄 테니까.”

나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결코 질 생각은 없었다.

이겨야지.

반드시 이겨야지.

이겨서 무조건 저 건방진 얼굴에 한 방 먹여야지.

“크핫! 기대하고 있을게.”

그렇게 루케 크롬블과 엘븐 라비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기분 좋다. 저런 별들이랑 같은 무대를 섰다니….”

우주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아직도 안 믿겨. 엊그제 일이 꿈인 거 같아.”

“미국 활동할 때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거 맞지? 정말인 거지?”

다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꿈을 꾸는 것처럼 말이다.

“괜찮아?”

“며칠 쉬고 싶을 정도로 어지러워.”

“내일 바로 앨범 활동 시작이니까 푹 쉬어 둬.”

“벌써 그렇게 됐구나.”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복귀 무대는 늘 떨렸다.

긴장과 기대.

이 상반되는 두 감정이 동반하는 자리였으니까.

“잘해보자. 이번에 국내 활동이 잘 끝나야 해외로 나갔을 때 더 많은 응원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

* * *

“아버지, 어땠습니까?”

윤 회장을 찾아가 물었다.

대답을 듣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라는 걸.

“약속을 지켰네.”

“투자받은 만큼 결과를 보여 드려야죠.”

나를 보는 윤 회장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업적 – 아버지의 인정(2)]

[윤 회장의 인정을 받으세요.]

[보상: 25 마일리지]

새롭게 업적을 깼다는 알림이 울렸다.

“네가 이렇게 잘해줄 줄은 몰랐다. 크롬블 씨도 만족한 모양이더구나.”

“그런데 아버지.”

“응?”

“왜 말을 안 하신 겁니까?”

“크롬블 씨와 아는 사이라는 거?”

“예.”

“알았으면 달라졌을까?”

“아니요. 똑같았겠죠. 크롬블은 그런 걸로 마음이 바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럼?”

나는 윤 회장을 마주 보며 말했다.

“아버지 친구분이라는 걸 알았으면 처음 인사할 때 조금은 더 웃었겠죠.”

“뭐? 하하하하!”

윤 회장이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참 재밌는 말이군. 조금은 더 웃었겠다라.”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죠. 아버지 얘기하면서 분위기라도 풀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애초에 아버지도 알고 계신 거 같았는데요.”

“그래. 그런 사람이지. 지인의 청탁을 받는다고 마음이 흔들릴 사람은 아니야.”

여전히 웃음의 잔열이 남은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여전하냐?”

“세계 1위 말씀이십니까?”

“그래.”

“여전합니다. 빌보드 1위에 그래미 상까지 가져갈 겁니다. 미국에서 세계 최고의 그룹이라는 깃발을 꽂을 겁니다.”

“쉽지 않은 일일 거다. 그 사람이 도와줘도 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1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2년간 도전하면 됩니다.”

나는 윤 회장을 보았다.

그는 주름진 얼굴로 나를 보며 입술을 다물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앞으로는 네가 개척해야만 해. 저 넓은 미국 시장을 뚫는 건, 너와 네 그룹의 힘으로밖에 할 수 없다.”

“알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전설적인 록스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윤택수 회장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허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아들을 위해 뭐든 하는 아버지를 향해.

자식의 성공을 위해 신념마저 꺾어가며 가수를 초대했던 윤택수 회장을 향해.

비록 소통의 부재로 ‘윤건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지금 내겐 그 누구보다 든든하고 고마운 아버지였다.

“흠, 낯부끄럽게. 무슨 짓이냐. 이게.”

그러나 싫지만은 않은지 헛기침을 하는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조금 더 애교부릴 수 있는데요.”

“됐다. 징그럽다.”

나는 윤택수 회장에게 다가가 그를 꼬옥 안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사시럽구로. 뭐 하는 짓이냐. 이게.”

그러나 끝내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한국 활동 잘 마치고, 미국에서 잘하고 돌아와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래.”

우리는 잠시 동안 부자간의 온기를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참, 따뜻한 시간이었다.

* * *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음악 방송.

우리는 우주가 MC를 보고 있는 <뮤직 에어>를 첫 무대로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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