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숨이 가쁘다.
반주가 들리고, 수만 명의 팬이 우리를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팔을 뻗고, 다리를 움직이고.
매끄럽게 물 흐르듯 움직이며 바닥을 쓸어내는 발에서 내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경기장을 울리는 반주와 마이크로 확장되는 우리의 목소리 때문에, 내 몸이 내는 소리는 오직 나에게만 들렸다.
스포트라이트가 눈이 부시다.
우리를 향해 응원봉을 흔드는 팬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 함께 걷던 이 거리.
-혼자 나오니 낯설어.
노래를 부르는 정민이 앞으로 나간다.
자신의 파트에서 결코 실수하지 않는 정민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퍼졌다.
박자에 맞춰서 응원봉을 흔드는 팬들.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우리.
이 순간에도 모니터에 더 좋은 화면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함께 무대 위에 올라와 우리를 찍는 스태프들.
각각의 요소가 모여 아름다운 무대를 완성하고 있었다.
-All we once! 널 보고 싶어!
우주가 카메라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까딱거렸다.
예능에서 보이는 그의 쇼맨십이 지금도 터지는 거다.
꺄아아악!
팬들의 환호가 들린다.
기분이 좋다.
가슴이 들뜬다.
마치 첫 무대에 올랐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숨을 쉬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내 파트가 되어 멤버들 앞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스탯으로 올린 노래 실력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이거지.’
이 감각.
무대에 올랐을 때 느껴지는 희열감.
이것 때문에 무대에 오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무대가 커질수록 심장 박동은 더욱 빨라졌고, 강하게 고동쳤다.
내 파트를 끝내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호진이 나섰다.
자연스러운 교차.
수백, 수천 번 연습으로 만들어진 군무.
그야말로 완벽한 군무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우리의 호흡이 맞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짜릿한 감각이 전신에 퍼졌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수많은 연습은 전부 지금을 위한 거였으니까.
“하아, 하아.”
첫 곡이 끝나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주도, 성훈이 형도, 호진이도, 정민이도.
모두가.
최고의 무대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거대한 무대에 맞게 동선도 새로 짰고, 우리 뒤에 함께 추고 있는 댄서들도 많았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건 아직 첫 번째 곡이었다.
시작이었고.
“안녕하세요!”
“일, 이, 삼, All we once! 저희는 올리오스입니다!”
“다들 반가워요. 지금 무대 뒤에 크롬블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데요. 선생님께서 나오시기 전에 조금 더 분위기를 달궈볼까요?”
마이크를 잡은 우주가 능숙하게 멘트를 날렸다.
짧은 인사와 함께 우리는 바로 다음 곡으로 들어갔다.
최근 가장 큰 히트를 치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대표곡.
새로운 곡에 사람들의 환호가 들렸다.
기분 좋은 고양감이 우리를 감싼다.
어제 보았던 선배들의 무대만큼이나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멤버들은 각자 의지를 다졌다.
적어도 오늘 온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후회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자.
나는 두 번째 곡의 첫 마디를 불렀다.
* * *
“잘하는군요.”
“그래 보이십니까?”
백스테이지에서 윤택수 회장과 함께 올리오스의 무대를 보던 루케 크롬블이 말했다.
“네, 젊은 패기가 있고 동시에 베테랑의 노련미도 가지고 있어요. 무대를 즐기는 건 물론, 본인의 재능도 출중하네요. 노력과 재능을 다 가진 이는 흔치 않죠.”
“재능이라 함은?”
“외모겠지요. 성훈이라는 친구는 목소리겠고, 호진이라는 아이는 춤일 테지요. 우주는 마이크를 들었을 때의 말재주겠고요. 정민은 무대 위에서는 조금 부족하지만, 저 노래가 정민의 것이라고 했지요? 작곡에도 재능이 있는 거 같아요.”
크롬블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윤택수 회장을 보았다.
“저 건하라는 친구가 미스터 윤의 아들인 모양입니다.”
“…눈치 채셨군요.”
“한눈에 알아 봤습니다. 젊었을 때의 당신을 닮았더군요. 허허.”
“어떻습니까? 제 아들내미가 함께 하는 팀은?”
“솔직하게 말할까요?”
루케 크롬블이 무대를 올려다보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그의 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즐거움, 진한 흥미, 그리고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기억들까지.
“참 재밌는 친구들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처음 록을 시작했을 때, 멤버들을 모아 팀을 짜고 노래를 제작했을 때 말이에요.”
언제나 소년같은 순수한 모습을 보이던 남자가 처음으로 추억에 젖는 순간이었다.
“그때를 보는 거 같습니다.”
거장이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라.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렇습니까.”
윤 회장은 들뜬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애를 썼다.
“멋진 애들이에요. 아마 조만간 세계에서 멋지게 날아오를 아이들입니다.”
“그렇군요.”
루케 크롬블이 고개를 돌려 윤 회장을 보았다.
“미스터 윤도 이제 아버지군요. 허허.”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와서 시치미를 떼시는 겁니까? 자기 아들 자랑을 그렇게 해놓고선?”
“크흠….”
“솔직하게 말하세요. 아들을 내게 보여주고 가치를 평가받으려고 했던 거 아닙니까?”
“…맞지요.”
더 나아가 그가 올리오스가 미국에 진출할 때 큰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그게 아비로서 할 수 있는 선물이었으니 말이다.
“흐음, 사실 처음 연락이 왔을 때 이미 예측하고는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와주신 겁니까?”
“하하하, 그럼요. 나를 모를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대체 어쩌다 이렇게 변했는지 궁금해서 왔지요. 혹시 죽을병에 걸린 건가 싶었습니다.”
“크롬블 씨보다 제가 먼저 갈 일은 없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아들놈이 그래미 상을 타는 걸 봐야 하니까. 녀석이 꼭 그러겠다고 약속했거든요.”
“호오?”
크롬블이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흥미로운 얘기네요. 그래미 상이라…. 쉽지 않을 텐데요. 거기 꼰대들은 고집이 상당해요.”
크롬블은 이제 새롭게 신곡을 발표하기 시작하는 올리오스의 무대를 감상했다.
“가능합니다. 저 친구들이라면 할 수 있어요.”
“자신감이 상당하시군요. 아들이어서인가요?”
“아니요. 저놈이 그랬거든요.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크롬블 씨도 그때 녀석의 눈빛을 봤어야 합니다. 허허. 아비한테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 의지가 대단했거든요.”
크롬블은 윤 회장의 말에도 말없이 무대를 감상했다.
“신곡이군요. 저 노래가.”
“맞습니다.”
“허허, 이거…. 노래가 참 좋습니다. 영어가 아니라,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있을 겁니다. 이미 계획을 다 해뒀을 테니까요.”
“철두철미하네요.”
“누구 아들인데요.”
“재밌네요. 아주 재밌어.”
루케 크롬블은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소년처럼 눈을 빛냈다.
* * *
우리의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
“감사합니다!”
신곡이었던 ‘나비’까지 공개했다.
신곡이라 호응이 적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기존 노래로 띄워놓은 분위기에 얹어진 신곡은 최고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여러분 사랑해요!”
꺄아아악!
관객들에게 인사하며 무대를 내려온 우리.
그런 내 앞에 크롬블이 다가왔다.
백스테이지에서 보고 있던 걸까.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좋은 무대를 보여줬더군. 그룹명이 올리오스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우리 다섯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대답했다.
음악계의 거장.
그것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대스타의 말에 벌벌 떨며 말했다.
다들 무대 위에서보다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주 재밌었네. 무대 끝나고 잠시 얘기 좀할 수 있겠나?”
“어… 네?”
“뭘 묻고 있는 겐가? 무대 끝나고 할 얘기가 뭐가 있겠어. 미국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그리고 그 도움을 내가 줄 수 있을 거고.”
“저, 정말이십니까?”
성훈이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네.”
그가 껄껄 웃었다.
우리는 모두 벙찐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그런 우리를 잠시 응시하던 크롬블이 내게 물었다.
“미스터 윤의 아들이지?”
“아, 그렇습니다.”
“역시, 아주 많이 닮았어. 젊었을 때 모습과 똑같군. 허허허.”
그가 무대 위로 올라가며 우리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앞으로 무대에서도 지금처럼만 하게. 그럼 도달할 수 있을 게야.”
말을 마친 크롬블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도달할 수 있다라.
윤 회장과 대화를 나눈 크롬블이라면, 도달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으리라.
‘세계 무대의 정점.’
진엔딩을 위한 마지막 관문.
나는 무대 위로 올라간 크롬블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도달할 수 있다.
그 한마디에 자신감을 얻었다.
우리도 할 수 있을 거라고.
* * *
“장난 아니네.”
나는 루케 크롬블의 무대를 보았다.
엘븐 라비의 무대처럼 관중석에서 보지 못했지만, 백스테이지에서도 충분한 감동이 전해졌다.
말도 안 되는 공연이었다.
엘븐 라비도, 몬스터즈도 감히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경지.
기타 하나만 들고 엘븐 라비가 무대를 휘어잡은 것이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했다.
하나 아니었다.
루케 크롬블이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그의 존재감은 무대를 휘어잡았다.
아니, 휘어잡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는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매료시켰다.
그리고 피아노에서 그의 명곡, ‘speech’의 전주가 흐르는 순간.
환호가 가득했던 경기장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모두가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잠시 모든 소음을 멈춘 것이다.
오로지 세상에 루케 크롬블만 남아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가 왜 거장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만 같았다.
“대단하네.”
그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지만, 동시에 지휘자였다.
그가 손을 흔들면 사람들은 떼창을 했고, 그가 잠시 분위기를 가라앉히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공연의 분위기는 그의 손길에 좌지우지되었다.
무대를 신나게 하는 것이, 사람들의 환호를 이끄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호흡하고 있어.’
그는 관객과 함께 무대를 교감하고 있었다.
함께 호흡을 하고, 같은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그는 여기 모인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이게 거장이구나.
세계 최고 아티스트의 무대구나.
그의 무대를 보며 전율을 느꼈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한 시간 반으로 예정된 공연을 무려 한 시간이나 더 하면서 혼자서 두 시간 반이나 되는 무대를 꾸몄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말이다.
늙은 신사가 고개를 숙여 관객에게 존경을 표했고, 모두가 아쉬워하며 거장의 공연을 떠나보냈다.
백스테이지에서 모든 걸 지켜봤던 우리는 다가오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많이 배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하하, 뭘 이런 걸 다. 자, 공연도 끝났으니 얘기를 좀 해볼까?”
얘기라면 역시.
“저희의 미국 진출 얘기입니까?”
“그래. 미국 무대의 선배로서 조언을 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