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화>
“…….”
엘븐 라비의 무대를 보고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입이 꾹 닫혔고, 말 한마디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기타 하나와 목소리만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무대를 보는 내내, 속으로 감탄만 나왔으니까.
그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무대였다.
그리고.
‘왜 몬스터즈 선배들이 그리 울적했는지 알겠어.’
특히 카이가 말이다.
엘븐 라비는 저 무대 콘셉트도, 노래도 전부 자신이 만들고 기획한다고 했다.
자신의 재능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카이가 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겠지.
한국에 와서도 한참 동안 괴로워했던 건, 엘븐 라비가 보여준 무대의 퍼포먼스 때문일 거다.
바로 지금처럼.
‘그렇다면 정민이는?’
카이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데다가 마찬가지로 작곡가인 정민에겐 그리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혹여나 심리적 데미지를 받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우와.”
그러나 그런 내 걱정과는 달리 정민은 진심으로 무대를 느끼고 있었다.
눈을 깜빡거리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열중하는 모습에 마음을 놓았다.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이미 카이의 밑에서 성장했던 정민에게, 많은 고민을 해왔던 그에게 지금 이 순간은 자신 이상의 천재에게 배우는 일종의 수업이었다.
‘방해하지 말자.’
이번 경험이 그에게 큰 밑거름이 될 거라 믿었다.
그건 정민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I'll get drunk on the memories of you. (너와의 추억에 취할 거야.)
혼자서 무대를 장악하는 그의 보컬에 감탄하는 성훈.
댄스와 세션 없이도 이렇게 멋진 공연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는 호진.
무대에서 반짝이는 스타의 모습을 두 눈으로 담는 우주까지.
올리오스 멤버들은 이 순간에도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단하네.’
이게 슈퍼스타구나.
나는 그의 무대를 끝까지 보았다.
한 명의 슈퍼스타가 만들어내는 무대를.
그리고 그 즐거움을.
마지막으로 그 순간 무대 위에 있던 엘븐 라비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댄 채로 노래를 부르던 그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하나였다.
자기의 실력을 보여줬으니 우리의 실력도 보여달라.
그런 뜻이겠지.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금방 들어갔다.
[돌발 퀘스트 ? 증명하세요.(1)]
[글로벌 스타에게 당신의 실력을 증명하세요.]
[성공 시 보상: 오픈 마일리지 50, 랜덤한 스탯 상승]
퀘스트가 떴으니까.
* * *
첫 공연이 끝났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스태프들은 물론 수많은 직원이 모여 그 난리통을 정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하루 더 남았으니까.
올리오스와 루케 크롬블이 주역으로 공연하는 골든 콘서트가.
이틀째인 일요일에 나오는 콘서트의 라인업은 첫날보다는 조촐했다. 그 수도 적었다.
우리와 크롬블을 제외하면 고작 두 명의 가수만 더 있을 뿐.
그러나 암표 가격은 첫째 날보다 오늘 가격이 더 비싸다고 들었다.
백만 원을 훌쩍 넘겼다고 했던가.
오직 루케 크롬블만 나온다고 하더라도 책정될 수 있는 가격이었다.
그런 높은 가격에도 암표는 나오는 족족 판매되었다.
황룡 엔터와 GH 엔터 기타 배급사에서 암표를 처리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모든 걸 막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올리오스 리허설 들어가겠습니다.”
드디어 골든 콘서트 당일이었다.
“네!”
메이크업을 제외한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세워진 거대한 무대.
그리고 그곳에 설치된 수많은 좌석이 보이는 자리.
2만 명은 가뿐히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위에 세워진 무대 위로 올라가자, 심장이 뛰었다.
두근두근.
이제 여기에 곧 관객이 가득 찰 거다.
아직은 스태프들만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지만, 곧 수만 쌍의 눈동자가 우리를 보겠지.
‘떨리네.’
기분 좋은 고양감이었다.
멤버들은 어제 엘븐 라비의 무대를 본 이후에 뭔가를 느낀 게 있었는지 다들 가볍게 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제 마지막 연습을 위해 월드컵 경기장 근처의 연습실에 방문했던 시간, 그동안 얻었던 마일리지로 동료들의 스탯을 올릴까도 고민했다.
스탯을 올린다고 하루 만에 능력이 확 오르는 건 아니니 굳이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해 그만두었다.
오히려 스탯을 올리는 것 이상으로 좋은 경험을 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의 기존 노래와 이번 콘서트에서 처음 공개하는 신곡까지.
간단한 리허설을 마친 우리는 무대 아래에서 내려왔다.
“후우, 끝까지 잘해보자.”
모두의 얼굴에 자신감이 서렸다.
걱정되는 건 딱 하나.
마지막으로 부르는 노래가 처음 공개되는 신곡이라는 것.
과연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가능할 거라 믿었다.
“후우, 메이크업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쉬면서 준비하자.”
“오케이.”
“성훈 씨랑 우주 씨, 그리고 호진 씨부터 받을게요!”
정민이는 무대를 한 번 더 체크하기 위해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나만 잠시 대기하기 위해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로 가는 길이었다.
“오우, 여기 있었군요!”
엘븐 라비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나요?”
“분장하러 갔어요. 그런데 아직 미국으로 안 가셨나요?”
“전설적인 선배님의 공연이 있는데 당연히 구경하고 가야죠. 그리고 저는 우리 건하 군과 올리오스의 무대를 보고 싶은걸요?”
그의 푸른색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어제 공연은 즐겁게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놀란 부분도 많았고요.”
“어느 부분이 놀랐나요?”
“혼자서 공연장을 전부 장악했다는 거요.”
“하하,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도 가능한 무대예요.”
“과찬이시네요.”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섭섭하네요.”
나는 엘븐 라비를 보았다.
장난기 어린 푸른 눈동자가 집요하게 나를 쫓았다.
“미국에는 언제 오실 겁니까?”
“네?”
방금까지 웃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목소리도 차가워졌다.
살기마저 느껴졌달까.
“오실 거 아니었습니까? 미국으로 와서 본인들의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던 거 같았는데.”
“말씀드리지는 않았던 거 같았는데, 그게 보였나요?”
“네. 아주 선명하게요.”
나를 주시하는 그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한국에서 만족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저는 알아요. 건하 당신은 나랑 비슷한 사람이라는 걸.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안 그런가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보는 라비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전 틀리지 않았군요.”
“그럼 우리 공연을 보고 싶다는 건?”
“앞으로 라이벌이 될 가수의 실력을 보기 위함이죠. 직접 보면 TV에서 볼 때와 얼마나 다른지 궁금했거든요.”
“그럼 제대로 감상해 주시죠. 저희도 어제 제대로 봤으니까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번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엘븐 라비가 합장을 했다.
“동양에선 이렇게 인사하는 거 맞나요?”
어디서 잘못 배운 동양식 예절이었다.
“손은 안 모아도 돼요.”
“흠, 어렵네요.”
그와 헤어진 뒤 대기실로 돌아가자.
“어?”
낯익은 남자가 혼자서 대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음?”
루케 크롬블이었다.
그는 나를 보았다.
잠시 나를 보던 그의 눈은 곧 다시 책으로 향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책에만 열중할 뿐이었다.
우리 대기실이 아닌가 싶었는데, 분명 맞았다.
우리 올리오스의 대기실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선생님, 커피라도 드시겠습니까?”
“…….”
“…….”
와, 이렇게 대화 한 번 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네.
그는 내가 있다는 걸 머릿속에 지웠는지, 나를 무시하며 책을 이어 읽었다.
말없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럼에도 그는 무시하며 책에 집중했다.
나도 무대를 앞두고 정신을 다잡기 위해 눈을 감고 잠시 명상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자넨 왜 자꾸 내 앞에 앉아 있는 거지?”
“예?”
“내 대기실인데 말이야.”
루케 크롬블이 먼저 내게 말했다.
“어…. 선생님, 여긴 올리오스 대기실입니다. 여기 안내판을 보시면….”
“그런가?”
돋보기 안경을 고쳐 잡으며 입구를 보았다.
“그렇군. 내 대기실이 아니었구먼. 내가 실수를 했어. 미안하네.”
루케 크롬블이 노구를 일으켰다.
나는 그를 부축하기 위해 자리에서 함께 일어났다.
“됐어. 혼자 갈 수 있네. 올리오스라. 오늘 함께 공연하는 그 아이돌 맞나?”
“그렇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거장의 눈빛이어서일까.
그에게는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흡사.
‘아버지, 윤택수 회장과 비슷한 눈빛.’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배자의 눈빛이었다.
사람을 뚫어보며, 하나부터 열까지 뚫어볼 수 있는 그런 눈빛 말이다.
“그렇군. 잘 알았네.”
크롬블은 그러고는 대기실을 떠났다.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뭐랄까.
번개가 몰아친 기분이었다.
“형, 이제 메이크업 받으러 오래. 뭐야, 왜 그렇게 피곤한 얼굴이야? 무슨 일 있었어?”
“일이 있긴 있었지.”
루케 크롬블…. 대체 뭐 때문에 오셨던 거지?
* * *
“자, 테스트 들어갑니다. 조명팀 신호 보내주고, 음향팀 테스트는 잘 마쳤지?”
“네, 아까 가수별로 모두 테스트 맞추고 설정 맞췄습니다.”
“지금 계속 관객분들 들어오고 있으니까 마지막까지 긴장 풀지 마라.”
현장을 관리하는 배영석 PD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수많은 현장을 돌아보고 성공적으로 개최한 잔뼈 굵은 PD지만, 오늘은 다른 날보다 몇 배는 더 긴장한 채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념비적인 공연이었으니까.
루케 크롬블의 첫 한국 공연이자, 어쩌면 마지막 공연이 될지 모르는 이번 공연의 총책임자라는 사실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몇 번이고 준비했는지 모른다.
수많은 장비들을 점검했고, 루케 크롬블과 오랫동안 함께 했던 미국의 PD와 작업자들과도 끊임없이 소통했다.
지금도 그의 무전기에선 영어와 한국어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크롬블 팀의 헤드 PD가 보내는, 무대 공연을 위한 모든 장치들의 스탠바이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이제 정말 시작이다.
어제 있었던 엘븐 라비의 공연보다 몇 배는 더 긴장되는 무대.
“후우, 내가 뭐라고 이렇게 떨리냐.”
무대에 오를 사람들은 더 떨 거다.
침착하자.
나부터가 긴장한 티를 내면 다른 스태프들은 버티지 못할 테니까.
“자, 이제 시작입니다. 실수하지 말고, 연습했던대로만 해봅시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지금껏 했던 다른 무대와 똑같은 무대입니다.”
손에 땀이 차는 걸 느끼며, 그는 곧 있을 공연 시작을 대비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점검했다.
그 많던 관객석이 모두 가득 찼을 즈음, 배 PD는 무전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이제 스탠바이 합시다! 오프닝 무대 시작합니다!”
* * *
선배 가수의 오프닝 공연이 끝났다.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R&B에 힙합 느낌을 가져간 노래 3곡으로 분위기를 잡아버렸다.
그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도중에.
“올리오스팀! 마지막으로 대기하겠습니다!”
백스테이지는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의상실에서도 잔뜩 긴장했다.
이제 앞으로 30분 동안은 4곡의 컨셉에 맞춰 몇 번이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으니까.
마치 패션쇼의 드레스룸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프닝 공연이 끝이 나고.
“올리오스, 들어갑니다!”
악을 쓰며 외치는 조연출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백스테이지에 섰고.
곧 무대에 세워진 거대한 모니터 아래가 양옆으로 갈라졌다.
우리는 보았다.
관중석에 앉아 있는 팬들을.
환호하는 그들을.
쏟아지는 조명을.
그리고 ‘All we once’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이제 쇼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