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하하, 오랜만이네요.”
윤택수 회장은 한국을 찾은 크롬블을 맞이하기 위해 직접 인천공항으로 나섰다.
마침 기자 회견을 거의 끝마치고 있던 크롬블이 윤 회장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이군요, 미스터 윤. 나이를 많이 먹었어요. 완전 노인이 다 됐어.”
“하하, 이젠 같이 늙어가는 처지죠.”
“음악이나 엔터테인먼트엔 그리 큰 관심이 없는 거 같더니만, 갑자기 이런 큰 무대를 만들다니 말이야.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고, 이제 저희도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야죠.”
“호오, 단순히 그런 이유는 아닌 거 같은데요.”
루케 크롬블이 그런 윤 회장의 말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줬다.
나이가 지났음에도 미국에서 만났던 40대의 모습, 아니 소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원래 밝히지 않으려고 했는데, 몇 년 전부터 아들놈이 한국의 가수로 데뷔하는 바람에 저도 늦바람이 들었죠.”
“아하, 그게 누군지는 알려줄 생각이 없나 보군요.”
“예, 그러면 너무 재미 없잖습니까.”
“허허, 여전하네요. 미스터 윤은.”
서로 악수를 하며 환하게 맞이하는 두 사람을 향해 수많은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들의 눈빛에 수많은 의문이 터졌다.
사실 루케 크롬블의 갑작스러운 한국행이 결정된 이후부터 꾸준히 들었던 의문이었다.
“어떻게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신 겁니까?”
최근 2년간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크롬블이었다.
콘서트마저도 한동안 쉬었다.
이유는 하나.
-나이가 들어 이제 현역의 감각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소.
사실상 은퇴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그의 무대를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찰나, 갑자기 다른 곳도 아닌 한국에서 콘서트 참가를 선언했다.
심지어 그와 함께 무대를 만들었던 무대팀 전원까지 한국으로 보내 함께 공연을 구상할 만큼 적극적으로 말이다.
자신의 정식 콘서트를 진행할 때보다 훨씬 더 공을 들였다.
혹시 두 사람이 서로 만난 적이 있던가?
어떤 커넥션이 둘 사이에 있던 거지?
한국에선 겹칠 일이 전혀 없었는데.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지금까지 왔다.
기자의 질문을 받은 루케 크롬블이 잠시 윤 회장을 보았다.
윤 회장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30년 전에 미스터 윤이 미국에 출장을 왔을 때 우연히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었죠.”
찰칵! 찰칵! 찰칵!
“그때는 루케 크롬블이 누군지도 모른다던 친구가, 갑자기 콘서트를 열고 싶다기에 내 궁금해서 왔습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말이죠.”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전혀 매치업이 되지 않는 둘이었다.
미국도 아닌 한국 기업의 재벌 윤택수 회장과 미국의 팝스타 루케 크롬블의 인연이라니.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질문은 여기까지 받도록 하죠. 바쁜 분이니까.”
윤 회장의 신호에 최 실장을 비롯한 비서실이 기자 회견을 물렸다.
애초에 기자 회견이 거의 끝난 상황에 윤 회장이 끼어든 거니, 기자들로선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윤 회장의 차에 함께 올라탄 크롬블이 손을 비비며 말했다.
“기대되는군. 미스터 윤의 아들의 무대가 말이야.”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끝까지 안 알려줄 거죠?”
“무대가 끝나면 알려드리죠.”
두 노인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회포를 풀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식당과 비슷한 분위기의 이태리 식당이었다.
* * *
토요일.
첫 번째 골든 콘서트가 열리는 날.
엘븐 라비와 몬스터즈, 그 말고도 다양한 가수들이 포진된 거대 규모의 콘서트.
연말 콘서트 저리 가라 하는 규모였다.
“왜 이렇게 떨리냐.”
“미국 무대 할 때보다 더 떨린다.”
몬스터즈 선배들도 긴장되는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우리는 대기실에서 떨고 있는 몬스터즈를 응원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밑에서 구경하고 있을게요. 형들!”
“왔구나?”
무대 의상을 차려입고 메이크업까지 전부 다 마친 몬스터즈 선배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웃는 미소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리허설 끝났어요?”
“아까 끝났어. 마지막 테스트까지 끝났으니, 이제 슬슬 본 공연을 준비해야지.”
“아까 보니까 사람들 엄청 많이 왔던데.”
“그러게. 이번에 몇 명이라고 했지?”
“몇만 명은 오지 않았을까?”
“와….”
몬스터즈의 천재 작곡가 카이의 말에 구희성과 한진성이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게 한두 번은 아니었을 거다.
그런 그들도 오늘은 유독 떨리는 모양이었다.
“이왕이면 크롬블 선생님과 함께 공연에 올라가고 싶었는데.”
“주최 측의 생각도 일리는 있으니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몬스터즈 멤버들이 우리를 봤다.
“잘 봐. 우리가 무대에서 어떻게 빛나는지.”
약간은 오그라드는 말을 한 한진성이 내 등을 툭툭 쳤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참 시원한 웃음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저 아름다운 미소 때문에 최애로 키웠었지.
그때도 저 멘트를 쳤던 거 같다.
그레미 시상식을 앞둔 마지막 콘서트에서 게임 속 프로듀서였던 내게 했던 멘트였다.
-프로듀서, 잘 보세요. 우리가 무대에서 어떻게 빛나는지 보여줄게요.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여전하구나.
너는.
여전히 최고로 멋진 아이돌이었다.
빌보드 스타와 함께함에도 빛을 잃지 않는 그런 별이었다.
“밑에서 보고 있을게요.”
“그래.”
그때였다.
“오우, 다들 여기 있었군요!”
엘븐 라비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몬스터즈, 내가 너희 찾으려고 얼마나…. 오? 올리오스도 왔네요? 맞다, 둘이 같은 소속사라고 했죠? 선후배끼리 돈독해 보여서 좋네요. 저도 미국에 후배가 한 명 있는데, 이놈이 도통 말을 안 들어서 얼마나 답답한지.”
생각보다 수다쟁이였던 엘븐 라비가 내 옆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부럽네요. 선후배 사이가 이렇게 좋은 모습이.”
엘븐 라비가 내 옆에 앉은 채로 기지개를 쭈욱 폈다.
“끄으으윽! 건하, 이번에 제 무대를 감상하러 왔나요?”
“선배님들 공연 보러 왔죠.”
“하하하, 아무래도 선배들 앞이니 솔직해지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해해요. 동양은 선후배 사이가 돈독하지만, 그만큼 엄격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엘븐 라비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말에 카이가 입을 열었다.
“시비 걸러 온 건 아니죠?”
“시비라니요. 같이 멋진 무대 만들어보자고 말하러 왔는걸요.”
사이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혹시 제가 1등을 뺏었다고 화가 나 있는 건 아니죠? 너무 그러지 마요. 저는 타이틀곡은 물론, 수록곡도 넘지 못해서 1, 2등을 동시에 차지한 적도 있으니까요.”
저 엄청난 자신감.
아니 자존감이라고 해야 할까.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거침없는 자신감이 대단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건하, 너랑 비슷한 거 같은데.”
성훈이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내가 저렇다고?”
“저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이유 있는 자신감을 보일 때가 있지.”
“그래?”
가끔은 자신감을 줄여야 하나.
조금, 재수 없어 보이는데.
“물론 나는 그런 네 모습이 우리의 리더에 딱 맞는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라도 읽은 걸까.
성훈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늦었어.”
“그런가.”
그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다음부턴 달래주는 말을 더 먼저 해야겠군.”
그러는 와중에도 엘븐 라비와 카이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였던 거겠지.
지금이야 괜찮아졌다지만, 한동안 많이 힘들어했던 카이였다.
“좋은 얘기를 하려고 왔는데 또 이렇게 언성을 높였네요. 미안해요. 일부러 몬스터즈를 긁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결국 서로 협력해야 하는 파트너 아니겠습니까?”
수다쟁이 엘븐 라비는 그 이후로도 계속 같이 무대에서 잘 해보자며 의지를 다졌다.
“후우, 나도 미안해요. 무대 직전이라 신경이 날카로워졌네요.”
“하하, 그럴 수 있어요. 저도 그렇거든요. 이렇게 함께 공연할 아티스트들을 찾아오는 것도 긴장을 덜어내려는 저만의 루틴이니까요.”
카이도 방금 전의 말을 사과했다.
분위기가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이제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가네. 준비해야겠어.”
말을 마친 한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도 어서 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이러다가 못 들어가겠다.”
“예, 그럼 저희도 가보겠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대기실을 나섰다.
몬스터즈와 엘븐 라비의 무대.
현재 한국 최고의 아이돌과 미국 최고의 가수의 무대를 감상하기 위해서.
* * *
“저기 올리오스다.”
“올리오스도 구경왔나 봐.”
“신기하다. 진짜 잘생겼네.”
“와.”
객석으로 가자, 우리를 알아본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렸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간단한 인사만을 나누고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이제 곧 몬스터즈의 공연이 있을 거다.
너무 주목을 받아서는 곤란했다.
물론 VIP석에는 우리 말고도 여러 연예인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 성훈 후배! 올리오스 후배들도 왔군요.”
그중에는 눈에 익은 스타들도 많았다.
발라드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최수혁 선배가 보였다.
한때 우리와 음원 차트 1위를 다투던 선배.
그 말고도 진효원이나 유명한 배우들도 곳곳에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요즘 후배들이 너무 유명해졌어요. 해외 가수들도 올리오스 후배들을 알고 있던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즈음,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몬스터즈도 엘븐 라비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가수가 무대에 올라섰다.
진효원과 더불어 최고의 디바라고 불리는 가수.
어딜가도 메인 자리는 물론 단독 콘서트도 따낼 수 있는 가수였지만, 오늘만큼은 오프닝을 장식하는 가수였다.
그랬기에 관중 호응은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와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성.
거대한 무대, 함께 무대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 곧 있을 스타의 출연.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시간은 흘러, 몬스터즈가 무대 위로 올라왔고.
“와아….”
그들의 무대는 언제나 그랬듯 힘이 넘쳤다.
우주와 성훈, 호진이 주먹을 꽉 쥐고 무대를 감상했다.
정민이는 모든 것을 눈에 담겠다는 듯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관중을 보았다.
몬스터즈의 팬만 있는 건 아닐 거다.
애초에 단독 콘서트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이목이 전부 무대 위에 있는 저들에게 빠져들었다.
힘이 넘치는 무대였고, 남성적이며, 강렬했다.
귀에 때려 박는 비트와 가창력.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박력 있는 무대는 모두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더 발전했어.’
미국 무대를 경험한 뒤 더 실력이 늘었다.
몇 번이고 그들의 무대를 본 우리도 놀랄 정도였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몬스터즈의 공연이 끝나고, 무대의 하이라이트인 엘븐 라비의 공연이 펼쳐졌다.
아무것도 없이 기타 하나만을 들고 올라온 엘븐 라비.
의자를 끌고 터벅터벅 무대 중앙에 앉은 그가 엠프와 연결된 기타를 튕겼고.
디리링.
-So~long.
첫 소절을 불렀다.
파워풀했던 몬스터즈와는 다른, 감성을 적시는 목소리와 가슴을 떨리게 하는 반주.
오로지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사로잡았다.
‘와.’
듣는 순간, 깨달았다.
왜 저 남자가 미국 최고의 가수라고 불리는지를.
‘내가 넘어야 하는 산이라는 거네.’
그는 미국의 거대한 그랜드 캐니언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