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사무실은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 직원들로 분주했다.
곧 있을 골든 콘서트.
국내에서 진행되는 큰 콘서트인 데다가 GH 엔터의 주력 아이돌인 올리오스와 몬스터즈가 전부 출연하는 무대라서일까.
모두 이번 콘서트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몬스터즈는 엘븐 라비의 공연이 시작되는 토요일에, 올리오스는 루케 크롬블이 출연하는 일요일에 각자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몬스터즈와 엘븐 라비를 같이 세운 건, 아마 무대 비중의 무게를 분산하기 위해서일 거다.
엘븐 라비가 빌보드에서 대단한 가수는 맞지만, 크롬블에 비교하면 그 무게감이 가벼웠고.
올리오스는 몬스터즈와 비교했을 때 아직 그 유명세가 탄탄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랬기에 이렇게 매치업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히야, 진짜 이제 실감 난다.”
우주가 상기된 몸을 덜덜 떨었다.
앞으로의 무대가 기대되는 걸까.
눈에는 힘이 가득했다.
아마 모두가 같은 마음일 거다.
나도 그렇고, 성훈이 형도, 호진이도, 정민이도 모두 말이다.
“다들 멋지게 변신했네.”
콘서트와 이어서 있을 앨범 활동을 위해 각기 다른 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저번의 색과 매치업이 되면서도 너무 똑같은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번에는 정민이를 제외하고 다들 색에 변화를 주었다.
정민이는 예전처럼 따뜻한 느낌을 자아내는 옅은 갈색, 우주와 나는 검은색으로, 호진이는 옅은 녹색으로, 성훈이 형은 심지어 하얀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이번 염색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그런데 건하 형은 검은색도 어울리긴 한다. 그 드라마에서 본 모습 때문인가.”
“송우진 대표님이 한 잘생김 하시지.”
“크크크, 맞아.”
옆에서 말하는 동료들의 말을 나는 애써 무시하며 핸드폰을 열었다.
포털의 제일 첫 번째 페이지에 엘븐 라비의 한국 방문이 적혀 있었다.
-엘븐 라비가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벌써 온 거야? 아직 3일이나 남았는데, 빨리 왔네.”
“그러게.”
“온 김에 한국 구경도 하려는 건가.”
“요즘 할리우드 배우들도 종종 한국 내한을 통 크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한국 시장이 많이 크잖아.”
우리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떠들고 있을 때였다.
콰앙!
“얘들아!”
황이서가 놀란 얼굴로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방금 엘븐 라비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엄청난 뉴스라도 물고 온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바쁜 스케줄에 미처 자르지 못한 턱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무슨 일입니까?”
“여기로 오겠다는데?”
“예?”
“왜요?”
엘븐 라비가? 왜?
“형들 보러 오는 거 아닌가? 몬스터즈 선배들, 지금 스케줄 나갔잖아요.”
“그게 아니라. 너희 보러 온다고 하더라.”
“저희를요? 엘븐 라비가요?”
“그래. 비공식 일정이라네.”
서울을 둘러보는 줄 알았는데 대체 왜 GH 엔터로?
그 순간, 나는 가요 어워드를 했을 때 보았던 시스템 메시지를 떠올렸다.
[돌발 퀘스트: 당신을 인식한 외국 스타와 조우하세요.]
[성공 시 보상: 35 오픈 마일리지]
나를 인식한 외국 스타.
그리고 이에 관련된 업적도 있었다.
[업적 ? 외국 스타의 관심]
[보상: 10 오픈 마일리지]
가요 어워드에서 받은 마일리지와 새롭게 생겼던 퀘스트.
설마 이 퀘스트가 엘븐 라비였나?
가장 그럴싸한 추리였다.
그게 아니면 갑자기 우리 사무실로 찾아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온다는 거예요?”
“거기까지는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더라.”
좋은 기회였다.
마일리지도 얻고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슈퍼스타의 주목도 받고 말이다.
“무대 의상은 굳이 필요 없겠죠?”
잔뜩 쫄아버린 우주의 말에 황이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않아도 될 거다. 쫄지 마. 내겐 언제나 너희가 최고니까.”
황이서가 의욕을 돋우며 말했고, 다들 잔뜩 긴장한 채로 엘븐 라비의 방문을 기다렸다.
“안뉘영하세요!”
미국의 대스타가 GH 엔터를 방문했다.
* * *
“그러니까 여기가 올리오스가 있는 사무실이라고?”
“맞아, 라비.”
엘븐 라비는 예상보다 규모가 작은 사옥에 놀랐다.
몬스터즈라는 미국에서 잘나간 그룹은 물론이고, 재능이 넘치는 올리오스도 보유하고 있는 소속사의 건물이라기엔 조금 초라했다.
“몬스터즈도 키운 소속사 아니었나? 생각보다 크기가 작네?”
“미국이랑 같은 생각을 하지 마. 여기는 시장도 미국보다 작고, 스타들이 가져가는 비용도 적으니까. 한국 땅이 미국에 비해서 워낙 좁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아아, 이해했어. 그럴 수 있겠네.”
엘븐 라비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런데 얘기는 정말 한 거지?”
“그래.”
“흠, 그럼 들어가 볼까?”
엘븐 라비는 선물을 까기 직전의 어린이가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사옥의 입구로 향했다.
작년 연말에 처음 올리오스라는 그룹을 본 순간 느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20대 초반의 어린 아이돌들이 펼치는 무대에 엘븐 라비는 제대로 빠져들었다.
물론 디테일하게 따지고 본다면 아쉬운 부분은 분명 존재했다.
완벽한 무대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한국에서 음반 순위 1등을 차지한 노래라고도 들었다.
‘그렇지. 그래야지.’
엘븐 라비는 자신의 눈을 믿었다.
그게 지금까지 그를 빌보드에서 성공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한눈에 이 노래가 될지 안 될지 판단하는 안목.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올리오스가 꽂혔다.
얘들은 되겠다고,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제대로 매력을 터트릴 수 있는 인재라고.
‘3년 정도만 구르면 빌보드 1위도 딸 수 있을걸?’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보았다.
그래서 만나보고 싶었다.
어떻게 작업하는지, 연습은 어떻게 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자신이 얻어갈 수 있는 거라면 얻어가는 거지.
그런 올리오스가 한국 1위를 찍은 그룹이라니.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사무실 로비가 열리고.
“안녕하세요. GH 엔터의 아이돌 2팀 팀장 이두현입니다.”
“안뉘영하세요! 엘븐 라뷔입니다!”
엘븐 라비는 한국으로 오는 동안 틈틈이 연습했던 한국어를 뱉었다.
“올리오스 멤버들이 저기 연습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두현의 말을 들은 통역사가 그의 말을 전달해줬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번 꼭 만나고 싶었어요.”
통역사를 사이에 두고 잠깐의 대화를 마친 엘븐 라비는 올리오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로 들어선 엘븐 라비는 보았다.
춤을 추는 올리오스의 모습을.
“오호.”
그들의 춤을 감상한 그는 넋을 놓은 채 멍하니, 춤을 감상했다.
한국 아이돌 특유의 절도 있는 군무.
땀으로 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춤에 전념하는 그들에게서 집념이 느껴졌다.
‘연습과 훈련.’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누리던 엘븐 라비에게 저런 성실한 모습은 낯선 것이었다.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저 친구들은 어떻게 저렇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거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의욕을 잃지 않은 모습.
그건 확실히 자신과는 다른 무언가였다.
‘저건가.’
자신이 올리오스의 무대를 보면서 감탄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저런 성실함이 저들의 무기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올리오스의 연습 무대를 감상하던 엘븐 라비의 시선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어라?”
저 친구다.
자신이 보았던, 그 엄청난 매력과 외모를 지닌 아이돌.
예전에 봤을 때는 금발이었지만, 이번에는 검게 머리를 물들인 남자는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어?”
이름이 윤건하라고 했던가.
그와 눈이 마주친 라비는 생각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드는 반짝이는 눈망울, 오뚝한 코, 맨들맨들해서 만지고 싶게끔 하는 피부와 붉은 입술, 베일 것 같은 턱선까지.
아름다운 외모였다.
사람이 이렇게 잘생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그 안에 느껴지는 지독할 정도로 강한 자신감.
저 남자의 외모가 엘븐 라비가 느낀 이 그룹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외모만으로 매력을 느낀 건 아니지만….’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타인에게 호감을 받기 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엘븐 라비 역시 그런 외모의 수혜자였다.
수려하게 생긴 외모에, 반짝거리는 금발, 그리고 운동으로 키운 근육으로 남성미까지 가진 자신의 외모를 칭찬하는 이들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이 마스크 하나로 할리우드 영화까지 출연하지 않았던가.
윤건하와 눈을 마주친 뒤, 올리오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한 걸 확인한 엘븐 라비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엘븐 라비입니다.”
오늘 이들과 만나서, 자신이 이들에게 느꼈던 그 짜릿한 감각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엘븐 라비였다.
“작년에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 가요 어워드에서 올리오스를 보고 팬이 되었거든요. 이렇게 직접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 * *
[돌발 퀘스트: 당신을 인식한 외국 스타와 조우했습니다.]
[보상: 35 오픈 마일리지]
역시.
엘븐 라비가 우리를 인식한 외국 스타였구나.
혹시 루케 크롬블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당신들을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아마 모를 겁니다. 내가 이번에 콘서트에 오고 싶었던 것도 다 그거 때문이라고요.”
번역 스킬로 완벽하게 번역되는 영어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이제는 현지인만큼이나 영어를 잘한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아마 다른 멤버들도 비슷할 거다.
“영광이네요. 빌보드 스타가 우리의 팬이라니.”
“하하, 빌보드 스타도 알고 보면 별거 아닙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올리오스와 똑같죠. 무대에 오르고 대중에게 사랑받고, 그게 한국이냐 미국이냐의 차이 아니겠습니까?”
겸손한 모습까지.
첫인상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모처럼 와주셨는데, 마땅히 보여드릴 게 없는데 어쩌죠?”
“괜찮아요. 여러분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계속 보는 것도 제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동양 사회의 근면함과 성실함은 미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거거든요.”
시원하게 웃은 그가 말을 이었다.
“음악적인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시간 괜찮은가요? 제가 뺏는 건 아니겠죠?”
“전혀 아닙니다!”
정민이 손을 저으며 외쳤다.
그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다들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떻게 연습을 그렇게 하는 겁니까?”
“노래를 만들 때 제 영감이 떠올리는 순간을 메모하곤 합니다.”
“나중에 미국으로 오시면 꼭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주세요. 그때는 제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줄게요.”
엘븐 라비와 몇 시간 동안 음악 얘기를 나눴다.
다들 영어를 잘해서 통역이 거의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원활한 대화에 엘븐 라비도 감탄한 듯 신이 나서 떠들었다.
오랜 시간 얘기해본 결과.
이 친구, 진짜 음악 덕후였다.
음악 덕후였고, 최고로 진심이었기에 성공적인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그런 케이스였다.
“토요일 무대에서 보여 드릴게요. 엘븐 라비가 어떤 무대를 하는지 말입니다.”
엘븐 라비는 우리와 헤어질 때 선언했다.
자기가 최고의 무대를 보여 주겠다고.
* * *
그리고 이틀간 열리는 골든 콘서트가 시작되기 하루 전.
-미국의 전설적인 가수 루케 크롬블 씨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인천공항에는 수많은 팬이….
이번에는 루케 크롬블이 방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