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인기 드라마, <미친개 김 부장>에서 나온 윤건하의 연기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조만간 또 보게 되겠네요. 김 부장님.
그의 마지막 대사가 끝난 순간, 윤건하의 연기 데뷔를 보기 위해 TV 앞에 자리를 잡았던 최유리와 이선영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꺄아아악!”
“이게 뭐야. 진짜 멋있잖아!”
그가 잘생겼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애초에 데뷔했을 때도 비주얼 멤버로 유명했던 윤건하 아니었던가.
그녀들이 놀란 건, 무대 위에서 아이돌로서 보여줬던 것과 같은 자신감은 넘치지만, 특유의 밝은 에너지와 멤버들을 돌보는 리더 같은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거였다.
머리를 까맣게 물들이고 정장을 입은 윤건하에겐 20대 초반 아이돌에게서 느껴지는 싱그러움보다, 냉철한 카리스마를 지닌 사업가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피로 때문에 다크서클이 옅게 내려와 있고, 늘 미간을 찌푸리며, 살짝 초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날이 선 턱선까지.
드라마에 나오는 순간만큼은 아이돌이 아닌, 사업가 송우진이었다.
“대박….”
“뭐야? 건하 오빠가 이런 연기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와, 나 깜짝 놀랐어.”
그녀들은 아직도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새로운 모습, 그것도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한 상반된 매력을 보여준 그의 모습에 둘 다 흠뻑 빠졌다.
멀끔한 정장 차림에, 옅은 다크서클과 날렵한 턱선.
아이돌은 사라지고 사업가만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건데?”
그녀들은 생소한 윤건하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선영아 지금 인터넷 난리야.”
“진짜?”
“원스 팬카페도 난리 났던데.”
다급하게 외치는 최유리의 말에 이선영은 핸드폰을 열어 인터넷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와!!!!! 비주얼 뭔데??
-연기 너무 잘하는데?
-왜 갑자기 긴급 투입됐는지 알겠다.
-첫 대사 치기도 전에 이미 감탄부터 나왔다.
-이게 되는 거야? 맞는 거야?
-역시 우리 건하, 잘한다.
-이미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의심한 덕 없지?
└2222222222
팬클럽 원스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윤건하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
새롭게 덕질할 수 있는 요소가 추가되었다는 사실에 다들 들뜬 모습이었다.
-우리 대표님 짤 떴다.
-대표님 날 가져요!
-저 회사 가고 싶어!
-악역이면 어때? 카리스마 있잖아.
그건 다른 연예인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유저들만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도 윤건하의 연기 얘기로 가득했다.
벌써 그의 연기를 움짤로 만든 유저도 있을 정도였다.
모두의 기대를 그야말로 뚫어낸 연기였다.
그것뿐 아니라, 드라마를 재밌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윤건하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에 집중했다.
별스타와 파란새 같은 SNS에도, 대형 커뮤니티에도 한순간에 윤건하와 그의 배역 송우진에 대한 검색량이 폭증했다.
“난 믿고 있었어.”
“야, 유리 너는 아까 걱정 많이 된다고 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걱정은 하지만 잘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두 사람은 서로 티격태격하며 다시 한번 누가 따준 오늘의 윤건하 짤을 감상했다.
“진짜 잘한다.”
“그러게….”
윤건하에게 깊게 빠지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 * *
[돌발 퀘스트: 의외성의 인정]
[연기로 대중에게 본인의 이름을 각인시키세요.]
[보상: 올리오스 인지도 상승, 20 오픈 마일리지]
[업적 - 의외의 천재성(2)]
[스탯에 표시되지 않은 능력으로 성과를 얻으세요.]
[보상: 35 오픈 마일리지]
1개의 퀘스트, 그리고 1개의 업적을 성공했다.
성공적인 첫 방영이었다.
“단역으로 출연한 아이돌이, 연기력으로 이 정도로 화제가 되는 건 처음일 거다.”
황이서가 놀랍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연기를 잘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저도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주기적으로 계속 연기를 할 생각이냐?”
“배역이 맞고 올리오스를 알릴 수 있는 길이라면요.”
“그럼 희성이 캐스팅을 담당하는 배우팀에 말해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야, 그런데 진짜….”
황이서가 다시 TV를 켜며 감탄했다.
-김 부장님 맞으시죠?
내가 연기한 모습을 TV로 보는 건 무대를 모니터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끄러웠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알몸으로 벗겨진 채 사람들 앞에 나서는 느낌이랄까.
“이거 꽤 부끄러운데요.”
“왜, 잘했는데.”
가볍게 웃은 황이서가 말을 이었다.
“이러면 앞으로 골든 콘서트까지 화제성은 걱정 없겠다.”
중얼거리던 황이서가 나를 보았다.
“의도한 거냐?”
“의도는 했지만, 저도 제가 이렇게 연기를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너도 대단한 놈이다. 운이 좋은 건지, 성공할 운명을 타고난 건지.”
내 말을 들은 황이서가 웃었다.
* * *
“우리 윤 배우님 아닌가? 아니, 송우진 대표님이라고 해야 하나?”
윤택수 회장이 껄껄 웃으며 나를 반겼다.
내가 드라마에 출연한 이후부터 나보고 자꾸 송우진 대표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아들이 첫 연기를 시작한 게 기쁜 건지, 아니면 기업 대표의 모습을 보여준 게 좋은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송 대표님.”
최정국 실장도 나를 놀리는 데 힘을 보탰다.
“그만 하세요.”
“하하, 왜 그러냐. 나는 네 연기를 보고 속으로 감탄했는데 말이야. 역시 내 핏줄을 이은 아이답게 제대로 된 사업가의 모습을 갖고 있더구나. 뭐, 그런 것도 대본 중에 하나겠지만 말이야.”
“나중에 사업을 이끌어가시는 것도 잘하실 겁니다.”
“에잉, 그래봤자 드라마 속 배역을 연기한 게 전부 아니냐. 아직 한참 멀었지.”
두 사람의 말을 듣던 나는 최대한 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어쩐 일로 부르셨나요?”
“이유가 뭐겠냐. 이제 곧 있을 골든 콘서트 때문이지. 잘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의 시험 말씀입니까?”
“시험이라니.”
“엘븐 라비에 루케 크롬블, 이 사람들한테 보여주라는 거잖아요.”
“글쎄, 나는 모르겠구나.”
윤 회장이 가볍게 웃었다.
솔직하게 도와주겠다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최고의 무대로 준비하고 있어요. 현장 스태프들과 계속 소통하고 있고요.”
“기대해도 되겠나?”
“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흠, 좋아.”
윤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황룡그룹이 글로벌적인 위상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대중적인 이미지를 가져가기 위한 무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가수들이 스스로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지. 안 그런가?”
윤택수 회장이 나를 노려보았다.
“거기서 돋보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외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해야죠.”
“기대하고 있으마.”
나를 보는 날카로운 눈빛이 가라앉고.
“저녁은 먹었냐? 안 먹었으면 오랜만에 같이 식사라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들에게 약한 아버지로 돌아왔다.
* * *
<미친개 김 부장>에서 내가 연기한 송우진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분량은 적었지만, 그 배역이 주는 임팩트가 강한 탓일까.
-이런 씨팔! 개 같은 새끼들! 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송우진이 마지막에 주먹을 쥐며 자신의 사무실을 엉망으로 만드는 장면의 시청률은 무려 19%까지 올라갔다.
그날 최고의 시청률이었고, <미친개 김 부장>의 최고 시청률이었다.
-반드시 복수한다. 내가 어떻게든 너희들 싸그리 다 잡아서! 무너트리고 말 거다.
카메라를 노려보며 중얼거리는 마지막 대사를 본 시청자들은 혹시 시즌 2가 나오는 게 아니냐며 기대 어린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시즌 2에선 송우진이 메인 빌런으로 나오나요?
-제발 시즌 2!
-<미친개 송 대표> 제작 기원 1일 차.
└(2/10000000)
└(3/99999999999)
다들 송우진 대표의 퇴장을 아쉬워했다.
실제로 송우진이 하차한 이후 평균 시청률이 3% 정도 떨어졌고, 이후에 나온 악역들은 다소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드라마 자체가 가진 완성도 덕분에 크게 모난 소리는 듣지 않고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건배!”
“우리 건하 씨 진짜 잘했어!”
“이제 배우 해도 되겠다.”
종방연 때도 초대를 받아서 자리를 차지했다.
다들 얼마나 좋아하던지.
특히 선배 연기자들이 연기를 보며 감탄했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내가 깜짝 놀랐다니까? 같이 촬영장에 있으면 얼마나 좋아. 하필 일정이 어긋나서 못 찍었다니 말이야.”
드라마는 물론 영화에서도 수많은 히트작을 뽑아낸 중견 배우의 칭찬을 시작으로 거의 30분 동안 내 연기에 대한 얘기만 가득했다.
“이제 곧 콘서트도 있다면서요. 괜찮아요?”
박지혜 작가가 물었다.
“아,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크롬블 님에 엘븐 라비까지 오신다면서요?”
“와, 그 콘서트구나.”
화제가 순식간에 우리 콘서트 이야기로 돌아갔다.
“티켓 남는 거 있어요? 진짜 가고 싶은데.”
“그게 아마 황룡 멤버십이 있는 분들 대상으로 한 걸 거라서,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아쉽네. 구경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죠.”
다들 말로는 아쉬워했지만, 표정은 진심으로 아쉬워한 기색이 없었다.
티켓이 없다는 걸 알고도 얘기했던 걸 거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일명 스몰 토크 말이다.
술자리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그리고 자리가 끝날 때까지 내 앞의 잔은 콜라에서 바뀌지 않았다.
매니저가 극구 말렸으니까.
조금은 아쉬웠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 말이야.
* * *
골든 콘서트가 있기 사흘 전.
“오우, 코리아~. 생각보다 날이 시원하네요. 에어컨 때문인가?”
엘븐 라비가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본래라면 콘서트 하루 전에 오는 것이 보통 그의 일정이었지만, 그의 바로 다음 날에 공연을 갖는 루케 크롬블의 방한 때문에 일정을 하루 당겼다.
거기다가.
‘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몬스터즈를 보기 위해서 틀었던 한국의 연말 콘서트에서 본 낯선 보이 그룹.
그들의 음악에 흥미가 생겼던 그는 한국에서 콘서트 요청이 들어왔을 때 곧바로 오케이를 했다.
콘서트를 핑계로 한국에 와서 그 그룹과 만나고 싶었으니까.
올리오스라고 했던가?
그런데 신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준 걸까?
골든 콘서트에서 함께 무대를 꾸밀 한국 가수가 올리오스, 자신이 눈여겨보던 그룹이었다.
“확실한 거죠?”
라비는 자신의 매니저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확인했어. 올리오스, 네가 봤던 그룹이 맞아.”
“흥미롭네요.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왜 그런 실력을 갖고 있는데 빌보드로 오지 않는지, 어떻게 그렇게 군무를 딱딱 맞추는지. 메이크업은 어떤 브랜드로 한 건지.”
엘븐 라비가 비행기 시간 동안 깎지 않아 빼곡하게 솟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