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2화>
“왔네.”
현재 공중파에서 성황리에 2화 방영까지 마친 <미친개 김 부장>의 메인 PD인 설승원이 윤건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꿀이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보았거든.
윤건하가 캐스팅 전, 카메라 테스트를 했을 때 보여준 연기를 말이다.
그는 드라마의 주연인 김 부장을 맡은 구희성이 자신에게 했던 제안을 떠올렸다.
“여기 단역으로 나오는 경쟁사 기업 대표 말이에요. 아직도 못 찾은 거죠? 내가 괜찮은 사람 한 명 알고 있는데.”
당시는 2화 녹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구희성은 7화에 나올 단역을 연기해줄 배우를 추천한다며 자신에게 프로필 하나를 넘겼다.
참 까다로운 배역이었다.
제작 이전부터, 아니 주연 배우를 찾기 전부터 수소문하며 이 역할을 맡아줄 배우를 찾았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이었다.
조연도 아닌 단역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분량을 가졌지만, 주인공인 김 부장에게 성장의 계기를 주는 건 물론 악역의 악랄함을 드러내야 하는 배역이었다.
이 정도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들은 너무나 적은 분량과 악역이라는 디메리트를 감당하기 싫어해 거절했고, 오디션으로 모았던 사람들 중 설 PD의 마음에 든 배우는 한 명도 없었다.
그건 이 드라마의 대본을 작성한 박지혜 작가도 같은 의견이었다.
‘인물이 없네요.’
‘일단 보류하고 가죠. 그렇다고 제작을 미룰 수는 없으니까요. 후편집으로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경쟁사 대표 캐릭터의 배우를 따로 캐스팅하지 않은 채로 촬영을 이어갔고, 성공적인 첫 방영까지 해냈다.
문제는.
여전히 그 배역을 맡을 배우가 없었다는 것.
그런 와중에 구희성이 윤건하라는 아이돌을 추천했다.
같은 소속사의 후배 아이돌로,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
구희성을 캐스팅을 했던 예전부터 그는 계속 윤건하를 추천했다.
‘이 친구 진짜 잘합니다. 한번 보세요. 진심입니다!’
‘카메라 테스트라도 해보면 어때요? 진짜 빈말이 아니라, 엄청 잘해요.’
‘본인이 하지 않는다는 거 제가 계속 설득 중이니까….’
문제는.
연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아이돌이라는 거다.
그가 한 연기라고는 뮤직비디오에서 나오는 것이 전부.
정극과 뮤직비디오는 엄연히 다른 장르였다.
‘구희성 이 친구, 연기를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방법이 없었다. 캐스팅이 너무 촉박해져, 전문 배우들조차 부담감을 느껴 말 그대로 사면초가가 된 것이다.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던 설 PD였기에, 캐스팅을 하기 전에 간단한 미팅과 카메라 테스트를 하기로 했다.
‘최소 요구치면 갖추면 오케이야.’
설 PD가 생각하는 최저 한도라도 맞춘다면, 캐스팅할 심산이었다.
“걱정 마세요. 무조건 좋아하실 겁니다.”
구희성이 자신 있게 외쳤다.
그 자신감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건지.
‘천재라도 되는 건가?’
그리고 설 PD는 구희성이 추천한 윤건하와 미팅을 가졌다.
“안녕하십니까.”
마스크는 좋았다.
좋다고 하는 걸로 끝일까?
아니.
저 정도면 천상계급 배우들과 같이 서도 꿀리지 않을 그런 외모였다.
꿀리지 않는 것도 잘 쳐줘서였지, 보통 배우들은 오징어가 될 수 있을 그런 미모를 지녔다.
‘잘생겼네.’
속으로 감탄하던 설 PD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연기는 외모가 전부가 아니다.
물론 외모가 좋으면 고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배역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은 그 조건이 더 빡빡하지.’
아이돌이 가진 이름값만으로 캐스팅했다고 논란에 오르내리는 일도 많았으니까.
시청자들은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아이돌 출신 배우들에겐 남들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유명세를 얻기 위해 캐스팅했다는 말은 듣기 싫으니.’
그건 설 PD도 마찬가지였다.
어중간한 점수로는 캐스팅을 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원래는 희성 씨가 계속 같이 하자는 거 거절했다면서요? 이번에는 왜 같이 하려고 한 건가요?”
설 PD의 질문에 윤건하가 대답했다.
“단순히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만이 아이돌이 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거라면 다 하려고요.”
“그래요?”
“네, 게다가 기업 대표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 분야거든요.”
자기가 재벌집 아들이라고 티를 내는 건가?
“크흠, 그럼 한번 보시죠. 애초에 카메라에 엄청 나오는 아이돌이시니까, 바로 연기 테스트를 하겠습니다. 대본은 다 외우셨죠?”
“물론입니다.”
설 PD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절박하지도 않아.’
그렇다고 연기에 진심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게 아이돌이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니라고?
대체 얼마나 우습게 보는 건지.
이래서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란.
연기가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 그런지 다들 각오가 형편이 없다.
열정론의 대표주자인 설 PD에겐 이런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뭐, 해봅시다.”
외모로 책정했던 점수를 다 깎은 설 PD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카메라를 확인한 윤건하가 연기를 시작했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생각으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보던 설승원 PD는 곧.
“어?”
의자에서 등을 뗄 수밖에 없었다.
‘대단했지.’
윤건하의 연기를 본 설 PD는 대본을 쓰느라 참석하지 못한 박 작가에게 강력하게 주장하며 윤건하를 캐스팅했다.
“저도 오디션 자리에 못 갔으니 할 말이 없죠. 감독님 의견대로 하세요.”
그렇게 윤건하의 캐스팅이 정해졌고, 지금 현장에 신인 배우로 찾아왔다.
“건하 씨 왔어요?”
설 PD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신인, 그것도 고작 5컷밖에 나오지 않는 단역 배우에게 어울리지 않은 대접이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몇 달 간 그를 고생시켰던 앓는 이가 쏙 빠지는 기분이었다.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기다리고 있었어요. 약속한 시간보다 빨리 왔네?”
“부지런해야죠. 조금 더 일찍 오고 싶었는데, 스케줄 때문예요.”
“괜찮아요. 하하, 원래 약속보다 일찍 왔으면 된 거지.”
아마 이 모습을 보고 스태프들은 이런 생각을 하겠지.
‘아이돌 출신이라 대우가 각별하네.’
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연기를 보지 못했으니까.
설 PD는 박 작가를 비롯한 이 자리의 모든 스태프와 다른 배우들, 나아가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까지 놀라게 만들 윤건하의 연기를 기대했다.
“분장실에 가서 분장하고 바로 준비합시다. 시작하기 전에 리허설을 해야지.”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 * *
분장을 받으며 생각했다.
‘확실히 눈초리가 좋지는 않네.’
나를 보는 시선이 다들 날카로웠다.
아마 아이돌 출신이라는 것 때문이겠지.
시청률을 위한 도구, 낙하산.
다들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테니까.
‘특히 배우들 시선이 곱지 않았어.’
주연 배우들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처지의 단역 배우들이나 조연 배우들의 시선은 부드럽지만은 않았다.
그렇기에 실력을 보여줘야만 했다.
“후우.”
나는 머릿속으로 대본을 다시 한번 탐독했다.
욕심 많고 탐욕적이며 회사의 성장만을 추구하는 경쟁사 대표.
단역이자, 카메오 수준의 분량으로 나오는 악역이지만, 그 임팩트만큼은 강렬했다.
단순히 카메오 수준으로 나오기엔 아깝다는 느낌의 캐릭터였다.
그만큼 공을 들인 중요한 캐릭터라는 뜻일 테지.
‘특별히 몰입을 위해서 필요한 건 없어.’
과거 사업가 시절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니까.
사실 이번 역할을 맡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구희성은 내가 몇 번 거절해도 계속 다른 배역을 추천하며 연기 쪽으로 함께 하기를 원했다.
-아이돌이 무대에 서서 앨범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쉬고만 있을 순 없잖아.
처음에는 연기 활동이 아이돌 활동에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앨범을 쉬는 동안에 다른 멤버들이 각기 다른 곳에서 활약하는 걸 보면서.
그리고 그 모습을 좋아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조금씩 바꿨다.
이제 단순히 앨범 활동만 하기에는 우리들의 이름값이 커졌고, 더 많은 곳에서 나오길 원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이번 연기를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건.
-회사의 성장만을 원하며 돈을 좇는 기업가.
캐릭터 덕분이었다.
너무나 익숙한 캐릭터였다.
그냥 과거의 나 그 자체였으니까.
“메이크업 다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스타일리스트의 말과 함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리 준비된 정장까지 갖춰 입으니.
‘옛날 생각 나네.’
나름 과거 사업가 시절의 태가 났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의 윤건하와 비슷했다.
그때와 다른 건.
‘외모.’
피곤에 절어 있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화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쉽네.’
내 가슴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건.
‘젊은 CEO가 아니라, 그냥 정장을 입은 아이돌이잖아.’
성 PD가 원한 건 젊은 나이에 성공한 악덕 CEO지, 아이돌이 아니었다.
자신감이 넘치고, 매일 일에 치여 살며, 돈을 쫓으며 살다보니 주변 사람에게 소홀해진 그런 캐릭터.
그리고 그런 캐릭터가 어떤 삶을 사는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매일 일에 치여 살기 때문에 만성 피로를 가지고 있지만, 돈 냄새가 나면 그 눈이 총기로 반짝이는 삶을 살았다.
‘너무 이미지가 부드러우니, 조금은 날카롭게 만들 필요가 있겠는데.’
거울 속에 비치는 내 외모는 그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기엔 다소 부드러운 편이었다.
이대로라면 본래 이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쏟아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카메라 테스트 당시엔 설 PD도 만족했던 모양이지만.
‘내가 용납 못해.’
“저기, 스타일리스트님.”
“무슨 일이시죠?”
“지금보다 조금 초췌한 느낌으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초췌한 느낌이요?”
“네, 이 턱 쪽에 살짝 쉐딩 해주시고, 눈 아래에 다크서클을 옅게 그려주세요.”
“하지만 그러면….”
“괜찮아요. 변경한 부분은 제가 감독님께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스타일리스트가 내 오더대로 메이크업을 다소 바꿨다.
눈 밑에 생긴 옅은 다크서클과 살짝 날카로워진 외모.
“좋네요.”
미간을 살짝 구기자, 정말 과거의 윤건하를 그대로 빼다 박은 내가 있었다.
메이크업을 마친 뒤, 다시 현장으로 나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간 모였고, 다시 떨어졌다.
그리 좋은 시선은 아니었다.
“어? 뭐야, 이미지가 엄청 바뀌었는데?”
“네, 분장에서 배역 이미지를 더 잘 드러낼 방법이 생각나서, 약간 변주를 줬습니다.”
내 말에 설 PD가 살짝 거리를 벌리며 나를 보았다.
두 손으로 네모를 만들더니, 카메라 앵글에 내 얼굴을 담는 시늉을 하며 위아래로 나를 살폈다.
“좋네. 느낌이 좋아. 확실히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있네요. 예상보다 날카로워진 느낌이긴 한데, 악역이라면 이렇게 나와야죠.”
설 PD가 껄껄 웃었다.
“그럼 일단 리허설을 위해 테스트만 한 번 진행할게요. 첫 신으로 같은 프레임에 들어갈 구희성 씨와 같이 리허설 진행하겠습니다.”
그 말에 구희성이 내게 다가왔다.
“분장 바꾼 거, 건하 네가 직접 생각한 거야?”
“네, 선배님.”
“완벽한 캐릭터 연출을 위해 메이크업까지 신경 쓴다라….”
말없이 나를 가만히 응시하던 구희성이 씨익 웃었다.
“역시 넌 연기에 재능이 있어.”
그리고 리허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