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트레블리의 의상 콘셉트는 최대한 캐주얼하게 잡았다.
무대 의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수수하고, 그렇다고 평상복이라기엔 조금 화려한 옷이었다.
패션을 좀 아는 사람이 입을 법한 코디랄까.
‘물론 나는 패션을 잘 모르지만.’
RPM이 빠른 비트에 바이올린 반주가 더해진 조금은 독특한 반주였다.
전자 드럼으로 홍우선이 직접 작업했던 노래가 무대에서 펼쳐졌다.
트레블리 멤버들이 일심동체로 한 번에 움직였다.
“오오, 잘한다. 방금 괜찮지 않았어?”
정민의 감탄에 호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진이도 후배들의 춤에 만족한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하네. 노래 발성도 좋고.”
성훈이도 그런 호진이와 함께 트레블리를 칭찬했다.
다들 후배들의 무대를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비록 소속사는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 때문에 다들 정이 든 모양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레프픽션에 자주 찾아가서 애들에게 조언해주며 가까워진 것도 있고.
“잘한다! 그래! 거기!”
정민이는 주먹을 쥐며 후배들의 무대를 응원하기까지 했다.
음악 방송의 라이브는 살짝 딜레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다들 직관을 하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좋았어.”
뒤늦게 합류한 성재영도 팀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이었다.
첫 데뷔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할 거다.
다른 멤버들이 워낙 잘하니까 다소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1년, 아니 반년도 되지 않아서 성재영 역시 트레블리의 다른 멤버들처럼 빛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걸.
‘포기하지 않게끔 북돋아 주는 것이 내 역할이고.’
트레블리의 데뷔 무대가 끝이 났다.
짝짝짝!
와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렸다.
물론 이전에 나온 다른 아이돌 그룹보다는 훨씬 작은 반응이었지만 말이다.
잘하네.
단순히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 부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매력.
사람의 시선을 이끄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음방을 보며 아이돌 관련 커뮤니티를 읽고 있었다.
-이번에 남돌 또 데뷔함? 요새 왜 이렇게 많이 데뷔하냐
-트레블리면 그 올리오스의 윤건하가 투자했다던 애들 아니야?
-마케팅 엄청 하던데ㅋㅋㅋ 재벌 투자 받아서 그런가
-그래도 레프픽션이지. 매력 못 살려서 그룹 깨지고 저 중에서 한 명만 살아남겠지.
-레프픽션 악명이 높긴 하지. 망하지 않은 게 이상함.
처음에는 트레블리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관심조차 없어서 글도 거의 올라오지 않았다.
트레블리의 내용보단, 레프픽션의 지금까지 역사와 그들에게 투자했다던 나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그리고 무대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노래 좋은데?
-뭐임? 왜 잘함?
-근데 진짜 잘생겼다.
-레프픽션이 이번에 이 악물고 키운 듯
-윤건하가 투자하면서 황룡엔터도 개입했다던데, 그거 때문인 듯?
└루머임? 너무 근거 없는 얘기 아님?
└분탕 신고
-근데 레프픽션에서 데뷔시킨 다른 아이돌이랑은 다르다. 얘들은 진짜 잘 될지도?
-멤버들 이름 뭐예요? 지금 급함ㅠㅠㅠ!
트레블리를 칭찬하는 이야기들이 점점 늘어났다.
홍보팀에서 움직인 것도 있겠지만, 그게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글이 리젠되고 있었다.
역시.
쟤들은 될 애들이었다.
첫 데뷔 무대부터 대중들에게 트레블리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모습이 마치.
“꼭 우리 같지 않아?”
트레블리의 무대를 감상한 내가 멤버들에게 물었다.
“우리 같다라….”
“맞네. 데뷔도 아슬아슬했던 모습이라든가, 중간에 한 명이 합류했다든가,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좋은 데뷔 무대를 보여줬다든가.”
“비슷한 점이 많지. 그래서 그만큼 정이 가는 건가 싶네.”
멤버들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해서 놀랐어.”
성훈이 감탄하며 무대에서 내려가는 트레블리를 보았다.
그의 눈에 경쟁심과 투지가 샘솟기 시작했다.
어쩌면 트레블리를 진지한 경쟁자로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그건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투자한 아이돌 그룹이지만 첫 무대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아, 머지않아 우리를 위협할 정도로 유명해질 것이 분명했다.
선의의 경쟁.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이 분명했다.
* * *
무대가 끝난 걸 확인한 나는 전화를 걸었다.
액정에 뜬 이름은 강형찬이었다.
키는 작지만 특유의 당찬 성격으로 팀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그가 트레블리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었으니까.
이왕이면 상징성이 있는 리더에게 전화하는 게 맞았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공연 잘 봤어. 잘하더라.”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 저희 열심히 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우주 선배도 엄청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트레블리 멤버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렸다.
기운 넘치네.
이미 보고 있었을 거다.
아니면 홍우선이나 매니저가 전해줬겠지.
현장 반응부터 인터넷 반응이 좋다는걸.
그 모습이 과거 우주와 닮은 거 같아 괜히 귀여워 보였다.
“고생 많이 했다. 이제 시작이니까 너무 풀어지지는 말고.”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믿어주신 기대에 부응할게요!
강형찬의 굳센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트레블리 멤버들이 거의 동시에 외쳤다.
“그만큼 열심히 해야지. 문제 일으키지 말고 대표님이랑 매니저님, 프로듀서님 말 잘 들어. 이제 우리가 이전처럼 따라다니면서 도와줄 수 없으니까.”
-네!
“다른 멤버들 바꿔줄게. 같이 보고 있었거든.”
가장 가까이에 있던 호진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고생 많았어. 정말 잘했어. 그런데 말이야. 동작들 다 좋았는데, 솔라 너 군무할 때 반의 반 박자 정도 밀리더라. 그리고 형찬이는 점프하기 전에 숨을 고를 필요가 있어 보이고, 재영… 씨는 일단 동작 끝에 힘을 좀 줘야 할 거 같아.”
호진은 전화를 들자마자 후배들의 춤에서 보였던 아쉬운 부분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디가 아쉬웠는지 얘기하는데, 마치 자기 일처럼 아쉬운 부분부터 그 이유까지 세세하게 말해줬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피드백을 주는 게 매몰차 보일 수도 있지만, 끝난 직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호진과 트레블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열정이 느껴졌다.
“잘했다! 정말 고생 많았어!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정민은 시원하게 칭찬해줬다.
“다음에도 이만큼만 하자. 물론 이보다 더 잘하면 더 좋고.”
성훈 역시 담담하게 한 마디 해줬다.
“이러면 내가 너무 깐깐해 보이는 거 아닐까?”
호진이 걱정했지만.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도 있어야지. 호진이 네가 다 얘기해줘서 우리도 좋다고만 얘기한 거야. 우리까지 아쉬운 소리 하면, 첫 무대부터 자기 실력에 대해 의문이 생길 테니까.”
정민이 그런 호진을 토닥였다.
진짜 엄마 그 자체라니까.
그렇게 트레블리와의 전화를 끝냈다.
그때였다.
띠링!
핸드폰이 울리며 새로운 창이 열렸다.
[퀘스트를 완수했습니다.]
[트레블리를 데뷔시키고 음원 차트에 진입했습니다.]
[보상: 25 오픈 마일리지 or 프로듀서 윤건하 엔딩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프로듀서 윤건하 엔딩을 선택할 시, 트레블리의 성장에 따른 추가 오픈 마일리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픈 마일리지를 사용해 트레블리의 성장을 도울 수 있습니다.]
차트에 진입했구나.
빠른 성장이었다.
초반 지표는 우리보다 빠른 거 같기도 하고.
‘대견하네.’
그들이 이룬 성과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투자한 값을 받아내야겠지.
25 오픈 마일리지와 프로듀서 엔딩.
내가 프로듀서 엔딩을 선택하지 않을 걸 이미 알았다는 듯, 추가적인 혜택을 부여하겠다며 메시지가 떴다.
프로듀서 엔딩을 선택할 시, 트레블리의 성장을 할 때마다 보상을 받는 건 물론이고 트레블리의 성장을 도울 수도 있다고 했다.
아마 멤버들을 성장시켰던 트레이닝 스킬과 비슷한 효과일 것이다.
추가 효과라.
재밌는 얘기다.
저런 혜택들을 받아서 진엔딩에 도달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다.
하지만 프로듀서 엔딩을 선택하는 순간, 진엔딩은 영원히 손에 쥘 수 없는 허상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2개의 엔딩을 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
‘답은 정해져 있지.’
나는 과감하게 마일리지를 택했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내 모든 행동은 진엔딩을 보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쓸데없는 엔딩 분기로 나를 유혹하려고 들지 마.’
나는 재벌가 엔딩마저 버린 사람이야.
그러니 프로듀서 엔딩도 당연히 버릴 수 있었다.
[25 오픈 마일리지가 지급되었습니다.]
마일리지를 받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전화가 왔다.
-홍우선 프로듀서.
이번 첫 생방의 성과와 음원 차트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겠지.
“네, 프로듀서님.”
-건하 씨, 성공입니다! 대성공이에요!
들뜬 홍우선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프로듀서님. 마음고생 많이 하셨을 텐데요.”
-어, 어라? 신나지 않으십니까?
“신납니다.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리거든요.”
-그런 것치고는 침착하시네요.
“몇 번 경험해 봤으니까요.”
-아아. 그러네요. 올리오스는 이미 성공한 아이돌이니까요.
“아직 우리가 노려야 하는 부분이 많아요. 차트인이 훌륭한 기록이긴 하지만, 크게 본다면 이제 첫걸음인 거니까요.”
-맞습니다. 첫걸음이죠.
“한동안 트레블리는 프로듀서님께 맡기겠습니다. 저희도 이제 활동 준비하느라 바빠질 거라서요.”
-물론입니다. 앞으로 제게 잘 맡겨주세요. 사장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홍우선이라면 앞으로 혼자서도 잘해줄 거다.
지금처럼 개입하지 않아도 말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프로듀서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핫!
이제 트레블리도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으니, 남은 건 우리 올리오스였다.
* * *
“춤 연습은 아무리 많이 해도 여전히 힘들다. 하아, 하아.”
우주가 대자로 뻗은 채 헐떡였다.
그가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는 동안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무대가 크잖아. 동선도 크게크게 잡아야지.”
“알고 있긴 하지만….”
“호진이가 제일 고생이야. 이번에 우리 안무도 본인이 직접 짠다고 하더라.”
골든 콘서트에 있을 특별 무대를 위해 끊임없이 춤을 추고 무대를 구성했다.
채남영과 호진이가 무대에서의 안무 기획을 하는 동안, 황이서 프로듀서는 콘서트를 진행하는 메인 기획팀과 함께 무대의 구성, 규모 등을 공유했다.
역대급 규모의 특별 무대여서일까.
무대 장치도 화려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폭죽과 불꽃이 터지는 타이밍에 맞출 안무도 고민하고 있었다.
채남영도 호진이도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보였다.
두 사람은 지금도 머리를 맞대며 어떻게 무대를 구성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연습하고 시연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을 고치고 새롭게 안무를 디자인했다.
거기서 내가 도와줄 것은 없었다.
“흠.”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트레이닝.
이제 마일리지도 충분히 모였겠다.
멤버들의 능력치를 올려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