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허허, 많이들 놀랐나 보구먼.”
보도 자료를 확인한 윤택수 회장이 낮게 웃었다.
그러나 그가 웃은 게 보도 자료 때문만은 아니었다.
-깜짝 선물이네요. 예상도 못했습니다.
아들이 보낸 문자.
매번 당돌하고 도전적이었던 아들, 윤건하의 문자에 놀람이 가득했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던 아들이 보낸 순수한 감탄에 윤택수 회장은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꼈다.
“이래서 인맥이라는 게 참 중요해. 최 실장,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빌보드의 상징이자 미국 최고의 락스타, 루케 크롬블.
과거 남성 5인조 밴드의 보컬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이 남자와 윤택수 회장과는 나름대로 깊은 인연이 있었다.
황룡그룹의 미국 지사를 개척하기 위해 미국에 갔을 때, 아주 우연히 같은 식당에서 만나 함께 식사를 하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윤건하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30년도 더 된 과거.
그 당시엔 20대였던 최 실장과 30대였던 자신을 반갑게 맞이한 중년의 신사.
그가 루케 크롬블이라는 건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한밤 중에 알았다.
-내가 누군지 정말 모르오?
몰랐다.
일만 한다고 문화생활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으니까.
-허허, 정말 미스터 윤은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군요. 하긴, 먼 타국에서 온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겠군. 내 대표곡이 따로 있는데 들어보시겠소?
그가 자신의 대표곡 를 불렀을 때서야 알았다.
노래에 관심도 없고 한국에선 일만 했지만, 여기저기서 들어본 노래였다. 그 정도라면 필히 세계적인 가수일 거라고 직감했다.
-머나먼 동쪽 끝 한국에도 내 노래가 팔리고 있다니. 놀랍군요.
당시엔 올림픽이 개최되고 얼마 안 됐을 시기였기에,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강렬하지 않았을 때였다.
이제 막 부상하는 개발 도상국.
해외에서의 인식은 딱 그 정도였으니까.
순수한 감탄을 하던 그는 40대의 나이에 맞지 않게 아이처럼 웃었다.
어쩌면 그런 순수함을 가졌기에 뮤직 스타가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 밤의 일은 꽤나 즐거웠던 기억이 났다.
밤새 함께 술을 마시고 놀았으니까.
미국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던 유일한 하루였다.
어쩌면 아이처럼 순수함을 가진 그 남자에게 끌려다녔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인상 깊었던 하루였다.
물론 미국 지사는 몇 년 뒤 영업 부진을 이유로 잠시 철수했지만, 그와의 인연만큼은 남아있었다.
사실 그와 인연을 맺었지만, 루케 크롬블이 자신에게, 황룡그룹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의 제안으로 과거의 인연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되었다.
-미스터 윤의 부탁이라면 도와드려야지!
그렇게 루케 크롬블과 컨택이 되었다.
팝의 제왕이 내한 공연을 한다.
그의 마지막 내한 공연이 30년 전이었던가.
“아주 빅 이벤트가 되겠어.”
윤택수 회장이 낮게 웃었다.
그는 윤건하를 떠올렸다.
자신이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한 윤건하를.
올리오스의 가치가 황룡그룹의 가치만큼 커질 수 있다고 자신한 자신의 아들.
문화와는 영 관심이 없던 자신과 달리 아이돌로 성공하겠다며 집까지 나갔던 아들.
과연 그렇게 큰 야망을 가진 자신의 아들이 세계적인 팝 가수인 루케 크롬블과 어떤 무대를 만들지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네가 정말 세계를 노릴 재능이라면 그 친구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겠지.’
이 기회에 미국 진출에 큰 교두보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
그건 앞으로 건하의 손에 달렸다.
비록 자신이 과거에 건하의 아이돌 활동에 반대하긴 했지만.
한 번 도와주기로 했다면 제대로 도와줘야지.
그게 윤택수 회장의 신념이었다.
“그런데 정말 안 알려주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윤 회장을 보던 최정국 실장이 물었다.
“누굴? 건하를?”
“둘 다 말입니다. 건하 도련님에게도, 크롬블 씨에게도. 둘이 서로 알고 있다면 협력 또한 원활하게 이뤄질 겁니다. 특히 크롬블 씨는 회장님께서 부탁하신다면 들어주실 분 아니십니까?”
윤 회장은 자신에게 간언하는 최 실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왜 둘을 서로에게 소개하지 않는지 모르는 건 아닐 테고.”
최 실장이 고개를 숙였다.
눈치가 없는 친구는 아니었다.
거의 40년이다.
최 실장과 자신이 함께 한 세월이.
늘 윤 회장보다 냉철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최성국 실장이었다.
가끔 피가 끓는 상황에서도 윤택수의 그림자 아래에서 묵묵하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바로 최성국이었다.
자신의 의견은 최대한 죽이고, 오로지 모시는 사람의 의견과 생각만을 살피는 남자.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최성국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어필했다라.
“건하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느냐?”
“…죄송합니다.”
“아니야.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을 뿐이야. 최 실장, 자네는 건하를 어떻게 보는가?”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회장님의 젊었을 적 모습과 굉장히 닮았습니다. 추진력,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 그리고 비상한 아이디어까지. 분명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스패치 사건 때문인가?”
“예.”
아들에 대한 칭찬에 윤 회장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자기 자식의 칭찬을 들은 부모들은 다 비슷한 표정이 나오리라.
“자네가 그리 고평가 해주니 내가 다 기쁘군. 하지만 말이야.”
윤 회장은 최 실장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내 아들이 잘할 거라 믿기 때문에 소개를 시켜주지 않는 거라네.”
“…아.”
최 실장이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전력으로 밀어주는 것이 윤 회장 자신의 모토였지만, 건하를 도와주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아니, 오히려 아들을 믿기에 소개하지 않는 거다.
스스로 헤쳐나갈 수 없다면, 그에게 했던 포부가 거짓이라는 뜻일 테니까.
“제힘으로 크롬블의 인정조차 받을 수 없다면 돌아와야지, 내 품 안으로. 안 그런가, 최 실장?”
“그렇습니다.”
건하에게 전력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지만, 윤 회장은 여전히 건하가 자신의 뒤를 이었으면 했다.
이왕이면 아들이 자신이 일군 거대한 기업을 이끌어주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재미있겠어. 아주 볼거리가 많을 것 같네. 허허.”
낮게 웃은 윤 회장이 골든 콘서트의 포스터를 바라봤다.
* * *
“반응이 엄청나네요.”
“그러게.”
맞은편에 앉은 황이서 프로듀서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라인업이었다.
토요일의 공연이 엘븐 라비인 것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보다도 놀라운 건, 루케 크롬블이었다.
벌써 인터넷 커뮤니티는 난리였다.
아이돌 커뮤니티는 물론 음악 관련 커뮤니티 전체에 퍼진 건 시작이었다.
전설적인 팝 가수 루케 크롬블을 모르는 사람은 한국에 없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아는 슈퍼스타가 온다는 소식에 인터넷은 그야말로 난리였다.
-아니 진짜 크롬블이 온다고?
-와, 이건 크롬블 하나로 이미 갈 가치가 있다.
-미어터지겠네.
-황룡그룹 대체 뭐임? 얘들 이제 대중적인 이미지도 챙기려는 거야? 완전 미쳤네.
-이번에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공연한다는데, 이틀간 사람들 폭발하겠다;;
-이게 공연이지.
-엘븐 라비가 초라하게 느껴질 줄은 전혀 몰랐다.
-아무리 요즘 빌보드에서 잘 나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크롬블한테는 안 되지.
젊은 사람들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추억이네요. 크롬블의 노래를 들으면서 대학교 강의 들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옛날에 CD 구울 때 크롬블 곡은 무조건 넣었죠. 계속 앞으로 돌려서 반복해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저는 LP판으로 구매했었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사 부모님께 혼났지만, 그 노래만 들으면 가슴이 설렜던 때가 있었죠.
-기회만 되면 꼭 가고 싶네요. 아들내미한테 도와달라고 해야겠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도 골든 콘서트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이벤트가 되었다.
그와 함께 출연하는 아이돌들의 이야기는 쏙 묻힐 정도였다.
그야말로 거대한 광풍이었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지?”
“네.”
“엘븐 라비마저 묻힐 그런 무대에서 말이야.”
크롬블이 가진 건 짙은 추억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과거와 현재의 조화야. 과거의 유명 가수에게 묻히기 싫다면, 우린 최신곡을 선보이는 거지.”
“신규 앨범을 내실 생각이십니까?”
“낸다면, 콘서트가 끝나고 내야지. 지금은 이미 크롬블에게 모든 이슈가 잡아먹혔으니까.”
같은 생각이다.
골든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 크롬블이 모든 가요계의 이슈를 잡아먹을 거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커지겠지.
그러니까 그와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후에 올리오스를 선보여야만 했다.
“이미 앨범 준비는 내부적으로 많이 진행됐어. 콘서트 준비와 병행하려면 무리가 있을 테니까, 곡 선정과 춤 연습은 지금부터라도 바로 시작할 생각이다. 이견 없지?”
“네!”
힘차게 대답한 나는 얼마 전에 엘븐 라비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에 받았던 퀘스트를 떠올렸다.
[메인 퀘스트: 골든 콘서트의 빛]
[조건 1: 골든 콘서트에서 무대 등급 SS급 이상 달성 (미달성)]
[조건 2: 골든 콘서트를 찾아온 이들에게 이미지 각인 (미달성)]
[조건 3: 뉴스 헤드 라인 장식 (미달성)]
[성공 시 보상: 골든 콘서트에 참여한 빌보드 슈퍼스타의 관심과 인정, 50 오픈 마일리지, ???]
골든 콘서트의 빛이라는 말을 굳이 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크롬블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을 내어야만 한다는 것.
화려한 빛이 되어 슈퍼스타가 되라는 것.
이번 퀘스트의 의미는 그거였다.
저 보상 중에 적힌 물음표 역시 평범한 건 아닐 거다.
고된 길인만큼 확실한 보상을 줄 테지.
엘븐 라비와 루케 크롬블의 관심과 인정 이상의 것을 말이다.
‘아버지도 너무하네.’
분명 알고 있었을 거다.
골든 콘서트에 크롬블이 올 거라는 걸 말이다.
그런데 언질도 없었다니.
이건 분명 윤택수 회장의 시험이다.
‘최고의 가수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슈퍼스타는 꿈도 꾸지 말라고.’
내게 언질을 주지 않으신 것도 시험에 부정행위가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리라.
아들이라도 얄짤없는 사람이었다.
시험이라.
‘절대 그냥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버지.’
무조건 성공할 거다.
시험을 출제한 윤 회장이 놀랄 정도로 화끈하게 말이다.
“잘 해보자. 이번에 골든 콘서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아이돌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어. 예를 들면….”
적합한 단어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
“아티스트?”
정민이 대신 말했다.
“그래. 아티스트.”
“크롬블 선배님에게 올리오스라는 이름을 제대로 박아드리자고.”
“오케이!”
“파이팅!”
다행이다.
다들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어서.
혹여나 너무 큰 거인을 만난 탓에 주눅이 들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제 올리오스에게 이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었다.
보다 더 큰 일을 얼마든지 겪고 왔으니까.
의지를 불태우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을 가졌다.
내게 주어진 저 퀘스트, 그리고 윤 회장의 시험 모두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