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반가워요.”
도스 패치의 파파라치가 떨어져 자유로워진 나는 새롭게 트레블리에 합류한 성재영을 만났다.
“아, 아, 안녕하십니까! 성재영입니다!”
“예명은 따로 없나요?”
“네! 소속사에서 붙여주는 대로 받을 생각입니다.”
당황하는 모습이 아직 신인 연습생다웠다.
트레블리 멤버들도 처음에는 다들 이런 느낌이었지.
스물여섯.
사실 예상했던 것보다 나이가 많았다.
게임에서는 나이가 어린 편이었으니까.
“앞으로 잘 해봐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그래서 첫 만남 때부터 말을 놓지 않았다.
물론 두현이 형이나 성훈이 형을 상대할 때는 말을 놓고 편하게 지냈지만.
아무래도 성재영은 단순히 선후배가 아닌, 투자자와 아이돌의 관계니까.
처음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지.
“‘아이돌 스쿨’에서 보여준 모습, 인상적이었어요. 앞으로 잘해봅시다.”
“네, 감사합니다!”
성재영이 나를 보며 90도 인사를 했다.
내가 한참 어리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공손한 태도였다.
투자자라는 걸 잘 알기에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절실하다는 걸 테지.
머리를 숙이는 걸 서슴지 않을 정도로.
짧은 만남이었지만, 성재영에 대해서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절실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역시 볼수록 느껴지는 매력이 있어.’
[볼수록 매력 넘쳐(SS)]
[자주 노출될수록 느껴지는 매력도가 올라갑니다.]
프로듀서 모드가 보여주는 성재영의 스킬.
히든 스킬이 확실했다.
앞으로 걱정은 내려놓아도 될 거 같았다.
당장 데뷔 이후에 성공하지 않더라도, 주기적으로 노출한다면 분명 대성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애초에 성공할 거라고 믿고 있지만.’
성재영을 데리고 온 홍우선 프로듀서를 보았다.
“최 실장님은 어디 계시죠?”
“앞으로 엔터 일은 저와 담당 직원들에게 일임하시고 회장님을 보필하러 가셨다고 했습니다.”
윤택수 회장을 얘기하는 걸 거다.
도스 패치 사건도 끝이 났겠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해 드리려고 했는데, 따로 찾아뵈어야겠네요.”
“하하,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일 처리를 하시는 게 무슨 기계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 트레블리에 대한 추가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성재영까지 영입했겠다. 걸리는 건 이제 없었다.
[연계 퀘스트: 트레블리 데뷔]
[트레블리를 데뷔시키고 음원 차트에 진입하세요.]
[성공 시 보상 : 25 오픈 마일리지 or 프로듀서 윤건하 엔딩]
퀘스트를 깨기 위해선 데뷔는 물론 앨범 차트인까지 해야 한다.
프로듀서 엔딩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추가 마일리지 수급이 필요하니까.
“홍우선 프로듀서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힘 좀 내주십쇼.”
“노래도 뮤비 콘셉트도 다 준비가 됐습니다. 이것저것 손만 좀 보고 최종으로 연습만 들어가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노래는 나쁘지 않았다.
좋은 작곡가와 함께 작업했다고 들었다.
홍우선 프로듀서의 본업은 믹싱부터 편곡까지 다 잡아주는 엔지니어였으니까.
그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제 기다리면 될 거다.
중간중간 이들을 찾아와 기운을 북돋아 주고, 성공의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면 잘할 수 있겠지.
‘나도 내 본업을 하러 가야지.’
프로듀서 모드를 새로 받았지만, 결국 내 메인은 아이돌이었다.
홍우선과 헤어지고, 나는 전화를 들어 최 실장에게 연락했다.
-예, 도련님.
“실장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무슨 고생을 했다고, 판을 짜신 건 전부 도련님이신걸요.
“황룡그룹의 법무팀이 아니었다면, 도스 패치를 그렇게 시원하게 못 건드렸을 테니까요.”
-하하하, 황룡그룹은 언제나 도련님 곁에서 도울 겁니다.
점잖게 웃은 최 실장이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이번 5월에 있는 골든 콘서트 준비는 잘 되어 가십니까?
골든 콘서트.
황룡그룹에서 진행하는 서울 시내의 거대한 콘서트 행사였다.
예전부터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해외 유명 뮤지션들을 초청했으며, 국내 많은 뮤지션도 참가한다고.
현재 그 해외 뮤지션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홍보 포스터에도 실루엣만 존재했고, 어떠한 정보도 나오지 않았다.
국내 팬들은 온갖 후보들을 다 입 밖에 올렸다.
2주 뒤에 콘서트 예매를 시작한다고 했던가.
예매 1주일 전, 그러니까 다음 주에 해당 뮤지션들을 공개한다고 전했다.
골든 콘서트는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일요일 총 2일간 진행된다는 정보가 마지막으로 풀린 이야기였다.
“잘 되고 있습니다. 저야 무대만 신경 쓰면 되니까요. 아, 그런데 말이에요.”
-말씀하시죠.
“홍보는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대체 그 외국 뮤지션이 누구입니까?”
-이름만 들어도 아실 분입니다. 특히 GH와는 깊은 인연을 지닌 가수죠.
“그런가요?”
-저도 이 부분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해외에서도 최정상급으로 활동하는 가수라는 겁니다.
최정상급 가수라.
GH와 관련이 있다는 걸 보면 몬스터즈와 관련이 있다는 건데.
“혹시 그 사람입니까?”
-누구인지 알겠습니까?
“엘븐 라비, 맞습니까?”
GH와 관련이 깊은 미국 최정상급 가수.
떠오르는 건 한 명밖에 없었다.
빌보드 차트 1위를 챙겨간 미국 최고의 가수.
-힌트를 너무 많이 드린 모양이군요. 허허허.
최 실장은 맞다는 말을 돌려서 했다.
“엘븐 라비라…. 생각보다 거물이 오네요.”
-두 번째 스타 이름 들으면 더 놀라실 텐데요.
“두 번째?”
-하하하, 이건 나중에 밝혀졌을 때의 즐거움을 위해 아껴 놓겠습니다. 회장님도 이건 밝히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현재 빌보드 최고의 스타 엘븐 라비보다 대단한 스타라.
그리 많지 않은데.
“밀리 웰런이라도 오는 겁니까?”
2000년대 초부터 앨범을 내면 늘 빌보드 상위권을 독식한 보컬리스트. 특유의 보컬 실력이 눈부신 가수였다.
이 정도 급이라면 엘븐 라비보다는 높게 평가받는 걸로 아는데.
-흐음, 그분보다는 더 상징성이 있는 분이 오실 겁니다.
이것보다 더 큰 건이라고?
도무지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오는 거지?
“그럼 실장님 말씀대로 나중에 있을 즐거움으로 남겨 두겠습니다.”
-허허, 그러시지요.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엘븐 라비보다 더 큰 스타라.
누군지 짐작이 되지는 않지만, 우스운 가수는 아니리라.
띠리링!
통화를 마친 나는 새롭게 뜬 핸드폰 알람에 액정을 바라봤다.
[콘서트를 빛낼 최고의 스타에 대한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퀘스트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골든 콘서트의 빛]
[조건 1: 골든 콘서트에서 무대 등급 SS급 이상 달성 (미달성)]
[조건 2: 골든 콘서트를 찾아온 이들에게 이미지 각인 (미달성)]
[조건 3: 뉴스 헤드 라인 장식 (미달성)]
[성공 시 보상: 골든 콘서트에 참여한 빌보드 슈퍼스타의 관심과 인정, 50 오픈 마일리지, ???]
새로운 퀘스트.
이제야 콘서트가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게 느껴졌다.
“하나같이 쉬운 게 없네.”
이 퀘스트를 깬다면 엘븐 라비의 관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고작 관심과 인정이 아니었다.
이 콘서트로 얻고 싶은 건.
‘공동 작업.’
올리오스와 빌보드 스타와의 공동 작업이었다.
함께 작업해서 빌보드로 진출하는 것.
그렇게 미국 시장에 진출해서 많은 이들에게 올리오스를 알리는 것.
그게 내가 이번 골든 콘서트에서 원하는 목표였다.
‘고작 인정을 받으려고 이렇게까지 판을 벌인 건 아니야.’
퀘스트는 잘 받겠다만.
나는 저 퀘스트 보상으로 만족하지 않을 거다.
두고 봐라.
반드시 빌보드 스타와 공동 작업을 따내고 말 테니까.
* * *
“진짜 다이나믹한 1월이었다.”
정민이 대자로 뻗은 채로 말했다.
그가 말한 대로 1월은 진짜 말도 안 되게 바쁜 한 달이었다.
연초에 있었던 여러 행사와 콘서트.
라이브 촬영에 기자들과의 인터뷰.
아이돌 스쿨에 나온 정민과 성훈의 모니터링.
기타 우주가 MC로 촬영하는 예능과 GH 엔터에서 진행하는 너튜브 프로그램.
거기다가 도스 패치의 오보 사건까지.
여러모로 바쁘고 힘든 한 달이었다.
“그런데 트레블리 그 친구들, 예전에 대기실에서 봤던 애들 아니야?”
우주가 내게 물었다.
이번 도스 패치 사건으로 멤버들도 내가 후배 아이돌을 육성하기 위해 돈을 투자했다는 걸 알았다.
굳이 비밀로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멤버 모두가 바빴었고,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맞아.”
“재능을 봤나 보네.”
“재능도 재능이지만, 레프픽션 사정을 들어보니까 데뷔를 못 할 거 같다고 하더라고. 내 옛날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투자를 했지.”
“아….”
MAE에서 쫓겨났던 옛날의 경험을 말하자, 다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다들 고생했었지.”
“그런데 형이 그 친구들에게 투자할 줄은 몰랐어. 사실 한다면 GH 엔터에 할 줄 알았거든.”
“그럼 나는 대표님 위에 있는 투자자가 되는 거야?”
“아이돌 겸 투자자님이 되는 거지. 대표님이랑 프로듀서님도 허리를 굽히는.”
최강훈 대표와 황이서가 내 앞에서 공손하게 말하는 상상이라도 했는지, 말을 한 우주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골든 콘서트에 참여하는 빌보드 스타가 발표되는 게 오늘이었지?”
성훈이 화제를 전환했다.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아마 오늘 7시에 올린다고 들었는데.”
“7시면 얼마 안 남았네.”
“누가 오는 걸까? 실루엣으로 다들 엄청 추측하던데.”
정민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골든 콘서트 포스터를 보았다.
화려한 포스터.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빠르게 진행되었던 무대였다.
계획이 나오고 한 달도 안 돼서 캐스팅과 무대 섭외가 완료된 무대.
황룡 그룹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전혀 모르겠다.”
호진이 고개를 저으며 포기 선언을 했다.
한 명은 엘븐 라비.
그러나 나도 다른 한 명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전설적인 록 밴드인 루케 크롬블이라도 오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도무지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상징성이 높은 가수라고 했으니까.
“설마….”
진짜야?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정민이 물었다.
“건하, 너는 들은 게 있어?”
“나?”
“응, 어찌 보면 가장 긴밀한 관계자잖아.”
그 말에 다들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들은 게 있구나!”
“누구야? 어떤 분이 오시는 건데?”
“말해줄 수 있는 거야?”
이제 곧 리스트도 나올 테니.
“엘븐 라비가 오는 건 확실하게 들었어.”
“엘븐 라비?”
“와…. 대박이네.”
“그런데 어쩌다가 그 사람이….”
다들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몬스터즈가 끝내 넘지 못한 벽이었으니까.
“다른 한 분은? 두 명이라고 들었는데. 토요일이랑 일요일.”
“나도 정확히는 몰라. 그런데 빌보드에서도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하던데.”
“그 정도야?”
“대체 어떤 가수가 오길래….”
“감이 안 잡히네.”
다들 벙찐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때였다.
“떴다! 리스트 떴어!”
“…….”
골든 콘서트에 나오는 빌보드 가수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우리는 얼어붙었다.
엘븐 라비 때문이 아니었다.
“진짜 이분이 오신다고?”
“우리가 이분이랑 같은 무대에 서는 거야? 진심?”
넋이 나간 목소리로 말하는 우주와 정민.
입을 열지 못하는 호진과 성훈.
그리고 나.
‘진짜일 줄이야.’
포스터에 그려진 가수는 루케 크롬블이었다.
미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이자 살아 있는 미국 가수의 전설.
최성국이 말한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말 상징 그 자체였다.
빌보드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