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아이돌 스쿨>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성훈과 정민의 표정이 안 좋았다.
단순히 지쳤다는 한마디로 평할 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두워? 무슨 일 있어?”
1, 2라운드 때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그런지.
원래는 2라운드를 마지막으로 끝내기로 했던 두 사람의 멘토링이 3라운드까지 이어졌다고 했었다.
그게 오늘이었고.
두 사람이 촬영할 <아이돌 스쿨>의 촬영은 이게 마지막이라고 들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아이돌 스쿨>의 녹화를 하러 갔다 올 때마다 두 사람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것보다는….”
“피드백 한다고 힘을 많이 써서 그런가, 많이 피곤하네.”
두 사람은 풀썩 소파에 앉았다.
정민과 성훈 모두 눈을 질끈 감으며 한숨을 퍽 내쉬었다.
“건하야.”
한숨을 내쉬던 성훈이 내게 물었다.
“생각보다 힘들더라.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가르친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이지.”
“그런데 말이지. 촬영장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거기서 돋보이려고 필사적인 애들을 볼 때마다 우리 옛날 생각이 나더라.”
성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대단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최대한 도와주고 싶다가도, 결국 이번 공연으로 몇 명은 떨어져서 데뷔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더라.”
무뚝뚝한 성훈이지만, 알고 보면 속정이 깊었다.
어떻게든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졌고.
아마 저렇게 표정이 좋지 않은 건, 그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가르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대한 좋은 점수를 받아서 떨어지지 않게.
혹시라도 떨어지게 되더라도 다른 곳에서 보다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조언하는 것.
그게 지금 이 두 사람이 지치고 탈진한 이유일 거다.
“눈에 띄는 애는 있었어?”
“있었지. 다만 그 친구들이 데뷔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성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게 봤다는 애들이 3라운드는 통과했어?”
“4라운드까지 살아남은 35명 중 한 명이 되긴 했지.”
“그럼 할 건 다 했네.”
“그만큼 다른 애들도 떨어졌지만.”
성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신경이 쓰여?”
“그런 것보단…. 우리가 저 친구들처럼 데뷔하지 못하고 떨어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정민이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참고로 나랑 성훈이 형이랑 같은 애들을 마음에 들어 했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눈에 띌 정도로 좋은 애들인 모양이었다.
익숙한 표정이었다.
피곤하지만,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는 표정.
내가 트레블리를 처음 보고, 그들을 키우자고 마음먹었을 때 딱 저런 얼굴이었지.
마음에 드는 후배를 발견했을 때의 얼굴.
“제대로 마음에 들었나 보네.”
“아마 건하 너도 영상 보면 느낄걸?”
두 사람은 씨익 웃었다.
“나도 ‘우주카페’에 처음으로 후배 출연자가 나왔어. 물론 분야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누군데?”
“올해 데뷔하고 급성장한 너튜버인데, 나랑 같이 콜라보를 했거든.”
이제는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따서 찾아온 손님들에게 각종 커피를 능숙하게 대접해주는 우주였다.
그 결과 <우주 카페> 시즌 2는 너튜브 평균 조회수 100만은 가볍게 찍을 정도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배우들이 영화 홍보를 위해 나올 정도로 말이다.
우주의 진행은 물론이고, 카페에서 보여주는 솔직한 담화와 위트 있는 농담들이 호평의 원인이었다.
“촬영은 잘 찍었어?”
“그럼! 그분도 너튜버라서 그런가, 촬영이 엄청 빨리 끝났어.”
이제 다들 개인 스케줄이 많아서, 이렇게 스케줄이 끝나면 다들 거실에 모여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호진이와 나는 연말 기념으로 찾아간 라디오 촬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자리는 우리가 한 팀이라는 걸 다시 한번 자각시켰다.
“‘아이돌 스쿨’에 정민이랑 성훈이 형 나오는 날이 1월 1일이잖아. 그때 몬스터즈 형들도 놀러 온대.”
“진짜? 형들 전부 다?”
“거기까지는 모르겠는데, 희성이 형이랑 카이 형, 진성이 형은 오신다고 했어.”
“그럼 다 같이 모여서 ‘아이돌 스쿨’ 시청하는 거야?”
“북적북적하겠는데.”
그 말에 정민이 소파에 몸을 반쯤 기댄 채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기 시작했다.
“선배님들까지 하면 8명에, 두현이 형도 올 테니까 9명….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야겠다.”
벌써 파티 음식을 고민하는 정민이었다.
* * *
“젠장, 젠장….”
도스 패치의 김성호 기자는 데스크의 판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적당히 하고 들어와. 1월 되면 바로 철수해!
분명 자신의 계획을 전부 듣고 허락해준 데스크였다.
곽인아 부장도 오케이하고 넘어간 사안인데, 이제와서 갑자기 철수라니.
심지어 바로 철수하면 철수하는 거지, 1월 안에 철수는 또 무슨 말인가.
지금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물론 곽인아 부장도 사정을 얘기했다.
-황룡그룹 쪽에서 간섭 들어왔어. 법무팀까지 보내서 기한 안에 철수 안 하면 진짜 큰일 날 거라고 엄포도 놓고 갔다고. 이거 진짜 일 커지기 전에 여기서 그만둬.
벌써 눈치챈 황룡그룹에서 견제를 들어온 거다.
곽인아 부장은 이쯤에서 빠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김성호 기자의 생각은 달랐다.
‘뭔가 있어!’
분명 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룡그룹 법무팀이 도스 패치 같은 작은 회사를 견제할 리 없지 않은가.
지금이야 이렇게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데다가 스케줄만 왔다 갔다 하지만.
‘너도 못 참을 거야.’
참지 못하고 저지를 때가 있을 거다.
스무 살의 혈기가 그렇다.
“누구 때문에 신년인데 쉬지도 못하고.”
1월 1일.
새로운 신년을 맞이하는 날이지만, 김성호 기자에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에겐 특종을 잡아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으니까.
차 안에서 대기한 채로 카메라를 옆에 두고 빵을 먹던 김성호 기자의 눈에 낯익은 차가 보였다.
“몬스터즈 한진성이다.”
그를 시작으로 몬스터즈 멤버들의 개인 차량이 숙소 앞에 하나둘 서기 시작했다.
“뭐가 있는 거 같은데.”
GH 엔터는 숙소를 남녀가 따로 쓴다고 했던가?
“열애설 같은 건 아니네.”
하지만 모른다.
여자 연예인이 갑자기 불쑥하고 나올지도.
“그럼 특종이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차량.
거기서 한 여성이 내린다.
“어?”
혹시 특종인가 싶었지만, 곧 그와 함께 내리는 황이서를 보는 순간 김성호는 혀를 찼다.
“아니네. 쳇.”
황이서 프로듀서의 여자친구인 스타일리스트 김예리였다.
한 달 넘게 잠복하면서 알게 된 관계였다.
“신년 행사라도 하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오늘도 건질 게 없을 것 같았다.
“젠장.”
김성호 기자가 혀를 찼다.
* * *
“다들 작년 한 해도 고생 많았다!”
최강훈 대표가 맥주잔을 들며 외쳤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황이서, 몬스터즈, 올리오스, 그리고 그 팀의 매니저까지.
우리 숙소에 모인 이들이 다 같이 술잔을 부딪쳤다.
몬스터즈와 함께 <아이돌 스쿨>을 보면서 신년을 맞이하려던 작은 파티가 어느새 각 팀의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프로듀서와 대표까지 합석한 회식이 되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면.
‘어? 대표님도 오신다고 하셨어. 참고로 우리 몬스터즈 다 갈 거야.’
몬스터즈 쪽에서 최강훈 대표와 매니저를 초대했고.
그러다 보니 이두현도 부르자는 얘기가 나왔다.
자연스럽게 황이서가 합류했고, 스타일리스트인 김예리도 함께 하겠다고 찾아왔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15명이 숙소에 옹기종기 모인 대잔치가 열렸다.
“나랑 황 프로는 금방 마시고 갈 거니까 부담 갖지 말아.”
맥주를 마신 최강훈 대표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 이걸로 괜찮겠어?”
최강훈 대표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이왕이면 신년이고 하니 더 맛있는 거 먹어도 되는데. 내가 올리오스랑 몬스터즈한테는 얼마든지 지갑 열어줄 수 있어.”
“괜찮습니다. 그러려고 모인 것도 아니니까요.”
애초에 성훈과 정민이 출연한 <아이돌 스쿨> 시청회였다.
두 사람이 어떻게 카메라에 비쳤는지 보기 위한 자리였기에, 비싼 술도 필요 없었다.
숙소 거실은 우리 모두를 수용할 만큼 충분히 넓었다.
“시작한다. 시작해.”
<아이돌 스쿨>의 오프닝 멘트와 함께 방송이 시작되었다.
세트장은 화려한 색감의 학교로 꾸며뒀지만, 방송을 보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다.
저기는 아이돌 데뷔가 걸려 있는 살벌한 서바이벌장이라는 걸.
서로를 떨어트려야 하는 비정한 세트장과 함께 77명의 연습생이 보였다.
그들의 실감 나는 현장의 모습, 노래를 준비하며 벌어지는 각기 다른 사연들.
M-TV답게 조금은 자극적인 연출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우기 시작했다.
“야, 적당히 하라고!”
“리더면 다야?”
이제는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까지 하는 연습생들.
분위기는 일촉즉발의 상황처럼 보였다.
“저거 사실 연출된 거더라고요. 두 사람이 같은 소속사 출신이었대요. 카메라에 노출도 되고 서사도 만들려고 의도적으로 싸웠다고 했어요.”
“정말?”
정민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하자, 우리는 다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장면에 더 집중했다.
저들도 정말 필사적이라는 게 느껴졌다.
의도적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만들 정도로 악착같이 덤빈다는 거지.
‘이게 서바이벌인가.’
장면이 바뀌며 1라운드 심사를 맡아줄 선생님들이 등장했다.
“정민이다.”
“성훈이 형이야!”
“이야, 카메라 잘 받는데?”
“이거 의식한 거겠지?”
호진과 우주를 시작으로 몬스터즈 멤버들도 각자 한마디씩 건넸다.
정민과 성훈의 귀가 빨개졌다.
보컬 트레이너를 맡은 두 사람을 시작으로 다른 트레이너와 선생님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저들 앞에서 솜씨를 뽐내고 1차 점수를 받아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것.
그게 1라운드 룰이라고 들었다.
두 사람이 트레이너이자 선배로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기대가 되었다.
연습생들의 첫 무대가 끝이 났다.
그리고 트레이너들의 심사평의 시작이 왔다.
“쓰읍….”
성훈이 이 사이로 바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안타까운 무대였어요.”
첫 멘트부터 독설.
성훈의 표정을 보니, 아마 멘트 순서를 PD가 손을 본 모양이었다.
이두현과 성훈, 정민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 이게….”
TV 속 성훈은 연습생들을 향해 가차없이 독설을 날렸다.
“1번 학생은 긴장하신 탓에 보컬에 너무 집중하지 못하고 있어요. 2번 학생은 안 나오는 고음을 지르느라 오히려 밸런스가 깨졌어요.”
연습생들을 클로즈업 하면서 그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경청하는 모습을 교차로 보여줬다.
1번부터 7번 학생까지 전부 아쉬운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주는 성훈이었다.
이대로 끝나면 비판만 하고 끝나는 욕쟁이 트레이너가 될 판이었다.
“음정이 떨리고 목을 너무 조이고 있습니다. 확실하게 풀어주는 게 좋아요. 저음 파트를 가져가거나 랩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어진 정성 어린 피드백.
그제야 표정이 밝아진 걸 보니, 멘트의 순서가 뒤바뀐 게 확실했다.
이후에 정민의 무난한 피드백이 이어졌고, 다른 트레이너들도 각자 한마디씩 더했다.
심사는 비슷한 패턴이었다.
독설과 함께 피드백을 날리는 성훈, 단점을 말하면서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주는 정민.
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 같은 느낌으로, 두 보컬 트레이너의 호흡이 기가 막혔다.
“이철호 PD가 캐릭터를 제대로 만들어줬네.”
잠자코 TV를 보던 최강훈 대표가 한마디했다.
“그런데 조금 과해. 얘기를 해야겠어. 수위 좀 조절해 달라고.”
전화기를 들던 최 대표가 성훈와 정민을 보았다.
“잘했다. 아주 깔끔하니 보기가 좋네.”
그의 칭찬을 끝으로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었다.
“어?”
그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연습생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