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90화 (190/236)

<제190화>

“이번에 피크 타임 공연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분위기 전환을 위해 화제를 돌렸다.

“아, 맞아. 라이언 애들이 엔딩 무대를 가져가고, 우리가 피크 타임을 가져가기로 했어.”

가요 어워드는 가수들의 축제여서일까.

많은 가수가 어워드 중간에 축하 무대를 가졌다.

그룹 전체가 서는 경우도 있고, 그룹에서 특정 멤버들만 유닛처럼 나와 활동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가수가 어디에 섰느냐에 대한 나름의 알력 다툼 또한 존재했다.

그걸 팬들 역시 의식했고 말이다.

흔히 가요 어워드에선 엔딩 무대가 메인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의 대상이 발표되기 직전에 이어지는 무대.

그 무대를 최고로 쳤고, 그에 준하는 무대가 바로 피크 타임 무대였다.

작년에 훌륭한 활약을 보이거나 유명한 인지도를 가진 가수에게는 보통 피크 타임이나 엔딩 무대에 자리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작년 올해의 가수상을 받은 라이언이 올해의 엔딩 무대를 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몬스터즈도 그걸 알기에 피크 타임으로 만족한 것.

“내년에는 너희가 메인 무대에 설 거 같던데?”

한진성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요? 에이, 아니에요.”

“아마 대상을 못 받아도 무조건 메인에 설 거야.”

한진성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들어차 있었다.

“올리오스야 말로 올해를 빛낸 가수잖아? 너희가 올해의 가수상을 받을 거야.”

시원하게 웃은 한진성이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는 골든트랙의 공연을 보았다.

이번에 나름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골든트랙.

MAE에서 작정하고 올린 성과가 있던 모양인지, 이번 가요 어워드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빠른 비트가 인상적인 댄스곡이었다.

골든트랙 멤버들은 한 몸이 되어 움직였고, 군무가 주는 매력을 120% 살리는 무대를 보여줬다.

꺄아아아악!

골든트랙의 팬들의 함성이 들렸다.

그들의 팬이 아니더라도 도쿄돔에 있는 팬들이 모두 똑같이 함성을 질러줬다.

참 신기하지.

이 머나먼 타국에서도 우리의 노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말이다. 지금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공연을 마친 이진우를 보았다.

그는 감동한 얼굴로 객석을 보고 있었다.

내려가던 이진우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잘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 줬다.

이진우 역시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본인도 만족하는 무대였던 모양이었다.

“많이 친해졌나 보네.”

진성이 입을 가리며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저번에 이진우가 저를 도와줬거든요.”

“그 재벌 2세 논란 때?”

“네.”

“고집만 가진 녀석은 아니네.”

우리는 다시 가요 어워드를 지켜봤다.

아직 우리의 무대가 있으려면 한참 남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한진성이 웃으며 말했다.

“벌써 너희 둘 뉴스 나왔네.”

“네? 벌써요?”

한진성이 내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나와 이진우가 서로 엄지를 치켜세우는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벌써 이렇게 나왔다고?

한국 기자 진짜 빠르다.

“놀랐지? 나도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다들 너를 집중해서 보고 있나 본데?”

나에 대한 기사는 물론 올리오스에 대한 기사도 많았다.

-올리오스X몬스터즈 GH 엔터 신구의 조화.

나란히 앉아 있는 우리를 찍은 사진부터.

-한진성과 윤건하, 리더간의 담소.

나와 한진성의 사진은 물론, 다른 멤버들의 개인 사진까지.

-최우주의 발랄함은 어디까지?

우주는 카메라를 향해 V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긴장 다 풀린 걸 보니, 얘도 이제 진짜 아이돌 다 됐다.

“정말 유명 가수 다 됐네.”

기사를 보던 한진성이 껄껄 웃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가요 어워드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부문들의 시상식이 이어졌다.

올해의 스타일, 최고의 커플상 등.

메인과는 조금 별개의 상이 초반에 수여되었다.

우리와는 인연이 없는 상이었다.

후보에도 올라가 있지 않았으니까.

수상 소감을 마치고 내려가는 아이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놀란 이들과.

“정말로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작은 상에도 울먹이며 감사를 표하는 아이돌.

“훌쩍, 이, 이런 상을 받을 줄 전혀 몰랐고…. 훌쩍, 감사합니다. 정말로. 팬 여러분 사랑해요.”

말은 담담하게 하지만, 눈가가 촉촉하게 젖은 이들도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들 밑바닥부터 고생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이들이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해 기나긴 연습생 기간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연습생이 떨어져 나가는 걸 봤을 것이다.

혹시 자신이 저들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와, 성공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속에 살았겠지.

우리처럼 가슴 졸이는 매일을 보냈을 터였다.

작은 상이라도 그 삶에 대한 보상을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만했다.

많은 사람의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자리였다.

우리는 그런 그들의 감상을 들으며 가요 어워드를 지켜봤다.

“그나저나 작곡상은 언제 나올까? 정민이 형이 거기에 후보로 올랐잖아.”

우주가 물었다.

그의 말에 정민이 부끄러운 듯 손사래를 쳤다.

“글쎄, 이제 슬슬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많은 무대가 지나가서….”

큰 상의 후보에 올라갔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얼굴을 붉히며 아니라고 말하지만, 정민의 얼굴엔 기대가 서려 있었다.

정민 나름대로 자신작이었던 노래들이었다.

성적도 좋았다.

신인인 우리가 음원 차트 1등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노래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아마 조금 뒤에 나올 거다.”

성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때였다.

“올리오스, 무대 준비해 주세요.”

스태프가 다가와 우리에게 말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알겠습니다.”

스태프에게 대답한 우리는 옆자리에 함께 앉았던 몬스터즈 선배들에게 말했다.

“형들, 먼저 갔다 올게요.”

“그래. 밑에서 보고 있을게.”

“화이팅! 올리오스!”

“응원하고 있을게!”

선배들의 응원을 받으며 우리는 백스테이지로 달려갔다.

우리가 이동하는 걸 본 원스, 우리 팬들이 손을 흔들었다.

그들을 향해서도 손을 흔든 우리는 빠르게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연습한 것처럼 하자. 리허설 때도 잘했으니까.”

“예쓰!”

“아까 앞 좌석에 우리 팬들도 있던 거 봤지? 열심히하자. 팬들 망신시킬 수는 없잖아?”

“당연하지!”

의지를 다지는 멤버들.

그중 성훈이 내게 다가왔다.

“건하야.”

“응?”

“이번에 고음 파트 말이야.”

“아, 형이 부르는 부분 말이지?”

“응, 이번엔 너랑 나랑 같이 화음 맞춰서 터트리는 거 어때?”

“지금? 리허설도 없이?”

“아까 리허설 때 봤다. 너 가창력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거.”

그걸 캐치했구나.

그간의 노력 덕분인지, 노래를 A급으로 올린 이후부터는 내가 들어도 괜찮은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래가 많이 늘었다.

물론 메인 보컬인 성훈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이젠 보컬도 강점이라고 여겼다.

‘다음 앨범에서 보일 변주로 생각했는데.’

“이번에 가요 어워드 무대는 축제잖아. 네가 메인 하이라이트의 고음을 부르고, 내가 거기에 화음을 넣어주는 거 어때?”

“리허설 때면 모르겠는데, 당장 실전이야. 괜찮겠어?”

그의 파트를 부르는 건 가능했다.

몇백 번이나 함께 보고 듣고 불렀던 부분이니까.

하지만 화음을 넣는 건 얘기가 달랐다.

몇 번의 합주로 화음 밸런스를 맞춰야 가능할 거 같은데.

“괜찮아. 충분히 할 수 있어. 너만 괜찮다고 하면.”

“…만약 다른 사람이 제안한 거였으면 바로 거절했을 거야.”

하지만 유성훈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그래, 유성훈의 보컬이라면.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믿음직하지.

그리고 생각이 많은 그가 이런 상황에 직접 제안한 거라면,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한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그래. 애들한테도 미리 말해주고.”

“알았어.”

나만 잘하면 되겠네.

자신감 있는 성훈의 모습을 보니 그런 확신이 들었다.

“자, 이제 들어가실게요!”

신호가 왔고, 우리는 무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리프트에 올랐다.

그리고 MC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개합니다. 올해를 뜨겁게 달군 아이돌, 가장 바쁜 아이돌이죠? 올리오스입니다!

리프트가 올라갔다.

이번에 우리가 부를 건 2집 타이틀곡이었던 ‘For you’.

전주가 들렸다.

우리를 바라보는 수만 명의 팬들.

모두 우리의 팬은 아니었지만, 그중 가장 열정적으로 응원봉을 흔드는 구역이 보였다.

‘저기구나.’

그리고 함께 자리를 채운 많은 스타.

일본 도쿄돔을 채운 5만 명.

그리고 M-TV를 생중계로 보고 있는 많은 시청자까지.

오늘 어째서 우리가 최고의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대라는 사람을 만나

나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노래의 시작이 좋았다.

우주의 스타트를 정민이 능숙하게 받았고, ‘For you’의 도입부가 도쿄돔에 울려 퍼졌다.

화려한 조명 아래. 현란한 춤사위.

치고 빠지는 멤버들의 호흡과 멋들어진 반주.

올해 우리가 부른 최고의 노래를, 우리를 보러와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노래를 부를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가슴에는 충만한 만족감이 차올랐다.

기분이 좋아졌고, 그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다.

노래는 점점 절정으로 향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무대를 소화했다.

그럴 수밖에.

이 무대를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데.

천 번은 더 연습했을 거야.

그만큼 진심이었으니까.

그리고 성훈의 하이라이트 부분.

오늘은 그 부분을 내가 성훈과 함께 처리하기로 했다.

고마워요.

나와 함께해줘서.

성훈과는 다른 맛이 있는 고음이었다.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느낌보단 부드럽게 쓸어주는 느낌의 고음.

그리고 그 위에 얹어지는 성훈의 하모니.

그는 내가 부른 음정보다 더 고음을 뽑아, 내 목소리를 받쳐주고 있었다.

‘미쳤네.’

노래를 부르며 생각했다.

성훈이 얘, 한 차원 더 발전했다는 걸.

S급 스탯에 연습벌레의 연습량이 더해지니, 말도 안 되는 성능의 괴물이 탄생했다.

‘아무래도 내가 괴물을 만든 모양인데.’

진심으로 최고의 무대였다.

마지막 고음 하모니만으로도 충분히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까.

* * *

옆을 바짝 밀고 위에만 포마드 헤어로 넘긴 금발 머리의 남자.

그는 푸른 눈을 빛내며 TV를 보고 있었다.

거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TV를 보는 그를 한 남자가 뒤에서 불렀다.

“라비, 뭐 해?”

“모니터링.”

엘븐 라비.

몬스터즈의 빌보드 1위를 저지한 미국의 천재 뮤지션이자, 아티스트.

그는 지금 M-TV에서 진행하는 아시아 가요 어워드를 보고 있었다.

“모니터링? 갑자기 누구?”

“이번에 나랑 1위 싸움 치열하게 한 한국 아이돌 있잖아.”

“아, 몬스터즈?”

“이번에 아시아 가요 어워드에 나온다고 해서 보고 있었지.”

“어때?”

엘븐 라비가 TV를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재밌는 애들이 있네?”

“재밌는 애들?”

“응, 이 친구들.”

“누군데?”

“올리오스. 얘들도 한국 아이돌인데 나는 얘들한테 눈이 가네.”

“올리오스?”

“응, 아주 재밌어. 노래 실력도, 작곡 퀄리티도 굉장히 좋아.”

“몬스터즈는 안 보고?”

“걔들은 나중에 나온대. 그런데 형, 나 이놈들이 정말 마음에 드네.”

엘븐 라비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윤건하는 몰랐다.

본인도 모르는 새에 천재 아티스트의 영감을 자극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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