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89화 (189/236)

<제189화>

하루 동안 컨디션 조절을 하며 마지막 점검을 마친 우리는 가요 어워드 촬영을 위해 그 유명한 도쿄돔으로 향했다.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이자,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일본 최대의 공연장 중 하나였다.

그 명성에 걸맞는 비싼 대관료 때문에, 5만 명이라는 인원을 전부 채울 자신이 없으면 적자를 보는 무대로 유명한 도쿄돔.

M-TV는 그런 도쿄돔을 가요 어워드를 위해 빌렸다.

한국은 물론 일본, 그리고 아시아 전체에 거대한 팬덤을 만든 K-POP의 힘이기도 했다.

작년에는 서울, 올해는 도쿄.

가요 어워드는 매년 이렇게 다양한 아시아 국가에서 개최했다.

단순히 한국 음악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통합의 어워드라는 이미지를 갖기 위함이었다.

한국 노래만 시상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가수들에게도 시상을 해주는 등의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고, 범 아시아적으로 높은 관심도를 갖게 만들었다.

덕분에 어워드를 치루는 공연장은 늘 매진이었다.

그만큼 한국 음악에 아시아 사람들이 관심이 많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벌써 또 일본에 오셨네요?”

이번 가요 어워드가 워낙 큰 공연이었기 때문일까.

저번에 일본 투어에서 만났던 스태프들을 또다시 만났다.

그 당시 공연 스태프를 해주던 이들 중 일부를 도쿄돔에서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당시 현장 총괄 PD였던 마츠다도 만났다.

“마츠다 PD님은 저번에 오사카에서 뵈었는데, 도쿄돔 공연도 담당하시나요?”

“하하, 오늘같이 큰 행사는 프로덕션 단독으로는 해결하기가 힘들어서 여러 협력업체와 함께 움직이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이번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저희는 전국적으로 움직입니다.”

어쩐지 오사카에서 공연하는 프로덕션 업체가 관서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했더니.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열심히 해볼게요. 아마 이번엔 제가 메인 스테이지 담당이 아니라 일할 때 못 만날 수도 있어요.”

그렇게 웃으며 헤어졌다.

도쿄돔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리허설 시간이기에 연예인들만 자리했는데, 한국의 유명 아이돌은 물론 슈퍼스타라고 불릴법한 사람들도 리허설을 위해 미리 공연장을 찾았다.

지금 미리 리허설을 위해 공연장에 온 이들은 이후에 무대에서 공연이 잡힌 이들.

그렇지 않은 연예인은 조금 더 늦게 와도 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제는 우리보다 늦게 데뷔한 후배들도 보였다.

“올리오스 선배님을 뵈어서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리키벌스입니다! 힙합 콘셉트의 아이돌이고, 올해 첫 데뷔 앨범으로….”

군기가 바짝 잡힌 채로 벌벌 떠는 남자 아이돌들도.

“안녕하세요, 선배님. 여러분의 좋은 아침을 위해, 선샤인입니다!”

상큼한 매력을 발산하며 우리를 찾아온 여자 아이돌들도.

다들 우리를 보며 선망의 눈빛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들보다 먼저 데뷔하고 성공적인 스텝을 밟아나가는 선배 아이돌 올리오스.

그들은 우리에 대한 동경 어린 시선을 빛내며 다가왔다.

“아, 반가워. 각자 이름이 어떻게 돼?”

“올해 데뷔한 거야? 벌써 여기서 공연이라니, 성장 빠르네.”

“피곤해 보이는데, 포도당 사탕 좀 먹을래? 공연 전에 이거 하나 먹으면 조금 힘이 나. 식단 한다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텐데, 나중에 이거 한 알씩 먹어.”

우주와 호진이, 정민이는 후배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막내였던 우주는 후배가 생긴 것에 기뻐했고, 동생을 자주 챙겨주던 호진이는 동생이 생긴 마음이라도 들었는지 기분 좋게 웃어줬다.

정민이는?

애초에 사람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먹을 걸 챙겨주는 걸 좋아하고 말이다.

무대 뒤편에서 요리를 해줄 수는 없으니, 사탕이라도 건네주는 그의 모습은 진짜 엄마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나랑 성훈이는 어땠냐고?

“아, 그래. 열심히 하고. 잘 보고 있을게.”

“잘 보고 있어. ‘레디, 액션’ 노래 좋더라.”

담담하게 인사를 받아줬다.

다른 3명이 떠들썩하게 받아주는 만큼,

누군가는 덤덤하게 인사를 해줘야 균형이 맞춰지는 거다.

“선배님들의 뒤를 차분히 따라 가겠습니다!”

기특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후배들이 나갔다.

당연히 리허설엔 후배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우리보다 까마득한 선배들도 많았다.

그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시그니처 인사를 건넸다.

방금 후배들을 봤을 때와는 정반대였다.

“이야, 올리오스 아직도 각이 좋네.”

“데뷔한 지 1년밖에 안 지났는데 열심히 해야죠.”

“그래도 그 정도 성공한 애들은 시그니처 인사까진 안 하던데?”

일전의 사건으로 인해 친해진 라이언도 도쿄돔에 리허설을 위해 왔다.

알기로는 이번에 메인 무대를 장식하는 팀이 라이언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 안 지도 오래됐는데 그렇게까지는 인사 안 해도 되지 않아? 설마 우리가 불편한 거는 아니지?”

“요즘 MZ들은 이런 거 불편해한다고 하던데?”

브리온과 로건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종종 만나면서 가볍게 식사도 했고, 종종 무대에서 만날 때마다 인사한 덕분에 꽤 친해진 덕일까?

가벼운 농담도 던지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대한민국 최고 힙합 아이돌인 라이언과 이렇게 친하게 지낼 거라고 말이다.

몬스터즈도 있긴 하지만.

‘몬스터즈는 같은 소속사니까 제외지.’

“형들도 MZ예요.”

우주의 말에 라이언 선배들이 손사래를 쳤다.

딱 한 사람.

“우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로건만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우리 아직 MZ라니까? 우주도 그렇게 말하잖아.”

“우주가 진심으로 말했겠어? 그냥 선배들 대우해주는 거잖아. 우리도 이제 30대야. 다 늙었어. MZ가 아니라 AZ, 아재지 아재.”

“야, 그렇게 말하면 더 아재 느낌 나는 거라니까?”

로건의 말에 브리온과 승현이 고개를 저었다.

지석만이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얘들아, 말해 봐. 너희도 우주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지? 우리도 MZ지?”

“너희가 이 형 좀 말려봐. 요즘 이 형 완전히 어려 보이는 것만 찾는다니까.”

불똥이 우리에게 튀려는 그 순간.

“올리오스 팀, 이제 리허설 들어가겠습니다.”

구세주가 나타났다.

현장 스태프의 부름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선배님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야, 야, 얘들아! 말 좀 해주고 가!”

우리는 선배들의 조금은 유치한 말다툼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무대 위로 올라갔다.

* * *

거대한 공연장은 그 존재만으로 압박감이 상당했다.

우리가 선 무대가 너무나 작게 느껴질 정도로 넓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컸다.

“저기에 사람들이 다 모인다는 거지?”

공연장의 실제 규모를 확인한 우주가 입을 쩍 벌렸다.

“일본에서 제일 큰 스타디움은 여기서 2만 명을 더 수용할 수 있다던데, 그건 얼마나 더 큰 거야?”

“미국에는 10만 명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 있대.”

다들 도쿄돔의 크기에 대한 감상평을 한마디씩 건넸다.

나름대로 긴장을 풀기 위한 한마디였다.

그래도 무대에 올라왔을 때보다는 나아졌는지 얼굴이 풀어졌다.

“이따 저기 사람 가득 차면 심장 엄청 떨리겠다.”

“뒤에서 음악 소리도 엄청 크게 날걸?”

“인이어 뚫고 들어오겠지?”

“함성 소리는 무조건 들릴 듯?”

이제는 가벼운 농담도 나누며 무대 위에서 몸을 풀었다.

“다들 이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큰 무대를 몇 번이고 겪어봤잖아. 올림픽 경기장에서도 몬스터즈와 무리 없이 했어. 크기만 클 뿐, 우리가 해야 할 건 변함 없어. 리허설 연습으로 긴장 풀자. 알았지?”

나는 떨고 있는 멤버들을 진정시키며 리허설을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캡틴!”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옛썰!”

이제는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약간 여유까지 비추는 멤버들이었다.

그래. 경력도 쌓였는데 긴장만 하면 곤란하지.

이렇게 여유롭게 넘길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긴장이 풀어져서 실수를 하면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자, 공연 사인 들어 가겠습니다. 신호 부르면 리프트에 타세요.”

신호와 함께 돔 중앙에 설치된 무대를 향해 올라가는 리프트.

그리고 천장에 놓인 수많은 조명과 스포트라이트가 우리를 비췄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For you’.

이제는 눈을 감고 춰도 틀리지 않을 것 같은 그 춤이었다.

“올리오스, 좋습니다.”

리허설은 성공적이었다.

리허설을 끝낸 우리는 아직도 MZ 논쟁을 하고 있는 라이언을 피해 대기실로 도망쳤다.

나중에 끝내 자기가 젊냐고 물어보러 우리 대기실까지 온 로건을 달래느라 애를 썼다.

남자는 몇 살을 먹어도 애라는 말을 오늘도 통감했다.

* * *

가요 어워드가 시작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몬스터즈도 무사히 리허설을 마치고 우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이네! 준비는 잘했어?”

“네! 아까 리허설 보셨으면 눈물 흘렸을걸요?”

오랜만에 만난 한진성은 여전히 잘생겼다.

그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이따가 있을 후배 가수들의 무대를 기대했다.

“형들 이번에 미국 투어 성적 대박이던데요?”

“대박이긴 하지. 그런데 결국 1위는 못 찍었어.”

“미국 무대가 그렇게 쉽지 않았나요?”

“그것도 그건데….”

한진성이 말을 하다 말고 카이의 눈치를 보았다.

표정이 밝은 다른 몬스터즈 멤버들과 달리 유독 어두운 얼굴로 입술을 깨문 카이.

물론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본인의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일, 이라면 일이었지.”

한숨을 퍽 내쉰 한진성이 입을 열었다.

“이번 미국 투어에서 진짜 천재를 만났거든.”

“진짜 천재요?”

“그래. 엘븐 라비라는 미국 가수인데, 너희랑 비슷한 또래인 데다가 작곡부터 노래, 기획 연출까지 본인이 다 하는 천재 아티스트야.”

엘븐 라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적어도 게임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녀석.

몬스터즈가 천재라고 치켜세울 정도면 적어도 이름이 한 번은 언급되었어야 했는데.

‘이제는 이상할 것도 없지.’

현실과 게임의 괴리감이 이제 크게 다가왔다.

물론 아직 게임에서의 지식으로 얻을 건 남아 있었다.

미국의 유명 제작사라던가, 기획자, 그리고 프로덕션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몬스터즈가 인정한 천재.

그 사람이 궁금했다.

“혹시 그 사람이 이번 빌보드 1등인가요?”

“그래.”

한진성의 목소리엔 처음으로 패배감마저 느껴졌다.

“이번엔 1등 할 거라고 생각했다. 빌보드 1위를 먹고, 그다음엔 그래미를 노리려고 했어. 그런데 쉽지가 않네. 세계의 벽은 높다, 높아.”

거대한 산을 마주하고 무너진 등반가의 한숨처럼 들렸다.

“카이가 완전히 멘탈이 나가서, 좀 쉴 겸 한국에 두고 올까 했는데… 그럼 또 귀찮은 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그래서 다 함께 오셨군요.”

“그래. 물론 2등도 잘한 거야. 그건 맞는데….”

한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졌다는 패배감이 이번엔 유독 더 크게 느껴지네.”

한진성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멤버들 앞에선 다들 기운을 차리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 쉽지 않아. 미안하다. 후배 앞에서 못난 모습 보였네. 사실 오늘 공연으로 멋진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충분히 멋있었습니다.”

“그래?”

“네.”

사정이 어쨌든, 몬스터즈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이 프로라는 뜻이겠지.

이런 몬스터즈가 졌다라.

‘엘븐 라비.’

이 이름은 꼭 기억해 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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