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88화 (188/236)

<제188화>

도스패치.

대중들에겐 열애설과 같은 찌라시 전문으로 유명한 인터넷 신문사.

7년 전 한국에서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톱스타 여배우와 가수의 열애설을 기사로 낸 뒤로 대중들에게 확실히 그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런 도스패치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은 많았다.

자극적인 기사를 위해 연예인을 스토킹하고 파파라치를 서슴치 않는 모습을 꺼려했지만, 막상 그런 기사의 조회수는 다른 신문사의 조회수를 압살할 정도로 많았다.

고작 인터넷 신문사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우리 뉴스를 좋아하니까.’

도스패치의 편집장, 곽인아 부장은 나름대로 이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도스패치 역시 다른 신문 매체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뛴다고 생각했다.

사회부 기자들은 정치인과 경제인을 대상으로 뛴다면, 자신들은 연예인을 대상으로 뛸 뿐.

뭐가 다르지?

그들 역시 카메라 앞에 서서 대중의 인기를 받아 부유하게 사는 이들 아닌가?

그렇다면 사생활 역시 대중들의 것이 아닐까?

곽인아 부장이 도스패치에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건 바로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라도 김성호 기자가 들고 온 ‘올리오스’라는 타겟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아이돌 중 하나이며, 2년 차 신입답지 않은 실력으로 대한민국 정상을 찍은 보이 그룹.

소재 거리는 많았다.

데뷔하자마자 성공한 신인 연예인들의 주위엔 수많은 유혹거리가 많았다.

어린 나이에 그런 유혹에 넘어가 버리는 순간, 사생활 문제가 터지기 마련이었다.

특히 아이돌에게는 그게 더 타격이 심하지.

오죽하면 소속사에서 아이돌의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관리할까.

아마 GH 엔터의 올리오스도 그런 유혹을 받고 있을지도 몰랐다.

갑작스러운 성공, 성공가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이슈들이 참으로 많겠지.

김성호가 올리오스를 밀착취재하겠다고 얘기했을 때만 해도 곽인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돌이지만, 그래도 재벌가 아들이다. 윤택수 회장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차라리 사회부에 맡겨.”

위험한 상대였다.

올리오스의 윤건하가 아니라, 황룡그룹의 윤택수 회장이.

괜히 건드렸다간 잠자고 있던 야수를 자극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좋은 거 아닙니까? 재벌 2세에 아이돌까지 된 윤건하의 비행과 일탈. 결코 평범하진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곽인아 부장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재벌 2세, 그것도 재벌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아이돌로 성공하기 시작한 윤건하의 일탈. 또는, 그 과정에서 있었던 부정 의혹들.

그건 단순히 특종을 하나 따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성공만 한다면.

정말 그의 일탈을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건 황룡그룹과 긴밀한 라인까지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쁘지 않은데….’

최소한 도스패치라는 이름이 또다시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겠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밀착 취재가 하루 이틀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곽인아 부장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따르릉!

그녀의 테이블에 놓인 회사 전화가 울렸다.

“네, 도스패치의 곽인아 부장입니다.”

-재밌는 일을 벌이고 계시더군요.

수화기 너머에서 침착하고 정돈된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있는 이의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곽인아 부장은 심장이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십니까?”

-황룡그룹의 최정국 실장입니다.

“최정국… 실장님?”

기자밥을 먹는 사람들 중에서 황룡그룹의 최정국 실장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윤택수 회장의 최측근으로 현 황룡그룹을 만든 사람은 윤택수 회장과 최정국 실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개국공신 중 한 명이었다.

-도스패치에서 저희 도련님 뒤를 캐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말입니다.

“오해가 있으신 거 같네요. 저희는 그런 적이 없….”

-정말 몰라서 전화를 준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등골에 땀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말리면 끝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애써 태연한 척 말을 이었다.

“협박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기자에게 협박이라니요. 그런 미련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지요.

최 실장의 목소리엔 여유가 넘쳤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말할 리 없으니.

“대화라…. 저는 따로 드릴 말이 없는 거 같은데요?”

-하실 말씀이 많으실 거 같은데…. 친한 지인에게 들은 말입니다만, 도스 패치와 관련한 여러 비리와 범죄 행위를 포착한 게 있어서 말이죠.

“네?”

-생각나는 게 없으십니까? 더 말씀드릴까요? 한 기자가 특정 기획사에게 돈을 받고 경쟁 연예인을 저격하는 기사를 냈던 이야기라든가, 디스패치의 대표와 편집장이 합심해서 투자금을 횡령했다는 이야기라든가 말입니다.

곽인아 부장은 머리가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이 사람,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만 했다.

최 실장은 곽인아 부장의 개인적인 비리는 물론 회사 차원의 비리까지 전부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관계자들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정보가 새어나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간단합니다. 취재를 그만두라고 하세요.

“그거면 됩니까?”

-이왕이면 아예 철수하셨으면 좋겠지만, 만약 기자 본인이 거절하면 데드라인을 정해주시죠. 길어도 내년 1월 안에는 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만약 1월이 지났음에도 기자가 붙어 있다면 그때는 제 이야기 보따리도 좀 풀어보겠습니다. 기자분들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이야기 보따리 푸는 거.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주도권은 상대에게 있었다.

곽인아 부장이 할 수 있는 건,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최 실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완벽한 패배였다.

* * *

“정말 이거면 되는 겁니까?”

도스패치의 편집장과 전화를 마친 최정국 실장이 내게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장 철수시키는 게 제일 베스트 같아 보입니다. 이렇게 유예기간을 주면 상대가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최 실장은 아예 싹을 짓밟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감히 덤빌 수 없게끔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역시 싸움의 기본이니까.

하지만 상대는 도스패치가 아니었다.

“도스패치를 떨쳐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른 신문사가 붙을 거예요.”

그때도 똑같은 식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글쎄.

이런 방법은 여러 번 썼다간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과한 압박은 반발을 낳기 마련.

“도스패치를 통해서 다른 신문사에게도 보여줄 생각입니다. 도스패치도 잡을 게 없을 정도로 올리오스가 건전하다는 걸요.”

“오십 평생 회사에서 살던 제게 연예계는 낯선 분야로군요.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굳이 1월까지 유예 기간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건전함을 보여주실 거라면 조금 더 길어도 될 거 같은데.”

나는 최 실장의 질문에 답했다.

“너무 길어지면 멤버들의 피로감이 더 커질 테니까요.”

“그렇군요. 아무래도 아이돌도 사람이니 말이죠.”

“그리고 트레블리가 데뷔하기 전에 레프픽션을 방문해서 조언을 해줘야 하니까요. 초조해진 기자님이라면 그 모습 하나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겠어요?”

“…설마 도스패치가 오보를 내도록 설계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이미 밀착 취재 중인 사람이, 그만두라고 해서 바로 그만둘 리는 없다. 분명히 1월까지 남은 2달의 유예 기간을 사수하려고 하겠지.

아무리 기다려도 마땅히 특종 거리가 없는 올리오스.

성공할 거라 장담했지만, 마감기한인 1월이 가까워짐에 따라 그만두라는 압박은 거세지고, 성과가 없다는 것이 기자를 초조하게 만들 거다.

그때 내가 레프픽션에 방문하는 걸 우연히 촬영하게 된다면?

머릿속에서 어떤 상상이 펼쳐질지는 분명했다.

없는 일을 만들고, 적당히 살을 이어붙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게 되겠지.

그렇게 보도를 내는 순간, 반박 기사를 낼 생각이었다.

레프픽션에 투자한 트레블리라는 후배 아이돌 그룹을 도와주기 위해 방문했다는 기사를 말이다.

증거 하나 없는 추측성 기사는 그저 바람처럼 사그라들겠지.

“바로 준비해야겠군요.”

“네, 아무래도 여러 군데에서 몰아치는 게 거짓 소문을 빠르게 잠재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이거였군요.”

“하하하, 맞습니다.”

황룡그룹의 힘과 GH 엔터의 보도라면 도스패치의 거짓 기사를 짓누를 수 있을 거다.

그들은 모를 거다.

자신들이 전부 짜여진 판 안에서 놀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적당히 했어야지.’

몰래 뒤를 밟고 개인 공간까지 쳐들어와서 멤버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걸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제대로 밟아둬야지.

이번 거짓 기사를 통해 기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파파라치를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도스패치를 이용하는 목적이었다.

“그럼 진행사항이 있다면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황룡의 가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한동안은 무대 준비에 전념을 다해야 하기에 최 실장님의 도움이 절실했다.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 * *

도스패치 건은 최 실장에게 맡긴 후, 나는 다시 가요 어워드 준비에 돌입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워드 당일.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남자 아이돌 부문, 올해의 남자 가수상, 그리고 정민이 후보로 오른 작곡상까지.

3가지 부문에 후보로 올라간 우리는 약간의 기대를 품고 일본으로 향했다.

올해 가요 어워드는 일본의 가장 큰 무대인 도쿄돔에서 진행된다고 들었다.

“이렇게 비행기를 많이 타게 될 줄은 몰랐어.”

비행기에 올라탄 우주가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올해는 유독 비행기를 많이 타긴 했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해외투어를 시작으로 강한울과 콜라보를 위해 유럽으로 날아간 데다가, 오늘 가요 어워드를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것까지.

이제는 비행기 내부의 모습이 지겨워질 정도로 많이 돌아다녔다.

“도쿄…. 저번에는 인터뷰 덕분에 며칠 지냈었는데, 이번에는 많이 못 돌아다니겠지?”

“일정이 빡빡해서 시상식 끝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거야. 맞죠? 두현이 형.”

우주에게 대답한 내 말을 듣고 있던 이두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도쿄타워 올라갈 수 있나 했는데…….”

입술을 비죽이며 농담하듯 탄식하는 우주의 모습을 보니, 공연 때 실수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숙소를 찾아온 괴한으로 인해 생겼던 걱정과 스트레스는 전부 잊은 모습이었다.

“우와, 도쿄타워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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