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화>
파파라치 혹은 사생팬일지 모르는 사람의 접근이 있었다 해도, 우리가 할 일을 잊어서는 안 됐다.
곧 다가올 연말에 가장 큰 행사들이 곧 눈앞에 있었다.
가요 어워드, GH 연말 콘서트, 각 방송사 가요 대제전 등등.
여기저기 나가야 할 곳 투성이었다.
“하아, 하아.”
그 무대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서 다들 최선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었다.
확실한 목표는 우리를 조금 더 채찍질했고, 덕분에 우리를 쫓아왔다는 사람에 대해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특히 제일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던 우주와 정민의 얼굴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
“다행이네.”
연습실 구석에 앉아 있던 내 옆에 성훈이 따라 앉았다.
“성훈이 형은 괜찮아 보이네.”
“뭐, 예상했으니까.”
성훈은 목에 걸친 수건으로 무덤덤하게 땀을 닦았다.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가볍게 턴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건하 너는 괜찮아?”
“나도 뭐, 이런 일은 예상했으니까.”
“…….”
내 대답에 성훈이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정신을 다잡아야 할 사람은 건하 너니까.”
“다른 애들도 너무 충격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파파라치가 잡히는 게 아니라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다고 그런 외부인 하나 때문에 우리 멤버들의 컨디션에 영향이 가지 않았으면 했다.
그걸 알기에 채남영도 평소보다 조금 격한 트레이닝으로 최대한 그 일을 잊도록 만든 걸 테고.
“쉽지 않네.”
“그러게.”
내 말에 대답한 성훈은 텀블러에 담은 물을 한 입 가득 마셨다.
차마 다 담지 못한 물 한 줄기가 그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너도 마실래?”
“괜찮아. 나도 따로 있어.”
성훈의 반대편에 놓인 내 물병을 잡아 들고 흔들었다.
“그런데,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연습이 끝나고, 성훈이 이렇게 조용히 말을 걸 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았다.
잠시 나를 바라본 성훈이 벽에 등을 기댔다.
“건하 너는 아직도 생각이 똑같냐?”
“뭐가?”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 말이야. 우리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거야.”
“당연하지.”
그를 위한 넥스트 스텝도 이미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황룡그룹에서 준비하는 골든 콘서트.
아마 이 무대가 우리를 세계에 알리는 무대가 되어줄 거다.
세계에 알려지는 것만이 아이돌의 성공은 아니다.
그러나 진엔딩을 달성하기 위해선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이 꼭 필요했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아니, 별 거 아니고, 이번에 스페인을 가면서 느꼈거든.”
말하는 성훈의 목소리가 진중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떤 걸?”
“세상은 넓다는 걸.”
“많이 넓지. 아직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차고 넘치고, 아이돌 올리오스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을 테니까.”
“태국이나 일본에서도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서 조금은 자신감이 넘쳤었거든.”
“유럽에선 그러지 않아서 힘들었어?”
“조금은 힘들더라. 목표가 너무 아득하다고도 느껴졌고.”
성훈이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래서 물어본 거야. 우리의 목표를 제시했던 네가 봤을 때, 우리는 얼마나 온 거 같은지. 그리고 네가 생각했던 목표까지 얼마나 더 남은 거 같은지.”
“음….”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성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최소한 반환점은 돌았어.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왔을지도 몰라.”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간단해. 세계에서의 성공을 위해선 국내에서의 성공이라는 전제가 깔려야 하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걸 이뤄냈고.”
자국의 소비 시장을 공략하지 못한 기업이 세계를 노릴 수 있을 리 없다.
물론 가끔 이례적으로 자국 시장보다 해외 시장을 더 성공적으로 공략한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그건 정말 이례적이고.
“그런 지점에서 우리는 이미 반환점을 돌았다고 볼 수 있지.”
성훈이 말없이 나를 보았다.
“일본에서도 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통했어. 말고 다른 아시아권에서도 올리오스의 이름이 점점 자주 올라온다고 들었잖아?”
“그랬지.”
“아시아까지는 공략했으니 이제는 미국과 유럽도 공략해야지.”
나는 물병에 얼마 남지 않은 물을 전부 입에 털어 넣었다.
“유럽에서 우리를 모를 수 있어. 모를 수밖에. 우리가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우리를 모른다면 알려주면 그만이다.
이제 세계를 공략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간단했다.
“올리오스를 알려주는 거지. 내년에 있을 골든 콘서트로.”
그 말에 성훈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결국 한국에서 벌어지는 무대인데.”
“미국과 유럽의 유명 가수들이 콘서트를 위해서 오니까.”
“그 사람들과 컨택을 하겠다는 거야?”
“그래야지. 그게 우리의 무대를 세계로 넓힐 수 있는 기회니까.”
윤택수 회장이 이런 자리에 우리를 초대한 건 그 때문이었다.
골든 콘서트는 더 높은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였다.
“놀랍네.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성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몬스터즈 선배님들이 뚫어놓은 루트를 통해서 해외 진출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 우리가 아무래도 선배님들보단 인지도가 떨어지니, 그렇게 하는 게 더 빠르고 안전하다고 생각했거든.”
성훈의 말은 진지했다.
그 역시 나름대로 진지하게 앞으로의 방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벽에 막히는 거 같아서 이렇게 내게 물어본 거겠지.
“언제까지 몬스터즈 선배들한테 기댈 수는 없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네. 몬스터즈 선배들 대신 미국이나 유럽 아티스트를 꼬셔서 콜라보를 하겠다는 거지?”
“맞아. 샤라웃을 받아서 이름이 언급되면 더 좋고.”
“좋네. ”
그제야 웃음기를 찾은 성훈이었다.
“형, 조금만 더 힘내자. 우리가 생각했던 목표를 이루기까지 얼마 안 남았어.”
나는 주먹을 들었다.
조금은 유치하다고 볼 수 있는 동작이지만, 침울해진 동료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선 이보다 좋은 게 없었다.
함께 한다는 소속감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제스쳐 아니겠어?
그 모습을 보던 성훈이 작게 미소지었다.
저렇게 환하게 웃는 건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기운 넘치네.”
“리더니까. 정신을 다잡고 있어야지.”
“맞네. 하하하.”
성훈이 주먹을 쥐며 가볍게 부딪쳤다.
“믿고 있을게.”
“이제 연습 시작할 건데. 형은?”
“나도 연습해야지. 무대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우리는 다시 연습하는 멤버들에게 합류했다.
* * *
도스패치의 기자, 김성호는 오늘도 올리오스의 집 앞에서 잠복중이었다.
“아, 건질 게 없네.”
그는 차 안에서 아침에 찍은 사진을 검토하며 중얼거렸다.
매니저의 차량에 올라타는 올리오스 멤버들, 그리고 그들 대신 숙소 앞을 지키는 경호원.
“경호원까지 숙소 입구에 세워두는 걸 보면 분명 뭔가 있긴 있는 거 같은데….”
며칠 전 올리오스의 숙소 근처에서 잠복하다가 윤건하에게 들킨 이후로, 김성호 기자는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해놓고 그 안에서 생활하듯 했다.
요즘 카메라는 성능이 워낙 좋아, 거리가 조금 있어도 마치 옆에서 찍은 것처럼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여기라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리라.
“그때 좀 조심했어야 했는데.”
그는 혀를 찼다.
들킨 탓에 올리오스의 주위의 경비가 삼엄해졌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이렇게 한참 잠복하다 보면 괜찮은 특종을 건질 수 있겠지.
다만 아쉽게도 일주일 가까이 잠복하면서 지냈지만, 아직까진 이렇다 할 건수를 건지지 못했다.
연습, 숙소, 연습, 숙소, 외부 촬영, 숙소.
가끔 집 밖으로 나가긴 하지만, 그마저도 근처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게 전부.
아이돌로서 이슈가 될 만한 소스가 전혀 없었다.
차라리 건전함과 성실함을 메인으로 내세워 기사를 내는 게 나을 정도였다.
‘독하네. 진짜. 술도 안 마신다고?’
상관없다. 어차피 시간은 자신의 편이니까.
벼락 성공을 얻은 애들은 보통 절정의 순간, 나태해지고 태만해지기 마련.
특히 올리오스처럼 어린 애들은 젊은 혈기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 그 방심한 찰나를 찍는 것이 자신의 일이었다.
자신은 특종을 낚고, 올리오스는 반성의 시간을 갖는 거다.
물론 한 번 들키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렇다고 GH 엔터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숙소 근처에 경비를 세워둘 뿐.
멍청하게 덩치만 큰 놈이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처음엔 데스크에서도 어지간하면 하지 말라고 만류했다.
‘아이돌이지만, 그래도 재벌가 아들이다. 윤택수 회장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차라리 사회부에 맡겨.’
김성호 기자의 고집은 강했다.
‘오히려 좋은 거 아닙니까? 재벌 2세에 아이돌까지 된 윤건하의 비행과 일탈. 결코 평범하진 않을 겁니다. 그거 제대로만 찍으면 무조건 헤드라인 갈 수 있습니다.’
윤건하의 일탈.
재벌 2세이자, 국내 최고 인기 아이돌 중 하나가 된 지금이라면 국내에서 최고에 가까운 화제성을 사로잡을 수 있는 소스였다.
열애설이라도 터진다면 더 땡큐다.
물론 지금 당장은 일탈따위 모르는 척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은 영원히 긴장을 유지할 순 없고, 그 작은 방심이 곧 특종을 만들어주리라.
‘하나만 걸려라.’
김성호 기자는 카메라로 이제 막 숙소에서 나가는 올리오스의 윤건하를 찍었다.
“그렇지.”
* * *
집 밖에 진을 친 파파라치는 꽤나 집요했다.
일주일간 황이서가 조사한 결과, 이곳에 기자를 보낸 신문사는 없다고 했다.
심지어 파파라치, 연예인 뒷조사 전문인 도스패치마저도 기자를 보낸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그렇다면 단순한 사생팬일까?
확인하기 위해서 황룡그룹의 최정국 실장에게도 부탁했다.
-도스패치의 김성호 기자입니다. 도스패치 내에서도 나름 끗발이 있는 기자네요. 예전에 탑스타 열애설을 밝혀낸 기자입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대기업 소식통이었다.
도스패치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황이서는 이를 갈며 분노했다.
“이 새끼들이 끝까지…. 앞으로 그 놈들이랑은 일절 소스 컨택도 내주지 마.”
황이서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어쩔 생각이야? 사생팬이 아니라 다행이긴 하지만, 도스패치 기자도 그에 못지않게 악랄한 놈인데.”
“기자를 제대로 한번 속여볼 생각입니다.”
“기자를 속인다고? 어떻게?”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게 만든 다음, 거짓 뉴스를 쓰게 만들 겁니다.”
“그게 가능해? 김 기자도 나름 베테랑인데.”
“그럼요. 정상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나는 최정국 실장의 전화번호를 보며 되뇌었다.
“그리고 헛발질을 할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질 때, 거침없이 낚을 생각입니다.”
나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거다.
조력자였던 상부에서 내리꽂는 지속적인 압박이라면 제아무리 베테랑도 초조해지기 마련.
“아마 진득하게 싸워야 할 겁니다.”
최소 한 달은 싸워야 할 거다.
“네, 최 실장님.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요.”
나는 최정국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