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올리오스의 N-스포츠 단체 촬영이 끝이 나고, 멤버들의 개인 촬영 차례였다.
“자, 오케이! 좋습니다! 굉장히 훌륭해요.”
이번 스페인 촬영에서 총괄 감독을 맡고 있는 마르코 감독의 사인과 함께 내 개인 촬영이 끝났다.
나는 들고 있던 축구공을 내려놓고 발밑에서 굴렸다.
발등에 맞은 공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갔다.
“축구는 영 나랑 안 맞아.”
“그래도 운동 신경이 좋으니까 괜찮게 할 거 같은데.”
호진이 내가 찬 공을 발로 톡톡 치며 말했다.
좋아하는 운동이라서일까.
공을 받는 것도 차이가 있었다.
춤을 잘 출 정도로 운동 신경이 좋은 애라서 그런가, 가볍게 톡톡 치는 것도 태가 살았다.
물론 그런 호진도 축구를 잘하는 건 아니었다.
그럼 프로 축구에서 세계급으로 노는 강한울은 얼마나 잘 다룰까 하는 생각도 조금 났다.
“잘하네.”
“헤헤, 조금 하는 편이지.”
“잘 찍어. 보고 있을게.”
“알았어.”
나 다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 호진이 마르코 감독의 신호에 맞춰 자세를 잡는 동안, 김주성 실장이 내게 다가왔다.
“건하 씨, 고생 많았습니다. 멋진 촬영이었어요!”
“괜찮았나요?”
“네, 마르코 감독도 만족할 정도로 잘 나왔어요. 처음에 공을 발에 대고 있을 때는 조금 어색했는데, 지금은 다르네요.”
처음에는 축구선수처럼 공을 발밑에 둔 채로 연기를 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다리를 공에 올려둔 채로 자세를 잡는 건 어색해서 몇 번이고 NG를 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의외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건하 씨가 같은 샷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찍을 줄은 몰랐습니다.”
“발로 공을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요.”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하시나요?”
“그렇진 않은데, 자주 접할 일이 없었죠.”
그 말에 김주성이 낮게 웃었다.
“하하하, 하긴 자주 안 해봤으면 익숙해지기 쉽지 않죠.”
오오오!
감독의 환호성이 들렸다.
“아주 좋아요! 그대로 조금만 더!”
마르코 감독은 호진의 트래핑에 감탄한 듯 엄지를 추켜올렸다.
프로처럼 잘하는 건 아니더라도, 키가 큰 데다가 외모까지 잘생긴 덕인지 사진빨이 잘 받고 있었다.
땀 연출을 위해 머리에 분무기로 뿌린 물들이 머리카락을 반사하면서 더욱 빛났다.
물이 묻은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멤버 업적 - 완벽한 축구선수]
[멤버가 완벽하게 축구선수를 연기했습니다.]
[보상: 5 오픈 마일리지]
[멤버 업적 - 원샷 원킬]
[팀 동료가 한 번에 완벽한 샷을 찍었습니다.]
[보상: 3 오픈 마일리지]
소소한 업적이 완료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멤버 업적.
내가 하지 않더라도 팀 멤버가 해낸 업적도 보상이 되어 내 마일리지로 적립되었다.
스페인으로 온 이후 상당히 다양한 업적과 퀘스트를 깨서 마일리지가 쏠쏠하게 들어왔다.
[업적 - 새로운 무대(3)를 완수했습니다.]
[보상: 8 오픈 마일리지]
마드리드에 와서 첫 촬영을 했을 때, 유럽 시장을 개척했다면서 새로운 업적 포인트를 얻었다.
[업적 - 놀라운 광경을 완수했습니다.]
[보상: 3 오픈 마일리지]
마드리드의 전경이 보이는 욕조에서 야경을 즐기며 목욕했을 때, 또 한 번 소소한 포인트 상승이 있었다.
[업적 - 조력자의 성장(1)]
[보상: 5 오픈 마일리지]
이두현 매니저가 아이돌 2팀 팀장으로 승진했을 때도 포인트가 올랐다.
스페인으로 온 이후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포인트가 올랐다.
큰 포인트를 얻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조금씩 말이다.
“촬영이 끝나서 그런가, 표정이 편해 보이네요.”
“그런가요?”
김주성 실장이 가볍게 웃었다.
“내년에도 올리오스의 도움을 많이 받겠네요.”
“도움이라니요. 저희는 받은 만큼 하는 건데요, 뭘.”
“올해는 저희가 올리오스에게 기대했던 것 이상의 광고 효과를 얻었으니까요. 누가 알았을까요. 이제 막 데뷔한 1년 차 아이돌이 아체대에서 에이스급 활약을 할지 말이에요.”
“아, 그거 말씀이신가요?”
“방송이 방영되고 저희 N-스포츠 러닝화를 비롯한 트레이닝 제품들 판매량이 한순간 400%나 올랐습니다. 공중파에서 소속 모델이 활약하는 건 회사 입장에선 최고의 홍보죠.”
김주성 실장은 이번 콜라보 인터뷰도 아체대와 같은 효과를 보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때는 운이 조금 통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시도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핫!”
껄껄 웃은 김 실장은 호진 다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 성훈을 보았다.
“잘해 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나는 촬영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과 합류했다.
촬영을 다 마친 그들은 이따 저녁에 있을 축구 경기와 강한울과 인터뷰를 기대하는 눈초리였다.
이런 거 보면 진짜 다들 20대 초반이라는 게 느껴졌다.
“직관이라….”
다른 건 다 해본 나였지만, 축구 직관은 처음이었다.
조금은 설렜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언제나 새로운 경험은 사람을 설레게 하니까.
* * *
우리는 N-스포츠의 관계자들, 구단의 관계자들과 함께 경기를 직관했다.
오늘 우리와 콜라보를 할 한국 최고의 축구선수인 강한울은 주전으로 출전했다.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1개의 어시스트로 게임 내내 경기를 주도했다.
득점을 하지 못했음에도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한 강한울은 박수를 치며 후반 80분에 교체로 경기장 밖을 나갔다.
레알 마드리드는 원정팀을 상대로 3 대 1의 대승을 거뒀다.
와아아아아!
직관의 열기는 뜨거웠다.
아니, 뜨거웠다는 말로는 표현이 어려웠다.
거대한 축구장에 8만 명이 넘는 관중이 모여서 경기를 함께 보는 것은 그야말로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경기 내용과는 별개로 팀 응원가와 선수의 응원가를 홈 팬들이 같이 부르는 모습을 볼 때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동시에 박수를 칠 때 나는 진동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이래서 다들 스포츠에 열광하는구나.’
객석에서 축구장을 보던 중에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축구선수도 어떤 면에서는 아이돌과 비슷했다.
축구장을 무대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팬을 즐겁게 하기 위해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이지만, 선수는 팬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보단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한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경기 또한 하나의 무대이고, 경기를 보러 온 팬들이 즐기는 경기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면에선 비슷했다.
‘팬들이 어떤 마음으로 우리 무대를 봤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가 1층임에도 선수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건너편 전광판에서 카메라로 비춰주는 영상을 띄워 준다고는 하지만 선명하진 않았다.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현장을 느낀다는 동질감이 느껴지긴 했다.
그들이 땀을 흘리는 모습을, 투지를 다하는 모습을, 그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1층도 그런데, 이보다 더 뒤에서 감상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자리에서도 응원 열기는 뜨거웠어….’
우리를 응원하고, 우리의 공연을 오는 팬들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우리가 더 유명해지고, 더 큰 무대에서 공연할 때마다 더 많은 사람이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다.
‘우리가 물리적인 거리를 가깝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지금과 같이 현장에 온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열기를 전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업적 - 팬들의 입장]
[수용인원 5만 명 이상의 무대에서 현장을 감상하기]
[보상: 7 오픈 마일리지]
기다렸다는 듯이 업적 완료 창이 떴다.
“우와, 진짜 대박이었어….”
경기 내내 입을 쩍 벌리며 눈을 부릅뜨던 호진이 감탄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축구 덕후에게 최고의 버킷리스트가 이곳 베르나베우에서 축구를 직관하는 거라고 했던가.
그 버킷리스트를 달성한 호진은 눈을 빛냈다.
매 순간 감탄을 하며 하이라이트가 될법한 장면은 핸드폰을 들어 경기를 촬영하기까지 했다.
“호진이 너 앞으로도 경기 보려고 해외 오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럴 거 같아…. 와, 진짜 너무 멋졌어. 경기 내내 응원한다고 목이 쉴 뻔했잖아.”
목을 가다듬던 호진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선수들을 가리켰다.
“건하야, 저기 봐! 선수들이 우리한테 인사하고 있어!”
호진이 내 어깨를 잡고 방방 흔들었다.
“성훈이 형! 저기 봐! 강한울 선수야!”
“호진아, 어지럽다.”
“우와! 우와!”
진짜 소녀팬처럼 들떠서 소리를 지르는 호진의 모습이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제 이동하시죠.”
구단 관계자와 N-스포츠 관계자가 이두현을 불렀다.
“얘들아, 가자. 강한울 선수 옷 갈아입고 나오는 동안 인터뷰 장소에서 기다려야 한다네.”
“네, 알겠습니다!”
* * *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안녕하세요. 강한울입니다.”
“우와, 강한울 선수! 팬이에요!”
강한울이 언제 나오나 오매불망 기다리던 호진이 벌떡 일어났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체대에서 나오신 것도 봤어요.”
정중한 인사에 우리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나눈 강한울이 멀뚱히 우리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어? 그거 안 해주시나요?”
“어떤 거요?”
“그, 시그니처 인사 있잖아요. 올리오스입니다! 이거요. 엄청 기대했는데.”
강한울이 어색하게 손을 뻗는 자세를 취했다.
“아하.”
시선 교환을 한 우리는 거의 동시에 손을 뻗었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이걸 생중계로 보다니, 영광입니다.”
두 손을 모은 강한울이 감탄했다.
“저희 영상 많이 보셨나요?”
“아체대에서 나온 거 본 뒤로 몇 개 영상 챙겨봤어요.”
“정말요?”
호진이 거의 발작을 일으키며 물었다.
“네, 춤 진짜 잘 추시던데요?”
“아….”
그 말에 호진이 카메라 앞이라는 것도 잊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우리도 약간 당황했다.
“아, 혹시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등번호 13번이 달린 강한울의 국가대표 유니폼과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건네며 물었다.
촬영 전에 호진이 사전에 물어봤다.
사인을 요청해도 되냐고.
광고 제작사 측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얘기했다.
“그런 솔직한 반응이 좋지요.”
김주성 실장은 얼마든 괜찮다고 말했기에, 거부감없이 요청을 했고, 강한울은 친절하게 사인을 해줬다.
그리고 사인을 마친 강한울의 손엔 의외의 물건이 나왔다.
“저도 여기에 사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두 장의 앨범.
올리오스의 1집 와 2집 앨범인 이었다.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해서 받아왔습니다.”
이건 의외였다.
강한울은 앨범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 같아 우리가 따로 준비한 앨범이 있었으니까.
“와, 영광이네요. 동경하는 스포츠 스타인 한울 선수가 저희한테 사인을 요청하다니.”
내 말에 강한울이 쾌활한 미소를 지었다.
호진이는 완전히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기계처럼 앨범에 사인을 해주더라.
“아야.”
사인을 하면서 자기 볼을 꼬집기까지 했다.
N-스포츠의 두 전속 모델이 서로의 물건에 사인을 해주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고, 곧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나는 힐끗 김주성을 보았다.
이런 그림이 마음에 드는지, 그는 옅은 미소를 숨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