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79화 (179/236)

<제179화>

“하아, 하아.”

음악이 멈춘 연습실엔 나와 호진이 내뱉는 거친 숨소리가 가득 찼다.

우주는 <우주카페>와 소속사에서 진행할 너튜브 프로그램의 회의를 위해 사무실을 떠났고.

정민과 성훈은 <아이돌스쿨>의 제작사와 짧은 미팅을 위해 매니저와 함께 M-TV로 갔다.

다들 스케줄 때문에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예능 촬영이 특별히 없는 나와 호진이 연습실에 남아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하니까 힘드네.”

호진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입으로는 힘들다고 하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춤을 추니까 즐겁다.”

나는 헤실헤실 웃은 호진에게 물었다.

“동생은 좀 어때?”

“현진이?”

“응.”

“많이 좋아졌어. 이제는 보호자가 없어도 잘 지내는 거 같더라. 수술 후유증도 거의 없고.”

“잘 됐네.”

“건하 네 덕분이야.”

내 어깨를 부여잡던 호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고마워.”

“고맙긴.”

“남은 돈은 올해 안에 다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

“두 달 남았는데?”

“되지 않을까? 이번에 정산 많이 받을 거 같던데.”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동생이 건강을 되찾은 덕분이었을까.

눈물이 살짝 고였다.

“진짜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진짜……. 나 아이돌 그만 뒀을 거야.”

“요새도 그때 그 사채업자들이 찾아오지는 않지?”

“아, 응. 돈도 다 갚았고, 헛소문 퍼트리면 소속사 차원에서 법적 대응 하겠다고 했으니까 문제없을 거야.”

호진의 얼굴에 웃음이 많아졌다.

평소에 말수가 적었던 호진은 동생의 퇴원 이후엔 꽤나 말이 많아졌다.

긍정적인 변화였다.

최근에는 라이브 방송도 종종 틀면서 팬들과 소통에도 점점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예능에 나가도 말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자신감이 붙은 건지.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최근에 방송도 많이 켰더라?”

“아, 그거?”

내 어깨를 잡던 손을 내린 호진이 부끄럽다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 동생이 시켰어.”

“현진이가?”

“응, 활동하는 도중엔 집에 찾아올 생각 하지 말고 라이브 방송 키거나 통화로 얘기하라고. 그리고 방송에서 말 좀 많이 하라더라. 나 카메라에 많이 안 잡힌다고 불만이 많대.”

“하하하하! 현진이가 오빠를 많이 보고 싶나 보네.”

“애가 건강해지니까 보기 좋아. 이제 내년에 바로 수능칠 수 있도록 지금부터 검정고시 준비한다더라.”

“검정고시?”

“응. 투병 생활 하면서 공부도 많이 했나 봐.”

“뭐가 되고 싶대?”

내 질문에 호진이 웃으며 말했다.

“의사. 외과 의사가 되고 싶대. 자기처럼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더라고.”

“잘됐으면 좋겠네.”

“응, 똑똑한 애라서 잘할 거야.”

동생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표정에서 느껴졌다.

“아, 맞다. 건하 너는 그 거 할 거야?”

“그거?”

“이번에 우주가 기재율 PD님이랑 한다는 너튜브 프로그램말이야.”

“아, 화장하는 프로그램 말하는 거지?”

“응.”

“아마 할 거 같은데.”

작은 일도 소중하게 여겨야만 했다.

벼락 성공을 한 뒤에 이것저것 하지 않겠다고 뻗댄다면 뒤에서 이야기들이 나오겠지.

‘올리오스 애들, 성공하더니 변했네?’

그건 곤란했다.

단순히 업계에서 이야기 도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업계에서 이야기가 돌면, 자연스럽게 팬들에게도 이야기가 퍼질 거다.

그건 우리를 믿고 사랑해주는 팬들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신용의 문제였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생물.

모든 게 데뷔한 직후와 똑같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인기 얻고 나니 바뀌었다는 소리는 듣지 않게 해야겠지.

‘초심을 지키자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어야 해.’

적어도 안 좋은 쪽으로 변했다는 소리는 안 들을 수 있게 말이다.

“할 생각이구나.”

“호진이 너는?”

“얘기 들어보니까 우리들 다 한 번씩 나갈 예정이던데? 나도 나가려고. 우주가 MC인 프로그램이면 조금 더 편할 거 같아서.”

같은 생각이다.

예능에 낯선 정민이 호진이는 이번 프로그램으로 익숙해질 수도 있었으니까.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연습하자.”

물을 꿀꺽꿀꺽 마신 나는 다시 연습실 벽에 달린 거울 앞에 섰다.

“그래야지.”

호진이 그 옆에 함께 섰다.

올리오스의 비주얼 담당 둘이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 거울 앞에 서니 왠지 모르게 연습실이 런웨이가 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의 반주를 틀었고.

삐비빅!

운동화와 연습실 바닥의 마찰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    *    *

N-스포츠의 김주성 실장.

과거 올리오스의 매력을 미리 알아보고는 그들이 성공할 것을 확신했던 N-스포츠의 광고팀 실장이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된 올리오스의 광고 덕분에 올라간 실적으로 내년에 파격적인 인사 대상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었다.

“쯧, 더 저렴할 때 전속 계약을 맺을 수 있었는데 멍청했던 거지.”

물론 그건 N-스포츠 실장의 입장에서나 하는 이야기고.

아체대 이후로 그들의 팬이 되어버린 김주성 실장에겐 지금의 결과가 훨씬 더 나았다.

올리오스라는 그룹이 가진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아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고 말고.’

당시 윗선에서는 신인 아이돌인 올리오스를 전속으로 두는 모험보다는 추세를 지켜볼 수 있는 단기 계약을 원했다.

그 때문에 봄 시즌을 노린 TV 광고 한 편이 전부였고, 주목을 받지 않아 광고 페이가 저렴했을 때지만 전속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다.

물론 윗선의 판단도 이해가 되었다.

당시 올리오스는 차트 1위를 달성하기 했지만, 데뷔 1년도 채 되지 않아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은 아이돌이었다.

당시에 매출이 몇 배나 올라갔던 건, N-스포츠의 광고 반응도 반응이지만, 당시 광고가 나오던 시점에서 방영되었던 아이돌 체육대회, 일명 아체대 덕분이었다.

거기서 보인 올리오스 멤버들의 활약이 광고에 좋은 시너지로 작용했다.

아이돌 중에서 압도적인 기록을 세운 윤건하, 댄스 스포츠에서 1등을 차지했던 안호진, 그 외에도 쭉쭉 뻗은 기럭지들로 나름대로 활약을 하며 분량을 확실히 챙긴 최우주, 정민, 유성훈까지.

체육인들이 감탄하는 너튜브 영상, 쇼츠 영상이 수백만 조회 수를 찍었으니, 간접적으로 N-스포츠의 도움이 되었다.

현재 세계적인 축구 선수인 강한울과 가장 핫한 아이돌인 올리오스를 모두 전속으로 둔다면 상당한 광고 효과가 기대됐다.

남성 고객은 강한울이, 여성 고객은 올리오스가 끌어들일 수 있을 테니까.

“그림이 참 좋은데.”

입맛을 다신 김 실장은 촬영 컨셉을 생각하며 고민했다.

마음 같아선 두 전속 모델이 한 카메라에 담겼으면 했다.

둘의 만남은 또 다른 마케팅이 될 테니까.

하지만 강한울이 문제였다.

현재 축구는 시즌 중, 그의 소속팀인 레알 마드리드는 열정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강한울의 촬영은 12월 말에 있는 연말 휴식기에 맞춰서 잡혀 있었다.

스페인 축구는 연말과 연초의 연휴 기간에 짧은 휴식기를 가진다.

그 짧은 휴식기 중 이틀, 그중에서도 하루에 4시간 만이 N-스포츠에 허락된 시간이었다.

그 이상은 강한울 본인이 허락하지 않았다.

‘확고한 주전이 되기 전까진 시즌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라는 그의 개인적인 요구 때문이었다.

구단에서도 그 외의 시간은 허락하지 않았다.

반면 올리오스의 촬영 시기는 11월 초.

둘이 겹칠 일은 거의 없었다.

결국 편집을 통해 그들이 함께 있는 것 같이 연출해야 한다는 건데.

“11월에 촬영 일정에 스페인으로 가서 합동 인터뷰 정도만 따는 건 안 되려나.”

강한울 선수에게 요청은 해뒀다.

우리가 직접 간다면 촬영은 어렵더라도 짧은 인터뷰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아직 대답은 오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으니, 성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현장에서는 아니더라도 화상 통화로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긍정적인 답변이 왔으면 좋겠네.”

김 실장은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까지 콘티를 점검했다.

*    *    *

“짜잔!”

“우주야, 이게 뭐야?”

아침 댓바람부터 우주와 함께 회의실로 온 나는 눈앞에 보이는 3대의 카메라를 보았다.

기재율 PD와 영상 편집부 직원들이 카메라 뒤에 선 채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심지어 카메라는 켜져 있는 상태.

“뭐야? 이거 촬영이야?”

“저번에 얘기했던 거 있잖아. 메이크업 한다고 했던 거. ‘메이크 올리오스’ 첫 방송이야.”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방금 그 표정을 꼭 담고 싶었어서.”

“아니, 그래도…. 어쩐지 기초화장만 하고 와도 된다고 하더만, 이거 때문이었어?”

“헤헤헤.”

우주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미안해, 형. 리얼한 반응이 필요해서. 그리고 건하 형은 화장 없이도 잘 나오니까 이런 깜짝 반응 한 컷을 따는 게 어떨까 싶었거든.”

“방송만 잘 나오면 상관은 없는데….”

괜히 잘 안 나올까, 그게 걱정이었다.

“잠시 끊고 갈까요?”

기재율 PD가 내게 물었다.

“어때요?”

“저번에 건하 군이 라방에서 찍었던 그 느낌 그대로예요. 자연스러운 미남이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써도 될 거 같기도 하네요. 확인해 볼래요?”

“조금 볼게요.”

나는 기재율 PD의 카메라를 들여다봤다.

카메라 옆에 달린 모니터에 내 생얼이 드러났다.

멀쩡해 보이긴 하는데….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카메라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이 진짜 리얼했다.

“리얼하긴 하네.”

“그치? 이거 그림 괜찮을 거 같은데.”

우주가 살짝 내 눈치를 봤다.

지를 거면 끝까지 고집을 부리지.

얘도 착해서 억지로 강요는 못하는 성격이었다.

“괜찮을 거 같네. 이대로 가죠.”

“오케이. 좋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네.”

다시 회의실 의자에 앉은 나와 우주는 카메라를 보며 방송용 미소를 보여줬다.

“안녕하세요~. 메이크 올리오스! 오늘은 첫 게스트, 이 메이크 업 컨텐츠를 만들 계기를 마련해준 건하 형입니다!”

짝짝짝!!

우주와 카메라 뒤의 스태프들의 박수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늘은 건하 형의 얼굴을 메이크업해서 비포 애프터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럼 여기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럼. 토크만 해주면 돼. 오늘은 팩보단 남성용 기본 화장법과 간단한 머리 스타일링을 위한 필수 포인트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프로의 자세가 나오기 시작한 우주가 씨익 웃으며 나를 보았다.

“피부 관리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    *

“N-스포츠에서요?”

“응, 어떻게 할 셈이니?”

세계 최고의 구단 레알 마드리드에서 세계 수준의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는 축구선수 강한울은 그의 에이전트이자, 친한 형인 오진효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방금 훈련을 마치고 와 땀으로 범벅인 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촬영은 12월 말 아니었습니까?”

“그렇긴 한데, 같은 전속 모델인 올리오스와 합동 인터뷰를 했으면 한다고 하더라.”

“합동 인터뷰….”

“거절해도 되는 제안이야. 그쪽에서도 광고 전에 마케팅용으로 사용하고 싶은 모습이고. 만약 이번에 안 온다면 12월 촬영 때 영상 통화로 인터뷰를 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하더라.”

“올리오스면 저번에 그 아이돌이죠? 아체대에서 기록 세웠다는 윤건하 씨 있는 곳….”

“응, 맞아.”

“스페인까지 오시는 건가요?”

“그래.”

생각에 잠긴 듯 입술을 비죽 내민 강한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끝나고 시간이 남으니, 그 시간을 잠깐 활용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구단에 요청 한번 해보고 연락한다고 전해주세요.”

“정말 할 거야?”

“네. 예전에 인상 깊게 봤거든요. 아체대에서 윤건하라는 분이요. 너튜브에서도 많이 떠서요.”

“알았다.”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 만나서 한국말로 얘기하고 싶기도 하고요.”

말을 마친 강한울이 부드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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