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휴가 중인 지금.
마땅히 할 만한 게 없었다.
집을 찾아가 윤 회장을 만나는 것도 했고, 생일도 보냈으며, 주기적으로 트레블리를 찾아가는 것도 끝마쳤다.
사실상 트레블리는 이제 나 없이도 알아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홍우선 프로듀서와 안명학 대표가 잘 처리할 거다.
나는 중간중간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살피면 그만이었다. 그나마도 잘 해주고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그러니.
“할 게 없네.”
정말 할 게 없었다.
그 동안은 매일매일이 활동의 연속이었다.
쉴 시간도 거의 없이 연습에 연습, 그게 아니면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작업했다.
가끔은 쉬는 시간마저 카메라가 돌아가며 우리를 찍는 경우도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바쁘게 보냈는지 체감이 되었다.
막상 연습마저 하지 않아도 되니,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형, 나 ‘우주카페’ 시즌 2 회의하고 올게.”
“저번 주에도 가지 않았어?”
“주기적으로 회의해야지. 보름 뒤에 첫방인데.”
“우리 중에서 활동하는 건 지금 우주 너밖에 없지?”
“그렇지.”
“바쁘네.”
정민이는 쉬는 기간에 작곡 감각을 익히겠다며 작업실로 갔고, 호진이는 여동생 병간호를 위해 잠시 본가로 돌아갔다.
성훈이는 따로 내려가진 않았지만 거의 운동 중독 수준으로 헬스장을 찾았다.
“그런데 괜찮겠어? 형 혼자 숙소에 있어야 하는데.”
최근 휴가 기간 동안 숙소를 지킨 건 대부분 나와 우주였다.
우주는 활동을 하지 않거나 스케줄이 없을 때 대부분 집에서만 머물 정도로 집돌이 성향이 강했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도 아닌 게, 종종 라이브 방송을 틀거나 약속이 잡히면 반강제로 끌려 나갔다.
나는 쉬는 날에 뭘 할지 감을 잡지 못해서 우주와 함께 집에서 OTT로 영화를 보거나 예능, 음악 방송을 보았다.
“괜찮아. 혼자였던 적이 없던 것도 아니고. 예능이랑 드라마 몇 편 좀 보려고.”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우주가 입을 열었다.
“형, 정 할 거 없으면 X-라이브 방송을 하는 거 어때? 최근에 해외 활동 때문에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했잖아.”
“라이브 방송?”
“응. 마땅히 할 거 없으면 팬들과 소통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 형 최근에 라방 거의 못 했으니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솔직히 무료함과 더불어 약간의 무력감도 지니고 있었다.
막상 내가 할 일을 다 마치고 나니, 뭔가 늘어진다고 해야 할까?
물론 우리에겐 골든 콘서트와 다음 앨범, 미국 진출 및 국내 활동 등이 남아 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럼 갔다 올게!”
힘차게 외친 우주가 회의를 위해 숙소를 떠났다.
우주마저 나가버리니 숙소가 조용해졌다.
TV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라방, 하는 게 좋겠네.”
이러다간 거실에서 카펫과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좋으니까.
“진짜 오랜만이네.”
최근 팬들과 했던 소통은 이전에 내 생일 때 팬들이 달아준 지하철 광고판에 가서 찍은 짧은 동영상을 SNS에 올린 게 마지막이었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이구나.”
소통다운 소통은 거의 하지 못했으니, 이런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핸드폰을 충전한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라이브 방송은 거실보다는 방에서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뭐랄까. 익숙한 공간에서 하는 게 좋다고 해야 할까.
준비를 마친 뒤, 라이브 방송을 켰다.
X-라이브 계정으로 시작한 라이브 방송.
“크흠흠.”
괜히 부끄러워서 카메라를 천장으로 둔 채로 방송을 시작했다.
핸드폰 카메라를 통해 우리 숙소의 천장이 비쳤고, 그 아래로 댓글창이 보였다.
-?
-???
-머임? 건하 라이브 시작함?
-공지 없었는데?
-낯선 천장이다.
방송을 켜기가 무섭게 댓글이 올라왔다.
알림 설정이라도 한 건가?
기습적으로 시작한 라이브 방송임에도 시작하자마자 시청자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카메라는 여전히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
-건하~.
-왜 이 시간에 갑자기 라이브예요?
-좋은 점심이에요!
-늦었지만 생축!
-생일 축하해요! SNS 봤어요!
-1주년 축하! 건하 생일도 축하!
팬들의 댓글을 보던 나는 천장을 비추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내 머리카락과 이마, 그리고 눈까지 비친 뒤에 나는 다시 얼굴을 집어넣었다.
“오랜만이에요. 정규 활동이랑 콘서트도 다 끝나고 모처럼 휴가를 얻었는데, 뭘 할까 하다가 우주의 추천을 받고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어요.”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을 읽으며 그에 대한 대답도 잊지 않았다.
“1주년 콘서트 참 재미있었죠? 무대에서 내려보는데 핸드폰 라이트로 비춰주는 모습이 정말 멋지더라고요. 은하수 아래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아, 그리고 생일 축하 고마워요. 덕분에 힘이 많이 났어요. 사실 활동 시작한 이후에 2번째로 맞이한 생일이었는데, 첫 번째엔 데뷔하자마자 생일이 지나서…. 저도 잊었거든요.”
다음부턴 잊지 않을 거라는 팬들의 글이 빠르게 올라왔다.
-그런데 왜 얼굴 안 보여줘요?
-얼굴
-얼굴
-보여줘요.
“아, 얼굴이요? 지금 베이스밖에 안 발라서 거의 쌩얼이나 다름이 없는데….”
-건하라면 뭐든 좋아.
-쌩얼!
-오히려 좋아ㅋㅋㅋ
-극호.
-쌩얼 공개ㄱㄱㄱㄱ
“이거 쌩얼 공개하면 캡처 당할 거 같은데….”
조금 민망한데.
나는 다시 얼굴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이번엔 콧등까지 살짝 보여주고 다시 들어갔다.
“감질나죠?”
나는 눈만 살짝 드러낸 채 화면을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채팅 반응이 격렬했다.
-공개해.
-보고 싶다.
-아니 쌩얼 콧등만 봐도 잘생긴 거 뭔데….
X-라이브의 채팅들이 무척이나 빨리 올라갔다.
제대로 읽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이젠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 난리가 날 거 같아서 카메라를 내 쪽으로 향했다.
침대에 앉은 채로 카메라를 내게 비추자.
-꺄아아악!
-저게 생얼?
-쌩얼 아닌 것 같은데
-쌩얼 아니어도….
-미쳤어
반응이 격렬했다.
왜 이렇게 잘생겨졌냐는 채팅이 특히 많았다.
역시 외모 스탯을 올린 효과가 톡톡히 나는 모양이었다.
화장도 하지 않고 보정도 없는 핸드폰 셀카로 찍고 있음에도 더 잘생겼다는 말이 올라왔다.
‘립서비스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생얼 사진이 굴욕샷으로 기사에 오를 일은 없어 보였다.
X-라이브 중 뒤에 찍힌 생얼의 멤버들이, 캡쳐 당해 굴욕샷으로 돌아다니는 일은 제법 흔했으니까.
“하하, 고마워요. 요즘 우주랑 같이 피부 관리하는 데 맛을 들여서요. 팩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팩만 받는데 이렇게 된다고?
-진짜 타고난 거다 이건….
-무슨 팩 써요?
-브랜드 궁금해요!
“이런 거 말해도 되나요? 아, 상관 없을라나. 어차피 방송도 아니니까.”
나는 주섬주섬 침대맡에 놓인 서랍에 손을 뻗었다.
“이게 우주가 사준 건데, 사실 대단한 팩을 쓰는 건 아니거든요. 제가 팩 하는 게 처음이라 되게 기본적인 걸 추천해줬어요.”
나는 뜯어진 팩의 포장지를 들었다.
오늘 아침에 사용하고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은 팩 봉지였다.
“이거에요. 이름이…. 미숑 알로에 팩이네요? 자극이 심하지 않아서 처음 하는 사람이 좋다고 추천하더라고요.”
바스락 바스락.
포장지 초점이 잘 맞지 않아서 그걸 조절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아무튼 이걸 매일 아침에 쓰고 있어요. 제가 아직 팩린이라, 우주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서 저도 디테일한 추천은 어렵네요. 나중에 우주한테 물어볼게요.”
웃으며 포장지를 다시 옆으로 치웠다.
-지금 우주 불러서 물어봐요.
“아, 저도 물어보고 싶긴 한데 지금 우주가 없어요. ”
-다른 멤버들은 어디 갔어요?
빠르게 올라가던 채팅 사이로 유독 눈에 들어오는 글이 보여 읽었다.
“아, 지금 숙소에 저 혼자밖에 없어요. 성훈이 형은 운동하러 헬스장 갔고, 정민이는 곡 작업하러 나갔고, 우주는 방금 스케줄 때문에 나갔고, 호진이는 본가에 내려갔거든요.”
“사실 쓸쓸해서 방송 켰어요. 숙소에 아무도 없으니까 외롭더라고요.”
-쓸쓸해하지 마요. ㅜㅠ
-우리가 있잖아요.
나를 격려해주는 채팅이 우수수 올라갔다.
인터넷 방송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보면서 어떻게 방송을 하는 건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여러분.”
방송을 하다가 문득 시청자 수를 보았다.
“헤엑? 아니 이 시간에 4천 명이나 봐 주고 계시네요?”
방송을 켠 지 2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그리고 이 와중에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슬슬 영어 댓글도 보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저번 해외 콘서트의 영향으로, 해외 팬들이 늘어난다는 실감이 들었다.
“어, 그냥 수다를 떨려고 했던 방송이라 이렇게 많이 보시면 부담되는데.”
뭘 하지?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았다.
“음…. 뭐라도 콘텐츠를 해야 할 거 같은데. 지금 시청자 중에서 한 분이랑 전화 인터뷰라도 할까요?”
마침 X-라이브에는 무작위 팬과 전화 연결을 하는 기능이 있었다. 몇 가지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통화가 끝나고 공개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형태라 완전한 실시간은 아니었지만.
우주나 정민은 이 기능을 활용해 팬들과 꽤나 많은 소통을 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아요!
-좀 쎄한데…
-제발 멀쩡한 사람 걸려라ㅠㅠㅠ
“그럼 한 분만 해보겠습니다. 영상은 저만 나오고, 시청자 분은 화상으로는 안 나오세요.”
나는 X-라이브의 랜덤 연결 기능을 사용, 시청자 중 한 명의 아이디와 통화를 연결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어? 와!
앳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청소년? 이제 막 변성기를 지난 거 같은 고등학생의 목소리였다.
“어라? 남자분이세요?”
-네.
“오…. 제 X-라이브 통화 연결, 영광스러운 첫 타자는 남성분이시군요.”
순간 리액션이 정지했다.
-저도 이렇게 전화 인터뷰에 뽑힐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헤헤.
앳되어 보이는 소년의 목소리가 화면 너머에서 들렸다.
“어쩌다가 올리오스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
-예전에 너튜브에서 본 ‘우주카페’가 재밌어서 종종 우주 형 라이브를 챙겨봤는데, 이번에 건하 형도 방송하길래 봤어요.
“아, 그럼 우주 팬인 거예요?”
-어…. 네.
“쿨럭!”
그래도 아니라고, 내 팬이라고 해줄 줄 알았는데 이건 조금 마음에 상처가 생기는 말인데.
“지금부터 그럼 내 팬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네요.”
-건하 형도 진짜 좋아해요. 물론 우주 형이 첫 번째라서…. 크흠.
나름대로 재치 있게 받아치는 학생이었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영식이에요.
“영식이라고 부를게요.”
-네.
“그럼 영식이는 우주의 어떤 모습에 팬이 된 거예요?”
-제가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걸 좋아하거든요. 근데 우주 형은 그런 걸 되게 잘하니까 거기서 용기를 많이 얻는 거 같아요.
“나도 많이 나서는데.”
-그런데 건하 형은 너무 잘생겨서 이입이 잘 안 돼요.
“나서는 거 좋아한다고 했는데, 장기자랑 할만한 게 있나요?”
-아, 하나 있어요!
“뭐죠?”
-성훈이 형 모창을 잘해요.
“오호, 한번 들어봐도 될까요?”
-네, 잠시만요. 크흠흠.
수화기 너머로 목 가다듬는 소리가 몇 차례 들리고, 시청자가 ‘For you’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불렀다.
-늘 말하고 싶었지만
겁이나 말하지 못했던 말.
고마워요.
나와 함께해줘서.
“…뭐야? 왜 이렇게 잘해?”
성훈의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 하는 건 물론이고, 노래 실력도 상당했다.
진짜 잘 불러서 내가 다 놀랄 정도였다.
“뭐야? 뭐예요? 연예인이나 가수 아니죠?”
-아니에요. 하하하.
“와, 진짜 잘 부른다. 이거 나중에 무조건 ‘우주 카페’ 나와야겠는데?”
진심으로 놀랐다.
시청자들도 대박이라며 나와 함께 감탄했다.
수도 없이 들어서 잘 알지 않은가.
성훈이 노래를 부를 때 내는 자잘한 습관까지 똑같이 따라 했다.
“성훈이 형 아니지? 와, 이거 완전 <히든 싱어> 같네.”
“다녀왔어.”
그때 문밖에서 성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형! 성훈이 형! 진짜 대박이야! 형이랑 똑같이 모창하는 사람이 있어!”
팬의 모창을 들은 성훈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나중에 무대에서 볼 것 같다는 얘기까지 함께 덧붙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끝낼 시간,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했던 라이브 방송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 * *
“CF 촬영이 잡혔다고요?”
황이서가 어깨를 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