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화>
최종적으로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크게 두 개였다.
우주의 노래 스탯처럼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는 멤버의 능력을 보완할지, 아니면 호진의 외모 같은 이미 강점인 부분을 더욱 더 강화할지.
각기 다른 장점이 있었다.
그랬기에 오랫동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흠….”
결국 내가 내린 선택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우주의 노래스탯과 정민의 춤, 노래 스탯을 보완하는 것이었다.
‘호진의 외모를 S급으로 만들지 못하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한정적인 재화로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이미 호진의 춤은 S급까지 올린 데다가 외모 역시 A+.
호진의 능력적인 부분에서는 더 올릴 필요가 없었다.
물론 정민 역시 작곡 쪽에 재능을 꽃피우고 있지만, 그건 무대 아래에서 통하는 이야기.
무대 위에 올라갔을 때는 달랐다.
‘작곡만으로 모든 걸 만족할 수는 없지.’
작곡이 가능한 아이돌이 주목을 받는 건, 출중한 실력에 작곡까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곡을 아무리 잘해도 무대에서의 실력이 부족하다면, 상대적으로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장은 아니지만 내년에 있을 골든 콘서트.
이곳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서 돋보일 수 있는 스탯을 최대한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나중에 부족한 부분은 스킬로 메꾼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스탯이 높아야 스킬과 시너지를 낼 수 있으니까.
[트레이닝(S)을 이용해 유성훈의 스탯을 올립니다.]
[기존 포인트의 2배가 소모됩니다.]
[노래: A+ → S]
[1,000만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트레이닝(S)을 이용해 정민의 스탯을 올립니다.]
[기존 포인트의 2배가 소모됩니다.]
[노래: B+ → A]
[250만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춤: B → A]
[500만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트레이닝(S)을 이용해 최우주의 스탯을 올립니다.]
[기존 포인트의 2배가 소모됩니다.]
[노래: B → B+]
[250만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대기만성으로 내 포인트를 절약한다고 해도, 트레이닝으로 빠져나가는 포인트가 만만치 않네.’
이미 상당한 포인트가 멤버들의 능력을 올리는 데 사용되었다.
그만큼 결과가 나오니까 불만은 없었다.
트레이닝으로 사용되는 포인트 양이 2배만 아니었다면, 다른 멤버들도 다 S급 스탯 하나씩은 들고 있었을 텐데.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되겠지.”
앞으로 활동을 통해 얻을 포인트는 호진의 외모에 투자하면 될 거다.
포인트를 전부 투자한 나는 문밖에서 바쁘게 다니는 GH 엔터의 직원들을 보았다.
골든 콘서트는 물론이고 올리오스의 앞으로 스케줄, 미국으로 나간 몬스터즈 케어 등.
바쁠 수밖에 없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돌 3팀이 만들어져서 앞으로 신규 아이돌 관리는 그쪽에서 한다고도 들었다.
연습생도 계속 모집하면서 육성한다는 말도 들었다.
가끔 연습생 친구들과 스케줄이 맞아서 연습을 하는 걸 보았다.
우리가 성장한 만큼 GH 엔터도 성장하는 중이었다.
“좋은 일이지.”
소속된 회사가 성장한다는 건 말이다.
그것도 그 성장의 중요한 축에 우리가 서 있다면, 그 성취감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옛날 생각 나네.”
사업가였을 때도 회사 직원들이 저렇게 뛰어다니곤 했었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지.
대표가 뛰어야 직원들도 뛴다는 생각으로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그 덕분에 젊은 나이에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거였고.
그날이 그리운가?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나는 고개를 저을 거다.
“바쁘기만 하고, 욕만 먹는 자리였으니까.”
차라리 지금이 더 나았다.
사업가일 때는 사방이 적이었지만, 지금은 나를 진심으로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팬들이 있으니까.
“하아.”
나는 연습실에 누웠다.
연습실에 오기 위한 목적은 달성했다.
트레이닝 시스템으로 멤버들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건 다 올렸다.
춤 연습을 따로 하기 위해 온 건 아니었기에, 마땅히 할 것도 없었다.
“조용하네.”
평소엔 올리오스 아니면 몬스터즈 그리고 최근에 모집했다는 연습생들도 찾아오는 공간이라 이렇게 텅 비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적어도 몇 명은 연습실에 와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게 언제나의 분위기였는데.
몬스터즈는 해외로 떠났고, 올리오스는 휴식기를 갖는 지금.
연습생들의 연습 시간을 제외하면 연습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갑자기 여기서 혼자 연습하기는 조금 그런데.”
몸을 일으킨 나는 앉은 채로 연습실을 둘러봤다.
“이렇게 보니 꽤 넓구나.”
우리 연습실 다섯 명이 사용할 때는 엄청 좁게만 느껴졌는데, 혼자 앉아 멍하니 보고 있자니 굉장히 넓었다.
“앞으로 몇 년은 계속 쓰겠지.”
선배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곳에 우리 역시 흔적을 남길 거다.
지금 들어온 연습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어야겠지.
가만히 앉아 감상에 젖어 있는데.
“배부르다. 너무 많이 먹었나 봐.”
“밥 먹은 만큼 연습하자! 선배들도 식단 때문에 엄청 고생하셨다고 하잖아.”
“열정! 열정! 열정! 알겠냐, 얘들아? 노력만이 살길이야!”
웅성웅성.
밖이 소란스러웠다.
귀에 익은 열정 넘치는 목소리와 그와 함께 오는 앳된 목소리들이 뒤섞였다.
내가 뭘 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고.
“어?”
“유, 윤건하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댄스 트레이너 채남영이 GH 엔터의 연습생들을 데리고 연습실로 들어왔다.
“뭐야? 건하 너 쉬는 날 아니야? 연습실엔 왜 왔어?”
채남영이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냥 숙소에만 있기엔 심심해서 놀러 왔습니다.”
“크하하하! 역시 건하야. 얘들아 봤지? 건하가 이렇게 열정 넘치는 선배야. 이러니까 올리오스도 성공할 수 있었던 거지.”
채남영이 껄껄 웃으며 연습생들을 향해 말했다.
그들의 눈빛이 점점 더 반짝거렸다.
“점심 먹고 오신 거예요?”
“응. 애들이 식단 때문에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영 힘을 못 내길래, 근처에서 고기 좀 먹고 왔다.”
나는 연습생들을 보았다.
채남영과 함께 온 애들은 모두 11명.
식단부터 연습 및 관리까지 철저하게 받고 있는 걸로 알았다.
‘전부 다 성공하진 못하겠지.’
소속사에선 더 뛰어난 연습생을 뽑기 위해 장기간 지속적인 테스트를 통해 합불을 정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올리오스도 그랬고 몬스터즈도 그랬다.
꼭 GH가 아니더라도 많은 곳에서 하고 있는 일이었다.
‘MAE는 더 심했지.’
도전하는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연습생 중에서 살아남아 필드로 데뷔한 이들 중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그만큼 어려운 길을 걷는 애들이었다.
“이렇게 만났는데 후배들한테 응원의 말 좀 해줘. 아니면 꿀팁 전수라도.”
“흠.”
동경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애들을 보았다.
우리에게 몬스터즈가 워너비 스타였다면, 이들에겐 우리가 워너비 스타일 거다.
‘많이 바뀌었구나.’
시간도 많이 흘렀고, 이 업계에서 내 위치도 많이 변했다.
트레블리를 만났을 때와는 감회가 남달랐다.
그들은 데뷔를 앞두고 있었던 애들이고, 이들은 이제 연습생을 시작하는 애들이었다.
‘다 성공할 수도 있고, 다 실패할지도 모르지.’
아이돌, 그것도 연습생의 성공과 실패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니 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소속사에게도 연습생 본인에게도.
이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인가 수없이 의심하면서도 노력해야 하는 길이었으니.
어렵고 고단한 길을 선택한 애들이었다.
이들 중 누군가는 스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
“열심히 해. 노력은 배신하지 않더라.”
이런 뻔한 격려밖에 할 수 없었다.
이들의 삶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사람마다 조언의 적용법은 모두 다르기 마련이었다.
그저 할 수 있는 데까지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연료를 넣어주는 것.
그게 내가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격려였다.
“좋은 트레이너 선생님들 많으니까, 말씀하시는 대로 잘 따르면 해낼 수 있을 거다. 무대를 너무 겁내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외치는 그들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이 말이 나중에 이 친구들이 험난한 연예계 생활을 버틸 수 있는 동력이 됐으면 했다.
연습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애들에게 인사를 마친 나는 연습실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우우웅!
핸드폰이 울렸고.
“이진우?”
골든트랙의 이진우의 전화였다.
과거 내가 윤택수의 아들이라는 게 밝혀진 뒤에 양 실장과 함께 내 결백함을 증명해줬던 이진우였다.
그 이후로 해묵은 앙금을 풀어내긴 했는데, 이렇게 따로 전화를 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았나.
그렇다고 걸어오는 전화를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 걸려 오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잘 지내는 거 같더라? 해외 콘서트 축하한다. 2집 앨범 차트 1등 한 것도 축하하고.
“고맙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갑자기 전화를 다 하고.”
-다른 건 아니고, 우리 이번에 컴백한다고.
“…홍보라도 해줄까?”
-그런 거 바라고 연락한 거 아니야.
툴툴거리며 말한 이진우가 잠시 헛기침을 하면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번 앨범 진짜 이 갈고 준비했다. 소속사에서도 최대한 푸시해 준다고 했고. 이번 앨범으로 우리도 차트 1등 어떻게든 찍어서 보여줄 거야.
“…….”
-작년에는 너희한테 밀려서 신인상을 받지 못하고 졌지만, 올해는 다를 거라는 거 얘기해 주려고 전화했다.
“선전포고냐?”
-그래. 골든 트랙이 올리오스 무조건 이길 거야.
목소리에 결의가 가득 찼다.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각오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이기고 싶어?”
-그렇게 이기고 싶냐고? 당연하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아이돌에, 네가 MAE에서 나간 스토리까지 있어서 우리가 너희랑 얼마나 엮이는데.
이진우의 목소리엔 약간 격앙된 감정마저 느껴졌다.
-이미 성공해서 완전히 궤도에 오른 올리오스는 모르겠지. 우리가 활동할 때마다 매번 얘기 나오는 게 뭔지 알아? ‘올리오스만 없었다면’ ‘MAE에서 건하를 내쫓지만 않았다면’이야.
쫓겨난 것도 사실이고, 그 탓에 올리오스가 생긴 것도 맞으니 어찌 보면 MAE의 자업자득이었다.
-물론 나도 과거에 있었던 일은 미안하게 생각해. 널 원망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뒤를 쫓는 경쟁자로서 얘기하는 거야. 언젠가 너를 뛰어넘어 보겠다고.
“많이 힘들걸?”
이건 솔직한 내 감상이었다.
골든트랙이 못한다는 게 아니라, 올리오스가 보여준 성과와 행보가 평범함을 아득히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알지. 그런데 확고한 목표는 있는 게 좋으니까.
말을 마친 이진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옛날에 미안했다. 너무 어렸어. 아무것도 몰랐고….
“됐다. 이제 와서 옛날 일 꺼내서 뭐 하겠어. 열심히 해라. 이번엔 꼭 1등하고.”
-그래.
말을 마친 이진우가 전화를 끊었다.
그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MAE의 일을 떠올리면 씁쓸함만 남는 건 사실이었다.
데뷔를 앞두고 데뷔조에서 떨어진 회사를 어찌 좋아할 수 있을까.
그나마 악감정을 해소한 건, 이진우와 양현우 실장이 나를 도와줬기 때문이었다.
잘 되길 바랐다.
양 실장도 능력 있는 사람이니 성공할 테지.
감상을 마친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남은 휴가를 조금 더 즐겨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