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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73화 (173/236)

<제173화>

“건하 생일 때 집에 간다고?”

며칠 뒤, 뒤늦게 숙소로 돌아온 성훈도 이 소식을 듣고 나를 바라보았다.

빙긋 웃는 표정에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아주 다들 작정하고 나를 놀릴 각오를 다지는 중이었다.

그래, 다들 알아서 해.

이제는 말릴 힘도 없었다.

그냥 하려는 대로 둘 뿐.

그렇게 내 생일은 점점 다가왔다.

멤버들은 휴일을 즐기면서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라고 물어보면.

“생일날에 보여줄게.”

라며 흩어졌다.

성훈이 조금이라도 말려주길 바랐지만, 그걸 기대하기엔 그의 얼굴에 핀 웃음꽃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    *    *

생일 당일.

“회장님께서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최 실장과 비서실 직원이 몰고 온 차가 숙소 앞에 도착했다.

각자 선물을 손에 들고 있던 멤버들이 호들갑을 떨며 숙소 앞으로 나왔다.

나와 우주 그리고 호진이 최 실장의 차에 탔고, 성훈과 정민이 다른 직원분의 차에 올라탔다.

“우와, 비싼 차….”

차를 탄 우주와 호진이 감탄의 눈빛으로 차 안을 살폈다.

실제로 회장님들만 타고 다닌다는 유명 해외 브랜드 차였다.

가격이 상당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역시 재벌 회장의 차답다고 해야 할까.

운전석에 올라타 고개를 꾸벅 숙인 최 실장은 곧장 차를 몰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차를 모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최 실장은 집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업무를 끝까지 다했고, 우리를 태운 차는 윤택수 회장의 집이자 내 본가에 도착했다.

“도착했습니다.”

“와….”

차를 보고 감탄했던 두 사람의 입이 다시금 커졌다.

“이 차 보고 더는 놀랄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호진의 말에 옆에 선 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넓다. 입구부터가 와….”

우주가 감탄하는 대문은 윤택수 회장의 재력을 상징하듯 크고 넓었다.

확실히 다같이 지내는 숙소 생활만 하다가 이런 삐까뻔쩍한 단독 주택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런 집을 흔하게 가봤던 전생의 삶 때문인지 나로서는 그그렇게 어색하거나 놀랍지는 않았다.

“건하 형한테는 익숙한 일이겠지?”

그게 두 사람에게는 다르게 비친 모양이었다.

원래 살았을 집이니 만큼 익숙하다고 여긴 걸지도 모르겠다.

뒤따라오던 다른 차도 집 앞에 멈춰 섰다.

정민과 성훈도 따라 내리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들어가십쇼.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최 실장의 말에 다들 얼떨떨한 얼굴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멤버들이 전부 안으로 들어가고.

“도련님.”

최 실장이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요?”

“생일 축하드립니다.”

그는 내게 정성스럽게 포장이 된 작은 선물을 내밀었다.

“밖에 계시는 몇 년간 못 챙기지 않았습니까. 이건 제 선물입니다.”

나는 그가 건넨 선물을 받았다.

손바닥 두 개 정도 되는 크기의 선물이었다.

“열어보셔도 됩니다.”

작은 선물 상자 안에는 액자가 있었다.

그리고 액자엔 어린 시절의 나와 윤택수 회장, 그리고 미모의 중년 여성이 함께 찍은 사진이 박혀 있었다.

사진 속 벤치에는 근엄하고 차가운 얼굴로 유치원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나를 안은 윤 회장과 그 옆에서 온화한 미소를 지은 여성이 함께 앉아 있었다.

누가 봐도 ‘윤건하’의 어머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얼굴을 뵙는 건 처음…이네.’

그동안 이야기만 들었다.

‘윤건하’가 하려는 것은 항상 응원했다고 하는 어머니.

들었던 말처럼 온화한 얼굴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존재 자체가 따뜻한 사람 같다고 해야 할까.

나는 가만히 그녀의 사진을 보았다.

전생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없는 나로서는 이런 감정이 낯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오해라도 한 걸까?

“참, 정이 많은 분이셨죠.”

최 실장이 한 마디 더했다.

나는 그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 대해서 알지 못했으니까.

다만, ‘윤건하’에겐 그녀에 대한 깊고 짙은 추억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두근두근.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몸이 절로 내는 반응이었다.

마치 내가 진짜 ‘윤건하’가 된 것처럼.

“예전에 세 분이 찍었던 가족 사진으로 만들었습니다. 회장님과 화해하신 기념으로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최 실장님.”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비록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그럼에도 몸에 남아 있는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들어가시죠.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마당을 걸으며 생각했다.

‘윤건하’와 내가 생일마저 같을 거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단순히 우연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인지.

운명을 믿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윤건하’와 나의 이 사연과 이끌림은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것 역시 아니었다.

‘이젠 단순히 이름만 같다고 할 수 없겠지.’

묘한 기분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 호수가 있네.”

“와.”

“집 진짜 넓다.”

멤버들과 함께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가자, 윤 회장이 나와서 우리를 맞이했다.

“반갑네.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지?”

“안녕하십니까!”

윤 회장에게 인사한 우주가 내 옆구리를 툭툭 쳤다.

진짜 하려고?

‘해야지.’

우주가 입을 뻥긋거렸다.

다들 준비된 모습에 나 역시 한숨을 내쉬면서도 합류했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손을 뻗으며 우리의 시그니처 인사를 했다.

늘상 하는 것인데도, 어째서인지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 모습을 보던 윤 회장이 껄껄 웃었다.

“허허, 내 이걸 라이브로 볼 줄은 몰랐군. 허허허!”

“안녕하십니까! 건하 형의 친구 최우주라고 합니다!”

“정민입니다!”

“호진입니다.”

“성훈이라고 합니다.”

다들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외쳤다.

“우주 군, 정민 군, 호진 군 그리고 성훈 군까지. 전부 다 와줬군. TV에서 많이 봤네. 어서 들어오게.”

“근데 집이 정말 넓더라고요. 전부 회장님이 관리하시나요?”

“내가? 하하하, 나는 저기 호수에 있는 물고기들에게 밥만 주지. 나머지는 정원사가 다 해주고 있네.”

우주가 특유의 친화력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

솔직히 저렇게까지 친화력을 발휘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윤 회장도 부드럽게 받아줄지 몰랐고.

업무적 만남이 아니라는 건가.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걸 거다.

“건하 형이 숙소에서 어떻게 지내냐면….”

말문이 트인 우주가 숙소 생활 중에 있었던 일화를 하나둘 풀었다.

“호오? 그래?”

윤 회장은 그 얘기를 흥미롭게 들으면 나와 우주를 번갈아 보았다.

사진에는 없었던 따뜻한 눈빛이었다.

그 역시 변했다는 뜻일 테지.

우리는 회장의 안내를 받아 식탁에 앉았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진 음식에 다들 감탄했다.

윤 회장이 내게 말했다.

“생일을 같이 보내는 건 오랜만이지?”

“예.”

“크흠, 어색하구먼.”

애초에 아이돌을 하겠다고 집을 나가 연락까지 끊었으니, 생일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들 먹게. 그리고….”

윤 회장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집에 오니 어떠냐?”

“좋습니다.”

“집이란 그런 거지. 오랜만에 와도 마음이 편해지는 곳. 이젠 이 집이 네게 그렇게 느껴졌으면 좋겠군.”

말을 마친 윤 회장은 낯선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의 묘에 함께 갔다 온 이후에 표정이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혹시 식사 전에 생일 노래를 부르는 건 어떠신가요? 저희가 케이크도 준비했거든요.”

조심스럽게 내미는 성훈의 의견에 가만히 듣던 윤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군.”

그의 수락에 우주와 정민이 들고 있던 생일 케이크를 꺼냈다.

두 사람이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는 동안, 호진과 성훈이 케이크에 따로 동봉된 폭죽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윤건하~ 생일 축하합니다!”

짝짝짝!

노래가 끝나자, 어느새 카메라를 들고 이 장면을 찍고 있던 정민이 말했다.

“건하야, 아버님이랑 같이 부는 거 어때? 좋은 날이잖아. 어때요, 아버님?”

“좋은 생각이구나.”

좋은 아버지 모드가 되어버린 윤택수 회장이 잠시 나를 보았다.

조금은 쑥스럽게 웃던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같이 불겠니?”

“예, 아버지.”

나는 윤 회장과 함께 케이크에 달린 촛불을 불었다.

후우우.

팡! 팡!

그와 동시에 폭죽이 터졌다.

“생일 축하해! 건하 형!”

“축하해!”

“두 분 사진 찍겠습니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정민의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때, 우주가 내 뺨에 케이크의 생크림을 발랐다.

당황스러워하며 그를 바라본 순간.

찰칵!

카메라가 셔터음을 냈다.

“건하 표정 진짜 잘 찍혔다.”

나와 윤 회장의 사이가 아직 어색하다는 걸 누구보다 제일 잘 아는 멤버들이었다.

어떻게든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고마워.”

진심으로 고마웠다.

누군가의 생일을 위해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게, 아무한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아니까.

“건하야, 선물이야!”

“형, 이건 내 선물!”

“축하한다.”

“생일 다시 한번 축하해.”

다들 정성스럽게 포장한 선물을 내게 건넸다.

우주는 모던한 디자인의 명품 가죽 벨트를, 성훈은 직접 집에서 만들었다는 레몬과 생강을 섞어 만든 차 액기스를, 정민은 해외 유명 가수의 한정판 앨범을, 호진이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선물해줬다.

그리고 마지막 윤 회장 차례.

쑥스러운 듯 윤 회장이 헛기침을 하며 내게 선물 상자를 건넸다.

“생일 축하한다.”

그 역시도 최 실장처럼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인 작은 상자였다.

혹시 최 실장과 같은 앨범인가?

“여기서 열어보게.”

다시 진중해진 목소리로 말한 윤 회장의 말에 나는 선물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건….”

“내년에 서울에서 열릴 골든 콘서트 티켓이네.”

“골든 콘서트요?”

“그래, 황룡그룹에서 투자하고 국내 및 해외의 여러 프로덕션이 함께 모여 만들 국내 최대의 콘서트 공연이지. 이미 황이서 프로듀서에게 한 번은 들었을 거야.”

들었다.

황룡에서 내년에 거대한 콘서트를 개최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이건 그 콘서트의 티켓인가?

“건하 네 의견을 받아들여 한국에 황룡의 이름으로 큰 규모의 콘서트를 열고 그걸 통해 브랜드 가치를 올릴 거야.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윤 회장이 우리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올리오스가 그곳에서 메인 공연을 할 예정이다.”

“…….”

“메, 메인이요?”

나는 물론이고 모두의 시선이 윤택수 회장에게 향했다.

“그래, 이 티켓은 너희가 메인 공연에 설 거라는 보증수표다.”

방금 전까지 털털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윤 회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회장 모드로 돌아온 그의 눈빛을 마주한 올리오스 멤버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건하, 네가 분명히 내게 말했지. 올리오스가 세계로 뻗어나갈 거라고.”

“예.”

“그걸 보여줄 차례다. 이 콘서트에서.”

“…….”

“네게 기회를 주는 게다. 네가 말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기회.”

나를 노려보는 윤 회장을 마주 봤다.

그는 날카로운 회장의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아버지의 눈빛 역시 하고 있었다.

만약 그동안의 만남이 없었다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나는 그런 윤 회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거면 됐다.”

내 확언을 들은 윤 회장의 표정이 다시 풀어졌다.

“맛있게 먹어라. 괜히 분위기만 무겁게 만든 거 같구먼. 하하하하!”

나는 땀을 뻘뻘 흘리는 멤버들을 보았다.

우리 아버지의 분위기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지?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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