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이곳에 오기 전에 한참 고민했다.
잠재력이 확실히 보이는 새싹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
만약 그 새싹들의 움직임이 다소 아쉬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한마디가 한창 섬세할 그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었기에.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뱉어야만 했다.
그래서 이들의 춤을 봤을 때, 머릿속에 생각난 말을 뱉기 전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멤버들한테 하듯이 하면 안 돼.’
내가 프로듀서라고 생각하자.
최대한 신중하게.
그래서 내뱉은 말이 이거였다.
“다 좋은데, 춤에서 여유가 느껴지지 않아.”
말 그대로였다.
춤에서 보여줘야 하는 리듬감보다 뭐든 보여줘야 한다는 초조함이 느껴졌다.
“마음을 조금만 편하게 가져. 지금 어디 쫓기고 있는 사람 같아.”
“그렇습니까?”
“응, 잘 봐.”
나는 입으로 그들이 춘 ‘For you’의 음을 흥얼거렸다.
“흐으음~. 으흠~. 흠, 흠~~.”
그리고 그들이 췄던 동작을 똑같이 따라췄다.
입으로는 허밍을 하면서, 몸으로는 춤을 추는 이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웠지만,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웃음기를 머금지 않았다.
트레블리 멤버들 모두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박자에 따라가기만 바쁘기 때문에 춤이 주는 그루브와 리듬, 템포가 전혀 맞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춤이 너무 빨리 끝나 박자가 남는 참사까지 일어났다.
“이게 너희가 방금 췄던 춤이야. 그리고 차분하게 추면 어떻게 되는지도 보여줄게.”
다시 자리에 선 나는 아까와 똑같이 허밍을 하며 춤을 췄다.
그대라는 사람을 만나, 나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항상 내 옆에서 힘이 돼주고, 기댈 수 있게 해줘서.
이번에는 가사까지 입으로 부르며 춤을 췄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그루브와 리듬이었다.
이게 완전한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트레블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어때?”
“…….”
모두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것이 답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나를 보는 애들의 표정에 각자 다른 깨달음을 머금고 있었기에.
가만히 그들을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알 거 같습니다.”
“쫓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요.”
“두 춤을 비교해서 보니, 바로 알 것 같아요.”
“다르네요. 진짜….”
네 사람의 말에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순간, 말을 조금 심하게 했다고 생각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참이었다. 그런데 불편한 기색은 전혀 없고 오히려 한 번에 알아듣는 영특한 모습에 선배로서 뿌듯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아?”
“네!”
“좋아. 그럼 한번 맞춰 볼까?”
“알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들은 트레블리였다.
“홍 프로님, 부탁 좀 드릴게요.”
“네엡.”
연습실에 ‘For you’의 반주가 흘러나왔다.
한 번의 시연으로 바로 감을 잡은 걸까.
무언가에 쫓기듯이 추던 아까와 달리, 동작 사이사이에 적절한 텀이 생기면서 여유가 느껴졌다. 이전보다 춤이 훨씬 깔끔하고 리드미컬해졌다.
동시에 박자마다 손끝, 어깨, 발끝 등을 활용한 톡톡 튀는 변주까지 추가되니 오자마자 봤던 것과는 아예 다른 춤으로 보일 정도였다..
지적을 해주면서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멋진 춤이 완성되었다.
‘확실히 재능이 있어.’
한 번 얘기한 걸로 이 정도로 발전할 정도라면 나머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괜히 S급 아이돌이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당장 내가 얘기하지 않았어도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둘 수가 없었다.
올리오스 멤버들은 스탯이나 스킬을 구매하는 것으로 성장을 보조해줄 수 있지만, 트레블리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 뜻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것.’
그렇다면 조금은 직설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데뷔 전 앨범을 준비하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시기였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춤 연습도 봤으니, 노래도 한번 볼까?”
다음으로 노래를 보기 위해 작업실을 찾았다.
이왕 온 김에 볼 수 있는 건 다 볼 생각이었다.
내가 부재했던 2달이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볼 필요가 있으니까.
‘춤은 된 거 같아.’
마음이 급한 탓에 조금 서두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자각하고 꾸준히 고친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다음으로 볼 건 노래였다.
이 친구들이 타고난 매력과 예능감은 굳이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 건 가르쳐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이미 그에 대한 기량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 잘 도와 주겠지.’
그 부분은 홍 프로와 안 대표에게 맡길 수밖에.
다들 능력 있는 사람들이니 잘 해낼 거다.
나는 작업실에서 트레블리의 노래와 믹싱과 편집을 마친 노래를 몇 곡 들었다.
좋았다.
이제는 수많은 노래를 듣고 불렀던 내 귀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노래였다.
“좋은데?”
트레블리의 가창력은 깔끔했고, 파워풀했다.
비주얼 담당이자 서브 보컬인 솔라의 매력적인 음색 사이로 메인 보컬 주민호의 깔끔한 목소리, 거기에 더해지는 강형찬의 랩.
약간 힙합 느낌의 노래부터 발라드, R&B까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제대로 소화하고 있었다.
‘역시 물건이네.’
멤버들의 구성이 올리오스보다는 몬스터즈에 가까웠다.
하나씩 특화되어 있다기보단 각자 두루두루 잘해서 매력이 넘친다는 느낌?
“다들 좋았다. 보컬 쪽에선 내가 해줄 말이 없네. 정말 다들 좋았어. 아, 팁을 좀 주자면 무대에 오를 때는 지금보다 힘을 조금 더 줘야 할 거야. 지금 소리가 살짝 먹는 느낌이 있거든.”
“네 알겠습니다!”
다들 잘 준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할 필요가 있을까.
“앞으로 조금만 더 고생하고, 끝까지 열심히 하자.”
애들과 사진을 찍고 트레블리를 위한 점심값도 결제한 나는 레프픽션을 떠나기 위해 준비를 했다.
“선배님.”
그때 내 뒤를 따라오던 강형찬이 나를 불렀다.
형찬이 현재 트레블리에서 리더를 맡고 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당찬 성격이나, 자기주장이 확고한 부분을 보면 가장 리더감이긴 했지.
“무슨 일이야?”
“아, 다른 게 아니고 말입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요.”
“감사하다고?”
“네. 활동 끝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는데, 이렇게 저희들까지 봐주시고……. 투자까지 해주셨다고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도움까지 받으니까.”
나는 수줍은 팬처럼 말하는 강형찬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도 인사드렸지만,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열심히 해. 그리고 좋은 성적 내. 그거면 된다.”
쉬운 일은 아닐 거다.
아마 여러 어려움에 봉착하겠지.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때, 오늘의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 뿐.
“응원하고 있어. 앞으로 잘할 거라 믿는다.”
싹이 보이는 후배를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사업가였을 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 친구들이 의지까지 확고하면 더더욱.
한진성이 그래서 나를 마음에 들어했던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트레블리 멤버들과 인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내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
윤택수 회장이었다.
“아버지?”
-1주년 콘서트가 다 끝났다고 들었다. 고생 많았다.
“예, 덕분에 잘 마무리했습니다.”
내가 내기에서 이긴 뒤로, 윤택수 회장은 황룡엔터를 통해 GH엔터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단순히 아이돌 육성 사업만이 아닌, 음악과 여러 스튜디오 산업까지 손을 댄다고도 했다.
이번 1주년 콘서트를 담당했던 행사 프로덕션 팀을 조만간 인수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아마 내년 안에 황룡그룹의 이름으로 거대한 콘서트를 계획한다고 했으니, 그에 대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열흘 뒤가 네 생일이더구나.
“아, 네.”
-올 생각이냐?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트레블리에도 따로 투자를 한 상태라서요. 이 친구들 데뷔까지 관리하려면…….”
-흠, 그러냐?
기분 탓일까.
목소리에 실망감이 엿보였다.
-오랜만에 아들의 생일을 챙기려고 했는데, 힘들겠구나.
요즘 이런 말이 늘었다.
어머니의 산소에서 진솔한 얘기를 나눈 이후 못다한 아버지의 정을 보여주려는 건지.
이런 식으로 얼굴을 보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
천하의 윤택수 회장도 나이를 먹어 독기가 빠진 건가.
처음 그를 봤을 때 느꼈던 그 날카로움이 예전 같진 않았다.
“크흠, 죄송합니다. 아마 그날 동료들과 함께….”
-동료들이라면 올리오스 말이냐?
“예.”
-잘됐군.
“네?”
-마침 나도 그날 시간이 나는데, 모처럼이니 친구들을 한번 우리 집에 데려와서 같이 식사라도 하는 게 어떻겠나?
“어, 음….”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아들과 같은 팀 동료인 데다가 이제 내가 투자한 회사의 주요 아이돌 그룹인데, 어떤 친구들인지 얼굴은 한번 봐야지. 안 그런가?
“크흠…….”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나를 어떻게든 집으로 부르려고 각오를 하신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애들에게 물어볼게요. 조금 불편해할 수 있으니까 되는 애들만 모아서 가겠습니다.”
-상관없다. 억지로 부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말이네. 투자사의 대표가 우리 아이돌들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하는데, 거절하려는 건 아니지?
세게 나오시는데.
“…알겠습니다. 최대한 데리고 가겠습니다.”
-허허허, 고맙네. 오랜만에 아들 생일을 함께 보내겠어.
그제야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담 갖지 말고 오라고 전해주게.
그 말이 부담이 된다는 걸 우리 회장님은 모르시는 것 같았다.
“이거 큰일 났네.”
애들한테 어떻게 설명하지?
* * *
“그래? 회장님, 아니 너희 아버지께서 생일에 같이 보자고 하셨다고?”
“응, 불편하면 안 가도 괜찮아. 못 갈 거 같다고….”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이제 막 고향에서 돌아온 우주마저도 캐리어를 손에 쥔 채 나를 보았다.
완전 놀란 토끼눈이었다.
“나는 좋아. 건하 너희 집에 놀러 가는 것도 재밌겠다!”
“이제 친해졌는데 생일은 가족이랑 같이 지내야지! 형, 우리가 도와줄게!”
“나도 좋은 거 같아.”
아직 고향에 내려가 올라오지 않은 성훈을 제외한 3명 모두 좋을 거 같다며 두 손 들어 찬성했다.
“근데 건하 형네 가는 것도 재밌겠다. 나 재벌집 처음 가 봐. 건하 형네 방 막 우리 숙소만큼 큰 거 아니야?”
우주가 설레는 얼굴로 외쳤다.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우주 역시 가족 문제를 잘 해결한 눈치였다.
“너무 기대하지 마. 그러다가 실망할 수도 있어.”
솔직히 모른다.
매번 회사에만 가서 윤 회장을 만났기에, 건하가 어떤 방에서 지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알았다.
황룡그룹의 윤택수 회장이 기거하는 집이 저택 같다는 사실을 말이다.
윤 회장이 내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윤건하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신문을 보다가 알아낸 사실인데.
정원과 호수가 따로 있다는 기사를 봤다.
“성훈이 형도 아마 오케이 할 거야.”
“깜짝파티라도 준비해야 하나?”
“그렇게 요란스러운 건 싫어하지 않으실까?”
“으으, 취향을 모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못 잡겠네.”
그리고 모두의 눈이 내게 향했다.
나는 그들의 눈빛에 대한 대답으로 고개를 저어줬다.
“몰라.”
진짜 몰라.
“삭막한 부자 사이를 어떻게든 해결해주자.”
나를 제외한 모두가 굳은 결의를 다졌다.
왠지 불안한데.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