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끝났다.”
1주년 콘서트까지 끝내고 나니 홀가분했다.
마음이 가벼워졌고, 동시에 가슴이 후련했다.
“2집도 어찌저찌 잘 마무리했고, 1주년 콘서트도 끝냈네.”
우주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화장도 지우지 않고 대(大)자로 뻗었다.
“으아아아…. 진짜 힘들었어어어.”
정민이 우주의 위에 엎어졌다.
“으악! 형, 무거워!”
“힘들긴 하더라.”
나는 그런 정민과 우주의 위에 올라탔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랑 많이 하던 샌드위치 놀이.
“형들 나 죽어!”
“두 명 올라탄다고 안 죽어.”
체력 관련 스킬이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녹초가 되어서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이었다.
조금 더 일찍 스킬을 얻어줄 수 있어서.
“다들 고생 많았다.”
무덤덤하게 말을 마친 성훈이 내 위에 올라왔다.
“어어억!”
이거 생각보다 무거운데?
“아아악!”
“무거워! 형들, 나 죽어!”
남자들의 비명 소리가 숙소에 울려 퍼졌다.
호진이는 왜 없냐고?
호진이는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가족과 시간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먼저 가볼게.’
유독 표정이 가볍던 호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축하를 기념하는 샌드위치 놀이를 끝낸 우리는 각자 숙소 거실에 널브러진 채로 잠깐의 나른함을 즐겼다.
“호진이 형 표정 좋아 보이더라.”
우주가 말했다.
“아까 가족이랑 있을 때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조금 부러웠어.”
“아.”
우주도 나름대로 가정사가 있었다.
연예계 활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와, 그런 우주를 얕보는 두 형들.
아직 잘 해결되지 않은 걸까.
호진의 모습을 떠올리던 우주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내일부터 스케줄 한 달 동안 없는 거지?”
“그렇다고 하셨지. 우주 네가 2주 뒤부터 우주 카페 시즌 2 들어가는 거 말고는.”
해외 일정을 마치고 주어진 한 달.
그건 1주년 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한 연습의 나날이었다.
외부 스케줄은 그리 많이 없었다.
그나마 1주년 기념으로 출연을 나간 라디오와 인터뷰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그런 스케줄과 연습 일정마저 없는 진짜 휴식.
우주는 2주 뒤에 우리보다 조금 일찍 스케줄을 시작한다지만, 그것도 거의 일주일에 하루 이틀 나가는 게 전부.
다들 콘서트를 준비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고민했다.
“집에 다녀와야겠어.”
“집에?”
“응, 이제 제대로 말해야지. 인정해 달라고 정면으로 부딪칠 거야.”
“이제 그럴 자격 있지.”
성훈이 그 말에 힘을 더했다.
“같이 가줄까?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 말만 해.”
정민의 말에 우주가 고개를 저었다.
“나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야. 언젠간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였어. 그게 딱 지금인 거고.”
이를 악문 채로 천장을 바라보는 우주의 얼굴엔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응원한다.”
나는 그런 우주의 어깨를 주물러줬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었다.
가족 문제는 원래 그렇다.
당사자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우주라면 잘 해결하겠지.
의외로 강단이 있는 친구니까.
“고마워. 참, 형들은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저번에 말했듯이 아버지 부대로 갈 생각이야. 아버지랑 같이 체력 단련도 하면서 고향 친구들 좀 만나려고.”
“정민이 형은?”
“원래는 카이 선배님 찾아뵈고 싶었는데…. 지금 미국 활동으로 바쁘시니까, 아마 며칠 정도만 쉬고 작곡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몰라, 계획 없어.”
딱히 짜둔 계획이 없었다.
라고 말했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플랜이 가득했다.
쉬는 기간 동안 해외 콘서트와 1주년 콘서트를 하면서 얻었던 포인트를 전부 스탯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줄 스탯도 생각해야 하고, 트레블리 애들이 잘 연습하고 있는지도 확인이 필요했다.
해외 일정과 1주년 콘서트 때문에 10주 정도 찾지 못했다.
홍우선 엔지니어에게 서면과 전화로 보고는 받았지만, 직접 보는 건 또 다르거든.
“맞다. 형, 이제 곧 생일 아니야? 열흘 정도 남지 않았어?”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멤버들에게 말한 내 생일은 9월 14일.
그게 정말 ‘윤건하’의 생일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일은 맞았다.
“오, 그러게. 건하 생일이 얼마 안 남았구나. 그럼 다 같이 모여서 한번 생일 축하 자리 갖는 것도 좋겠는데?”
그러다 문득 성훈이 내게 물었다.
“아버지랑은 안 보내? 화해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올해 생일은 가족이랑 보내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글쎄, 아직 생각해보질 않았어.”
내 생일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으니까.
“조금 더 생각해 봐야지. 일단 며칠은 쉬고.”
“그게 좋겠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녹초가 된 얼굴로 말했다.
“진짜 쉬어야 할 때가 되긴 했어. 정신적으로 한계까지 쥐어 짜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우주의 말에 모두가 공감했다.
“그건 기존에 체력 단련을 소홀하게 했기 때문이다. 기초 체력을 단단하게 준비하고, 쓰러지지 않을 만한 체력을 갖추면….”
성훈이를 제외하고.
우리는 운동 덕후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우, 씻어야겠다. 좀 피곤하네.”
“어? 내가 씻으려고 했는데?”
우주와 정민이 거의 동시에 씻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성훈의 눈이 나를 향했다.
“건하야, 너도 알다시피 체력은….”
“콜록! 콜록! 아 왜 이렇게 기침이 나오지? 형, 나는 격리가 필요할 거 같아.”
“…….”
결국 모두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자 성훈은 끝내 포기하고 책을 펼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훈은 체력 괴물이 맞다.
이 상황에서도 책을 읽을 체력이 있다니 말이다.
* * *
멤버들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떠났고.
나는 홍우선 프로듀서를 만나기 위해서 레프픽션을 찾았다.
“아, 건하 씨 오셨어요?”
마침 안명학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홍우선이 나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반겼다.
“건하 씨, 오셨습니까?”
“잘 지내셨나요?”
“아, 물론이죠. 건하 씨와 대표님 덕분에 준비 잘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홍우선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트레블리의 음악이 괜찮게 뽑힌 덕분일까.
유독 웃음이 많아졌다.
알이 큰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홍 프로듀서님 덕분에 이런저런 기획이 훨씬 더 나아졌습니다.”
안 대표도 작게 미소 지었다.
이전보다는 마음이 놓인 얼굴이었다.
회사를 접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던 회사가 투자를 받게 되었다. 덕분에 트레블리에 힘을 아낌없이 쏟을 수 있었고, 더 전망이 좋은 방향성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으니, 어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을까.
“대표님, 섭외는 잘 되고 있습니까?”
“네. 아시다시피 여기저기 일정을 넣어두고 있습니다.”
안 대표와 협업을 한다는 선택은 확실히 긍정적이었다.
홍우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안명학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었다.
두 사람의 시너지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직까지는.’
트레블리가 데뷔를 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둘의 호흡이 좋아 보였다.
“콘서트는 잘 마치셨습니까? 기사 보니까 만석이라고 하던데.”
“네, 해외 투어부터 1주년 콘서트까지 제대로 다 마쳤습니다.”
“이제 조금 한가롭겠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요. 이제 우리 후배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옆에서 지켜보려고 합니다.”
“소속사에서 준 휴가 아닙니까? 좀 쉬어도 될 텐데.”
“쉬긴 할 겁니다만…. 그래도 할 건 해야죠.”
내가 쉬는 것보다 트레블리가 성장하는 게 우선이었다.
걔들이 성장해야 마일리지 포인트를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으니까.
“열정적이시네요.”
“투자를 했으니 조금이라도 도와드려야죠. 하하하.”
안 대표의 말에 너털웃음을 지어주며 대답했다.
“마침 연습 중일 텐데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됩니까?”
“애들도 좋아할 겁니다. 이제 올리오스는 연습생과 신인들의 우상이니까요.”
“저희가요?”
“그럼요.”
안 대표가 웃으며 하는 말에 홍우선이 더했다.
“데뷔 이래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돌풍의 그룹이잖아요. 다른 성공한 선배 아이돌도 많지만, 최근에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보이그룹을 꼽으라면 단연 올리오스니까요.”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소속사에 가서 물어봐도 다 올리오스 얘기부터 할 겁니다. 특히 중소 기획사 출신 연습생들은 더 그럴 거고요.”
우리가 그렇게 영향력이 컸었나.
사실 실감이 잘되지 않았다.
우리 이후에도 여러 아이돌 후배가 데뷔했지만, 다들 활동 시기가 겹치지 않아서 아직 필드에서 후배를 본 건 트레블리가 유일했다.
‘그러고 보니 작년이랑 올해 신인 중에서 눈에 띄게 성공한 그룹이 없긴 하네.’
왜 두 사람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거 같았다.
작년부터, 명백히 성공했다고 할 만한 보이그룹은 우리 올리오스와 골든트랙이 유이했다.
그 두 그룹만이 차트인을 해냈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인지도를 얻었다.
골든트랙은 MAE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뤄낸 거라고 생각하면, GH의 올리오스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성과였다.
어쩌다 보니 중소 기획사 아이돌의 꿈이 되어버린 우리였다.
“크흠흠, 일단 가볼까요?”
헛기침으로 주위를 환기한 나는 트레블리의 연습실로 향했다.
우연이었을까?
트레블리 애들은 올리오스의 ‘For you’를 가지고 안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거 들어가기 민망한데요?”
“하하하, 타이밍이 난처하네요. 최신곡을 갖고 연습하는 건 다들 하는 거니까요.”
그게 왜 하필 우리 노래였는지….
“일부러 시킨 건 아니죠?”
“설마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우연히 때가 맞았던 겁니다. 하하하.”
나는 잠시 문 너머로 애들의 춤을 지켜봤다.
잘 춘다.
정말 잘 췄다.
‘역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쫓기고 있는 느낌이네.’
춤에 여유가 없었다.
춤에는 리듬이 있고, 강약이 존재했다.
밀어붙일 때는 강하게, 그리고 쉬어주는 타임에는 확실하게.
그 조절이 확실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마치 기관총을 쏘듯 그들의 움직임엔 다다다다. 다급함만이 가득했다.
‘한마디 할 필요가 있겠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꼰대질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건 얘기해야만 했다.
자체적으로 고치지 못하는 거라면, 지적하고 고칠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야만 했다.
‘그게 선배니까.’
각오를 다지고 연습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명학 대표와 엔지니어, 아니 이제는 프로듀서 역할까지 맡은 홍우선 프로듀서와 함께 들어가니 뭔가 중요한 간부가 된 기분이었다.
“얘들아, 집중!”
홍우선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어? 윤건하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후다닥 달려와 내게 인사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병아리였다.
“그래,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네! 선배님 덕분에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데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군기가 제대로 잡혔다.
“아, 그래. 열심히 하는 모습 봤어.”
“넵!”
“그런데 내가 너희의 춤에 짧게 코멘트를 하자면….”
똘망똘망한 네 쌍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저 병아리 같은 애들에게 쓴소리를 해야 한다라.
물론 따지고 보면 지금의 나와 동갑이긴 하지만….
어쨌든 선배이고 투자자니까.
“너무 급하다. 춤이.”
“네?”
“다 좋은데, 춤에서 여유가 느껴지지 않아.”
아,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