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미국 로스앤젤레스.
수많은 미국 영화 및 예술계의 사람들이 모인다는 할리우드.
그중에서도 매년 주기적으로 K-pop 콘테스트가 열리는 할리우드의 오픈형 무대, 할리우드 볼.
와아아아!
사람들은 무대 위에 선 아이돌을 보며 환호했다.
몬스터즈.
앨범 홍보를 위해 뉴욕, 할리우드,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콘서트를 열고 있었다.
그리고 객석 대부분이 만석을 채우는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데뷔 이후 종종 미국에서 콘서트를 하는 건 물론이고, 앨범 활동도 꾸준했던 몬스터즈는 그동안 쌓아놓은 미국 내 팬덤이 상당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팬덤과는 달리, 차트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게 몬스터즈가 미국 활동에 전념하기로 결정한 이유였다.
미국에서 어떻게든 성공하겠다는 일념.
꺄아아악!
“고마워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환호하는 팬들을 향해 인사하는 한진성은 멤버들과 함께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이번 콘서트에 사람들이 엄청 모이는 걸 보니, 이번 앨범 느낌이 좋은데?”
함께 내려가던 이진규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카이가 칼을 갈았잖아. 이번 앨범으로 무조건 성공하겠다고.”
한진성의 말에 카이가 눈을 피했다.
“그런 적 없어.”
“에이, 왜 그래?”
“없다니까?”
“저번에는 이번 앨범에 혼신의 힘을 담았다면서? 설마 다른 애들한테는 말하기가 부끄러운 거야?”
“조, 조용히 해!”
그들은 투닥거리며 대기실로 내려갔다.
이런 식이다.
무대 위에서나 후배들 앞에서는 아이돌 몬스터즈였지만, 이렇게 그들끼리 있는 자리에서는 그저 평범한 20대 후반의 청년들이었다.
“잘했다, 얘들아.”
스테이지에서 대기실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강훈 대표가 그들을 맞이했다.
“아, 대표님.”
“잘 봤다, 역시 몬스터즈던데? 무대 위에서 보여준 파괴력이 남달라. 하하하!”
“감사합니다.”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최강훈 대표의 말에 몬스터즈 모두가 궁금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뭔가요? 좋은 소식이라는 게.”
“켈런 쇼에서 몬스터즈 특집으로 토크쇼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네?”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연예인들은 꼭 한 번씩 나온다는 제일 유명한 토크쇼. 존 켈런이 진행하는 이 토크쇼에 나간다는 건, 미국에서 알아주는 연예인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3주 후에 녹화 시작한다고 한다. 아마 다음 주에 인터뷰에서 쓸 내용을 협의하기 위해서 미팅이 있을 거야.”
“의외네요. 아직 앨범은 공개되지도 않았는데….”
구희성의 말에 최 대표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만큼 몬스터즈라는 브랜드가 미국에서 잘 먹히고 있다는 뜻이지. 저번 앨범도 성적은 기대보다 안 좋았지만, 팬덤에서 평은 좋았으니까.”
성공하기 위한 모든 빌드업을 끝마쳤다.
이번 앨범으로 미국에서 빅 히트를 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고 있었다.
몬스터즈라면 가능하다.
빌보드 차트 1위도 조만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기대하고 있었다.
“느낌이 좋으니 이대로만 가자고. 다들 조금씩만 더 힘내자. 허허허.”
너털웃음을 짓던 최강훈 대표에게 한진성이 물었다.
“대표님, 올리오스는 해외 투어 잘하고 있나요?”
“지금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들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요.”
“이제 며칠 뒤면 1주년이잖아. 1주년 기념 콘서트를 한국에서 열려고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았더라고. 애초에 해외 투어는 갑자기 생긴 일정이기도 하고.”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시간 참 빠르네.”
한진성의 감탄에 최강훈 대표가 껄껄 웃었다.
“원래 다른 사람 시간은 엄청 빠르게 느껴지는 법이지.”
“그런데 1주년 기념으로 아예 콘서트를 하나요? 저희는 그때 그냥 라이브 포함한 팬미팅만 했던 거 같은데.”
구희성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소속사 사정이 그때와 지금이랑은 다르지. 옛날에는 신인 그룹 몬스터즈밖에 없던 작은 회사라 경험도 부족했고, 지금은 미국 활동도 끝내주게 잘하는 슈퍼스타인 몬스터즈에 올리오스까지 함께 있는 소속사니까.”
“애들 꿀 빠네요. 예전에는 1주년 기념 콘서트 같은 거 생각도 못 했는데.”
이진규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의 작은 투덜거림을 듣던 한진성의 머릿속엔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빠르네. 올리오스.’
1주년 기념 콘서트를 할 수 있다는 건, 소속사 사정이 좋다는 의미와 동시에 올리오스의 성장이 그만큼 빠르고 파괴적이라는 뜻이었다.
신인 보이그룹에서 보일 수 없는 성장과 두터운 팬층, 그리고 좋은 음악과 비주얼, 거기에 실력까지.
절대 2년 차 아이돌이 보일 수 있는 퀄리티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윤건하가 있었다고 한진성은 자부할 수 있었다.
‘빠르네.’
정말 빨라.
몬스터즈를 제치고 먼저 세계의 톱을 찍겠다는 윤건하의 바람과 목표처럼 말이다.
“그 친구들도 금방 미국에 오겠네요.”
최강훈은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아마 너희 활동이 끝나면 그 공백기를 올리오스가 메울 거다.”
“벌써 미국 활동을 준비 중이신 거예요?”
“당장은 아니야. 그래도 내년에는 확실히 오겠지.”
최강훈 대표의 말에 한진성을 제외한 모두가 벙찐 얼굴로 그를 보았다.
“파격적이네요.”
“그래, 파격적이지.”
그러나 그만큼 애들의 성장이 확실히 보이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리라.
본인들도 적극적으로 그것을 원하고 있고.
“벌써 기대가 되는데요? 걔들이 미국에 왔을 때 환호할 사람들의 모습이.”
동시에 각오를 다졌다.
후배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선배가 되지 않겠다고.
* * *
한국 귀국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올리오스의 1주년 콘서트가 서울에서 열렸다.
외국에서 했던 콘서트와 차이점은 거의 없었다.
팬들이 보여준 열기와 환호도, 국적이 다르다고 차이가 있는 건 아니었다.
“즐겁네.”
어디서든 즐거웠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건 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콘서트의 끝이 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하아. 이제 조금 나아진 거 같아.”
호진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생이 왔다는 사실에 평소보다 훨씬 더 긴장했던 호진이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숨을 깊게 내쉬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 지금 많이 좋아졌어.”
“그래도 다행이다. 동생분도 건강해져서 직접 왔다면서. 어디에 계셔?”
“저기 스탠드 석에서 보고 있어.”
“잘 됐다. 정말로.”
무대 뒤편, 성훈의 단독 무대가 이어지는 짧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호진의 긴장을 조금 풀어줬다.
“이제 긴장도 다 털어냈으니 잘해야지. 동생한테 실수하는 모습은 보여줄 수 없으니까.”
“그래야지.”
“이제 엔딩곡 불러야 하니까 조금만 힘내자.”
성훈의 노래가 끝나감과 동시에 우리는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마지막 엔딩곡인 ‘이제 안녕’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무대에 오르자, 팬들이 어두워진 관객석에서 우리를 향해 핸드폰 라이트를밝혀주었다.
저 밝은 라이트들이 마치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은하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웠다.
황홀했다.
가슴이 떨렸다.
절로 미소가 나왔다.
꾸며낸 웃음이 아닌, 기분 좋은 웃음이 입가에 그려졌다.
모니터 속에서 비치는 내 모습을 보았다.
팬들을 향해 미소를 짓는 내 모습이 클로즈업 되는 것을 말이다.
왠지 부끄러워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려버렸다.
얼굴을 가리며 옆에서 엔딩곡을 부르는 호진을 보았다.
호진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눈물을 참는다고 새빨개진 눈가가 유독 눈에 띄었다.
호진에겐 저 은하수가 다른 의미로 보일 테지.
단순히 팬들이 보내주는 사랑의 의미뿐 아니라, 밝아진 가족들의 미소를 상징할 수도, 또는 건강해진 동생이 맞이할 찬란한 미래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정민과 우주만큼이나 감성적인 친구였다.
말수가 적은 만큼 생각도 깊었다.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또한 끔찍했던 친구였다.
‘그러니 지금 저 불빛이 다르게 와닿을지도….’
호진의 시선이 동생이 앉아 있다는 좌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건강한 동생의 모습을 찾은 걸까.
호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차마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그걸 콘서트의 끝이 가까워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라 생각해서일까.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팬들이 우렁찬 응원의 함성을 보내줬다.
호진은 꾸벅 인사하는 것으로 그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그렇게 엔딩곡이었던 ‘이제 안녕’이 끝이 났다.
그리고 우주가 마이크를 잡았다.
원래는 호진이 멘트를 치고 동생을 위한 앵콜곡을 부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감정이 격해진 호진은 크게 흐느끼고 있었다.
“사실 오늘 호진이 형의 여동생이 콘서트에 찾아왔거든요. 다들 아시겠지만, 호진이 형의 여동생이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 콘서트를 찾아와준 거예요. 그래서 조금 감정이 격해진 거 같아요.”
그리고 카메라가 여동생인 현진과 그의 어머니를 비췄다.
두 사람 역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괜찮다는 함성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마지막으로 호진이 형의 가족과 우리 올리오스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앵콜곡을 마지막으로 1주년 콘서트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호진의 가족과 원스 팬들을 위한 마지막 앵콜곡을 끝으로 1주년 콘서트를 끝마쳤다.
* * *
“…미안해.”
호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엔딩곡에서 울음을 참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면서 사과를 했다.
“괜찮아. 네가 어떤 것 때문에 힘들었었는지, 그리고 감동받을 수밖에 없던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
“정말 면목이 없다….”
여태껏 이랬던 적이 없었다.
무대에서 작은 실수를 했던 적이 거의 없던 우리였다.
그만큼 감정이 격해졌다는 거겠지.
“괜찮아, 형. 누구라도 그랬을걸? 가족들 앞에서 공연하다가 울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우주가 호진을 위로했다.
한창 우리가 호진을 위로하는 동안.
“안녕하세요.”
호진의 여동생인 현진이 대기실을 찾아왔다.
그녀 역시 눈가가 새빨갰다.
“반가워요.”
병석에 있을 때는 못 느꼈지만, 호진을 닮아 미인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고개를 푹 숙인 뒤,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괜히 저희 때문에 콘서트를 망친 게 아닐까 싶어서….”
“괜찮습니다. 다들 응원해 줬잖아요, 괜찮다고. 팬분 중에서 사연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요.”
호진에게 아픈 여동생이 있다는 건 예전에 라이브 방송을 통해 살짝 언급한 적이 있었다.
가족 앞에서 공연을 한 탓에 울어버린 호진을 그 누구도 나무라지 않은 것은, 팬들 대부분이 호진의 사연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몰랐다고 해도 나무랄 사람들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에게 사과한 현진이 나를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 오빠가 말해줘서 알고 있어요. 병원비를 빌려 주셨다고….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그냥 빌려준 거야. 너무 그러지 마.”
“아니에요. 그게 없었다면 아마 치료도 못 받았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깊은 감사를 표한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굳게 다짐하는 현진의 눈빛은 은혜를 갚겠다고 말하던 호진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