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68화 (168/236)

<제168화>

황이서에게 이 자리는 하나의 의식과 같았다.

몬스터즈의 성공.

그러나 그 이후에 GH 엔터에서 있었던 잇따른 실패.

야심차게 준비했던 걸그룹 슈퍼스타가 망하고, 멤버들이 전부 연예계를 떠나거나 어렵게 명맥만을 이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동시에 자신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었었다.

몬스터즈를 성공시켰다는 자부심이 옅어질 무렵, 올리오스가 완성되었다.

계속해서 이어진 승승장구.

그렇게 도착한 이 자리.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일이면 일본에서 하는, 아니 해외에서 하는 첫 콘서트다. 그리고 최초의 올리오스 단독 콘서트야. 최초의 단독 콘서트를 해외에서 하는 그림이 됐지만, 나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황이서는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번 오사카 스테이션의 5천 석 전석 매진이다! 굉장히 기분 좋은 시작이야. 해외 단독 콘서트 첫걸음이 아주 좋아. 그리고 첫 해외 투어의 방점을 성공적으로 한국에서 찍는 거지. 안 그러냐?”

“네!”

멤버들의 대답을 들은 그는 가볍게 씨익 웃었다.

참 여러모로 좋은 애들이었다.

외모도, 실력도, 성격도, 자신감도.

누가 뽑았는지 참 마음에 들었다.

그중에 황이서의 마음을 이끄는 건 저 자신감.

큰 무대를 앞두고도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에 몸을 떠는 저 젊은 패기가 좋았다.

“자신감이 있어서 좋네. 우리 올리오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자신감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희를 영입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

황이서는 감격에 겨운 듯 입술을 꼭 깨물었다.

“후우, 미안하다.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말이지.”

황이서는 고개를 위로 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러면 안 되지.

프로듀서인 자신이 흔들리면 애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너희가 이번 콘서트도 무사히 잘 마쳐서 앞으로 해외 투어의 좋은 시작을 알릴 거라 확신한다. 앞으로 1만, 2만, 10만 명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보자. 우리도 도쿄돔에서 공연 한번 해야지.”

황이서는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내일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해야겠지만, 행사 당일은 나도 너희도 모두 바쁠 테니, 지금 이 자리에서 파이팅하고 각오를 다지자.”

“알겠습니다!”

“프로듀서님이 더 떠시는 거 같은데요?”

건하가 웃으며 말하자, 황이서도 맞장구치듯 같이 웃었다.

“너희들이 보여줄 무대가 기대돼서 떠는 거야.”

공포와 두려움이 전염되는 것처럼, 자신감도 똑같다.

한 명이 가진 근거 있는 자신감 하나면, 주위에 있는 모두가 함께 전염이 되는 거다.

지금 건하가 그랬다.

그가 가진 근거 있는 자신감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웃게 만들고 있었다.

황이서는 건하가 주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으며 외쳤다.

“올리오스!”

“파이팅!”

“푹 쉬어라! 그럼 내일 보자!”

이 애들이라면 잘 해낼 것이다.

황이서는 믿을 수 있었다.

*    *    *

꺄아아아악!

밖에서 환호성이 들린다.

우리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기다렸던 일본 팬들이었다.

어제 5천 석의 객석이 매진됐다고 들었다.

매진만으로도 놀라운데, 공연장의 규모 또한 예상보다 훨씬 컸다.

시작은 작은 곳에서 할 줄 알았는데.

“다들 연습한 말은 기억해?”

“물론이지.”

멤버들 모두 각오를 다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얼굴에 붙인 마이크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눈앞에 새롭게 뜬 상태창을 확인했다.

[돌발 퀘스트: 해외에서 좋은 인상을]

[무대 등급 S급을 달성하세요.]

[무대 등급: -]

[성공 시: 10 오픈 마일리지]

[등급이 높을수록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어제 황이서의 연설을 들었을 때 새롭게 얻은 퀘스트였다.

무대 등급 S급이라.

이제는 익숙할 정도로 어렵지 않게 찍을 수 있는 수치였다.

SS급은 불확실해도 S급은 언제나 확실하게 찍고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어도 감동할 수 있는 무대를 보여줘야 해.’

음악은 만인에게 통하는 언어라고 했던가?

그 말이 우리 무대에도 통하길 바랐다.

그래야만 더 높은 등급을 얻을 수 있으니까.

단순히 좋은 테크닉만으로는 올릴 수 없기에, 관객들의 진정한 감동이 필요했다.

“올라가면 바로 인사하고, 우주가 오프닝 멘트를 이어갈 거야. 막힐 거 같으면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오케이.”

“리허설 때 잘했잖아. 우리 이번에도 잘할 수 있어.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하자. 너무 긴장하지 마. 언어만 다를 뿐이지 다 같은 팬들이야.”

“알고 있어.”

“누가 긴장했다고 그래.”

“후우, 후우.”

호진이를 빼면 다들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유일하게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호진이도 무대를 걱정하는 것보단.

“나 이따 멘트 치다가 말 절면 어쩌지?”

인사말을 절지 않을까 걱정하는 중이었다.

“괜찮아. 연습 많이 했잖아.”

호진이를 안심시키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준비해 주세요. 곧 들어갑니다!”

스태프의 신호가 들어왔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진행 상황을 공유해 주는 스태프는 한국인이 맡아주기로 했다.

아무리 내가 일본어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통역을 한 번 거치고 들어가면 딜레이가 있을 테니까.

찰나의 순간이 중요한 무대에서 그 딜레이는 자칫하면 큰 사고를 유발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우리와 연결된 모든 스태프는 전부 한국인이거나,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 들어가겠습니다!”

백스테이지에서 말이 끝난 그 순간, 무대가 어두워졌다.

암전.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잠시 숨을 죽이는 그 시각.

우리는 리프트 위에 올라서 숨을 골랐다.

“잘해보자.”

우리가 마지막으로 의지를 다짐과 동시에 리프트가 올라갔고.

암전 속에서 우리를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와아아아아!

멈췄던 환호성이 터지듯 울려 퍼졌다.

“곤니찌와!”

우리는 그런 팬들을 향해 일본어로 인사했다.

*    *    *

시라이시 요코는 아주 오래전부터 K-pop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녀의 학창 시절은 한국 아이돌로 채워져 있었다.

이제 서른이 된 그녀였지만, 여전히 요코는 한국의 아이돌을 사랑했다.

몬스터즈, 라이언, 플루토 등 한국의 아이돌들은 일본의 연예인에게는 없는 에너지가 있었다.

여러 명의 아이돌이 동시에 각이 딱 맞아떨어지는 군무를 췄을 때의 그 화려함이란!

노래는 또 얼마나 좋고!

얼굴도 다들 잘생겨서 뭐 하나 빠질 곳이 없었다.

최근에 그녀가 빠진 한국 아이돌은 올리오스.

시작은 몬스터즈였다.

GH 엔터에서 매년 진행하는 연말 콘서트에서 몬스터즈와 함께 나온 올리오스를 본 순간, 그들은 요코의 마음에 확실히 자리 잡았다.

몬스터즈는 여전히 메인으로 응원하면서도 새로 나타난 신인, 올리오스의 행보를 따라갔다.

물 건너 비싼 해외 배송비와 환율마저 마다하고 앨범부터 자잘한 굿즈까지 사모으면서까지.

최근, 한국 아이돌들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한국 아이돌들에 대한 정보나 상품도 어느 정도 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도 신인 그룹이라 일본에선 딱히 구할 수 있는 굿즈가 많이 없었다.

그나마 포토카드 정도.

여러 아이돌을 동시에 덕질하는 건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동시에 성취감도 남달랐다.

그 신인이 떡잎부터 남다른 아이돌이라면 더더욱.

그들이 커가는 걸 볼 때마다 자신이 더 뿌듯해지는 걸 느꼈다.

올리오스가 일본에 온다는 소식에, 그녀는 연차를 내면서까지 티켓을 예매했다.

아직 신인이고 일본에서 여는 첫 콘서트일 텐데, 무려 5천 석이나 준비한 GH 엔터도 대단했고.

‘하마터면 못 올 뻔했지.’

그마저도 눈 깜짝할 사이에 다 팔려버린 것도 대단했다.

요코는 느꼈다.

그녀뿐 아니라 이미 많은 일본인이 올리오스를 알고 있다는걸.

묘한 동질감과 함께 위기감을 느꼈다.

‘다음 콘서트에는 이 좋은 자리에 못 올지도 모르겠구나.’

이들이 유명해지면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릴 테니까. 이번에야 운 좋게 좋은 자리를 얻었지만, 더 큰 공연장에서도 이런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더더욱 오늘의 공연을 열심히 즐겨야겠지.

그리고 모든 불이 꺼졌고, 올리오스가 등장했다.

암전 속 유일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빛나는 그들은,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곤니찌와!”

“와.”

자연스러운 일본어 인사.

요코는 자신들에게 인사하는 올리오스를 향해, 그녀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환호했다.

“첫 곡은 저희의 데뷔곡이었던 ‘New taste’를 부르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여유 있는 말투로 일본어를 말하는 건하.

조금은 서툴지만 짧은 일본어로 애쓰면서 자기를 소개했던 우주, 호진, 정민 그리고 성훈까지.

호진이 떨면서도 일본어로 반갑다고 인사하는 모습도 귀여웠다.

저렇게 떠는 애가 노래를 부를 때면 완전히 사람이 달라진다는 게 놀라웠고, 성훈의 목소리는 감미로웠다.

발음이 워낙 뚜렷하고 좋아서, 일본어 노래도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멤버들이 보여주는 각기 다른 말투도 반응도 모두 귀엽고 보기 좋았다.

감상하는 순간 첫 곡이 시작되었다.

‘New taste’.

그녀도 잘 아는 노래였다.

처음 그녀가 올리오스라는 그룹을 알았을 때 들었던 노래.

요코는 입장하면서 받은 응원봉을 흔들었다.

음악의 박자를 맞춰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응원봉을 흔들었다.

반짝거리는 빛이 거의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경이로웠다.

그리고 즐거웠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그들이 만들어 내는 무대엔 힘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주먹이 쥐어지고, 땀이 흐르며 함성을 지르게 되는 그런 무대.

첫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노래로 이어가는 올리오스.

이번엔 ‘All we once’가 흘러나왔고, 조명의 색이 조금 더 밝은 푸른색으로 바뀌며 무대에 설치된 거대한 모니터에서 멤버들의 얼굴이 비쳤다.

‘All we once’의 후렴구에 도달한 순간, 요코는 매일 들어 익숙했던 노래의 후렴구를 불렀다.

한국어로 된 가사였지만, 한국 아이돌 덕질 10년간의 내공으로 단련된 그녀의 한국 노래 실력은 무시할 것이 못 됐다.

이 자리에 온 다른 팬들도 그녀와 비슷한 입장일 거다.

올리오스의 노래에 감명을 받아 그들의 노래를 듣고 불렀던 경험이 있었을 테니.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후렴구를 불렀다.

이제 두 번째 노래였는데, 올리오스를 아는 일본 팬들에게 ‘All we once’는 굉장히 친숙한 노래였다.

““우리 함께 걷던 이 거리. 혼자 나오니 낯설어.””

모두가 함께 부른 노래를 들은 올리오스가 놀란 얼굴로 무대를 보았다.

그럼에도 안무를 멈추지 않았는데,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돋보였다.

저런 모습 덕분에 다들 올리오스를 좋아하는 거니까.

‘All we once’가 끝이 나고, 가벼운 토크 타임.

그들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넘치는 에너지가 무대 아래에 있는 그녀에게도 느껴졌다.

우주와 건하가 이런저런 만담을 하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들어가 뭔가를 준비했고.

이후엔 성훈과 정민이 일본의 국민 가수의 노래를 불렀고, 호진이 일본의 전통춤을 추는 무대도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올리오스의 대표곡과 수록곡이 파고들기까지 하는 바람에 정말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쉴 틈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정말 오길 잘했어.’

요코는 넘치는 에너지를 느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본 콘서트는 그녀의 10년 덕질 역사 중에서 최고 중에 하나로 손꼽을 수 있는 그런 무대였다.

끝이 보이는 게 아쉬웠다.

그녀는 다짐했다.

올리오스가 일본에서 다음 콘서트를 연다면, 그때도 꼭 티켓팅을 성공하겠다고.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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