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66화 (166/236)

<제166화>

일련의 소란을 마치고 우리는 출국 심사를 마쳤다.

“맞다, 우주야. 비행기 탈 때 신발 벗고 타야 하는 거 알지?”

“내가 무슨 어린애인 줄 알아? 그거 다 알아. 인터넷에서 검색해봤어.”

“그래?”

“당연하지.”

가슴을 펴며 자랑스럽게 외치는 우주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쬐끄만한 강아지가 테니스 공을 물고 와서 기분 좋게 자랑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뿌듯해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럼 이것도 알아?”

“뭐?”

“비행기에서 라면 먹고 싶다고 말하면 컵라면 사발면 끓여주신다는 거.”

“에이, 거짓말 하지 마. 내가 속을 거 같아?”

“진짜야. 궁금하면 나중에 물어 봐.”

“근데 우리 기내식 없잖아.”

“그래도 말하면 준다니까?”

“정말?”

못 믿는지 나를 흘겨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우주였다.

“형들은 알아? 그 컵라면 얘기.”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비행기는 처음이라서.”

“타고 나서 승무원한테 물어보면 될 거 같은데.”

“모르겠어.”

다들 첫 해외여행이었다.

비행기도 처음 타는 애들이었기에 알 리 없었다.

우주가 처음이라는 것은 조금 의외였지만.

“나중에 한번 승무원 분께 물어봐.”

“으으으……. 프로듀서님!”

“왜?”

“기내식 없는데도 라면 진짜 줘요?”

“라면?”

“네!”

우주의 말에 황이서가 나를 힐끔 봤다.

웃음을 참는 내 표정을 본 황이서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는데?”

“프로듀서님은 많이 가보지 않았어요?”

“그런 건 직접 알아보는 게 재밌지 않겠어?”

그렇게 비행기에 탈 시간이 왔다.

우리는 차례대로 비행기에 올라탔고, 제일 뒤에서 따라오던 우주가 힐끔거리며 내 눈치를 봤다.

혹시 정말 신발을 벗지 않을까 싶어서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인터넷에서 오가는 농담들을 보며 전부 확인했다고 자신했지만, 혹시나 하는 모습이 참 보기 귀여웠다.

약간의 헤프닝이 있고 난 뒤,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멤버들은 자리에 앉은 채 비행기를 신기한 눈으로 이곳저곳 쳐다봤다.

GH 엔터에서 준비해 준 좌석은 비즈니스석.

상대적으로 보는 시선이 적은 탓일까.

아니면 예상보다 넓은 좌석 덕분일까.

“형, 이거 봐. 이거 막 누울 수도 있어.”

“우와. 와…. 진짜 넓다.”

“원래 좌석이 이렇게 넓은 건가?”

멤버들은 어린아이처럼 신나 했다.

저런 모습을 보면 이제 성인의 티를 막 벗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아, 사회의 때가 묻은 아저씨는 눈물만 나는구나.

하지만 애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비즈니스 좌석보다 더 좋은 퍼스트석은 이보다 더 넓고 끝내준다는 걸.

개별 칸막이는 물론이고, 나오는 기내식의 수준이 달랐다.

기체마다 다르지만, 일부 기체에는 비행기 내부 샤워실까지 존재했다.

‘나중에 그거 보면 기절하겠네.’

그건 나중에 볼 재미로 남겨두기로 했다.

언젠가 타게 된다면 깜짝 놀랄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승무원과 기장의 안내와 함께 비행기가 이륙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기요.”

아까부터 안절부절 못 하면서 황이서의 눈치를 보던 우주가 손을 들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승무원이 다가오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꼭 내겐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듯이.

“혹시 여기 라면도 주시나요?”

“라면이요?”

“네.”

“물론입니다.”

“기내식이 없는데요?”

“네. 따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 정말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우주가 입을 가리더니 주위 눈치를 보았다.

그 순간 나와 눈을 마주쳤고, 우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형이 맞다고 그랬지?”

“진짜네.”

우주는 빼꼼 고개를 들어 황이서가 있는 자리를 살폈다.

혹시 그가 자고 있다면 과감하게 컵라면을 시킬 생각인 것처럼 보였는데.

“나 안 잔다.”

“아….”

눈을 감은 채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는 황이서의 반응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괘, 괜찮아요.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손님. 그럼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나는 시무룩해 있는 우주에게 말했다.

“우주야.”

“응?”

“다음에 태국 가는 비행기 탈 때는 신발 벗고 타야 한다.”

“안 속아.”

에이, 아깝네.

*    *    *

도쿄 국제 공항, 흔히 하네다 공항이라고 불리는 일본 도쿄의 공항에 도착했다.

“끄으으, 뭔가 공기가 좀 다른 거 같지 않아?”

기지개를 핀 정민이 말했다.

코를 킁킁거린 그는 일본의 공기를 맡으려는 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뭔가 한국보다 습한 느낌도 있네.”

“실제로 한국보다 조금 더 더울 거다. 도쿄가 부산이랑 위도가 비슷한데다가 섬이라 공기가 꽤 습하거든.”

“그런가요?”

황이서가 태연하게 말하며 짐을 챙겼다.

우리는 짐을 받는 레일에서 각자 캐리어를 받아들고 자리를 옮겼다.

“아마 공항에서 기다리는 팬들이 뭘 예상하든 그것보다 더 많을 거야. 그 분들한테 잠깐 인사하고, 현지 프로덕션의 담당자랑 같이 호텔로 움직일 거다. 오늘 하루는 자유시간을 갖고, 내일 촬영장에 가서 <쇼쿠도 타이무>촬영 들어갈 거니 그렇게 알고 있어.”

“바로 들어가네요.”

“그렇지. 그리고 일주일간은 여기저기 인터뷰 위주로 다닐 거야. 4일차까지는 콘서트보다는 인터뷰 위주로 다닐 거고, 연습실은 빌려놨으니까 5일차부터 임의적으로 연습하면 될 거다. 계획보다 일찍 왔으니까 쉬는 시간도 많이 줄 거고.”

“알겠습니다.”

그 말을 가만히 듣던 성훈이 물었다.

“팬 분들이 얼마나 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까?”

“우리 예상보다 많이 왔다고만 생각해. 나도 방금 연락 받은 거라서.”

“그렇군요.”

“나가면 알 수 있겠지. 너무 적을까 봐 그래?”

“예.”

나는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성훈의 등을 토닥였다.

“형, 걱정 마. 많이 오셨을 거야.”

우리는 걱정과 기대를 안으며 게이트로 나갔다.

입국 수속까지 마쳤을 즈음.

꺄아아악….

멀리서 환호성이 들렸다.

그 소리의 크기만으로 우리는 짐작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조금 많이 왔다는 황이서의 말이 조금은 축소해서 말한 것임을.

그리고 게이트를 나섰을 때.

꺄야아아아악!

“와.”

캐리어를 끌고 가는 우리들을 찍는 사진기의 셔터음과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분명 한국에서 출국할 때보단 적은 수였지만, 지금 모인 사람들만 해도 최소 백은 되어 보였다.

사방에서 들리는 일본어와 환호성.

“어, 어…. 어쩌지?”

“손이라도 흔들어.”

우리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솔직히 한국에서 사람이 많은 거?

그럴 수 있다.

우리가 활동한 곳은 한국이었고, 한국 팬들을 위한 활동을 끊임없이 해왔으니까.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우리가 활동한 적도 그렇다고 일본어로 번역한 노래도 내질 않았는데, 어째서?

“말했잖아. 몬스터즈 덕분에 올리오스에 대한 관심도 올라갔다고.”

황이서가 웃으며 우리들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자, 인사하자. 일본 팬들한테 좋은 첫인상을 보여줘야지.”

그의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리들은 팬들의 앞에 나란히 섰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우리는 일본어로 연습한 시그니처 인사를 한 뒤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하는 우리를 향해 팬들이 화답해줬다.

“꺄아아악!”

“올리오스 너무 좋아요!”

“사란해여!”

어색한 한국어로 외치는 일본팬들의 목소리를 듣자, 뭔가 대답을 해줘야 할 거 같았다.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나와주신 거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앞으로도 많은 사랑 부탁드릴게요! 사랑합니다!”

나는 손하트를 그리며 유창한 일본어로 외쳤다.

꺄아아악!

우리가 처음 보자마자 유창한 일본어를 했다는 사실에 더 감격했는지, 환호 소리가 더 커졌다.

“자, 그럼 갑시다.”

짧은 인사를 마친 우리는 일본 쪽 프로덕션 담당자가 기다리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게이트에서 기다리든 팬들의 행렬은 우리가 담당자를 만나 인사를 나눌 때까지 따라왔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네다 공항을 떠나, 미리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    *    *

우리는 하루 동안 도쿄 시내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공항에는 우리를 보려고 몰려들었던 팬들의 무리가 왔었지만, 그와 달리 시내를 거니는 우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본 본토의 라멘을 먹고 싶다는 우주의 말에 우리는 저녁으로 라멘집을 찾았다.

그가 인터넷 서핑으로 찾은 낡은 노포 라멘집.

“이랏샤이마세!”

일본의 식당은 그 역사가 깊을수록 맛이 더 훌륭하다고 했던가.

맛은 끝내줬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라멘을 먹은 기분이었다.

배부르게 먹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오랜만이다. 이렇게 한가하게 돌아다니는 거.”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는 이 여유로움을 즐기던 호진이 말했다.

그의 말에 다들 작년 이맘때가 생각나는 듯 우수에 젖은 눈으로 거리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인기를 얻고 난 이후부터는 한국에서 거리를 돌아다니려면 단단히 무장을 하고 나갔어야만 했다.

물론 그것도 통하지 않을 때는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피리 부는 소년이 되곤 했다.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자.”

아마 예능에 출연하고 콘서트도 하게 되면 이런 여유도 곧 사라질 테니까.

문득 한진성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유명해지면 가끔 귀찮을 때가 있어. 사람들의 사랑은 고맙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거든. 근데 그게 불가능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사업가로서 유명해 봤자, 거리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때 말하는 한진성의 얼굴에 서렸던 약간의 버거움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른데.’

오히려 나를 알아봐주지 않는 도쿄 사람들이 매정하게 느껴졌다.

섭섭하다고 해야 할까.

도전 정신이 들끓었다.

언젠가 머지않은 날에 나를 지나치는 이 무심한 사람들이 나를 보며 환호하게 만들 거다.

공항에서 우리를 찾아준 그 팬들처럼.

물론 이 얘기를 들으면 다들 나를 미친놈처럼 보겠지.

‘건하, 너는 역시 관종이야.’

‘형은 타고난 연예인이다.’

‘나는 못 버틸 거 같은데.’

‘건하, 너 답다.’

멤버들의 할 말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렇다고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다.

‘진심이거든.’

성공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환호하게 만들고 싶었다.

진엔딩이고 뭐고를 떠나.

그 사람들이 내게 열광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도쿄의 밤거리를 여유롭게 거닐며, 나중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바빠질 미래를 떠올렸다.

그리고 현지 프로덕션이 잡아준 호텔, 참 편안하고 좋았다.

*    *    *

“건하 씨는 프리토킹이 가능하시다고요?”

“그렇습니다.”

현지 프로덕션이 고용한 통역사와 황이서 그리고 우리 올리오스가 촬영 전 간단한 미팅을 나눴다.

통역사가 누굴 통역해야 할지를 맞추기 위한 미팅이었다.

“우선 다들 기본적인 회화를 하실 줄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간단한 회화는 가능한데, 그 수준이…. 하핫!”

우주가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괜찮습니다. 그럼 제가 MC들이 하는 질문을 통역해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일본어로 가능하신 간단한 답변들은 직접 하시고,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한국말로 해주세요. 그럼 제가 통역해서 전달드리겠습니다.”

통역사는 자연스러운 촬영을 위해 카메라 뒤에서 통역을 도와준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쇼쿠도 타이무>의 총괄 PD가 다가와 물었다.

“여러분, 촬영 곧 들어갑니다. 혹시 시간이 더 필요하실까요?”

“괜찮습니다. 바로 시작해도 됩니다.”

그렇게 일본의 첫 스케줄, <쇼쿠도 타이무> 녹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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