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일본을 시작으로 동남아 그리고 중국을 도는 아시아 투어.
마지막에 한국으로 돌아와 1주년 콘서트를 하는 일정이라고 들었다.
해외를 돌며 올리오스의 인지도를 올리고, 동시에 더 많은 사람에게 우리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도쿄 TV에서 인터뷰라니요?”
당황스럽고도 기쁜 소식이었다.
우리는 일본 노래를 따로 만든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일본 쪽에서 먼저 인터뷰요청이 온 거지?
싶었는데.
황이서가 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입을 열었다.
“2년 전에 몬스터즈의 아시아 투어를 진행했을 때 좋은 경험이 많았거든. 아마 그래서 현지 프로덕션이 좋게 봐준 듯 해. 직접 다리를 놔줬다고 하더라고.”
이렇게 또 몬스터즈의 도움을 받았다.
한진성이 자리에 있었다면, 크게 웃으며 등을 두드렸을 것이 분명했다.
-하하하! 어때? 이게 우리 몬스터즈라고. 후배님, 다시 존경심이 막 생기지?
어쩐지 한진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게다가 몬스터즈가 일본에서 나름 두터운 팬층을 지니기도 했으니까. 몬스터즈랑 같이 무대를 많이 섰고, 같은 소속사인 너희에게 관심이 가는 모양이더라고.”
황이서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말을 이었다.
“어느 프로그램인가요?”
“도쿄 TV에서 금요일 저녁에 방영하는 유명 버라이어티 토크쇼가 있어. <쇼쿠도 타이무>라고 유명 연예인들이 나와서 MC 2명이랑 같이 먹방하면서 인터뷰까지 하는 예능이다.”
“먹방까지 한다고요?”
우주가 눈을 빛냈다.
방송 출연을 빌미로 먹을 생각에 조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그래. 금요일 저녁 시간대 원탑 방송이라고 하니까, 투어 전에 인터뷰 녹화를 따고, 시부야에서 토크쇼도 짧게 진행한 뒤에 콘서트를 진행하면 될 거 같다.”
황이서의 목소리엔 벌써부터 들뜸이 가득했다.
예상하지 못한 횡재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래서 예정보다 3일 정도 더 빨리 출국할 거 같아. 지금 일정 맞는 현장 숙소도 급하게 찾고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될 거다.”
“넵! 알겠습니다!”
3일 정도 일찍 출국하기 위해선 그만큼 비용이 더 들었다.
그럼에도 황이서는 거리낌이 없었다.
추가 일정으로 들어가는 비용 이상의 효과를 충분히 볼 테니 말이다.
콘서트 홍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홍보 자료를 뽑아냈는데, 그보다 훨씬 좋은 홍보를 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리고 일본 콘서트는 매진이라고 들었다.
소수 있는 현장 발권을 제외하면 전부 팔렸다는 소리였다.
콘서트만 생각한다면 굳이 홍보가 더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
콘서트만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황이서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더 큰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올리오스를 해외에 알리는 것.
그것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활동에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다들 간단한 일본어 인사 정도는 공부하도록 해. 통역사가 붙겠지만, 간단한 인사라도 현지어를 알고 모르고는 차이가 크니까.”
“알겠습니다!”
이제 번역 스킬이 힘을 낼 때였다.
조금만 연습해도 티가 다 날 테니.
“자, 그럼 조금만 더 힘내보자!”
황이서가 박수를 치며 멤버들을 독려했다.
그가 들고 온 소식에 우리는 다들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알겠습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특히 내 시간은 더욱 빨랐다.
해외 투어 준비에 일본어 연습, 그리고 트레블리의 성장 과정을 보기 위해 레프픽션 사무실에 종종 들러 조언을 주는 것까지.
“다들 재능이 넘치네요. 하나를 배우면 둘 셋은 아는 거 같아요. 하하핫!”
방문할 때마다 홍우선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지금 제일 곤란한 건, 기존 노래를 전부 갈아엎고 새로운 노래를 써야 한다는 건데. 실력 괜찮은 친구들이 있으니 걱정마세요!”
내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안 대표와 함께 잘해주리라 믿었다.
“잘 부탁합니다.”
“우리 쩐주님께서 걱정 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원하게 웃는 홍우선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그라면 트레블리 애들을 잘 키워줄 거다.
* * *
일본으로 가는 전날.
“떨린다. 진짜 떨려.”
같은 방을 쓰던 우주가 덜덜 떨며 말했다.
“너무 긴장한 거 아니야?”
“으으, 긴장할 수밖에 없지. 일본어도 잘 못하는데, 나 외국어 울렁증 있단 말이야.”
“일본어는 잘 외웠어?”
“열심히는 했지. 그래도 머리에 잘 들어오더라고.”
가볍게 웃은 우주가 한숨을 퍽 내쉬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야?”
“그냥. 외국어를 모르는 내가 예능에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
“걱정하지 않아도 돼.”
“왜?”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그리고 통역사도 있을 테니까. 너무 웃기고 임팩트를 주려는 것에 몰두하지 마. 우주 네 모습을 보여주면 다들 좋아할 거야.”
“그럴까?”
“물론이지.”
우주가 가진 매력은 언어가 달라도 느낄 수 있었다.
옆에 있기만 해도 주위가 밝아지는 그 특유의 밝은 기운 말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힘이 절로 나는 그런 매력.
그 매력을 일본 시청자들도 알 수 있을 거다.
반짝이는 우주의 매력을 말이다.
‘외국어 문제는 걱정 안 해.’
외국어 울렁증이 있는 우주도 현지에 가면 느낄 수 있겠지.
생각보다 상대방의 대화가 잘 들린다는 걸.
‘한 달 정도 공부했으면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할 테니까.’
그게 번역 스킬의 힘이었다.
고작 한 달 공부한 것만으로도 간단한 회화가 된다는 게.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얻을 테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자. 내일 비행기 타야 하잖아.”
“그렇지.”
“아마 팬들이 모여 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단단히 준비해.”
“많이 모이실까? 우리 7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잖아. 그 시간에 계시려면….”
“혹시 모르지. 프로듀서님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으니까.”
“긴장된다. 화장은 해야겠지?”
“간단하게는 해야지.”
“참, 형은 공항 패션 뭐 입고 갈 거야?”
“늘 입는 거 입고 가야지.”
연습실에 늘 입고 다니는 품 넓은 트레이닝 팬츠와 반팔 라운드 셔츠를 입을 생각이었다.
옷자락이 넓어서 꽤 옷태가 나는 녀석이었다.
상의와 하의를 검은색으로 통일하고 신발을 하얀색으로 포인트를 주면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안 돼!”
침대에 누워 있던 우주가 벌떡 일어났다.
“공항 패션은 연예인의 생명이라고! 해외 나가는 연예인들의 꽃! 아마 공항에서 우리가 한 인사말보다 공항 패션을 더 많이 얘기할걸?”
“나도 알고 있지.”
“그런데도 그걸 그대로 입고 가려고?”
“응.”
완전 후줄근한 옷을 입고 갈 생각은 아니었다.
나도 나름대로 자기 브랜드를 할 줄 아는 놈이었다.
“연습할 때 입던 거랑 똑같은 디자인의 새 옷 있어. 여기에 발목 높게까지 오는 하얀 스니커즈 신으면 나름 자연스러운 느낌 나게 만들 수 있어.”
“…….”
우주가 그런 나를 보며 눈을 끔뻑였다.
내가 그 옷을 입은 모습을 가만히 상상했다.
“나름 좋을 거 같긴 한데…. 물론 형이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도 조금 더 좋게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너무 꾸미면 부자연스러워. 선글라스 하나 끼면 될 거 같은데.”
“진짜 부럽네.”
“뭐가?”
“나는 진짜 옷태 살리려고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데, 잘생긴 형은 그냥 트레이닝 복만 입어도 되니까.”
“우주야, 너도 멋있어. 잘생겼어.”
“됐어. 이미 상처 입은 내 마음은 무엇으로도 치유되지 않아.”
말을 마친 우주가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썼다.
“삐친 척해도 안 통한다.”
“…….”
“어때? 이제 좀 긴장이 풀렸어?”
그제야 우주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응. 조금은 나아진 거 같아.”
서로 주고받는 농담으로 우주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물론 이렇게 하더라도 내일 일본으로 날아가는 동안 또 잔뜩 얼겠지만, 금방 나아질 거다.
생각보다 우주는 실전파니까.
“이제 자자. 더 늦어지면 내일 못 일어난다.”
“응, 고마워. 잘 자, 형.”
“그래. 너도.”
* * *
꺄아아악!
인천공항엔 우리의 출국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았다.
현장의 안전 요원의 통제를 따라 게이트 한곳에 모여 있는 팬들은 각기 다른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팬들 앞에는 우리를 찍기 위해 모인 기자들도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차가 입구에 서는 모습부터 찍기 바빴다.
“사람들 정말 많다.”
창 밖을 보던 정민이 혀를 내둘렀다.
“몇 시부터 기다리신 거지?”
우주와 호진이 그리고 성훈이와 나는 물론이고 심지어 운전을 하는 이두현마저 놀란 얼굴로 게이트로 향하는 통로를 보았다.
“다른 스태프들은 한 타임 먼저 출발해서 다행이다.”
우리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함께 출국하는 스타일리스트나 스태프, GH 엔터의 직원들도 함께 나갔다면 어지러웠을 게 분명했다.
“주차하고 갈 테니까 위에 가 있어. 프로듀서님이 기다리고 계실 거야.”
“알겠습니다!”
우리는 문을 열었고.
꺄아아악!
와아아아!
팬들의 함성과 함께.
찰칵! 찰칵! 찰칵!
기자들의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팬들을 향해 인사하며 공항 게이트를 지났다.
우리들의 공항 패션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는데, 나름 패션에 관심이 있는 우주와 정민 호진은 캐주얼하게 꾸미면서도 꾸민 듯 꾸미지 않는 매력을 가진 옷으로 스타일링을 했다.
특히 우주는 알이 없는 안경을 쓰고 머리는 살짝 뒤로 넘긴 채로 특유의 발랄한 매력을 뽐냈다.
그중 가장 빛나는 건 역시 호진이었다.
나를 빼면 외모 스탯이 가장 높은 덕일까?
오버핏 셔츠에 무릎이 드러나는 검은색 블랙팬츠, 하얀색 스니커즈를 신고 선글라스까지 쓴 호진의 외모는 왠지 모르게 빛이 나고 있었다.
그렇게 잘 꾸민 3명과는 달리 성훈은 색이 밝은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나는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완전히 대비되는 두 그룹이 묘한 인상을 줬다.
“조심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팬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때였다.
게이트에서 우리가 오는 걸 바라보고 있던 팬 한 명이 달려왔다.
“너무 가까이 오시면 안 됩니다!”
보안 요원이 그런 그녀를 막아 세웠다.
“커헉!”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팬을 막아선 탓에, 달려오던 팬은 그대로 부딪혀 넘어졌다.
“괜찮으세요?”
나는 우리에게 달려오다 쓰러진 팬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가, 감사합니다. 어, 어떡하면 좋아….”
내 손을 잡고 일어난 팬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민망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이 섞여 있을 거다.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 건 아니죠?”
“아, 네….”
“돌발 상황이 있을 수 있어서 보안요원 분들은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으니까,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러시면 안 돼요? 그리고, 무슨 일 있으세요?”
“아, 그게 제가 그, 팬인데, 그, 일본 간다고 하셔서요. 그래서 오빠들한테 무사히 투어 갔다 오시라고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원래 저번에 조공 선물할 때 보냈어야 했는데 때를 놓쳐서요.”
당황하고 부끄러운 듯 횡설수설했다.
“선물이요?”
“네, 이거 전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녀는 손에 든 천으로 된 팔찌를 내밀었다.
각기 다른 색을 가진 팔찌엔 멤버들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유독 내 팔찌에 정성이 더 들어간 티가 났다.
“우와, 고마워요. 잘 쓸게요. 건하 형, 이분 형 팬이신 거 같아. 형 거는 진짜 예술이다.”
우주가 웃으며 팔찌를 받았다.
다른 멤버들도 그녀가 건넨 팔찌를 받았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하지만 다음엔 조심해 주셔야 해요. 사람들이 워낙 많고, 저희 말고도 많은 분들이 계시니까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앞으로 조심하면 되죠.”
나는 웃으며 팬을 돌려보냈다.
보안 요원들이 그녀를 데리고 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분위기가 술렁거렸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보안 요원은 자기 할 일을 다 한 거다.
팬 역시 설렘을 이기지 못하고 돌발적으로 나선 것일 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런 멋진 선물도 받고 좋네.’
나는 내 이름이 수놓아진 팔찌를 보았다.
검은색 천 팔찌에 윤건하라는 이름이 황금색 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그 팔찌를 팔에 찼다.
팬의 선물을 받고 해외 일정을 시작한다라.
‘느낌이 좋네.’
뭔가 잘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