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제2의 심장’을 등록한 뒤부터 멤버들의 체력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한계까지 몰아친 뒤에 체력이 완벽히 차오르는 스킬의 효과 덕이었을까?
우주도 호진이도 정민이도 다들 한계까지 다다랐던 체력을 극복하고 기운을 되찾았다.
“너희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
오죽했으면 앨범 활동의 막바지엔 황이서가 우리를 걱정하며 물었다.
“괜찮아요. 오늘따라 컨디션이 너무 좋은데요?”
우주가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몇 번이고 더 연습할 수 있습니다.”
“기운 좋을 때 연습해 둬야죠.”
“다들 컨디션이 좋아 보여서 이번엔 조금 늦게까지 연습하고 가겠습니다.”
성훈을 제외하면 아마 전부 ‘제2의 심장’이 발동된 걸 거다.
갑자기 컨디션이 좋아지는 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그 스킬이 발동되었다는 건, 체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제2의 심장’이 아니었다면 모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는 뜻.
이미 한계까지 달려서 체력이 다 떨어졌기에, 체력이 다시 회복되었다는 걸 멤버들은 몰랐다.
그 덕분에 더욱 연습에 매진했다.
물론 너무 무리하지 말라며 황이서가 중간에 그만두게 했지만 말이다.
* * *
“고생하셨습니다!”
이번 정규 2집 앨범의 마지막 활동인 지상파 예능 촬영까지 끝마쳤다.
일요일 저녁 탄탄한 시청률로 인기가 많은 <위닝 플레이>.
게스트와 패널들이 각기 다른 팀을 이뤄 승리를 위해 달려가는 프로그램이었다.
깐족거리기로 유명한 개그맨 정은수와 <주중 아이돌>에서 한 번 호흡을 맞췄던 개그맨 이창모, 국민 MC로 유명한 차주석, 가수 출신으로 최근에는 예능을 더 많이 하는 강한나까지.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확고한 이 프로그램은 무려 7년이 넘도록 장수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오늘 우리는 <위닝 플레이>의 2라운드 문제를 내기 위해 깜짝 출연을 했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For you’ 안에 숨겨진 메시지에 이번 2라운드의 정답이 숨겨져 있습니다.”
3분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시간이었다.
멤버들의 앞에서 ‘For you’를 부르며 그 속에서 숨겨진 문제를 풀게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었다.
이미 앨범 활동도 거의 막바지라서 사실상 홍보를 위한 활동이 아니었다.
우리의 노래를 대중에게 마지막으로 재확인 시키는 자리이기도 했다.
편집을 통해, 노래를 듣는 캐스트들을 보여주면서 몇 번이고 노래가 재생된다고 들었다.
오히려 우리가 출연하는 것보다 광고 효과를 더 보겠는데?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짧은 촬영을 마친 우리는 스태프들과 출연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퇴장했다.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1등 축하해요.”
우리와 방송도 했었던 이창모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출연진들에게 인사를 마친 우리는 주욱 늘어진 채로 환호를 질렀다.
“끝났다!”
“와, 드디어 끝이야.”
“으으으…. 죽는 줄 알았어.”
그 모습을 보던 이두현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오늘은 회식이다.”
회식이라는 말에 우주의 눈이 커졌다.
“뭐 사주시는 건가요?”
“대표님께서 소고기 사 주신다던데?”
“정말요?”
“다들 먹고 기운 차리라고 법카로 긁어 주신다고 하시더라.”
“키야!”
“진짜 배 터지게 먹을 거예요.”
우주가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건 우주뿐만이 아니었다.
“뭐부터 먹지?”
“맛있겠다.”
“너희 갑자기 너무 멀쩡해지는 거 아니야?”
내 말에 우주와 정민이 배시시 웃었다.
“당연하지. 남의 돈으로 먹는 소고기가 제일 맛있는 법인데.”
다들 신이 난 모습이었다.
호진이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웃는 걸 보니 기분이 좋은 듯했다.
활동이 끝난 덕분인지, 회식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눈 깜짝하니까 3주가 벌써 지났네.”
창밖을 보던 우주의 나른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앨범이 유독 빠르게 흘렀지.”
“1위를 빨리 해서 그런가? 사실 첫 1위 한 뒤로 2주 동안 계속 1위를 지켰잖아. 예전에는 매일 아침에 몇 위로 올라갔다는 얘기를 들어서 시간이 되게 천천히 가는 기분이었거든. 내일은 몇 위나 올랐을까? 몇 위가 떨어졌을까? 이런 생각도 했었고….”
“그랬었지.”
이두현과 황이서가 우리가 랭크된 순위를 얘기해준 덕분에, 계속해서 목표 의식을 갖고 행동했다.
이전에는 1위를 한 이후에도 신인인 우리가 너무 들뜨지 않도록 몇 번이고 겸손하고 침착하기를 강조했다.
그러나 한 번 1위를 해봤던 경험 덕분인지, 이번 앨범에선 황이서도 우리를 다그치거나 나무라질 않았다.
그저.
“잘하고 있으니 지금처럼만 하자.”
라고 말해줄 뿐이었다.
그 대신 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여기저기서 스케줄을 따왔다.
나는 그걸 우리를 믿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한 달 뒤에 해외 투어 있다고 하니까 쉴 시간은 많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최대한 많이 쉬어 둬.”
성훈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활동이 끝났다는 사실에, 그 단정한 성훈마저도 늘어진 채였다.
성훈마저 이러니 뭔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번 앨범 활동이 전부 끝났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끝이구나.’
물론 앞으로 해외 투어도 있고 처리해야 할 문제도 산재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사히 끝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체력이 부족해서 큰일 날 일도 없이 무사히 넘겼고.’
앞으로 체력 때문에 문제가 터질 일은 없을 거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거리에 나란히 선 가로등에 불빛이 새로 들어왔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잔상을 남기며 빠르게 지나갔다.
가로등 불빛을 제치는 그 모습이 마치 위로 향하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처음 생각했던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미 수상.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대중의 인정을 받기.
이것만이 아이돌의 성공 지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진엔딩을 보기 위해선 꼭 필요한 목표였다.
진엔딩을 보는 것.
그게 내가 이 세계에 끌려 온 이유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계속 집착 아닌 집착을 하는 중이었고.
지금처럼 상식 이상의 강행군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활동 무사히 끝난 거 축하한다! 아쉽지만 뒤풀이에 못 갈 거 같아서 말이야.
한진성의 문자였다.
-1등 했을 때 축하 문자라도 보냈어야 했는데, 해외 활동 준비 때문에 신경을 많이 못 썼네. 하하핫.
문자에서도 그의 활발한 성격이 드러나 있었다.
-저번에 했던 얘기 기억하지? 언젠가 세계적으로 성공하겠다는 그 각오와 다짐. 먼저 도전하려고 한다.
몬스터즈가 세계 무대에 도전한다는 소식은 얼마 전에 들었다.
올해 초에 냈던 몬스터즈의 저번 앨범이 생각보다 해외 반응이 좋아서, 영어로 번역해서 해외에서 추가 활동을 한다는 소식 말이다.
시험 삼아 짧은 기간 동안 해외 투어를 도는 올리오스와 달리, 아예 미국에 자리를 잡고 활동을 하는 본격적인 해외 진출이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금방 따라갈 거니까 자리 잘 잡아 놓으세요.
한진성과 몬스터즈라면 분명 성공할 거다.
이미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그 5명이 가진 시너지를.
그들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폭발력을 온전히 보여줄 수만 있다면, 해외에서도 분명 좋은 반응을 받을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이제 활동도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투자 방향을 생각해야겠지.’
지금 내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투자는 역시….
레프픽션의 트레블리.
성공할 거라 확신하는 미래의 유망주들이었다.
자금이 부족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유망주들 말이다.
회식은 즐거웠다.
오랜만에 먹은 고기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건하 너는 술 먹지 마.”
이번에도 역시 나는 강제 금주를 당했다.
진짜. 나도 술 한 잔 마시고 싶은데 너무하네.
* * *
올리오스의 활동이 끝나고, 우리에겐 짧은 휴식이 주어졌다.
휴식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투어를 대비해 연습과 리허설을 해야 했기에 마냥 쉴 수만은 없었다.
그저 활동할 때보다 여유 시간이 조금 많아지고, 식단이 다소 널널해졌다는 것 정도?
그리고 나는 여유 시간을 이용해 레프픽션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레프픽션으로 가서 트레블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지.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그리고 나와 함께 가줄 최 실장이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최 실장님, 오셨어요?”
“예, 오늘은 건하 도련님께서 하시려는 투자를 전심 전력으로 도와주라는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레프픽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쪽에는 이미 찾아가겠다고 연락을 해뒀습니다.”
“빠르시네요.”
“도련님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그럼 옆에 계신 분은…?”
나는 최 실장과 함께 온 안경을 쓴 남자를 가리켰다.
알이 큰 안경을 쓴 채로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남자는 내 질문에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댔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황룡엔터를 담당하게 될 홍우선이라고 합니다.”
“홍우선 씨요?”
나도 모르게 그를 바라봤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윤택수 회장과 마음이 통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생각했던, 트레블리의 육성을 담당해줄 최적의 인사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레프픽션의 대표를 설득한 뒤, 바로 홍우선을 찾으려고 했는데 마침 여기서 만난 것이다.
“황룡엔터가 GH엔터를 후원만 하기보단, 현장에서 협력하는 모습이 더 건설적이고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다는 회장님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관련 인원을 구인했고, 가장 조건에 맞는 분을 모셨습니다.”
윤택수 회장은 어떻게 알고 이 사람을 뽑은 거지?
나는 홍우선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아, 안녕하세요? US 뮤직의 홍우선입니다. 미, 미국 회사냐고요? 하하핫, 그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토종 한국 회사입니다!
<마이 아이돌>에서 미국 진출 전에 소속사가 최종 레벨에 도달하면 만나는 음악 제작사 사장.
외모와 성격 때문에 여러 회사에서 실력을 뽐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탈락했다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투자자를 어렵게 찾아서 음악 제작사를 만들었다고도 했다.
노래를 편곡은 물론이고, 제작, 레코딩까지 못 하는 게 없는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공할 만한 가수와 사람을 알아보고 키우는 능력이 확실했다.
역시 윤 회장이라고 해야 할까.
홍우선이 여기에 있다는 건, 겉으로 보면 소심해 보이고 유약해 보이는 그에게 윤 회장이 잠재력을 보았다는 뜻이었다.
‘역시는 역시네.’
실력만큼이나 게임에서 홍우선을 만나기 위한 조건은 꽤나 까다로웠다.
최소 SS급의 무대를 만들어야 하고.
음원 차트 1등을 해야 하며.
팀원 능력치가 평균 A를 넘어야 하며.
여러 번의 성공을 경험해야만 했다.
‘잠깐만.’
이거 다 내가 한 거잖아?
설마 히든 루트 같은 건가?
“어서 가시죠. 레프픽션 측에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최 실장이 차문을 열었다.
홍우선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하자.
지금 중요한 건 트레블리다.
그들에게 투자를 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 과제였다.
우리를 태운 차가 부드럽게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