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무대에서 잠깐 정신이 팔렸다는 이유로 강제 휴식을 명령 받았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멤버들은 목석같았다.
‘절대 안 돼! 이런 상황에서 리더가 쓰러지면 안 되니까!’
‘형은 오늘 집에서 푹 쉬어. 연습실 나올 생각은 하지 말고. 그러다가 나중에 링거로 영양제 맞고 그러면 마음 아파 진짜.’
‘오늘은 쉬어. 꼭 쉬어야 해.’
‘나도 오늘은 애들 편을 들을 수밖에 없다.’
네 사람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 나를 막아섰다.
어떻게든 쉬게 만들려는 그들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집에 갇혀버린 나는 거실에 대자로 뻗었다.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닌데….”
그렇다고 복잡하게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숙소에 머물러야지.
“신기한 일이야.”
세상은 움직이고 있는데 나 혼자 격리된 기분 말이다.
곱씹고 곱씹어도 그리 좋은 감각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 나쁜 쪽에 속했다.
한순간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지.”
빠득!
이를 악물었다.
SS급.
그야말로 훌륭한 성과였다.
동시에 SS급을 달성하고 나서 내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만약 SSS급의 무대를 성공시킨다면.
어딜 내놔도 부족하지 않은 무대를 성공시켰을 땐, 이보다 더 심한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진엔딩을 보기도 전에 쫓겨나는 건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후우.”
천장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 나쁜 일을 경험했다고 해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오히려 그랬기에, 더더욱 빠르게 나아가야 했다.
이번에 얻은 오픈 마일리지.
그리고 저번 음원 1, 2등을 하면서 얻은 오픈 마일리지 등.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재화가 너무 많았다.
벌써 상당한 양이 모였고, 이젠 이걸 써야 할 때였다.
최근에 스케줄이 많아졌다.
주위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효원이 걱정할 정도면 우리의 스케줄이 진짜로 만만찮게 빡세다는 뜻이었다.
정말 체력 문제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가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아찔했다.
그 이후에 무수히 많은 말들이 오갈 거라는 건 확실했다.
그러니 일이 터지기 전에 예방 차원으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
“체력 관련 스킬을 뽑는 것….”
천장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천장이라 가정했을 경우, 스킬 하나를 뽑기 위해선 12 마일리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5명에게 모두 나눠주기 위해선 총 5번, 즉 최대 60 마일리지가 필요하다.
번역 때와는 다른 문제였다.
그건 스킬 자체에 복사 능력이 있었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으니, 특별한 경우였다.
문제는 천장 스킬이 체력과 관계가 있는 스킬이냐는 거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 지독한 운으로는 20 마일리지를 써도 못 뽑을 수도 있어.’
스킬 뽑기 창을 열었다.
[스킬 뽑기]
[픽업 스킬: A급 스킬 – 제2의 심장]
[효과 1: 스테미나가 바닥이 났을 때 회복할 수 있습니다. - 사용 제한 (2주일 1회)]
[효과 2: 체력이 강해져 연습 효과가 30% 상승합니다.]
다행히도 픽업 스킬은 체력 관련 스킬이었다.
픽업 스킬 치고는 등급이 낮았다.
보통 픽업 스킬은 S급이나 SS급이 많았으니까.
A급이 픽업 스킬로 나오는 일은 정말로 드문 일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리 나쁜 스킬은 아니었다.
‘나쁘지 않네.’
그래,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체력에만 몰빵한 ‘군인정신’이나 ‘승부욕’이 나오길 바랐다.
기본적인 체력을 강화해줘서 절대 쓰러지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거든.
하지만 제2의 심장도 그 둘에 비해 아쉬운 거지, 결코 나쁜 스킬은 아니었다.
스테미나와 체력이 바닥났을 때 한 번 최대치로 채워주는 첫 번째 효과도 지금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족한 체력을 보완해 준다는 것이니까.
“일단 뽑자.”
지금 상황에서 체력 스킬은 뭐든지 있으면 좋은 법.
거기다가 A급 스킬이라면 멤버들에게 스킬을 등록하는 데 필요한 포인트도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당장 필요한 것이 체력이니, 꽝은 아니었다.
“하나 정도는 미리 모아뒀던 A급 스킬 조각으로 뽑을 수 있으니까….”
앞서 ‘번역’과 ‘네 사진 속에 저장’을 뽑으면서 얻은 A급 조각의 양이 제법 있었기에, 4개만 더 뽑으면 된다.
나는 스킬 뽑기에 마일리지를 투자했다.
특전 보상으로 받은 50 마일리지에 이번 앨범의 성적으로 얻은 125 마일리지.
그리고 기존에 있는 마일리지까지 합친다면,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애초에 픽업 스킬 하나를 뽑는 데 필요한 포인트 300만 포인트.
멤버들에게 스킬을 등록하기 위해 포인트가 또 필요하기에, 150 마일리지를 일시불로 구매하기로 했다.
[대한은행 주식증권 – 37억 8천 1백만 원]
“후우.”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 이 모든 게 성장하기 위해서였다.
‘진엔딩을 본다면 이 이상의 보상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어떤 방식으로 쥐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방금 내가 인출한 돈을 포인트로 환산하면 무려 3,781만.
평범함 디버프가 사라진 지금, A급 스탯을 S급으로 키우기 위해서 1천만이 필요하니 춤, 노래, 예능 모두 S급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아이돌은 1명이 잘한다고 해서 빛날 수 있는 게 아니야.’
1명이 압도적으로 잘해서 그룹을 캐리할 수는 있다.
성적이 조금 더 잘 나올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된다면 당장 성적은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그룹 내에서 생길 여러 가지 문제들을 피할 수 없다.
성공하는 멤버와 그렇지 못한 멤버 간의 불화.
소속사의 대우 차이로 인한 갈등.
그리고 미디어에 홀로 주목을 받으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
굳이 지금의 우리가 감수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거기다가 올리오스는 그런 그룹이 아니었다.
한 명이 이끌어서 성공하는 그룹이 아니다.
올리오스는 멤버 모두가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니 내게만 투자하는 건 지금까지의 방향성과 우리의 강점을 봤을 때 그리 좋지 않았다.
총 1,200만 포인트에 그간 스킬 뽑기로 모은 A급 스킬 조각 100개를 소모해서 5개의 ‘제2의 심장’을 얻었다.
-[Web발신] @월@일 *******윤건하 입금 175,600원 잔액 577,483,200원
[입금되었습니다.]
이번 스킬 픽업을 뽑으면서 얻은 각종 재화를 모두 현금 처리를 하니, 추가로 돈이 들어왔다.
이 돈은 앞으로 레프픽션의 트레블리를 키우기 위해 쓰일 것이다.
‘이번 활동이 끝나고 휴식기에 찾아가야겠지.’
황룡그룹과 함께 간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
결국 단순히 내 스탯에 투자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스킬에 사용해, 다른 멤버들과 나누면 더 큰 효율을 낼 수 있다.
“아마 애들 한 명당 200에서 300만 포인트 정도 들어갈 테니까….”
최소 800만에서 1,200만 포인트가 소모될 거다.
그렇게 되면 약 1,300만 포인트가 남는다.
‘남는 포인트는 우선 춤 쪽을 올리거나, 지금까지 안 올려줬던 정민이에게 포인트를 투자하는 것도 좋겠네.’
어디에 어떻게 쓸지를 효율적으로 계산하며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최근에 이렇게 천천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우리 진짜 바빴었구나.”
솔직히 바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런 삶에 익숙해졌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멤버들에 의해 반강제로 쉬고 나니 느꼈다.
우리가 생각보다 바쁘게 살아왔다는 걸.
트레블리를 키우기 위해 투자한다는 계획까지 생각해보면, 앞으로 더 바빠질지도 몰랐다.
“가만히 있는 건 성미에 안 맞아서.”
뭔가 계속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좀이 쑤셨다.
앞으로 나아가는 기차가 끊임없이 엔진을 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있어도 되나?”
나는 몸을 들어 주위를 살폈다.
전부 연습을 하러 나가서 아무도 없는 적막한 숙소.
“쓰읍,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는 못 있겠네.”
[제2의 심장(A)을 등록합니다.]
새로 얻은 스킬을 등록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는 덕분에 스킬을 정리하고 앞으로 갈 방향을 되짚어 본 건 좋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건 아무래도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케미 시스템으로 인한 동료 스킬 등록은 연습실에서만 가능합니다.]
연습은 하지 않더라도 연습실에는 가야지.
애들 스킬 등록해 주려면 말이다.
* * *
추리닝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로 연습실로 터덜터덜 출근했다.
거의 매번 차를 타고 오긴 했지만, 사실 사무실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라 걸어서도 충분히 올 수 있었다.
“건하야?”
“형, 왜 온 거야? 푹 쉬라니까.”
내가 연습실에 등장하자마자 다들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냥 혼자 있으려니까 심심해서. 무리 안 할 거야. 감 안 잃으려면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하니까, 워밍업 정도만.”
“하지만….”
나를 걱정하는 우주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내가 설마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쓰러질 정도로 관리를 못 할 거 같아? 그렇게 나를 못 믿는 거야? 조금 섭섭한데.”
“그런 건 아닌데, 아무래도 괜히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혼자만 쉬는 게 더 쓸쓸하더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우주에게 새로 얻은 스킬을 등록해줬다.
[최우주에게 제2의 심장(A)을 등록합니다.]
[250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안호진에게 제2의 심장(A)을 등록합니다.]
[250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정민에게 제2의 심장(A)을 등록합니다.]
[250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유성훈에게 제2의 심장(A)을 등록합니다.]
[250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전부 같은 스킬을 부여했다.
사실 성훈에게는 필요 없을 거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미리 하나 챙겨뒀다.
총 1,000만 포인트를 소모했다.
A급 스탯을 S급으로 만들 수 있는 포인트가 그대로 사라졌다.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그래도 이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나는 잠깐 보고 있을게. 다들 연습하고 있어.”
나는 연습실 구석에 앉았다.
그리고 멤버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멤버들은 연습 중에도 각자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같은 춤이어도 다른 맛이 났다.
우주는 스텝을 다른 멤버들보다 조금 더 통통 튀게 맞췄다.
몸이 조금 더 가벼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정민은 중간중간 그루브를 타는 모습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성훈은 정직한 안무가 주는 단단함이 매력이었다.
역시 춤으로 가장 눈에 띄는 건 호진이었다.
다른 멤버들 사이에서 호진은 모두와 호흡을 맞추면서 그들의 색을 살려줬다.
우아하면서 발랄했고, 동시에 묵직했다.
다른 3명의 개성이 호진의 춤에 다 함께 있는 느낌?
춤을 출 때 나타나는 각자의 버릇을 보며 나는 가만히 감상했다.
‘이렇게 보니까 신선하네.’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런 애들이구나.
나와 함께 험한 여정을 떠나는 동료들이.
춤을 출 때 저렇게 즐거운 표정을 짓다니.
‘나도 저런 표정을 짓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춤을 출 때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봤지만, 표정을 잘 보진 못했던 거 같았다.
‘몸이 근질근질거리네.’
멤버들의 춤을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거리며 다리로 박자를 맞췄다.
연습이 끝나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추자.”
이제 나도 춤꾼이 다 됐나 보다.
아니, 아이돌이 다 된 걸까?
모르겠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게 즐거웠으니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