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60화 (160/236)

<제160화>

“선배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은 보이지 말자.”

무대에 오르기 전에 멤버들을 집중시켰다.

이제는 다들 여유를 가진 그들의 이목이 나를 향했다.

단순히 음악 방송에서 보던 선배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가득한 이 무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시끄러웠다.

사람들의 환호.

사방에서 터지는 스태프들의 목소리.

바닥을 울리는 베이스와 드럼의 진동.

그 외 많은 소음들.

그러나 우리의 주변만큼은 조용했다.

아니, 조용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다들 집중하고 있었다.

음악 방송에서 노래를 부를 때보다 몇 배는 더.

“오늘 우리는 최고야. 음방 1등, 음원차트 1등 올리오스! 팬들이 우리를 사랑해주는 이유를 보여주자.”

“가자!”

*    *    *

빛이 반짝인다.

꺄아악!

수많은 환호성이 들린다.

우리를 향한 환호성.

무대 위에서 춤을 출 때마다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내가 제대로 존재함을 느꼈다.

[최우주와 케미가 높습니다. 표정 연기에 자연스러움이 묻어납니다.]

시스템의 알림이 들렸다.

표정 연기에 자연스러움이라?

멤버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와 다르지만, 그들 역시 각자에게 맞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관객들을 바라봤다.

카메라를 향해 눈짓을 보내고 손하트를 보내며 우주는 윙크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제 나름 익숙해졌다 이건가.

아마 이게 시스템이 말하는 케미 효과일 테지.

[정민과 케미가 높습니다. 그가 작곡한 곡을 부를 때 추가 점수를 얻습니다.]

[안호진과 케미가 높습니다. 춤을 췄을 때 관객의 시선을 손쉽게 빼앗을 수 있습니다.]

[유성훈과 케미가 높습니다. 스킬 ‘관객의 환호’가 전 멤버에게 적용됩니다.]

[전체 멤버들의 케미가 높습니다. 무대 점수에 보정을 받습니다.]

케미 효과가 연달아서 떴다.

수많은 효과들이 동시에 발동되며, 익숙해진 글자가 내 눈앞에 올라왔다.

다들 연예인이 다 됐다.

예전에는 무대를 보여주기 바빴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무대를 즐기고 그 속에서 팬들과 교감하기까지 했다.

이게 단순히 스킬 덕이라고 하기엔.

항상 내 옆에서 힘이 돼주고

기댈 수 있게 해줘서.

늘 말하고 싶었지만

겁이나 말하지 못했던 말.

무대 위에서 멤버들은 서로 다른 각자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등급이 끊임없이 올라갔다.

B, A 그리고 S…….

노래가 이어질수록 글자가 빛이 났다.

아직 노래가 전부 끝나지도 않았음에도 S랭크를 달성했다.

그렇다는 건 설마?

S보다 더 높은 등급을 찍나?

이 세계에서 아이돌을 시작한 이래, 지금껏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었다.

무대 등급 SS.

게임 속 올리오스로는 얼마든지 찍어 봤었던 등급이다. 올리오스는 언제 어느 무대에서든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니까.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공연을 열고, 일본 도쿄돔을 전석 매진하려면 SSS급의 등급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그 고지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상황에 놓여진 것이다.

땀을 흘리며 ‘For you’를 불렀다.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불렀던 적이 있었나?

이렇게까지 춤을 춘 적이 있었나?

“하아, 하아.”

분명 집중했던 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췄던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숨이 벅차 오른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네가 가는 그 순간에도

오른쪽 날개 부분으로 뻗어나간 나는 침착하게 다음 파트를 불렀고, 미끄러지듯 몸을 움직여 호진의 뒤에 섰다.

호진의 뒤에 나, 내 뒤에 정민, 그 뒤에 성훈 그리고 우주.

일렬로 선 우리.

나는 내 앞에 선 호진의 동작을 한 박자씩 늦게 따라 하며 왼쪽으로 튀어 나갔다.

정민이 그보다 한 걸음 더 튀어나갔고, 성훈과 우주 역시 한 발자국 씩 더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호진에게서 우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연출과 시퀀스가 이어졌다.

춤을 추면서도 우리는 호흡을 놓치지 않았다.

AR에 립싱크를 하는 게 아니라 약간의 MR에 라이브가 덧씌워지는 것이기에, 호흡이 조금만 틀어져도 티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

워어우워어~

성훈의 애드리브는 이 와중에 빛났다.

[윤건하와 유성훈의 케미 효과가 빛납니다. 빛나는 스타덤 효과가 성훈에게 더해집니다.]

폭발하듯 터지는 시너지.

야외 무대에서도 성훈의 가창력은 무너지지 않았다.

현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로 그의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환호를 지르던 열성 팬들마저도 입을 다물게 만드는 무대.

끝내주는 발성을 가진 그의 노래가 끝이 나고.

[무대 등급 : SS]

내 눈앞에 S가 2개가 보였다.

무지개 빛으로 반짝이는 글자가 화려하게 빛났다.

마치, 우리들의 성공적인 무대를 축하하려는 듯이 말이다.

[축하합니다! 무대에서 최초로 SS등급을 달성했습니다.]

거대한 글자가 허공에 떴다.

올리오스라는 그룹의 첫 SS급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내 눈을 어지럽혔다.

나는 이게 궁금한 게 아니었다.

SS급을 받을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했어.

우리에겐 당연한 일이야.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니까.

SS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우리의 무대를 본 팬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고.

하지만 전광판처럼 빛이 나는 거대한 글자는 도무지 내게 그 모습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아, 하아.”

그 순간 사방이 조용해졌다.

노래가 끝난 뒤, 들려오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마치 물 속에서 듣는 것처럼 먹먹했다.

이 자리엔 유일하게 나만이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몸이 무겁다.

“하아, 하아, 애들아?”

나는 멤버들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면에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입술을 깨문 우주가 성공했다는 설렘 가득한 눈빛으로 팬들을 마주 봤다.

정민의 눈엔 약간 습기가 차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호진과 성훈은 비교적 덤덤했지만, 그들 역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들뜬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왜 내게는 들리지 않는 거지?

나 역시 팬들을 봤다.

그들의 환호가 반가웠다.

고마웠다.

우리가 최고의 무대를 펼쳤다는 만족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니, 차올랐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무대 등급표가 내게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내게는 이게 과분하다는 듯이.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다.

나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떨어진 사람이고.

이미 그런 일까지 일어난 와중에 어떤 일이라고 일어나지 않으란 법은 없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인데?

대체 왜 이 순간을 방해하는 건데?

최고의 순간임을 부정할 수 없는, 바로 이 순간을 방해하려는 건데?

나도 이 세계에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진 줄 알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고.

다시 밑바닥에서 시작하고 싶지 않았어.

네가 강제로 떨어트렸잖아.

F급 아이돌 연습생 ‘윤건하’로 살게 했으면, 적어도 내가 이룬 성취는 즐길 수 있게 해야지.

지금까지 멀쩡히 보내다가 대체 왜 지금인데?

‘나도 지금 이 시간만큼은 윤건하라고. 아이돌 윤건하. 무대 위에서 즐길 줄 알고, 팬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돌!’

왜 내 눈앞에 나타나서 이 시간을 방해하는 건데?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고요한 침묵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옆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주였다.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email protected]#$…찮아?

-형,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다만 지금 꼴사나운 놈이 나를 방해하고 있어서 그래.

조금만 기다려. 내가 당장 저 글자를 박살 내고….

그때였다.

꺄아아아악!

마치 유리창이 깨지듯 등급표가 조각조각 깨지면서 사방으로 비산했다.

동시에 물에 빠진 듯 먹먹했던 세계가 돌아왔다.

환호가 들렸다.

제일 앞에서 우리 공연을 본 사람들은 다소 당혹스러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아니었다.

최고의 무대를 보여준 올리오스를 보며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나는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이곳에 서 있을 시간은 이게 끝이었다.

앵콜곡까지 전부 끝마친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형, 진짜 괜찮아?”

백스테이지로 내려가는데 우주가 물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감정이 묻어나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현기증이 났어.”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 피곤하면 조금 쉬는 것도…….”

“아니야, 무리하는 거. 그냥, 무대에서 워낙 정신없이 하다 보니 감동이 밀려와서 나도 모르게 그랬던 거야.”

“쓰러지면 안 돼. 건하 너는 자기 몸을 안 돌봐서, 숨기면 진짜 큰일날 수도 있어.”

멤버들이 각자 한마디씩 거들었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며 차에 올라탔다.

오늘 스케줄은 여기서 끝, 이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다들 걱정 마. 오늘 집에 가서 푹 자면 나아질 거야. 내일은 스케줄 없다면서. 내일 하루 쉬면 돼.”

“그래. 조금 쉴 필요가 있다. 프로듀서님한테는 내가 말해둘게.”

성훈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운동에도 진심인 성훈이기에 건강 문제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고마워.”

우선 애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라도 쉬겠다고 했다.

여기서 괜찮다고 연습을 나가면 다들 내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그나저나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거지?’

정말 피곤해서였을까?

아니.

나를 제외한 세상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던 거 같았던 감각은 단순히 피곤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었다.

뭐랄까.

세계 자체가 비틀어진 느낌?

언젠가 한번 느꼈던 감각이었다.

‘아.’

맞아.

이제야 떠올랐다.

묘하게 물에 빠진 것 같은 감각.

잠수부가 되어 심해를 탐험하는 것 같은 묘한 부유감과 압박감.

내가 이 세계에 새로 빙의되면서 느꼈던 그 감각이었다.

‘설마.’

내가 SS급 공연을 이뤄냈다고 신호를 보내는 건가?

이렇게만 하면 돌아갈 수 있다고?

‘정말 그런 거라면…….’

기분 나쁜 방식이었다.

시스템이라는 좋은 방식을 두고 굳이 이런 식으로 내게 자각을 시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나는 원래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식으로 푸대접을 받는 걸 몹시 싫어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까지 힘들게 왔는데.

나를 이방인 취급을 해?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세계에 와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이렇게 배척해 버리면 기분 나쁘지.

[축하합니다! 첫 SS등급을 달성했습니다.]

[특전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50 오픈 마일리지]

너, 정말 내가 성공하는 걸 축하하기는 하는 거냐?

나는 시치미를 떼며 나타난 시스템 창을 노려봤다.

혹시 내가 실패하길 바라는 거 아니야?

이게 네 유희여도 상관없어.

네가 그저 나를 가지고 노는 거라도 상관없어.

이 F급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윤건하’가 나와 이름이 똑같았다는 것도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어.

하지만 말이야.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나를 외부인으로 대할 거면 말이야.

내가 쓴 돈 다시 뱉어낼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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