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59화 (159/236)

<제159화>

황이서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한 번 봤던 번호였다.

“예, 회장님.”

그가 혼신을 다해 키운 올리오스의 윤건하. 그의 아버지인 윤택수 회장이었다.

-잘 지내는가? 목소리를 들으니 잘 지내는 거 같군.

“살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 내가 뭘 했다고 내 덕분이라고 말하는 겐가. 내가 아니라 황 프로 자네와 올리오스 멤버들 덕분이지.

“회장님의 아들인 건하가 팀에서 큰 힘이 되어주고 있으니, 회장님의 덕도 있지 않겠습니까?”

-립서비스가 아주 좋군.

“그런데 어쩐 일로 연락을 주신 겁니까?”

황이서 프로듀서의 질문에 수화기 너머 윤 회장이 웃었다.

-건하가 얘기하지 않던가?

“예, 따로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외부 일정 때문에 사무실로 오지 못했거든요.”

-흠, 많이 바쁜가 보군.

“예, 아직 한창 활동할 시기니까요.”

-그런가. 그럼 직접 얘기를 해야겠군. 조만간 황룡그룹이 엔터 사업에 도전할 생각이네. 정확히는 엔터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지.

투자.

그 말을 듣는 순간, 윤 회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일단 초기 투자금은 50억으로 생각하고 있네. 이후 추가적인 비용에 대해선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지. 너무 큰 비용이 갑작스럽게 들어가면 GH도 곤란해질 테니까 말이야.

“투자 건은 최강훈 대표님께 말씀하셔야 말씀하시는 게 빠르지 않겠습니까. 저는 일개 직원일 뿐이라서요.”

-하하, 당연한 말이지. 최 대표에게도 곧바로 전화를 줄 생각이네. 그 전에 황 프로에게 전화를 한 건 다름이 아니라….

잠시 말을 미루던 윤 회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네.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예전에 내가 전화했을 때 황 프로가 말했지. 건하는 성공할 준비가 된 친구라고. 침착함, 뛰어난 외모, 노력, 자신감을 지니고 있어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을 거라고도 했고.

“맞습니다.”

똑똑히 기억한다.

자신이 했던 말을.

부끄럽게도, 건하의 앞길을 막지 말아 달라고 부탁도 했지.

그 말을 듣던 윤 회장이 웃었던 것도 똑똑히 기억났다.

자기는 아들의 앞길을 막는 사람이 아니라고도 했다.

-황 프로와 건하가 장담한 대로 올리오스가 1등을 했네. 황 프로가 말하길, 건하가 실패를 경험하면서 배운 게 있다고 했었지. 그 이후로 계속 성공하고 있고 말이야. 가장 가까이에서 본 황 프로의 감상은 어떤가?

“건하가 계속 성공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 여쭤보시는 겁니까?”

-성공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게 아닐세. 실패에서 뭔가를 배웠다고 했지. 그렇다면 성공으로 자만하는 낌새가 보였소?

황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단연코 그렇지 않아도 말할 수 있었다.

황이서는 윤건하가 방심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마치 이런 성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오히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놀라웠다.

이제 스물한 살인 윤건하가 이미 몇 번이고 성공해본 사람 같다는 게 더 놀라운 점이었다.

-그렇소?

“예. 그러니 건하가 방심하거나 자만하는 건 아직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습니다.”

-다행이군.

말을 마친 윤 회장이 입을 열었다.

-알려줘서 고맙소. 투자 얘기는 최 대표에게 내 직접 전화하도록 하지. 그리고….

황이서는 윤 회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조금 오랫동안 그는 말이 없었다.

전화기가 고장이 났나 의심할 정도로.

-내 아들을 잘 부탁하겠소. 아버지로서 하는 부탁이오.

“걱정 마십쇼. 이미 잘하고 있습니다.”

한 기업을 이끄는 총수도 결국 아버지였다.

용무를 마친 윤 회장이 곧 전화를 끊었다.

황이서는 수화기를 내려놨다.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윤 회장의 카리스마가 수화기를 통해서 전해졌다.

거기다가 황룡그룹의 투자.

그 한마디가 황이서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미 올리오스는 손익 분기점을 넘어 저 하늘로 이륙하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황룡그룹의 투자라니.

심장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진짜 복덩이네.”

윤건하.

MAE의 데뷔조에서 떨어져 GH 엔터로 굴러온 황금 덩어리.

지금 MAE의 양 실장은 배 아파서 죽을 거다.

그에겐 아쉬운 일이지.

양현우 실장은 끝까지 윤건하와 함께 가기를 바랐던 담당자였으니까.

윗선에서 잘라버린 걸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

물론 MAE의 규모를 생각하면 50억 투자가 그렇게 큰 건 아닐 수도 있겠지만.

‘황룡그룹이 50억밖에 없어서 초기 투자금을 그렇게 잡은 건 아니지.’

돈은 차고 넘치는 기업이었다.

50억은 황룡그룹의 윤 회장이 GH에 기대하는 최소한의 금액이었다.

성과를 보인다면 그 투자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거다.

만약 이 투자를 등에 업고 올리오스와 몬스터즈가 세계적인 성공을 이뤄낸다면.

지금의 GH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업의 규모가 커질 것은 분명했다.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실실 올라갔다.

기분이 좋아졌다.

바쁘지만 않았다면 진짜 오랜만에 혼술이라도 한잔했을 거다.

“흐흐흐, 올리오스가 우리 복덩이야.”

황이서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웃었다.

*    *    *

무대 위에서 눈부신 조명이 반짝였다.

와아아아!

꺄아악!

무대 위에 선 연예인들을 향한 팬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여름에 서울 난지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유명 음악 페스티벌에 게스트로 초대받았다.

진효원, 유라, 최수혁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은 물론이고, 최근에 잘 나가는 신인 가수들에 예술성으로 고평가를 받는 인디밴드까지, 다채로운 가수로 가득한 축제였다.

같은 회사 선배인 이종민도 오늘 게스트로 초대받아 함께 왔다.

GH 투어 이후로 콘서트나 축제 공연을 자주 다니신다고 들었다.

지금 무대 위에선 진효원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 차례는 아직 조금 남아서, 대선배의 공연을 감상했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열창하는 진효원을 보았다.

한국 최고의 여성 보컬, 작년엔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만 받을 수 있는 여자 가수상을 받으며 정점을 찍었다.

동시에 그녀와 함께 무대를 꾸몄던 우리 역시 다시 한번 재조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진효원 덕분에 올라간 유명세와 그때 증명한 실력 덕분에 정규 1집의 타이틀 곡이었던 ‘All we once’가 음원 차트 1등을 찍었다.

우리의 성공에는 그녀의 덕도 상당하다고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전국 투어나 여러 페스티벌, 그리고 각종 음악 예능에 나오면서 틈을 두면서 활동하는 중이었다.

“여전히 잘 부르시네.”

정민의 감탄에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효원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하나하나 꼼꼼히 노트에 적었다.

고음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발성하는 순간에 어떤 식으로 소리를 조절하는지.

노래를 부르며 팬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선배의 노하우를 배우려는 진심이 가득한 메모였다.

7곡이나 불렀음에도 숨이 찬 기색 하나 없던 진효원은 앵콜곡을 마지막으로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어? 올리오스도 왔구나? 언제부터 왔었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앵콜곡 부르시기 전에 도착해서 공연하시는 거 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딱딱하게 인사하지 않아도 되지 않아? 활동도 같이 한 사이인데 말이야.”

“그래도 됩니까?”

“그래. 이제 선배님이라고 하지 말고 편하게 누나라고 불러. 원래 마지막 무대 때 얘기하려고 했는데, 다들 정신이 없어서 말이야. 타이밍을 놓쳤지 뭐니?”

낮게 웃는 진효원의 말에 멤버들 모두가 감격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특히 성훈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얘기 들었어. 이번에 정규 2집 앨범으로 1위랑 2위 찍었다면서?”

“맞습니다.”

성훈이 대신 대답했다.

“그런데 괜찮겠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빡세게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무리하는 거 같지는 않아요.”

“그래?”

“네.”

진효원이 걱정된다는 듯 말을 이었다.

“무슨 마음으로 열심히 달리는지는 알고 있어. 나도 신인 때는 그랬거든. 첫 앨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아서 음악 방송 MC부터 케이블 예능 MC에 온갖 콘서트에는 게스트로 다 참여하고 앨범도 엄청 많이 냈었지. 수록곡도 그때는 엄청 많이 넣고 다녔거든.”

과거를 추억하던 그녀가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 탓에 지금은 목이랑 어깨랑 허리가 남아나질 않았지만.”

“그런가요?”

“체력 관리 잘해야 해. 지금이야 젊어서 좋지만, 나처럼 나이 좀 먹으면 체력 관리 힘들어.”

우는 소리를 하지만, 진효원 역시 앨범을 자주 내지 않다 뿐이지 활동 자체는 왕성하게 하는 가수였다.

그런 그녀가 염려할 정도로 우리가 빠듯하게 달리고 있다는 뜻일 테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선배님, 아니 효원 누나는 앨범 활동 기간에 체력 관리를 위해 따로 하신 게 있나요?”

우주가 물었다.

그의 질문에 진효원이 시선을 오른쪽 위로 올리며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글쎄, 나는 딱히 관리를 한 적은 없어서. 그냥 운동 꾸준히 하고 잠 많이 자는 거? 그거면 나름 괜찮더라고.”

아쉽게도 특별히 도움이 되는 조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큼 기본이 중요하다는 걸 테지.

문제는 촘촘하게 짜인 일정 때문에 한동안 운동은커녕 수면 시간도 그리 많이 지키지 못했다.

이번 주가 마지막이라고는 하지만, 국내 활동이 끝나고 3주 정도 뒤에 바로 해외 투어까지 있었다.

‘생각해 보니 확실히 체력 문제가 있을 수 있겠는데.’

다들 내색하지 않는 것이지, 우리는 엄청나게 무리하며 달려온 상황이었다.

거듭된 성공과 계속해서 차오르는 인지도를 보며 서로 자극을 주고 힘내자고 기운을 북돋웠다.

그런 것도 한계가 있을 거다.

하드워커로 유명한 진효원이 걱정하며 말할 정도면.

‘정말 빡세게 하고 있다는 뜻이야.’

체력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다.

‘역시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

나는 스킬 뽑기를 떠올렸다.

마침 이번 앨범의 성과로 포인트도 많이 얻었겠다.

레프픽션의 트레블리를 키우기 위한 자금도 필요하겠다.

체력 관련 스킬까지 뽑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돌 하나로 세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었다.

문제는 지금 가진 재화로 그 스킬을 다섯 개나 뽑을 수 있느냐인데.

“올리오스 팀, 준비해 주세요!”

그때 스태프가 우리를 불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무대 잘 즐기고, 실수하지 말고. 이번 앨범 활동 끝나면 다 같이 밥이나 한 끼 먹자.”

대선배의 응원을 받으며 올리오스는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했다.

“올리오스 팀 올라갑니다!”

앞의 무대가 끝이 나고 드디어 우리 차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리는 스테이지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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