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최 실장, 부자끼리 조용하게 얘기할 참이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
“그럼 두 분이 다녀오십시오. 차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최 실장이 검은 비닐봉지를 내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막걸리 한 병과 사과 한 알, 그리고 종이컵 세 개가 있었다.
최 실장을 두고 윤 회장과 함께 어머니의 묘지로 향했다.
묘지는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둘이 왔소. 못 온 사이에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구려.”
묘지를 가볍게 쓸어내린 윤 회장의 얼굴에 슬픈 미소가 자리했다.
“잠깐 정리를 하지.”
윤 회장이 익숙한 듯 외투를 벗고는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러고는 묘지 옆에 있는 목함을 열었다.
거기에는 낫을 포함한 각종 목초 손질 도구가 놓여 있었다.
목장갑을 낀 채로 익숙하게 낫을 쥐는 윤 회장을 따라 낫을 들었다.
사각. 사각.
윤 회장은 말없이 벌초를 시작했다.
사실 관리가 잘 된 덕에 굳이 손 볼 곳은 없어 보였지만, 윤 회장에겐 아닌 모양이었다.
아내를 그만큼 사랑했던 걸까.
‘윤건하’의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1분 1초조차 아까운 윤 회장이 말없이 천천히 벌초를 하는 모습에서, 표현하기 힘든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렇게 묘지를 꾸준히 관리하는 건 어지간한 정성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초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비를 맞고 자란 잡초들을 몇 번이나, 얼마나 베었을까.
“네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고 했었지.”
말없이 풀을 깎던 윤 회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
“너도 알다시피 나는 반대했지. 건하 너는 내 회사를 이어야 할 운명을 갖고 태어 났으니까.”
사각. 사각.
“네가 중학교 1학년 때였나. 네 엄마가, 병으로 멀리 가 버린 그날, 장례식을 마친 너는 제멋대로 아이돌을 하겠다고 집을 뛰쳐나갔지. 기억나니?”
“…네.”
“자유로운 네 엄마를 닮은 건지, 아니면 고집불통인 나를 닮은 건지. 너는 그 어린 나이에 소속사랑 계약을 했더구나.”
“…….”
나는 여전히 묘지에 자라난 잡초를 자르는 윤 회장을 보았다.
“고민을 많이 했다. 강제로 너를 집으로 부를지, 아니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둘지. 그때 네 엄마의 말이 떠오르더구나. 하고 싶은 걸 하게 두라고.”
“…….”
“내가 오죽 싫고 그 집이 답답했으면 그 어린 나이에 나갔나 싶으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어. 성공이 보장된 길을 왜 마다하고 떠났을까….”
사각. 사각.
그 이후로 한참 동안 잡초를 깎던 윤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구구, 이제는 허리도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구나. 나도 나이를 먹었어….”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난 윤 회장이 나를 보았다.
최 실장과 함께 있을 때의 위엄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달리, 등이 부쩍 작아 보였다.
“네가 내기를 선언한 날에도 여기를 찾았다. 네 엄마에게 물었지, 왜 자유롭게 두라고 했는지 궁금해서.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 알겠더구나.”
나를 마주 보는 윤 회장의 눈에 다정한 기운이 서렸다.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따뜻한 눈빛이었다.
“너 역시 내가 젊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네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신.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내가, 아니 우리 팀이 어느 누구보다 더 반짝반짝 빛이 날 거라는 것을.
“확신, 갖고 있습니다.”
“얼마나 갖고 있느냐?”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아이돌 그룹 하나가 기업 이상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그 말, 아직도 유효한 게냐?”
“네. 가능합니다.”
내 확신에 찬 대답에 윤 회장이 웃었다.
“허허허, 그래. 그렇게 말하니 됐다. 자기 길에 확신을 가진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지. 그런 이들은 늘 성공했으니 말이다.”
너털웃음을 짓던 윤 회장이 벌초 도구를 내려놓았다.
목장갑마저 벗은 윤 회장이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나는 그의 앞에 막걸리와 사과, 그리고 종이컵 3개를 꺼냈다.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른 윤 회장이 과도를 들었다.
“기억나느냐? 네 엄마가 깎아주던 사과 말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죽은 아내를 추억하는 이에게 차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흠, 네가 참 좋아했는데. 그것도 다 옛날 일이구나.”
윤 회장이 능숙하게 사과를 깎았다.
솜씨는 훌륭했다.
네 조각으로 자른 사과의 한 조각은 비석 앞에, 다른 한 조각은 자신의 손에 그리고 남은 두 조각은 내게 내밀었다.
“받아라.”
“감사합니다.”
“네 엄마가 늘 네게만 두 개씩 주곤 했지.”
나는 한 조각 중 반을 잘라 회장에게 건넸다.
“드세요.”
“…이제 아비도 챙기는 게냐?”
“그런 셈이죠.”
“이것도 성장이라고 해야겠지.”
윤 회장이 웃으며 사과를 받았다.
잠깐의 침묵.
비석 앞에 놓인 종이컵에 가볍게 부딪힌 윤 회장이 내 잔과도 가볍게 맞댔다.
“마시지는 말거라. 네가 술에 약하다는 건 들었으니까.”
“아, 네.”
꿀꺽.
한 잔을 그대로 비운 윤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했느냐?”
“예. 그게 아이돌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지만, 저는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그래, 세계…. 야망은 크게 가질수록 좋지.”
아삭!
사과를 입에 문 윤 회장은 말을 이었다.
“약속한 대로 투자와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하마. 황룡그룹이 GH 엔터와 올리오스를 후원할 게다.”
“감사합니다.”
황룡그룹의 후원.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그리고 말이다.”
“예.”
“앨범 활동 끝나고 휴가 얻으면 집으로 와라. 간만에 부자끼리 식사라도 좀 하자꾸나.”
“알겠습니다.”
“회사는 걱정 말거라. 이을 사람이야 누구든지 있겠지.”
네가 걱정은 안 했겠지만.
이라고 낮게 되뇌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버…지. 부탁이 있습니다.”
여전히 윤 회장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건 어색했다.
이제는 적응해야겠지.
윤 회장도 ‘윤건하’를 정면으로 마주보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나 역시도 윤택수 회장을 아버지로 마주 봐야 하는 거다.
“부탁? 무슨 부탁이냐. 말해 보거라.”
“제가 관심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이돌 후배들인 게냐?”
“예.”
“그래서?”
“그 친구들이 성공하게끔 도와주고 싶습니다.”
“…투자를 하고 싶은 게로구나.”
“예.”
역시 척하면 척이었다.
윤 회장은 내 말의 의도를 단번에 캐치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윤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돈을 지원하거나 너 대신 투자해줄 수는 없다. 그건 알고 있겠지? 너와 내가 한 내기에 대한 조건은 GH에 대한 투자였지. 안 그러냐?”
아버지 아들이라도 계약은 확실히 하겠다는 건가.
“알고 있습니다.”
“그럼 원하는 게 돈이 아니라면 무엇이냐?”
“그 친구들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제가 키워보고 싶습니다만, 아직 제겐 능력이 없어요. 그 친구들을 지금 키우고 있는 회사는 자금이 부족해 제대로 지원해 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은, 너한테는 지원해 줄 자금이 있다는 뜻이구나.”
“예.”
“힘을 빌려 주셨으면 합니다.”
“힘 말이냐?”
“예.”
“내 힘은 비싸다. 너는 무엇을 줄 수 있겠느냐?”
윤 회장이 나를 보았다.
그의 눈에서 내 역량을 재단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아이돌로서의 역량이 아닌, 내가 가진 사업적인 역량을 말이다.
아이돌을 하는 것과 아이돌을 키우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내가 아이돌을 키우겠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엄연한 사업이었고, 그럴 수 있는 재능과 능력이 없다면 그저 실패할 뿐이었다.
윤택수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실패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실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역량을 보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실패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올리오스도, 레프픽션의 트레블리도.
“성공을 드릴 수 있습니다.”
“성공이라?”
“네.”
“말해 봐라.”
“국내, 해외의 가치 고객들에게 황룡그룹의 이미지를 상승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뭐지?”
“브랜드화.”
“…….”
“황룡을 브랜드화하는 겁니다. 해외 스타들과 국내 스타들이 모두 모인 거대 콘서트를 서울에서 열고, 그 규모를 최대한으로 키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거죠.”
“이미지를 만들자는 거군.”
“예. 대중과 가깝고, 친숙한 이미지를 만드는 겁니다. 기업이라는 딱딱한 이미지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재밌는 이야기야. 흥미로운 이야기이고.”
윤 회장의 머리가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줄곧 이상하게 여겼던 것이 있었다.
지난 1년간 서울에서 세계적인 뮤지션과 한국의 가수들이 함께 합동 공연을 하는 거대 콘서트가 열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의 아이돌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이 시대에, 어째서 한국 가수와 해외 가수들이 함께 하는 공연이 열리지 않았던 걸까.
조금은 뒤늦게 깨달았다.
‘특별 이벤트로 해외 합동 콘서트를 여는 것은 특별 에피소드.’
특수한 조건을 갖춰야만 열 수 있는 월드 콘서트 시나리오.
수많은 해외 스타와 국내 스타들이 한군데에 모이고, 플레이어가 육성하는 아이돌이 그곳에서 경험을 쌓아 최고의 무대를 펼치는 에피소드.
스토리 상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하는 합동 공연이라 규모를 엄청 키웠다는 말이 기억났다.
나는 그걸 황룡그룹이 기획하고 진행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걸 통해서 트레블리까지 키울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
“그들을 GH 엔터에 영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육성 기획을 제가 혹은 저와 함께할 프로듀서가 함께 맡았으면 해요.”
“생각해둔 사람은 있고?”
“있긴 합니다.”
내가 가장 잘 알고, 나와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야. 기업의 이미지를 친숙하게 만드는 것. 우리같이 다양한 물품을 취급하는 거대 기업에겐 꼭 필요한 브랜딩이지.”
“제가 손해 보는 장사입니다.”
“껄껄껄. 대신 나중에 선물을 하나 주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미소짓던 윤 회장이 막걸리를 먹었다.
그리고 내가 반 잘라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사과를 먹었다.
윤 회장이 사 온 사과는 달고 맛있었다.
“기일에 또 오겠소. 그때는 조금 더 길게 얘기합시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윤 회장의 얼굴은 평소보다 조금 더 밝고 가벼웠다.
나는 ‘윤건하’의 어머니의 묘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건 ‘윤건하’가 보내는 인사이면서 동시에 윤건하가 보내는 인사였다.
‘아들의 몸에 제가 대신 들어가 있어 미안합니다.’
대신 건하가 바랐던 아이돌로서 성공, 꼭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내 생각에 화답하듯 묘지 위로 바람이 불었다.
* * *
“조심히 들어가게.”
“네, 아버지. 들어가세요.”
차를 향해 고개를 숙일 때였다.
“건하야, 아니 아들아.”
아들이라고 부르는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윤 회장을 바라보았다.
“좀 부끄럽군. 푹 쉬거라.”
“아버지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냐.”
고급 세단이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아들이라.
처음 들어본 소리였다.
‘좋네.’
가족이란 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