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56화 (156/236)

<제156화>

SNS에 1위 감사 영상을 올렸다.

나는 컴퓨터에 비친 레몬 차트 영상을, 호진이는 셀카 사진과 함께 게시글을, 우주는 연습실 사진을, 정민이는 자기 작업실 사진을 올렸다.

성훈은 나와 같이 레몬 차트에서 1위와 2위를 찍은 우리의 이름을 화면에 담았다.

각자의 SNS에 서로 다른 감사 영상을 올리며 이번 성적을 자축했다.

GH 엔터의 공식 채널와 SNS에도 우리 다섯이 함께 모여 찍은 감사 영상이 올라갔다.

-여러분들 덕분에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For you’가 레몬 차트 1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짧은 감사 인사 영상이었지만, 진심을 담았다.

팬들이 없었으면 절대 이루지 못했을 일이었으니까.

“후우, 아직도 가슴 떨린다.”

“이제 마음을 가볍게 가져도 되겠지?”

“그래도 풀어지지는 마라.”

“안 그래.”

이전보다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연습실에 출근했다.

1등이 되었다는 걸 확인하기 전까지만 해도 다들 전투 태세였다.

현장에는 묘한 긴장감이 남아 있었고, 다들 평소보다 예민했다.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풍선 같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번 활동 끝나면 나 무조건 먹방 찍을 거야. 따로 X-라이브에서 먹방 찍으면서 여기저기 탐방 갈 거야.”

벌써 활동이 끝난 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언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휴가 받으면 여행 좀 다니려고.”

정민이 담담하게 말했다.

“어? 그럼 나랑 같이 식도락 여행하는 거 어때, 민이 형?”

우주가 그의 말에 호응하며 외쳤다.

“호진이 형도 같이 갈래? 우리 다섯 명이 다 같이 가는 거야. 어때?”

“미안. 나는 집에서 게임 하려고. 밖에 나가는 거 별로….”

게임이라.

호진이다운 취미였다.

그 말에 우주가 실망했다는 듯 입술을 내밀었다.

“그치.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니까.”

곧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성훈이 형은 휴식기 때 뭐 할 거야?”

“나는 아버지 부대 갈 거다. 거기서 같이 체력단련 할 거야.”

“…진짜?”

나를 포함한 모두가 놀란 얼굴로 그를 봤다.

“왜? 체력 단련도 좋은 취미야. 운동하고 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같이 할래? 내가 제대로 알려줄게.”

우리는 거의 동시에 손사래를 쳤다.

춤을 추는 것 때문에 체력 단련에 열심인 호진이마저 성훈의 제안은 거절했다.

여기서도 제일 악착같이 운동하는 애인데, 군대에 가면 얼마나 더 심할까.

“어차피 나중에 군대에 가야 하잖아. 그런 거 미리 적응한다고 생각해.”

“와…. 형은 아이돌 안 했으면 군인 했겠다.”

같은 생각이다.

그나저나 군대라니.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 이대로 가면 나중에 군대 한 번 더 가야 하는 거잖아?’

이거 큰일 났는데?

진엔딩 보기 전에 군대 갔다 와야 하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런 불안을 최대한 가라앉히며 숨을 골랐다.

지금은 그런 불길한 생각은 하지 말자.

좋은 날이잖아. 좋은 날엔 좋은 생각만 해야지.

1위, 2위.

줄 세우지는 못했지만, 줄 비슷한 건 세웠으니까.

오늘은 순수하게 기뻐해도 될 거다.

*    *    *

우리의 노래 ‘For you’는 계속해서 1위를 지켰다.

지속해서 GH엔터 주최의 이벤트에 참여하고, 여기저기 우리 노래가 들리게끔 예능도 나가고 음악 프로도 나갔다.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녹화에 참여했던 케이블 예능이 하나둘 방영하기 시작했고, 너튜브에 올렸던 여러 영상도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그대라는 사람을 만나

나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

고마워요.

나와 함께해줘서.

거리에서 ‘For you’의 후렴구가 들렸다.

밤과 낮을 구분하지 않고 들리는 우리의 노래가 성공을 증명했다.

거리에 있는 상점 대부분은 레몬 차트 1위에서 100위까지 음악을 돌려가면서 트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우리의 노래가 들리는 건 당연한 일.

1위와 2위를 차지한 ‘For you’와 ‘유화’ 말고도 수록곡도 적잖게 들렸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이 순간을 즐겼다.

오늘은 이번 주의 첫 음방, YBC의 뮤직에어를 촬영하는 시간이었다.

컴백 첫 주였던 저번 주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축하해!”

“축하드려요.”

“축하해요.”

보는 사람마다 우리를 축하해주기 바빴다.

심지어 저번 주 1등을 차지했던 ‘L♡VE’의 해피뉴스도 우리를 축하했다.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다들 너무 이르십니다.”

“에이, 이 정도면 거의 1등 아닌가요? 못하면 그게 이변이죠.”

선배 아이돌들이 우리를 축하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들뜨는 사람은 없었다.

음원 차트 1위로 기뻐하는 건 우리끼리 충분히 즐겼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뮤직에어 순위로 먼저 설레발 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은 긴장을 유지해야 할 때.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갈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트레블리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트레블리?

얘들은 누구지?

이번에 새로 데뷔하는 신인인가?

“아아, 잘 부탁해…. 엉?”

우리에게 인사하는 4인조 신인들의 얼굴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전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주민호, 강형찬, 레온, 솔라?’

4명 모두 <마이 아이돌>에서 유명한 S급 아이돌들이었다.

몬스터즈에 있는 멤버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잘 모은다면 진엔딩은 거뜬히 볼 수 있는 그런 멤버들이었다.

얘들이 한 번에 다 모였다고?

소속사 대표가 누군지는 몰라도 안목과 사람 캐스팅하는 운은 미쳤다.

게임에서도 저 멤버들을 모으려면 몇백만 원을 투자하거나 아니면 운이 미치도록 좋아야만 가능했다.

전원 S급 4명.

심지어 전부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인권캐라고 불리는 아이돌들.

만약 이들이 이번 주부터 데뷔한다면 우리가 지속해서 1등을 노리는 게 힘들지도 모를 정도로 대단한 애들의 모임이었다.

“이번에 데뷔한 신인들인가요?”

성적을 위협하는 라이벌이지만, 오랜만에 본 익숙한 얼굴이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내가 눈을 빛내며 묻자, 올리오스 애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방금 말투 뭐야? 완전 선생님 같았어.”

정민이 놀라며 말하자, 우주와 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동료들의 말을 반쯤은 무시하며 눈앞의 신인 아이돌을 보았다.

“아, 그, 그게….”

내 말에 조금은 당황한 듯 트레블리 멤버들이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다.

“다, 당장 데뷔는 아닙니다! 저희는 레프픽션의 연습생들인데, 데뷔하기 전에 선배님들 찾아가서 인사하라고 대표님이 시키셔서요.”

아직도 연습생이라고?

얘들이?

분명 프로필로는 우리와 동갑인 걸로 알고 있었다.

이곳이 게임 속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게임대로 역사가 흐르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런데 아직도 데뷔를 못 했다고?

얘들이?

이 재능이 찬란하게 빛나는 4명의 정예가?

대체 왜?

“레프픽션?”

처음 듣는 소속사 이름이었다.

“어?”

우주는 그 소속사를 알고 있는 듯 놀란 얼굴로 입술을 가렸다.

그 행동에 뭔가 이유가 있음을 깨닫고 나는 연습생들을 바라봤다.

“레프픽션의 트레블리…. 이름 기억해 뒀어요. 앞으로 여기서 자주 봤으면 좋겠네요.”

나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나하나 손을 맞잡고 인사를 했다.

사실 나와 동갑인 애들이었다.

정확히는 ‘윤건하’와 동갑이지.

그런 동갑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내 모습을 보던 멤버들이.

“역시 아재, 이제는 윤 부장님으로 불러야 하는 거 아닐까?”

“부장님 매력에 우리 신인 연습생들 벌써 빠진 거 같은데?”

뒤에서 한마디씩 수군거렸다.

다 들린다, 이놈들아.

“나중에 무대에서 뵙겠습니다!”

빛나는 S급 신인 후배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며 떠났다.

그들이 온전히 떠난 뒤에, 나는 우주를 보았다.

“레프픽션, 어떤 곳인지 알아? 반응 보니까 좋은 곳은 아닌 거 같은데.”

“아, 그게 말이야. 그리 소문이 좋은 곳은 아니야.”

“소문이 안 좋다고? 애들을 막 굴려 먹기라도 하나? 악덕 계약 같은 거라도 맺는 거야?”

“그런 쪽이 아니라….”

우주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소속사 연예인들 관리랑 육성을 못 하는 걸로 유명해.”

“그런데 어떻게 유지하는 거야?”

“거기 대표님이 아이돌 보는 눈이 좋다고 들었어.”

“보는 눈이 좋다고?”

“소속 아이돌들 평이 다 좋아. 그룹에서 유독 돋보이는 한두 명이 캐리해서 2집까지는 어떻게든 손해를 안 보는 거로 알아.”

“부족한 육성 능력을 보는 눈으로 커버한다는 거네.”

“응, 하드한 팬들 사이에선 탈 레프라는 얘기가 좀 있어. 레프픽션에서 나간 아이돌은 성공한다는 얘긴데, 조롱식으로 불리는 거지.”

“…….”

“보니까 다들 잘생기긴 했는데, 저 중에서도 한두 명만 성공하겠지. 안타깝게 됐어.”

우주가 입맛을 다셨다.

아깝다.

너무 아깝다.

지금 저 4명은 저렇게 소모돼서는 안 되는 애들이다.

오히려 최대한 육성에 신경 써서 최대한 반짝이게 만들어야 할 원석이었다.

“설마 저대로 데뷔를 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음방에 내보냈다는 건 나름대로 데뷔 준비가 되었다는 건데….

비주얼은 좋지만, 메이크업이나 의상이 그 멋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아쉽다. 진짜로.”

“건하가 쟤들 좋게 보나 보네.”

“탐이 나.”

“탐이 난다고?”

“응, 진짜 잘할 거 같아 보였거든.”

그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나를 보던 성훈이 웃었다.

“왜 웃어?”

“아니, 너 진성이 형이랑 비슷한 분위기라.”

“…그래?”

“응. 방금 딱 그랬어.”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그의 말대로 한진성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을 테니까.

한진성은 나랑 비슷한 사람이거든.

미래가 보이는 후배를 보면 참지 못한다거나, 그들이 자신에게 도전하는 미래를 상상한다거나.

나도 지금 그럴 때의 한진성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쉽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은, 나는 저들의 미래가 암울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거였다.

“올리오스 나오실게요!”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무대에 올라가야 했기에, 그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    *    *

“오늘의 영예의 우승자는….”

“두구두구두구.”

입으로 북소리를 내는 MC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보여주세요!”

차트가 빠르게 올라갔다.

우리의 옆에는 ‘L♡VE’의 해피뉴스가 있었다.

역주행의 화신 해피뉴스, 컴백 후 돌풍을 몰고 오는 올리오스.

두 그룹의 대결.

그리고 그 승자는.

“축하합니다! 올리오스의 ‘For you’가 우승을 차지합니다!”

우리의 것이 되었다.

첫 우승 때는 눈물을 흘리던 멤버들이 이번엔 순수하게 기뻐하며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마지막 세리머니를 장식했고, 그때 나는 보았다.

무대 아래, 스태프들과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올려다보는 레프픽션의 트레블리를.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윤건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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