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53화 (153/236)

<제153화>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뮤직에어 녹화를 위해 YBC를 찾은 우리는 선배들을 향해 꼬박꼬박 인사를 하고 다녔다.

2집이라지만 이제 햇수로 겨우 2년 차.

아직 이곳에 있는 선배들에 비해선 무척이나 경력이 짧은 싱싱한 애기들이었다.

그런 신인들로서는, 눈도장을 찍고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선 부지런히 인사를 다니는 게 최고였다.

“올리오스 벌써 컴백이에요? 진짜 빨리 돌아왔네.”

우리의 빠른 복귀에 놀라는 선배도 있었고.

“아, 저번에 <명곡 배틀> 잘 봤어요. 성훈 씨 노래 엄청 잘하던데? 요즘 올리오스 나오는 거 다 챙겨 보거든요. 내가 <우주카페> 때부터 팬이었어.”

TV에서 우리를 봤다고 얘기해주는 선배도 생겼다.

데뷔 5년 차 솔로 가수 배은우는 우리의 팬이라며 사인까지 받아 가셨다.

“올리오스, 보기 좋아요. 오늘 엔딩이라면서? 다음 주엔 1등 노리는 건가?”

이제는 우리의 얼굴을 알고 있는 선배들이 꽤 많이 늘었다.

올리오스도 나름 자리를 잡았다는 게 느껴졌다.

“후우, 떨린다. 왜 여기만 오면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어.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대기실에 앉아 숨을 고르던 정민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늘 그렇다.

벌써 이렇게 무대에 오르는 게 수십 번이나 되었지만, 막상 시간이 다가오면 몸이 덜덜 떨린다.

단순히 초조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 신곡, ‘For you’를 선보이는 첫 무대.

설레는 마음 또한 있었다.

자신할 수 있었다.

지금 노래가 이전 노래보다 더 좋다는 걸.

때문에 부담도 되었다.

예전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 말이다.

‘하지만 그건 ‘All we once’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거지?

자신도 있고, 잘될 거라는 확신도 있는데.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얼마나 심하게 뛰면 심장이 뛰는 것 때문에 머리까지 웅웅 울렸다.

정민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다른 동료들을 보았다.

우주와 호진은 곧 있을 무대가 즐거운지 콧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렸고, 성훈은 TV에서 송출되는 다른 팀의 무대를 보았다.

“호오,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좋은 모습에 감탄도 하고, 아쉬운 부분에서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건하는….

“어? 건하는 어디 갔어?”

“건하 형? 전화 받으러 잠깐 나갔어.”

“전화?”

“응. 아까 보니까 아버지한테 전화가 온 거 같더라.”

“아아아, 그 내기 때문인가?”

“응, 아마도…?”

그 말을 들은 정민은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이렇게 긴장한 이유.

그건 윤건하와 그의 아버지인 윤택수의 내기 때문이었다.

음방 1등을 하지 못하면 회사로 돌아간다는 내기.

혹시 노래가 부족해서 1등을 못 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그 불안감이 자꾸 긴장을 더했다.

“후우.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정민의 말에 우주가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형, 긴장 풀어. 이번에 형 노래 진짜 좋았어.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러니까 이번에도 1등 할 수 있어. 괜찮아.”

“고맙다.”

조금 기운을 되찾은 정민은 쏟아지는 긴장을 풀어내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잘될 거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되뇌었다.

*    *    *

대기실을 나온 나는 방금 온 문자를 보았다.

-잘 보고 있겠다.

아버지 윤택수의 문자.

이번 앨범에서 1등을 하지 못하면 다시 회사로 돌아오라는 내기 때문일까.

오늘이 음방 날짜라는 걸 어떻게 알고 문자를 따로 보냈다.

-좋은 결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약속은 믿고 있겠습니다.

답장을 보내기 무섭게 전화가 울렸다.

그래서 급하게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멤버들 앞에서 윤택수 회장과 전화를 받는 건 부끄럽기도 하고, 곤란하기도 하니까.

나와 윤택수 회장이 건 내기를 전부 아는 애들이었다.

그 앞에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방송국엔 갔나?

무뚝뚝하고 엄한 목소리.

“예, 아까 전에 도착해서 메이크업 다 마쳤어요.”

-그래, 고생 많았다.

“이제 시작인데요.”

-잊지 않았다. 그러니 너도 잊지 말고 보여주거라. 네가 말한 그 잠재력. 정말 가업을 잇지 않아도 될 정도로 대단하다는 걸 말이다.

“예.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에 바로 1등 결과가 나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말 생각이 없는 게냐?

윤택수 회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그 속에 미묘한 떨림이 있었다.

자신이 다 이뤄놓고 다져놓은 편한 길이 있음에도, 성공이 보장된 길이 있음에도 그 길을 가지 않으려는 어리석은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윤 회장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생각이 없었다.

사업가로 다시 돌아가서 그 치열한 바닥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진엔딩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서만은 아니다.

한 번 간 길을 다시 가는 건 재미가 없으니까.

“예.”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알았다.

윤회장의 체념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활동이 끝나면 집으로 오거라. 네 엄마 묘지에 함께 가자.

“어머니 묘지…. 말씀이십니까.”

-그래. 안 간 지 오래 되었잖느냐.

“…그렇죠.”

원래 윤건하가 어머니 묘지에 찾아 갔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가지 못했다.

아니, 갈 수 없었다.

내게 남은 조금의 죄책감이, ‘윤건하’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꾸만 내 발목을 잡았다.

-네 엄마에게도 말해줘야지.

“내기 결과를 말씀이십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 보거라.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테니.

“네.”

그렇게 윤 회장과의 전화를 끊었다.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목소리였다.

나중에라도 내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미련.

“미안합니다. 건하도 아이돌을 더 원하고 있어요.”

나는 핸드폰을 보며 낮게 읊조렸다.

돌아가자.

멤버들이 기다린다.

*    *    *

“올리오스! 들어 가실게요!”

마지막 무대 전, 뮤직 에어의 MC들과의 인터뷰 자리였다.

우리보다 1년 정도 선배인 아이돌 MC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하는 시간이었다.

아까 대기실에서 인사했던 선배 아이돌 MC들이 마이크를 잡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어서 들어와요. 빨리. 하하.”

남자 MC인 이찬이 손을 저으며 MC 자리 옆 단상을 가리켰다.

“빨리 복귀했네요.”

“네, 몸이 근질거려서요. 하하.”

“부지런하네요. 1집은 저희랑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거 같은데….”

“선배님들을 따라가려면 열심히 해야 하니까요.”

여자 MC인 미르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MC들과 약간 어색한 대화가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PD의 신호가 왔다.

-샷 들어갑니다. 다들 스탠바이해주세요.

신호가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편 프롬프터에 MC들의 멘트가 떴고.

프롬프터와 카메라 옆에 서 있던 PD가 수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카메라에 불빛이 들어왔다.

“이별을 마주한 다섯 남자, 슬프지만 아름다운 노래 ‘For you’로 무대에 돌아온 올리오스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노래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무슨 노래인지, 핵심 포인트가 뭔지에 대해 말하는 자리였다.

“이번 앨범 준비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특히 정민 씨의 활약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정민이 형이 이번 앨범을 이를 갈며 준비했어요. 그렇죠?”

“하하, 이거 민망하네요. 작곡을 맡다 보니, 힘을 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더라고요. 밤낮없이 준비했습니다! 많이 사랑해 주세요!”

잔뜩 긴장한 티가 역력히 드러나는 정민의 멘트가 끝나고, 다시 MC가 마이크를 잡고 물었다.

“이번 앨범에는 좋은 노래가 정말 많다고 들었는데, 추천할 노래가 어떤 게 있을까요?”

이번엔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 어려운 질문인데요. 저희 앨범 노래가 모두 좋아서 선택하기 어려운 대답이네요. 오늘 보여드릴 타이틀곡, ‘For you’를 제외하고 굳이 하나를 꼽자면, 역시 ‘유화’죠. 엄청 강렬한 노래기 때문에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을 거라 자신합니다.”

이번 앨범 소개, 앞으로의 각오, 팬들에게 바라는 인사까지.

3분이 조금 되지 않는 짧은 인터뷰가 끝이 났다.

인터뷰가 끝나고 얼마 뒤, 이제 마지막 무대.

우리 차례였다.

올리오스가 2집 앨범으로 돌아왔음을 알리는 자리.

마이크를 차고, 인이어를 낀 우리는 백스테이지에서 스태프의 신호를 기다렸다.

그리고 옆에 선 정민을 보았다.

우리의 작곡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 있는 마에스트로.

아마 정민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성공은 조금 더 늦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다른 멤버들도 각자 자리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지금 우리의 성공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정민이라고 확신했다.

“정민아.”

“응?”

“고맙다. 좋은 노래 만들어줘서.”

“갑자기 왜 그래.”

“그냥. 조금 긴장하고 있는 거 같길래.”

“아.”

“너무 신경 쓰지 마. 나랑 아버지랑 한 내기. 나는 무조건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니까.”

정민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그를 바라보는 대신 무대 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어. 그리고 한 번 올랐던 길이야. 두 번이라고 못 할 거 없어. 그러니까….”

정민에게 말하고 있지만, 이건 스스로 하는 다짐이나 다름없었다.

“열심히 하자. 후회하지 않도록.”

“응. 고맙다, 건하야.”

정민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진 것 같았다.

더는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말하는 건 사족이니까.

앞의 무대가 끝이 나고, 드디어 우리의 차례.

“조금만 더 대기할게요.”

무대 정리를 위한 시간.

그 시간 동안 방송에서는 사전 녹화 분량이 방영될 거다.

물론 생방 녹화와 송출되는 영상의 시간이 완벽하게 실시간은 아니었다.

5분 정도의 딜레이가 있었다.

만일의 사고가 생기면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게 만들어진 제도라고 들었다.

무대가 정리될 때까지 우리는 기다렸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후회하지 않을 멋진 무대를 보여주자.’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뮤직에어 MC들이 우리를 소개하는 멘트가 들렸다.

“오랜만에 돌아왔죠. 최근 열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보이 그룹입니다! 올리오스! 이름만 들어도 벌써 설레는데요?”

“떠나는 사람이 슬퍼하지 않도록 이별을 담담하게 마주하는 노래, 올리오스의 ‘For you’입니다.”

멘트로 우리를 소개하자마자, 팬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익숙하지만 늘 그리운 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좋아.

긴장하지 말고.

침착하게 하자.

그리고 귀에서 메인 PD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탠바이! 3, 2, 1…. 올라가면 됩니다.”

우리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익숙한 무대, 그러면서도 낯선 환경.

늘 새로운 이곳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노래를 대중에게 선보일 시간이었다.

반주가 흘러나왔고.

-♬♪♩♬♪~.

그대라는 사람을 만나

나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항상 내 옆에서 힘이 돼주고

기댈 수 있게 해줘서.

늘 말하고 싶었지만

겁이 나 말하지 못했던 말.

고마워요.

나와 함께해줘서.

‘For you’를 불렀다.

이 세계에 들어오기 전, 게임으로만 들을 수 있었던 노래를.

메인 OST였던 그 노래를 다시 세상에 공개하는 날이었다.

환호가 들린다.

눈이 부시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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