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덩달아 앨범 자켓과 화보 촬영까지 전부 마쳤다.
이제는 복귀 전까지 연습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스케줄이 따로 없으니 일찍 퇴근해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성훈이 나갔던 <명곡 배틀>의 방영일이었으니까.
“현장 반응 좋다고 들었다. 그리고 편집된 영상도 내부 반응 괜찮다고 했으니 볼만할 거다.”
황이서는 내부 소스를 들은 듯 성훈을 보며 웃었다.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진짜 잘 나왔다는 뜻인데.
“어떻게 편집됐을까?”
다들 설레는 얼굴로 TV 앞에 앉았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볼 수는 없었다.
현장에서 보는 것과 TV로 나오는 건 차이가 있으니까.
그리고 분명 클로즈업이 됐을 거다.
대기실에서 우리가 보낸 영상편지를 본 성훈의 얼굴 말이다.
우리는 정작 다음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느라 영상을 보고 놀란 성훈의 얼굴을 제대로 못 봤다.
대기실 문을 열고 나서야 볼 수 있었지.
다들 놀려 먹으려고 기세등등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던 와중에 <명곡 배틀>의 오프닝 곡과 함께 쇼가 시작되었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MC의 옆에 선 성훈을 보고 나서야, 우리는 성훈을 가리키며 떠들기 시작했다.
“성훈이 형, 잔뜩 긴장했네.”
“너무 떠는 거 아니야? 그래도 이제 카메라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혼자 나가서 그래 보이는 거다.”
“최수혁 선배님도 저기 보인다.”
확실히 현장에서 볼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저 장면은 모두 스태프 사이에서 이미 한 번 봤던 장면이었다.
전부 알고 있음에도 신선했다.
출연자들의 인사가 끝나고, 꽉 찬 방청객석의 화면이 비춰졌다. 대기실에서 대기하는 가수들을 카메라가 비췄다.
<명곡배틀>의 시그니처인 과거 명곡을 조명하는 회상 장면을 잠깐 보여줬다.
사실 앞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우리가 관심이 있는 건 오로지 성훈의 무대였다.
그 날 불렀던 성훈의 그 노래가, TV에 어떻게 담겼을지.
그게 궁금했기에 옹기종기 TV 앞에 모였다.
여러 장면이 지나가고 드디어 성훈의 차례.
-이제 다섯 번째 순서 올리오스의 성훈 씨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오늘 <명곡 배틀>에 처음 출전하는 성훈 씨를 위한 특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잠시 함께 보시죠.
강정수 MC가 웃으며 무대를 가리키는 모습에 성훈은 얼굴을 가렸다.
“형, 왜 그래. 우리가 부끄러워?”
“성훈이 형 똑바로 마주해! 이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우리가 옆에서 깐족거려도 성훈은 얼굴을 가린 손을 떨쳐내지 않았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화면 속 우리의 영상편지를 보는 성훈의 울컥한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그러면서도 웃고 있었다.
멤버들의 갑작스러운 축하에 당황하면서도, 그 응원이 싫지 않은 듯 웃고 있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미소를 성훈 본인만 보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부끄럽다고.”
“얼굴 터질 거 같으니까 다들 그만해줘.”
“일부러 놀리려고 보는 건데, 뽕을 뽑아야지.”
하나 그런 성훈의 바람과는 다르게 우리는 TV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감정 표현이 드문 성훈이 내는 보기 힘든 장면에 다들 집중했다.
그렇게 성훈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
강렬한 밴드 반주가 인상적인 무대.
짙어지는 감정과 함께 강렬해지는 반주.
감정이 점점 올라오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성훈의 노래.
성훈의 목소리를 멍하니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몇 번이나 비췄다.
그 탓에 같은 부분이 몇 번이고 재생되었지만.
-혹여나 네가 탄 기차가 오지 않을까.
그것이 성훈이 쏟아내는 감정을 망가트리진 않았다.
이미 한 번 봤던 공연임에도, 우리는 무대 위의 성훈이 보여주는 카리스마에 빠져 노래에 몰두했다.
하이라이트, 노래의 절정부.
그곳에서 성훈은 목을 열고 고음을 쏟아냈다.
어느 때보다 좋은 목소리였다.
감정, 소리, 연기 그리고 반주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을 돋게 만드는 무대였다.
그의 높아진 능력치에 S급 스킬인 ‘관중의 환호’가 더해져 그야말로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빈자리에 네가 없다는 것을~.
노래를 마친 성훈은 웃고 있었다.
최고의 무대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형, 진짜 멋있다.”
우주와 정민이 감탄하며 성훈을 보았다.
“멋있긴, 너희도 무대에서 멋있게 노래 부르는데.”
우리의 응원에 놀랐던 자신의 리액션은 안 보던 성훈이었지만, 무대만큼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모두 담겠다는 듯이 입술을 꼭 깨물고서 집중하고 있었다.
“음 이탈은 없었지만, 떨림이 너무 약해…. 개선할 필요가 있겠어.”
이 와중에도 자신의 무대를 피드백하는 걸 보고 성훈이답다고 생각했다.
“근데 진짜 멋있긴 하네. 무대 위에서 저 수많은 관객을 혼자서 매료시킨 거 아니야.”
내 말에 성훈이 나를 물끄러미 봤다.
“왜, 왜?”
“네가 할 말은 아닌데.”
“뭐?”
“…얼마 전에 뮤직비디오 촬영 때 혼자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 눈물바다로 만든 거 기억 안 나?”
“…….”
첫 씬에서 보여준 연기를 말하는 거다.
그거 때문에 우리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기대감이 내부에서 엄청 높아졌다고 들었다.
“맞아! 맞아! 건하 형도 거기서 잘생김이 터졌었지!”
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동의했다.
“조금 이기적일 정도로 잘생기긴 했어.”
“동의.”
뭐야?
왜 갑자기 화살이 나한테로 날아와?
“야, 잠깐만 지금은 내가 아니라 성훈이 형….”
발악하듯 소리쳤지만 늦었다.
이미 멤버들의 활시위는 나를 향해 당겨졌고.
“그 연기 보면서 나도 엉엉 울었다니까. 그거 울어서 촬영 딜레이 돼서 얼마나 미안했는데.”
“엉엉.”
콤비가 잘 맞는 정민과 우주가 우는 시늉을 했고.
“그래. 네가 남 말할 입장이 아니지.”
성훈은 거기서 거들었고.
“솔직히 그날 연기는 반칙이었어.”
호진이 쐐기를 박았다.
수많은 대중의 칭찬은 이제 익숙해져서 무덤덤한데, 가장 가까이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의 칭찬엔 아직 면역이 되지 않았다.
황이서 프로듀서의 칭찬도, 선배들의 칭찬에도 낯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나다.
그런데 얘들 말 만큼은 못 견디겠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귀를 막으면서 외쳤다.
“나는 몰라아아아.”
아무것도 몰라.
왜 타겟이 갑자기 내가 됐냐고, 너무한 거 아니야?
“건하 형 확실히 반응이 재밌어.”
“찰지지?”
“은근히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귀를 막은 탓에 멤버들이 하는 말은 듣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웃는 걸 보면 아마 또 나를 놀리는 말이겠지.
오늘의 주인공인 성훈조차, 주변의 칭찬 세례가 부끄러웠는지 화살촉을 나에게 돌리고 있었다.
으으, 부끄럽다.
너무 부끄러워.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왜 이렇게 화끈거리는지.
같이 무대 위에서 즐거움과 슬픔을 공유하는 동료이기 때문일 거다.
내가 무대 위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가장 가까이서 보고,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이니까.
함께 흘린 땀과 노력 때문에라도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듣다 보니 나아지는 거 같기도 하고?’
익숙해지니 이제는 칭찬에 마음이 진정된다고 할까.
귀를 열고 다시 멤버들을 봤다.
“후우….”
숨을 내쉬며 진정을 하고 나니.
“건하 형 최고야!”
“진짜 멋있다.”
“연기 천재 윤건하!”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보며 일부러 과장되게 칭찬하는 애들과 마주친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하필 고개를 돌린 자리에 성훈이 있었고, 그는 말없이 엄지를 치켜올렸다.
그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어디 쥐구멍 없나.
도망치고 싶다.
부끄러워서.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애들의 칭찬에 적응이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거 같았다.
* * *
“이제 내일이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내일.
두 번째 정규 앨범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첫 정규 앨범의 활동이 끝난 지 6개월.
다소 빠른 복귀였지만, 멤버 중 그 누구도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의욕을 불태웠다.
첫 정규 앨범의 반응이 좋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여기서 인지도를 더 올려야만 했다.
몬스터즈를 키운 GH 엔터의 신인이 아니라 ‘올리오스’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래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갈 거다.
이 게임의 진엔딩을 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남몰래 의지를 다졌다.
“후우.”
숨을 몰아 내쉬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던 황이서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2집 활동 무대다. 그리고 활동하기 전에 좋은 소식을 하나 전해주려고 한다.”
“좋은 소식 말입니까?”
황이서의 말에 호진이 가장 먼저 물었다.
“그래. 좋은 소식.”
“혹시 정산금이 더 늘어났나요?”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우리 중에서 가장 정산금이 목마른 사람이 바로 호진일 거다.
그러니 좋은 소식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걸 거고.
“그건 아니야. 이번에 너희가 처음 출연한 YBC의 음악 방송, 뮤직에어의 엔딩 무대를 장식하기로 했다.”
“복귀곡으로 엔딩 무대를요?”
“그래. 이제 너희도 그럴 자격이 있다는 거지.”
“와.”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특히 앨범 활동을 시작하는 지금 가장 듣고 싶은 소식이기도 했다.
“YBC의 뮤직에어를 시작으로 지상파 3사의 무대는 전부 엔딩 무대로 장식할 거 같다.”
“3사 전부 다요?”
우주의 말에 황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2집 활동 첫 주는 너희가 주인공이니까 한번 잘 날뛰어 봐라.”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잘 부탁한다고 해야지.”
GH에서 제대로 힘을 줬다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몬스터즈를 키운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지원 하나는 끝내줬다.
“그럼 내일 보자. 컨디션 조절 잘하고.”
“네!”
우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황 프로듀서의 사무실을 떠났다.
사무실을 나가는 우리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다.
* * *
황이서 프로듀서는 며칠 전에 받았던 전화를 떠올렸다.
-YBC, 엔딩은 너희 올리오스가 하기로 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푸시하는 거니까 잘해봐.
강 PD는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본래라면 충분한 성과는 물론이고 밀착 영업까지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프로듀서와 엔터사 대표가 매일 술을 마시는 이유 중 하나가 소속 연예인들이 보다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런데 강 PD는 그냥 해준다고 했다.
그것도 엔딩 자리를 말이다.
-올리오스 애들 내가 좋게 보고 있거든. 데스크에 올라가면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얼마 없겠지만, 기회 되면 종종 이렇게 도움 줄 테니 잘 써먹어. 대신 나중에 잘 되고 나서 우리 방송사 예능에도 애들 출연시켜 주고 그래.
어쩐지 다른 음방 PD들도 좋은 소식 있을 거라며 말하더니.
데뷔 때부터 유독 올리오스를 아꼈던 강윤석 PD였다.
“후우, 강윤석 PD, 아니 이제는 부장님이라고 해야 하나. 고맙다고 술이나 한잔 사야겠다.”
이건 사지 않으면 황 프로가 더 불편할 정도였다.
“잘 되겠네. 이번 앨범도….”
창가에 비치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황이서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