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For you’의 촬영은 순조로웠다.
첫날 첫 씬에서 보여준 건하의 연기 덕분에 현장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자극받은 다른 멤버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컨디션으로 연기에 임했다.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아마 해가 진 저녁에 찍어야 할 씬이 없었다면 오후 4시에 끝났을 거다.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올리오스 애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퇴장했다.
“감독님, 저 친구들 참 보기 좋죠?”
보조 프로듀서인 장원효 PD가 웃으며 말했다.
일머리도 좋고 싹싹해서 이 감독이 직접 키우고 있는 후배였다.
여자 아이돌을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는 장원효 PD의 눈에 꿀이 떨어지고 있었다.
촬영하는 내내 올리오스 애들을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발단은 그거였다.
오늘 촬영을 순조롭게 만든 그 녀석.
윤건하의 눈물 연기.
울면서도 웃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태연함을 가장하는 남자의 모습.
아무래도 이 녀석, 윤건하의 그 연기에 반해버린 듯했다.
이해는 한다.
어떤 연출자가 그 연기를 보고 반하지 않을까.
당장 자신마저도 계속 그 연기가 생각나곤 했는데.
‘미치긴 했지.’
하지만 굳이 더 언급하지는 않았다.
올리오스는 팀이다.
윤건하의 연기는 대단했지만, 결국 5명이 화합을 맞춰야만 팀에 더 활력이 일어났다.
그걸 잘 아는 이만호였기에 감독으로서 최대한 윤건하의 칭찬을 아끼고 다른 멤버들을 띄워줬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여유롭게 웃던 윤건하도 봤다.
‘능구렁이 같은 놈.’
자신의 의도를 알고 있다는 거겠지.
이만호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놀려는 배우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건하의 그 여유로운 미소를 보고서도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다.
감독의 머리 위에서 놀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하려는 게 보였으니까.
“참 정이 가는 애들이야. 그렇지?”
“맞습니다.”
이만호 감독은 스튜디오를 나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는 올리오스를 바라보았다.
문득 자신의 옆에서 올리오스를 보며 눈을 빛내는 장원효 PD에게 물었다.
“장 PD.”
“예, 감독님.”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뭐, 뭐를 말씀이십니까?”
“저 친구들, 올리오스 말이야. 몬스터즈를 넘어서 GH의 대표 아이돌이 될 수 있을까?”
이만호 감독의 말에 장원효 PD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장원효 PD는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있다고 해도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적어도 3~4년은 더 있어야 할 텐데요. 그리고 그때쯤이면 몬스터즈도 이제 아이돌보단 개별 활동을 할 거고요. 그리고 같은 소속사끼리 굳이 대결 구도를 만들 이유가 없으니, 넘는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객관적인 비교가 어려울 테니까요.”
합리적인 이야기였다.
GH 엔터에서도 굳이 같은 소속사의 두 그룹을 같은 시기에 내몰지는 않을 거다.
심하면 같은 해에는 활동을 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건 GH 엔터 사정이고.
단지 뮤직비디오 감독일 뿐인 이만호 감독은 그런 가정을 전부 지우고 두 그룹을 바라봤다.
떠오르는 신성.
첫 시작은 몬스터즈의 시작보다 훨씬 미비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2집 정규 앨범. 그것도 고작 6개월의 텀을 두고 나오는 앨범이다.
하지만 그 퀄리티가 남달랐다.
정규 1집이었던 도 좋았지만, 이번 앨범인 는 느낌이 더 좋다.
이 바닥에서 십수 년간 지내오면서 생긴 감이라는 게 있다.
그 감이 말하고 있었다.
적어도 같은 시기의 몬스터즈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는 걸.
“내 생각엔, 머지않아 넘을 거다.”
“감독님은 벌써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직은 가능성의 이야기지.”
이만호 감독은 몬스터즈가 태동할 때부터 그들을 지켜봤었다.
그리고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몬스터즈의 성공과 영광을 GH 엔터의 관계자만큼이나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었다.
오히려 GH 엔터의 사람이 아니기에 보이는 것도 있었다.
몬스터즈에게는 다른 그룹에게는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 특별함이 그들을 최정상 그룹에 올려놓았고.
그리고 올리오스는 그런 몬스터즈에게 없는 매력이 있었다.
아직 그게 뭔지 이만호도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오늘 촬영장에서 보여준 올리오스의 모습이 그 매력이라는 것을.
자리한 사람들을 모두 홀리게 만드는 것도 모자라, 처음 보는 PD와 스태프들을 전부 자신의 팬으로 만드는 매력.
출중한 실력과 빛나는 외모.
그리고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겸손한 모습과 멤버끼리 잘 어울리는 케미까지.
“그리고 몬스터즈를 뛰어넘는다면, 그건 세계에서도 먹힌다는 뜻이지.”
올리오스를 태운 차가 현장을 떠났다.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고쳐 쓴 이만호 감독은 이 분위기를 이끈 윤건하의 연기를 다시 돌려보았다.
그가 보는 건 반주 하나 없이 오로지 건하의 연기만 펼쳐지는 무편집본.
하지만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귓가에 ‘For you’의 반주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전율에 떨게 만들었던 연기력.
이만호 감독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다시 보는데도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하, 진짜 물건이네.”
이게 시작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윤건하와, 춤을 출 때만큼은 다른 사람이 되는 안호진,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음색으로 보컬을 찢어버린 유성훈과 귀여움과 발랄함으로 계속해서 촬영장의 분위기를 올려주는 최우주.
마지막으로 이 곡을 만든 정민까지.
‘이거야.’
올리오스가 가진 특별함.
각 멤버들이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것.
멤버 개개인은 몬스터즈보다 한참 부족할 수 있지만,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한 올리오스는 서로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해 장점이 돋보였다.
이만호는 그게 올리오스의 매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완벽한 케미와 하모니….”
이걸 계속 유지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올리오스가 무너질 일은 없을 거라고 이만호는 생각했다.
“참 재밌는 그룹이야.”
이만호 감독은 올리오스의 영상을 감상하며 홀로 되뇌었다.
* * *
3일간 ‘For you’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숙소와 촬영장을 오가며 뮤직비디오에 전념했다.
‘For you’의 촬영은 여러모로 까다로웠다.
특히.
“건하 군, 거기서는 감정이 격양되는 걸 표현하는 것보다는 첫 씬에서 보여준 것처럼 차가운 분노를 보여주는 게 낫지 않겠어?”
첫 씬에서 보여줬던 임팩트 때문이었을까.
이만호 감독의 디렉팅이 조금 더 까다로워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조목조목 지시해가며 내 연기를 지도했다.
누가 봤다면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영화 촬영을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원래는 없었던 장면까지 추가했다.
“건하 군의 연기력이 좋으니, 몇 장면을 더 넣었습니다. 편집할 수 있는 소스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나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 역시 NG 없이 금방 OK 사인을 받은 덕분이었다.
남는 시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 추가 촬영분을 몇 개 더 뽑아냈다.
촬영을 마친 이만호 감독이 엄지를 치켜세웠으니, 굳이 말이 더 필요할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For you’ 촬영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솔직히 이 이상으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몰입해서 촬영에 임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내일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눴다.
물론 당장 내일 ‘유화’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다시 만나겠지만, 그래도 하나를 무사히 끝냈다는 의미로 나누는 인사였다.
조금은 홀가분했다.
“고생 많았어요. 내일도 지금처럼만 하면 금방 끝날 거 같네요.”
이만호 감독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유화’의 촬영은 ‘For you’보다 훨씬 순조로웠다.
이미지가 강렬한 음악인 ‘유화’.
섬세한 연기가 필요했던 ‘For you’와는 다르게 몽환적이면서 강렬한 표정 연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갔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네온사인,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조명 등 그런 연기를 보조할 수 있는 장비도 많았다.
확실히 두 개의 뮤직비디오가 갖는 컨셉이 확고하게 달랐다.
예상했던 것보다 촬영이 빨리 끝났다.
우리는 유화의 촬영을 시작하고 3일째 되는 오전에 모든 촬영을 마무리했다.
이만호 감독은 ‘For you’ 때와는 달리 추가적인 촬영을 따로 부탁하지 않았다.
“이거면 돼. 연기력보다 올리오스 너희의 멋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 뮤직비디오니까.”
그런 이유로 생각보다 빨리 촬영이 끝났다.
촬영장을 정리하는 스태프들도 이른 퇴근이 기뻤는지 다들 싱글벙글이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촬영장을 떠나려는데, 이만호 감독이 나를 따로 불렀다.
“건하 군, 잠깐만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내가 좀 고민을 했거든요. 이번 일주일간 올리오스랑 같이 작업하면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
나를 보는 눈에 열망이 가득 들어찼다.
얼마 전 든 생각인데, 예능 능력치는 연기력에도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예능 A를 찍은 뒤부터 스스로 느껴질 정도로 연기력이 확 늘었으니까.
그 때문인지 이번 뮤직비디오 촬영 때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그림이 잘 나왔다.
그거 때문에 연기 관련한 제안을 하려는 거라면, 거절할 생각이었다.
아직은 아이돌 쪽에 전념할 때라고.
“커흠, 싸인 좀 부탁합니다.”
“…네?”
“물론 다른 멤버 분들에게도 싸인을 부탁드릴 건데, 가능하면 첫 싸인을 건하 군의 것으로 받고 싶어서요.”
“…….”
예상치도 못한 말에 상황 인식이 한 발짝 늦었다.
나는 이만호 감독의 손에 들린 펜과 종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저희 싸인이요? 1집 뮤비 찍을 때는 안 받지 않으셨나요?”
“그래요. 내가 원래 같이 작업하는 연예인들 싸인을 받는 스타일이 아니긴 한데…. 이번에 2집 작업하면서 올리오스 멤버들 건 받아둘 필요가 있을 거 같아서요.”
이만호 감독이 얇은 손가락으로 턱을 긁었다.
“나중에 올리오스가 세계적으로 성공했을 때, 내가 같이 작업한 감독이라고 자랑 좀 하려고 그럽니다.”
“세계적인 성공…. 말입니까?”
“그래요. 이번에 보였거든. 올리오스가 세계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 되는 미래가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라 나도 모르게 벙찐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이만호 감독과 함께 작업한 건 고작 6일, 이전 뮤직비디오 작업을 다 합쳐도 2주가 채 되지 않았다.
“미리 좋은 자리를 선점해 둬야죠. 나중에 술자리에서 자랑도 좀 할 생각이에요. 봐라! 나는 쟤들이 성공할 줄 알았다고! 라고 말이죠.”
연기 톤으로 외친 이만호 감독이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나는 담담하게 인사하며 그가 내민 펜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팬들에게 해줬던 것과 같은 싸인을 종이에 휘갈겼다.
나름대로 고심해서 만들었던 싸인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싸인도 멋있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나야말로 고맙죠. 덕분에 좋은 작품 하나 만들 거 같거든요.”
싸인지를 받아든 이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올리오스가 앞으로도 승승장구하길 언제나 응원할게요.”
그는 다른 멤버들에게도 종이를 들고 찾아갔다.
올리오스의 팬이 한 명 더 늘었다.
* * *
“선배님, 이번이 뮤직에어 담당하는 마지막 방송 아닙니까?”
지상파 방송국 YBC의 음악방송 뮤직에어의 강윤석 PD는 후배의 축하를 들으며 껄껄 웃었다.
“그래. 이제 마지막이지.”
이제는 현장에서 데스크로 올라가는 강 PD였다.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받아 이번 달에 예능국 부장으로 승진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마지막 방송이 오늘 뮤직에어 녹화였다.
“아, 근데 그거 들으셨습니까? 선배님이 예전에 기대된다고 하셨던 올리오스 걔들, 다음 달에 컴백 한다던데요.”
“벌써 그렇게 됐나?”
앨범 활동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열정 하나만큼은 대단한 그룹이었다.
“가기 전에 선물 하나 주고 가야겠네.”
모니터를 바라보던 강 PD가 나지막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