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너튜브 쇼츠와 SNS에 올릴 영상을 만들자는 안건이 순식간에 통과되는 것과 별개로, 뮤직비디오 촬영 시간이 다가왔다.
“콘티 확인하셨죠?”
“네!”
이미 한 번 같이 해봤던 감독님이라 소통의 과정은 빠르고 간결했다.
우리도 긴장을 거의 하지 않아 순조롭게 준비를 이어갔다.
‘For you’를 위한 메이크업을 전부 마친 우리는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안무를 맞춰보며 촬영을 준비했다.
보다 진하고 강렬한 화장이 필요한 ‘유화’를 찍기 전에 준비 운동 느낌으로 생각하면 좋을 거라고 감독님이 디렉팅했다.
“건하 군, 잠깐만 와볼래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뮤직비디오 감독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무슨 일이신가요?”
“건하 군에겐 미리 얘기를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이번 ‘For you’의 뮤직드라마, 건하 군이 주인공인 거 아시죠?”
“예, 콘티 보고 대충 눈치챘습니다.”
내 1인 단독샷으로 시작되는 뮤직비디오, 그리고 단체샷에서 센터인 것을 비롯해 자잘한 신들에서도 유독 내 분량이 많았다.
내가 비주얼 센터라 그런 거 같은데, 그걸 생각해도 분량 자체가 많았다.
이전 앨범인 ‘All we once’의 뮤비는 분량이 꽤나 균일했던 것에 비해 다소 치우쳐졌다.
“아무래도 뮤직비디오에선 연기력이 제일 좋은 건하 군을 메인으로 가져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그렇군요.”
“그러니 건하 군의 역할이 제일 중요합니다.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확실한 컨셉을 가져, 강렬한 분장과 날카로운 이미지를 주면 절반은 성공하는 ‘유화’와는 달리 ‘For you’는 섬세한 연기가 필요했다.
조금만 미숙하면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영상이었다.
그걸 알기에 감독님이 따로 부른 걸 테지.
“그리고, 따로 디렉팅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요.”
“어떤 부분인가요?”
감독님이 오늘 자 콘티의 가장 첫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천장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부분 말입니다. 적어놓기엔 슬픈 얼굴이라고 적었는데, 부가 설명이 필요할 거 같아서요.”
“듣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연인 혹은 님과의 이별에 슬프지만, 슬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나를 찾아내겠다는 각오. 그런 각오를 다지는 느낌을 연출해주시면 됩니다.”
“주인공이 성장했다는 의미인가요?”
“맞습니다. 이별의 슬픔을 통해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는 신이죠.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으으음.
감독님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필요한 건 맞았지만, 감독님이 말한 것은 결이 달랐다.
‘For you’.
자신을 떠나는 연인에게 본심을 숨기며, 너를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사랑 노래였다.
그래. 본심을 숨기는 것.
만약 뮤비 속 주인공이 웃는다면 그건 떠나는 너를 상처입히지 않기 위함이었다.
내 슬픔을 억지로 삼키고 숨겨서 너를 보내는 것.
그게 이 노래의 컨셉이었다.
“감독님, 감정의 근원을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할 거 같습니다.”
“다르게 접근하자고요?”
“예.”
“회의 때는 별말 없으셨던 것 같은데, 생각이 바뀌신 이유가 있을까요?”
“표정에 대한 디테일을 듣고 나니, 떠오르는 게 있어서요”
“흠, 어떤 식으로 접근하자는 건가요?”
나는 콘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거짓된 표정이에요. 떠나는 사람에게 마지막까지 좋은 기억을 남기기 위한 겁쟁이의 가면이죠. 슬픔이 들어찬 마지막에 억지로 웃어야 한다면, 그건 자기 감정을 숨기기 위한 것이어야만 해요.”
“자기 감정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라…. 그럼 느낌이 확실히 달라지겠네요.”
“예. 저는 이 장면을 그렇게 살리고 싶어요.”
내 말을 듣고 있던 감독님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의도인지 알겠네요. 좋습니다. 이 부분은 건하 군이 말한 대로 가죠.”
“감사합니다.”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이자, 감독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건하 군은 익숙하네요.”
“뭐가 말인가요?”
“프로젝트에 대해 자기 의견을 내는 게 말이에요. 순간 저희 대표님이랑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어요.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싶네요.”
사업가 시절 본능이 나왔다.
내가 성공할 거라 확신하는 의견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상대를 설득하는 자세 말이다.
감독님은 내가 윤택수의 아들이라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른 인생을 살았던 빙의자여서 능숙하다는 말보다는, 아빠를 닮았다는 말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으니까.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독님.”
“하하, 내가 할 말이에요. 잘 해봐요.”
감독님과 짧은 디렉팅을 마친 나는 카메라 뒤에서 준비하는 멤버들에게 다가갔다.
“형, 감독님이 뭐라고 하셨어?”
“오늘 마지막 촬영에 대한 간단한 디렉팅을 받았어.”
“아까 콘티 보니까 형이 거의 주인공이더라.”
그렇게 잠시 떠들고 있으니, 준비가 다 됐는지 감독님이 신호를 보냈다.
“건하 군, 세팅해 주세요!”
나는 인이어를 낀 채로 카메라 앞에 나섰다.
음향이 물리면 안 되기 때문에 뮤직비디오 촬영 중에는 이 인이어에서만 노래가 나온다.
우리야 반주가 나오면 수없이 연습했던 대로 춤을 추면 그만이었다.
다만 현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반주로 연기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처럼 보일 거다.
생각하니 조금 민망할지도.
감독, 스태프들, 매니저와 카메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멤버들까지 전부 나를 주시했다.
카메라 앞에 홀로 선다는 것.
외로운 일이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동시에 가슴이 떨리는 일이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으며 성공하는 스토리.
해낼 것을 생각하면 더없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아닌가.
그렇기에 더욱 떨렸다.
약간의 긴장감이 내 기분을 더욱 고조시켰다.
두근두근.
잠시 눈을 감으며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통통 뛰는 심장의 소리가 마치 지금의 내 기분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좋아. 컨디션은 최고야.’
머릿속에서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그렸다.
이별을 선고받은 주인공,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자는 하늘을 바라보며 슬픔을 최대한 억누른다.
아까 말한 감독님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표현해야 할 감정 역시 되새겼다.
가만히 눈을 떴다.
“스탠바이! 다들 조용히 해주시고요. 바로 들어 가겠습니다! 3, 2, 1, 액션!”
나를 위에서 찍는 지미집 카메라에 빨간 불빛이 들어왔다.
동시에 ‘For you’의 전주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만나자.’
시뮬레이션 속 여자가 말한다.
충격적인 말에 나도 모르게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
입꼬리가 떨리고, 미간이 일그러진다.
내 마음처럼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아.
눈물이 맺힌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지만,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최대한 눈가에 힘을 줬다.
내게 헤어지자 말한 그녀에게 억지로 웃어 보인다.
내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나는 상처받지 않았어.
네가 헤어지자는 말에 울거나 슬퍼하지 않아.
멀쩡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웃었지만, 이미 한계까지 차오른 눈물은 내가 웃자마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아, 티를 내서는 안 되는데.
자꾸만 눈물이 흐르려고 한다.
최대한 참자.
참아야 해.
눈물을 감추기 위해 천장을 바라본 내 눈이 천천히 내려가며 나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를 향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 귓가에는 ‘For you’의 감미로운 반주가 들렸다.
가사가 들린다.
그대라는 사람을 만나
나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내 상황과는 모순되는 가사에 다시 한번 눈물이 터질 거 같았고, 나는 최대한 숨을 고르며 입꼬리를 올렸다.
웃었다.
그저 웃을 뿐이었다.
* * *
현장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뮤직비디오 감독 이만호는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현장을 만든 윤건하를 보았다.
미친 몰입력이었다.
디렉팅 할 때 그가 얘기하던 디테일한 설정,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고스란히 드러난 연기였다.
아이돌 수준을 뛰어넘은 연기에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전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쳤네.’
지금껏 많은 아이돌을 보고, 많은 가수와 뮤직비디오 작업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처럼 파괴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배우조차도 이런 연기를 하지 못한다.
강한 슬픔과 분노만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건 연기를 배운 많은 이들이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잔잔한 연기만으로 몰입력을 갖는다는 건 다른 얘기였다.
건하는 그걸 해내고 있었다.
대사 하나 없이 표정만으로 이들의 감정을 모두 일깨웠다.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다들 한 번쯤은 이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거다.
그것은 연인 간의 이별일지도, 친구와의 이별일지도 그게 아니라면 가족과의 이별일지도 모른다.
학교에 가기 위해, 출근을 위해 겪는 짧은 이별부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까지.
이별을 겪지 못한 이는 거의 없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은 각자가 가진 이별의 기억과 감정을 건하를 통해 다시금 일깨우고 떠올렸다.
눈물이 맺힌 사람들도 있었다.
문득 구희성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건하 얘 연기 진짜 잘해요. 감독님도 보시면 놀랄걸요?’
우연히 만나서 했던 얘기였다.
저 얘기가 나온 이유가 아마 아이돌 중에서 구희성이 연기를 제일 잘할 거라는 말이 나와서였다.
그 말을 들은 구희성이 자신도 좋게 보는 후배가 있었다고 했다.
그게 윤건하라고도 들었다.
잘하면 얼마나 잘할까 싶었다.
왜냐면 이미 한 번 같이 작업을 했으니까.
그러나 그때는 이 정도로 감정을 건드리는, 깊이 있는 연기를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만호 감독이 느끼는 충격은 더욱 컸다.
그는 화면 안에서 카메라를 보는 윤건하가 입을 열 때까지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감독님, 아직 더해야 할까요?”
“아…. 미안합니다.”
무려 2분.
윤건하는 이 감독이 말을 잊고 연기를 감상하는 2분간 계속해서 홀로 연기를 이어갔다.
이 감독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신호를 보냈다.
“오케이, 좋습니다. 이거 앞부분이랑 뒷부분까지 다 같이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죠.”
이 감독의 신호가 들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스타일리스트들이 윤건하의 눈물을 닦아주고 화장을 고쳤다.
“형! 방금 연기 뭐야? 나 그 연기 보다가 눈물 글썽거렸잖아.”
올리오스 멤버들이 건하의 연기에 감탄하며 다가갔다.
감수성이 풍부한 애들이라 건하의 연기에 감화되었는지 눈가가 벌갰다.
‘이대로는 못하겠네.’
아무리 편집으로 잘 만들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예 만지지 않는 것에 비해 많이 어색했다.
굳이 편집을 하는 데에 품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최소 30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한 첫 씬이었다.
그걸 고작 2분 만에 끝내 버렸으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
“스타들 눈가 부은 거 가라앉히고 바로 다음 촬영 가겠습니다!”
“넵!”
“그동안 스태프들은 현장 세팅 해주시고, 조명팀이랑 오디오팀은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죠.”
아무래도 오늘 촬영은 여러 가지 의미로 재밌어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