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입금 시스템]
[‘윤건하’가 번 돈을 이용해 포인트를 추가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교환 비율: 100원당 1포인트]
[현재 사용 가능 금액: 450만 원]
그러니까, 지금 이 돈으로도 포인트를 살 수 있다는 거지?
방으로 돌아온 나는 핸드폰에 뜬 새로운 시스템을 몇 번이고 읽었다.
“입금 시스템이라.”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천억이 넘는 오픈 마일리지로 얻는 포인트보단 훨씬 적은 양이라는 거다.
450만 원.
이걸 전부 전환한다면 4만5천 포인트.
이제는 이걸로 레벨업을 하기엔 나는 너무 높이 올라왔다.
다만.
‘원래 세계의 돈을 더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지.’
일정 이상의 돈을 꾸준히 벌 수만 있다면 말이다.
“흠, 나쁘지는 않은 거 같은데.”
지금까지는 진엔딩을 보기 위해서, 내 성장을 위해서 원래 세계의 돈을 계속해서 써왔다.
내가 왔던 원래 세계의 통장의 돈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물론 그 돈이 아깝다거나, 돌아갔을 때에 대한 걱정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난 지금의 아이돌 활동을 위해서라면 현실에서의 돈이 아깝지 않았고, 무일푼이 된다 하더라도 다시 복구할 수 있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하지만 이뤄야 할 게 남은 상황에서도 마일리지 포인트로 얻을 수 있는 돈이 다 떨어진다면?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더 많은 고비들을 넘겨야 하는데, 스탯을 올리지 않거나 스킬을 구입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소모하는 포인트를 줄이거나, 다른 포인트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만 한다.
‘나쁘지는 않아.’
입금 시스템을 메인으로 쓸 수는 없겠지만, 부수입을 통해 포인트 사용의 효율을 높이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 말이야.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나는 인터넷 뱅킹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금 411,639,410원
약 4억 1163만원.
이게 내가 지닌 돈이었다.
스킬 뽑기로 얻은 재화가 약 4억, 그리고 아이돌 활동으로 얻은 돈이 450만원.
그런데 내가 입금 시스템으로 쓸 수 있는 돈은 고작 450만원이 전부.
그렇다는 건 역시.
‘스킬로 얻은 돈은 재입금이 불가능하다는 건가.’
하긴, 그렇게 되면 재화로 재화를 계속해서 생성하는 (무한 동력이 구축될 수도 있을 테니까.
시스템 자체가 그런 편법을 막겠다는 걸 거다.
그렇다는 건 역시, 이 세계에서 번 돈만을 입금 시스템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거겠지.
‘원래 세계의 돈을 쓰기 싫으면 이곳의 돈을 벌어서 쓰라는 거냐.’
재밌네.
아주 재밌어.
내게 돈을 벌라고 권유하다니 말이야.
오랜만에 사업가 윤건하의 피가 끓어올랐다.
‘게임 시스템으로 얻은 돈은 입금 시스템으로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그렇다면 말이다.
“이 돈을 굴려서 이 세계에서 번 돈은 통하겠지?”
나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치 시스템에게 묻듯이 말이다.
당연하겠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침묵.
그리고 난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해석했다.
“자세한 건 확인해보면 되겠지.”
돈을 굴려서 불려 보자.
그러고 나면 알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불린 차액은 시스템으로 입금이 가능할지.
그런데 뭘로 돈을 벌지?
방법은 많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대중에게 미운털을 박히지 않고 재벌가의 자제가 돈놀이한다는 이미지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은 신중하게 접근해야만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부동산이었다.
자본만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을 통한 재테크는 상당히 유효한 편이니 말이다.
‘후보 중에 하나로 넣어도 괜찮겠어.’
한국에서 부동산은 불패라는 격언이 있지만, 생각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실제 가치에 비해 저평가를 받거나, 호재가 있는 매물을 찾을 수고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계속 정보를 발품 팔아야 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은 불가능하지.’
내일부터 다시 앨범 준비에 들어간다.
심지어 주말에도 연습실에 박혀 있을 예정이다.
부동산을 알아볼 시간은커녕, 연습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돈을 벌 시간은 많으니, 조금만 더 차근하게 생각해보자.
주말이 지나면 당장 월요일에 뮤직비디오 촬영도 있었다.
“왜 이렇게 바쁘냐.”
사업가일 때보다 더 바쁜 거 같아.
* * *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는 날.
이 촬영이 끝나면 <유화>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바로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엊그제는 로비 막스랑 화보 촬영에 오늘은 우리 뮤직비디오 촬영…….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나 이러다 진짜 쓰러져. 으으.”
우주가 축 늘어진 채로 투덜거렸다.
식단까지 빡세게 하는 터라 우리 중에서도 유독 힘들어했다.
이토록 지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과거 우주카페를 겸하면서 활동을 할 때도 이렇게 지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는 먹는 게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도 통제를 당하니, 버틸 힘조차 나지 않는 걸 거다.
목표 몸무게는 찍었지만, 보기 좋은 몸매를 만들기 위한 시련의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만 더 참아. 뮤직비디오까지 잘 찍으면 내가 프로듀서님 몰래 오븐 구이 치킨 사줄게.”
이두현이 미끼를 던지며 지친 우주의 등을 토닥였다.
“정말요?”
치킨 이야기에 우주가 보물상자를 찾은 모험가처럼 눈을 반짝였다.
“물론이지.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이두현이 지친 우주의 의욕을 돋굴 무기로 치킨을 선택한 거다.
“그 말 꼭 지켜주셔야 해요.”
“걱정 마. 법인카드는 이미 준비돼 있어.”
그렇게 떠들다 보니, 현장을 지휘하던 뮤직비디오 감독이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 왔네요. 오랜만이에요.”
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해 주셨던 감독님이었다.
이번 두 뮤직비디오를 모두 담당하는 뮤직비디오의 총감독이자, 이미 실력이 검증된 사람이었다.
“우리 컨셉은 다 들었죠?”
“네, 황 프로듀서님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이건 영상 콘티예요. 저번에 확인했죠? 몇 군데 변경된 곳이 있어서 공유하려고 가지고 왔어요.”
뮤비 감독님이 우리에게 종이 뭉치를 건넸다.
간단한 그림으로 그려진 뮤직비디오 콘티가 가득이었다.
그림 콘티 옆에서는 배우가 움직여야 하는 방향, 빛의 색깔과 쏘아지는 정도, 표정 등이 디테일하게 적혀 있었다.
“‘For you’에서 갖는 감정과 ‘유화’가 갖는 감정이 너무 달라서 걱정이긴 합니다. 두 작품을 연달아 찍는 일정이다보니, 여러분들이 그 감정을 잘 살릴 수 있을지…….”
감독님은 2개의 뮤비를 찍기 위해 일주일을 원했다고 한다.
3일 녹화를 마치고 하루를 쉰 후에 <유화>를 촬영하는 방식으로.
하지만 GH 엔터는 한 번 살린 감을 죽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2개의 녹화를 모두 마치고 하루의 휴식을 주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예산 문제 때문일 거다.
그 때문에 앞으로 6일 동안 각기 다른 2개의 뮤직 비디오 녹화를 들어갈 예정이었다.
“가능해요. 못할 것도 없죠.”
두 작품의 컨셉이 미묘하게 다르지만, 촬영에 있어 디테일한 연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다른 멤버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얘기를 했고, 이미 뮤직비디오를 몇 번 찍어본 경험을 떠올리자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겼다.
“좋습니다. 앞에 거는 ‘For you’의 뮤직비디오 콘티고, 뒤에 거는 ‘유화’의 콘티예요. 유화는 가볍게 보고 오늘은 ‘For you’에만 집중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메이크업 받으면서 콘티를 한 번 더 확인해주세요.”
“네.”
콘티를 받아든 우리는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분장실로 들어갔다.
메이크업을 받지 않는 멤버들은 콘티를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촬영을 준비했다.
“생각보다 떨리지는 않네. 저번에 로비 막스 화보를 찍어서 그런가?”
메이크업을 받던 정민이 말했다.
“그래?”
“저번에는 몬스터즈 선배들도 옆에 있고, 선배들에 비해서 밀리면 안 된다는 불안감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서 그런가.”
로비 막스의 화보 촬영 때가 살벌하긴 했지.
분위기 자체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몬스터즈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우리들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했었다.
막상 촬영에 들어간 이후에는 다들 긴장을 풀었지만, 그 직전까지는 압박감에 짓눌려 있었다.
“나도 자신있어. 이번에 잘 찍을 수 있을 거 같아.”
호진이도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적당한 긴장, 그리고 적당한 설렘, 기분좋은 기대감이 분장실을 가득 채웠다.
“두현이 형, 혹시 저 춤 추는 것 좀 따로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거울을 보며 춤을 추던 호진이 물었다.
“찍어달라고?”
“네. 제가 화면에 어떻게 담기는지 보고 싶어서요.”
“그래. 한번 춰봐.”
“건하야, 옆에서 음악을 틀어주라.”
“그래.”
이두현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었고, 호진이 그 앞에서 춤을 췄다.
나는 그런 호진의 옆에서 핸드폰을 든 채로 의 반주를 틀었다.
-♬♪♩♬♪~.
호진이 전주에 맞춰 몸을 끄덕거리다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고 있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긴 팔과 다리, 역동적인 움직임, 부드럽게 이어야 할 부분과 짧게 끊어쳐야 하는 부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춤사위.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리듬을 타게 만드는 흥이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든 채로 옆에서 호진의 춤에 맞춰 내 안무를 따로 췄다.
‘어차피 나를 찍고 있지는 않으니까.’
카메라를 세로로 든 채로 호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화면에 들어갈 틈은 없을 거다.
콧노래는 최대한 삼키며 호진에게서 살짝 떨어진 위치에서 춤을 췄다.
신이 났다.
연습실이 아닌 곳에서 춤을 추는 것만으로도 마치 무대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다.’
나도 모르게 지금 추는 춤에 몰두해버렸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나를 힐끗 본 이두현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난 걸.
그런 이두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약 1분 30초가 지나고, 1절이 끝났다.
“어땠어요?”
“직접 보는 게 더 좋을 거 같은데?”
호진의 질문에 이두현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잘 나왔나본데?
이두현이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낸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호진과 함께 이두현이 찍은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
“어?”
영상 초반에는 호진이 춤을 추는 모습이 담겼다.
혼자서 춤을 추는 호진의 옆에서 핸드폰을 든 알 수 없는 손이 들어갔다 나가며 보는 사람을 애태웠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나는 카메라.
눈을 감은 채로 노래를 만끽하는 내가 등장했다.
카메라 따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로 노래에 취한 윤건하.
눈을 감은 채로 건들거리며 호진과 호흡을 딱 맞추는 내 모습이 웃기면서도 묘하게 눈길이 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카메라 의식을 전혀 하지 않은 내 모습은 부끄러울 정도로 꼴사나웠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형, 언제 찍은 거예요?”
나는 이두현을 보았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말도 안 하고 한 걸음 물러나서 나까지 찍었다고?
“이걸 SNS 업로드용으로 쓰는 거 어때? 혹시 알아? 이것도 무슨무슨 챌린지 같은 것처럼 유행 탈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당황한 건 처음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보기 좋은지, 이두현이 큭큭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 그래? 나는 진짜 멋있는데! 아이돌이 카메라 의식하지 않고, 정말 순수하게 진심으로 노래를 즐기는 느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두현이 진심으로 영상에 담긴 나를 멋지게 느낀다는 걸 깨달았다.
“진심이에요?”
“당연하지! 이거 SNS에 올리면 반응 무조건 좋을 거야! 영상 초반에 팔만 나와서 게스트가 누군지 궁금하게 만들기도 좋고!”
이 형 진심인데.
나는 다른 멤버들을 보았다.
도와달라는 구조 요청이었다.
이두현은 멋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봤을 때는 흑역사나 다름없다고.
살려줘. 애들아.
하지만 그런 내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이거 진짜 괜찮다.”
“나는 두현이 형 의견에 찬성!”
“나도!”
이곳 분장실에서 내 편은 한 명도 없었다.
너무하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