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흐으음.”
에터슨, 현재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상업 사진 작가.
그가 찍은 패션 사진은 사진에 문외한이어도 감탄을 금치 못하고, 기업에선 모셔가기로 유명했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만큼 모델을 보는 것에 있어 확고한 기준을 갖고 있었다.
에터슨이 생각하는 최고의 모델이란, 단순히 잘생긴 외모만으로 완성되는 건 아니었다.
외모를 비롯한 신체 조건은 물론이고 직업에 대한 자세도 중요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우라.
모델이 갖는 아우라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그 아우라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사진 작가여도 모델을 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외모가 부족해 보여도 아우라만 있다면 최고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결국 외모란, 관습적인 기준에 따른 평가에 불과하니까.
그게 에터슨의 생각이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런 아우라를 가진 이들은 일반적으로 잘생겼다고 하는 경우가 다수였기에, 지금까지 에터슨이 작업한 모델은 전부 외모가 출중했지만 말이다.
에터슨이 몬스터즈와 함께하겠다고 했던 것도 그들에게서 그런 아우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모델들만이 보이는 아우라.
그런데 말이다.
“한국에는 놀라운 재능이 많네.”
에터슨은 평생 몇 번 보지 못한 찬란한 아우라를, 몬스터즈와 함께 온 올리오스라는 아이돌 그룹에게서 보았다.
올리오스.
몬스터즈의 후배로, 이번에 로비 막스에서 부탁한 화보 모델이 된 한국의 K-POP 아이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누구인지도 몰랐다.
에터슨에게 관심사는 몬스터즈 하나뿐이었으니까.
그가 이번 작업을 받아들인 것도 몬스터즈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저 몬스터즈가 아끼는 후배라는 정도밖에 몰랐는데.
“훌륭하네.”
찰칵! 찰칵!
셔터를 누를 때마다 담기는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사진에 담기는 순간순간이 모두 매력이 넘쳤다.
예술혼을 끌어올린다고 해야 할까.
상업 작가에게도 예술혼은 존재한다.
어떻게 해야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대중성과 동시에 예술성도 가지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언제나 그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예술혼이 에터슨을 미국에서 제일가는 상업 작가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아주 재밌어.”
에터슨은 잠시 카메라에서 눈을 뗀 채 올리오스를 보았다.
리더로 보이는 금발 남자에게서 강렬한 아우라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의 아우라가 주위에 있는 멤버들에게 퍼지고, 그들의 시너지가 폭발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누군가 한 명이 부족한 것도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기분 좋은 사진을 연출하지도 못했을 거다.
특히 제일 첫 사진.
특별한 컨셉 없이, 촬영 직전에 보여주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조화.
컨셉을 잡고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카메라를 노려볼 때보다 훨씬 좋은 느낌을 주었다.
그림이 재밌다.
연출된 상황에서 모두가 탑독이 되어 판을 이끌어가는 몬스터즈가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에터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하는 맛이 났다.
의욕이 차오른 그는 계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마지막 샷까지 그 의욕을 잃지 않았다.
“좋았습니다!”
에터슨이 만족의 의미로 엄지를 올렸다.
아무래도 이번 촬영은 치열할 것 같았다.
* * *
“좋네.”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자 한진성이 담담한 소감을 말했다.
그러나 그 한마디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었다.
진심으로 나오겠다는 한진성이 칭찬할 정도로 좋았다는 거겠지.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이번 촬영이.
“어때요? 이제는 몬스터즈랑 같이 있을 자격이 있나요?”
“하하하! 그건 한참 전에 해냈지.”
가볍게 웃은 한진성이 내게 말했다.
“의도한 거야? 저 사진.”
한진성이 가리킨 건 우리가 가장 먼저 찍었던 사진이었다.
다들 긴장이 풀린 얼굴로 웃는 사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의도한 건 아니었다.
단지 자연스럽게 나온 거다.
거기에 스킬 특성이 제대로 터졌고, 그리고 그걸 에터슨이 찍어줬다.
약간의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진 인생샷이었다.
“운이 좋았죠.”
“그런 운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 실력이라고 하는 거야.”
모니터에 비친 사진들을 보던 한진성이 씨익 웃었다.
좋은 사진이 한 장이 아닌, 여러 장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잠시 뜸을 들이던 한진성이 사진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너희가 사진 찍는 거 보면서 긴장했어.”
“긴장이요?”
“그래, 천하의 한진성이 긴장했다고. 혹시 이번 화보에서 올리오스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말이야.”
“…….”
“물론 후배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건 선배만의 재미지. 그런데 이 스튜디오에서 우리는 선후배지만, 동시에 경쟁자라고도 할 수 있잖아?”
“그렇죠.”
“그래서 긴장이 되더라.”
“농담 마세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성이 형이 긴장이라니요.”
내 말에 모니터를 보던 한진성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눈동자, 웃음기 하나 없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농담의 조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농담 아니야.”
“…….”
얘, 진심이구나.
우리를 보고 긴장했다는 말이 진짜였구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사진 보니까 절대 웃으면서 못 보겠더라.”
말을 마친 한진성이 손을 뻗었다.
“나는 지고 싶지 않거든.”
이기고 진다는 말을 화보 촬영에서 쓸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아마 화보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알 수 있는 걸까?
아니면 화보를 찍은 우리가 서로 감상할 때 느끼는 감정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걸까?
아이돌은 대중에게 보여지는 직업.
아마 이 화보를 본 사람들의 감정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느냐에 대한 차이일 거다.
그 감정이 소비 욕구인지, 아니면 팬들이 보는 선망의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한진성의 반응으로 한 가지는 확신했다.
우리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발전했다는 걸.
더 앞으로 나아갔다는 걸.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선언한 한진성은 카메라 앞에서 슈퍼스타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현장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 덕분에 다들 자극을 받은 듯, 몬스터즈와 올리오스의 멤버 모두 불이 붙은 기세로 카메라 앞에 섰다.
“아주 좋아!”
에터슨의 환호가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
다른 작가들이 카메라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의 열기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졌다.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에요?”
벨트 파트를 찍기로 한 박한솔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할 정도로.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인생샷!]
내가 봐도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이 모니터 화면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 * *
“이번 화보 촬영이 대박 호평이야.”
이틀간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자, 황이서가 한 말이었다.
그는 들떠 있었다.
로비 막스의 브르누가 최강훈에게 직접 전화했다고 했다.
-이번 작업물이 너무 좋습니다. 몬스터즈와 올리오스 두 그룹의 멤버 모두 혼신의 힘을 다했더군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올리오스는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다고 들었습니다. 에터슨 씨가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앞으로도 또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최강훈 대표가 그 말을 듣고 환호를 질렀다고 들었다.
“아주 좋아하시더라. 이번 작업이 단순히 화보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시는 거 같았어.”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그렇게 들떠도 되는 건가요?”
“이례적이니까.”
턱을 한 차례 쓸어내린 황이서가 말을 이었다.
“나도 로비 막스와 좋은 작업을 더 하겠다는 건 너무 이른 얘기가 아닌가 싶지만,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광고를 찍었음에도 이런 반응을 온 건 처음이었다는 거지.”
“최 대표님이나 로비 막스 모두 말이죠?”
“그렇지.”
황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모두가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진 거지. 결과가 좋으면 최고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긍정적으로 볼 요소가 많은 거 같다.”
이 바닥에서 십여 년간 일했던 대표도 놀랄 정도라면 긍정적인 신호로 봐도 좋을 거다.
로비 막스 측에서 직접 따로 전화를 걸었으니.
“그럼 전속 계약을 할 수도 있는 거네요?”
우주가 설레는 목소리로 외쳤다.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지.”
황이서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역시 신중한 듯 보였다.
“굳이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지고 너무 설레하진 마. 그냥 우리도 여기저기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충분하다.”
“네! 알겠습니다!”
목소리에 기운이 넘쳤다.
다들 힘이 가득 들어갔다.
앨범 준비에 화보 촬영까지 있어 힘들 법도 한데,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까.
몬스터즈와 비교해서 나쁘지 않은 결과물을 찍은 덕이겠지.
‘자신감을 얻는다는 건 좋은 현상이야.’
나쁠 게 없었다.
설사 정규 2집에서 실패하더라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애들이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풀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이건 스튜디오에서 보낸 사진이다. 아직 후편집을 하지 않았는데, 가장 잘 나온 걸 보내 줬다더라.”
황이서가 건넨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보며 해맑게 웃는 사진이었다.
“에터슨이 이 사진에 많이 꽂힌 거 같더라고.”
우리는 다들 멍하니 에터슨이 찍어낸 결과물을 보았다.
간단하게 흑백 처리만 한 사진.
위에는 자켓만 입은 채, 복근을 드러낸 다섯 명의 남자가 긴장을 풀고 웃는 사진에서 묘한 정감이 느껴졌다.
“자꾸 보게 되네요.”
“하하, 그렇지? 그 사람도 그게 이 사진의 매력이라고 하더라.”
“에터슨 작가님이요?”
“그래.”
계속 보게 되는 매력.
이게 광고 사진이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사고 싶어지는 욕구를 불러 일으키거나, 사람의 시선을 끄는 매력을 가졌거나.
적어도 하나는 가졌다는 점에서 이 사진은 합격점을 받았던 거다.
“화제성은 가질 거야. 로비 막스가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는 데 도움이 되겠지. 물론 우리한테도 좋은 일이고….”
말을 마친 황이서가 씨익 웃으며 우리를 보았다.
“고생 많았다. 많이 부담됐을 텐데.”
“생각보다 부담 안 되던데요?”
조금은 센 척을 해봤다.
내 목소리에 새겨진 장난기 어린 말투에 황이서와 다른 멤버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그리고 이번에 너희한테 좋은 소식이 있다.”
“정산 얘기군요.”
“기억하고 있었구나.”
“돈 관련 이야기는 잊지 않아서요.”
내 말에 황이서가 다섯 장의 종이를 꺼냈다.
“받아라. 정산 내역서다. 너희한테 이만큼 입금될 거야. 입금되는 날짜는 이틀 뒤, 금요일이고 혹시 그날 지나도 입금 안 되면 바로 연락해라.”
“와…. 감사합니다!”
정산금을 아예 못 받았던 건 아니다.
회사 차원에서 우리의 의욕을 이끌어주기 위해 수입의 일부를 미리 정산해줬다.
하지만 그때와 금액이 달랐을뿐더러, 벌써 투자액의 차감을 끝내고 온전한 우리 몫이 생겼다는 생각에 감격에 겨운 얼굴이었다.
좋아할 만하지.
돈 버는 걸 어느 누가 싫어할까.
드디어 한 사람 몫을 하기 시작한다는 생각도 들 테지.
나는 마지막으로 정산 내역서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궤도에 오른 것을 축하합니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첫 수익금을 내셨네요.]
[입금 시스템이 오픈됩니다.]
입금… 시스템?
[‘윤건하’가 번 돈을 이용해 포인트를 추가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잠깐만,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