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후우, 스튜디오가 엄청 크네.”
메이크업을 마치고 나온 한진성이 커다란 스튜디오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스태프들이 바삐 움직이며 스튜디오의 무대를 채웠다.
다섯 대가 넘는 카메라에 박한솔을 포함한 여러 사진 작가가 사진 컨셉에 대해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눈부신 조명이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고, 처음 보는 기계들이 구석에 놓여 있었다.
“저건 우리가 찍은 사진을 바로 모니터링을 할 수 있게 보여주는 모니터 화면이야.”
같은 곳을 바라보던 한진성이 말했다.
“제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네요.”
“더 크지? 아무래도 스튜디오가 크니까 공간적 여유가 있어서 설치한 거 같더라.”
사진작가가 테스트 용으로 사진을 찍자, 말한 것처럼 모니터에 촬영한 사진이 떴다.
모델도 촬영을 하면서 즉각 볼 수 있는 커다란 화면이었다.
현재 사진을 볼 수 있는 메인 화면 하나와, 이전에 찍은 사진을 모아서 볼 수 있는 보조 모니터 하나가 옆에 모니터 암과 함께 달려 있었다.
“긴장되지 않아?”
내 옆에 선 한진성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되네요.”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을 보여야 후배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을지 생각하고 있거든. 너는 어때?”
“저요?”
“그래.”
나를 보는 한진성의 눈이 반짝거렸다.
“어떻게 해야 선배들보다 더 잘 찍을 수 있을지 고민 중이죠.”
“그래?”
“그래야 올리오스라는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네.”
이미 탑급 아이돌인 몬스터즈와 달리, 올리오스는 그 뒤를 쫓는 명백한 팔로워. 못하지만 않으면 되는 입장이 아닌, 확실히 잘한다는 것을 어필해야만 하는 위치였다.
그리고 슈퍼스타를 상대로 하는 이런 향상심은 더 좋은 결과를 낼 원동력이 될 것이고.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가볍게 웃었다.
“그럼 한번 해봐. 그 이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지.”
“…….”
나는 한진성을 돌아봤다.
“나도 후배 앞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거든. 저번에 말했지? 전력으로 부딪치겠다고.”
“그러셨죠.”
“지금 내 컨디션은 최상이야. 각오하는 게 좋을걸?”
한진성의 컨디션이 좋다라.
비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떨리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우리를 위해 최고의 컨디션을 이끌어 냈다는 말이, 우리에게 전력을 다하겠다는 말이.
동시에 우리를 인정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의 메이크업도 모두 끝났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총괄 촬영 감독의 외침을 신호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로비 막스에서 이번 촬영을 위해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진 작가들을 보내줬다.
박한솔의 말을 빌리자면, 미국에서 최고를 논할 때 언제나 꼽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지금 이 스튜디오에 있는 작가 중에는 그 유명한 앤디 워홀과 함께 작업했던 이들도 있었다.
그만큼 권위 있고 상업성이 증명된 작가들이었다.
국내 최고라고 불리던 박한솔도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합류했다고 할 정도니.
로비 막스가 이번 촬영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좋아, 지금 그 느낌으로 한 번 더 가지. 방금 그 표정보다 조금 더 강렬한 느낌으로.”
현장의 메인 감독이자, 총괄 사진 작가인 에터슨이 셔터를 누르며 말했다.
지금 그의 피사체가 되어주는 건 몬스터즈 멤버들.
로비 막스 제품을 착용한 채로 각자의 매력을 뽐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손발이 잘 맞네요.”
내 질문에 박한솔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다시피, 몬스터즈 미국 활동 때 앨범 자켓을 에터슨이 찍어 줬으니까요.”
“그래요?”
“아, 몰랐어요?”
“전혀 몰랐습니다.”
“의외네요.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사진을 찍는 몬스터즈를 바라보던 박한솔이 말을 이었다.
“몬스터즈 멤버들의 외모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어요. 피사체가 화면에 담기는 모습을 보며 영감을 얻는 사람이거든요.”
“아.”
“저렇게 잘생긴 외모를 보면 작가로서 홀리지 않는 게 이상하긴 하죠.”
박한솔이 이해한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선배들이 찍는 화보를 보았다.
사진을 찍는 몬스터즈의 모습을 보고, 옆에 모니터에 뜬 그들의 결과물을 번갈아 보았다.
‘장난 아니네.’
화면에서 광채가 쏟아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몬스터즈를 보면서 느꼈지만, 정말 찬란하게 빛이 나는 이들이었다.
스타라는 단어가 정말 어울리는 이들.
나는 묵묵히 그들의 무대를 보았다.
바로 다음이 우리가 찍어야 하는 시간.
몬스터즈는 물어보는 거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는지를.
그들이 서 있는 무대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저렇게 전력을 다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허투루 볼 수는 없지.’
나는 몬스터즈의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아주 좋아. 이번에는 각자 개인 사진을 찍어보도록 하지.”
엔터슨의 말에 한진성이 가장 먼저 무대 중앙에 섰다.
큰 키와 작은 얼굴, 그리고 넓은 어깨.
거의 완벽에 가까운 비율을 가진 몬스터즈는 본업이 아이돌이 아니라 전문 모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완벽한 사진을 찍었다.
무표정으로 카메라를 노려볼 때는 사람의 심장을 멎게 할 정도로 강렬한 매력을 지녔고.
환하게 웃으며 찍을 때는 이전과 다른 친숙함에 매료되는 매력을 지녔다.
매번 다른 매력을 보여줄 때마다 나는 감탄했고, 새로운 걸 배웠다.
“우리 열심히 해야 되겠다.”
정민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워낙 작게 말한 터라 바로 옆에 있던 나와 우주만 들릴 정도였다.
“같은 생각이야.”
나는 멤버들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 전, 몬스터즈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박한솔의 말에 반짝거리던 얼굴은 이제 다른 의미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앞서 보여주는 선배의 모습에 영감을 받는 재능 있는 후배들의 모습.
나는 애들의 표정에서 그걸 보았다.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
그건 올리오스의 미래가 아직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선배들의 화려함에 자신감을 잃을 우려는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몬스터즈의 첫 촬영이 끝났다.
짝짝짝.
“아주 좋았어! 이번에도 최고였어! 하하하!”
에터슨이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어지간히 만족한 모양이었다.
“어땠어?”
촬영을 마친 한진성이 다가오며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엄지를 올렸다.
“이거 민폐 안 끼치려면 이 악물고 찍어야겠던데요?”
“후후, 걱정 마.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때 이번엔 구희성이 찾아와 말했다.
“연기 연습하면서 카메라에 익숙해지면 화보 촬영도 잘할 수 있어.”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연기 안 한다니까요.
“야, 희성아. 그만해. 건하가 안 한다잖아.”
“하지만 재능이 이렇게 넘치는데….”
“아직 그룹 활동에 집중할 때야. 몇 년 더 지나고 해도 돼.”
“하지만 아까운걸.”
구희성이 아쉬운 듯 입술을 비죽 내밀며 나를 보았다.
“진짜 생각 없어?”
“예. 없어요.”
“으음, 정말?”
“예.”
구희성은 이번에도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슬픈 고양이 눈을 하기 시작했다.
물기가 가득한 눈동자로 초롱초롱 나를 바라보는 것이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안 통합니다.”
연기인 거 뻔히 아는데도 넘어갈 뻔했다.
무서운 사람.
연기가 무슨 자판기처럼 팍팍 나온다.
내가 연기를 하지 않는 게 정말 아쉬운 모양이다.
그렇다고 할 생각은 없지만.
“올리오스 올라오세요!”
에터슨에게 전달받은 PD가 우리를 불렀다.
이번에 우리가 입은 건 로비 막스의 벨트와 바지, 그리고 자켓이었다.
셔츠는 어디에 있냐고?
글쎄.
안 입었다.
남성미를 가득 담았으면 한다는 게 이유였다.
신인의 패기를 담기엔 이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마침 복귀를 위해 악착같이 몸을 만들고 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굳이 후편집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근육이 자리를 잡았으니까.
자켓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가슴골과 복근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에터슨과 통역을 위한 PD가 우리에게 왔다.
“아주 좋네요. 촬영 컨셉은 전달됐다고 들어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표정은 최대한 밝지 않게, 잔뜩 벼려진 날카로운 칼 같은 느낌을 내주면 됩니다. 웃는 모습은 여러 변주를 주기 위한 소스일 뿐이니까 명심해 두고요.”
“알겠습니다.”
PD가 통역해주기 전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 영어를 할 줄 아십니까?”
에터슨이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보았다.
“예, 짧지만 배우고 있습니다.”
“역시 한국 사람들, 영어를 잘해서 대화하기가 편하네요.”
번역 스킬 덕분이지.
매일같이 미드를 보며 영어와 친숙해진 덕분에 이제는 에터슨의 말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물론 다른 멤버들은 아직 그렇게까지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기에, PD가 에터슨의 말을 통역해줬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의욕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바로 시작하죠.”
자리로 돌아간 에터슨이 카메라를 들었다.
“후우, 떨린다.”
“왜 이렇게 추운 거 같지?”
“농담하지 마. 웃으면 큰일 나.”
“다들 운동 열심히 했네.”
우리는 긴장을 풀기 위해 사담을 나누며 에터슨의 신호를 기다렸다.
찰칵! 찰칵!
신호 없이 거침없이 셔터를 누르는 에터슨의 손가락과 함께.
[네 사진 속에 저장(A)가 발현되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외모와 몸매가 보정되어 찍힙니다.]
[적은 확률로 인생샷을 찍힙니다.]
스킬이 발동되었다.
오랜만이네, 이 스킬도.
[인생샷!]
감상은 잠깐, 곧바로 인생샷이 터졌다.
벌써?
적은 확률로 터지는 인생샷이다.
이전에 박한솔과 찍었을 때도 한참을 찍던 중에 겨우 한 장 터졌던 게 인생샷이었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전체 멤버들의 케미가 높습니다. 단체샷 촬영 시, 스킬 발동 확률이 오릅니다.]
[장인과의 협업으로 효과가 보정됩니다.]
[인생샷!]
“호오?”
셔터를 누르던 에터슨이 반응을 보였다.
카메라 밖에서 현장을 보고 있던 박한솔 디자이너의 고개가 돌아가는 게 보였다.
그녀의 눈이 모니터로 향했다.
“오오오….”
감탄사가 들렸다.
한진성과 몬스터즈 멤버들도 놀란 눈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찍혔길래?
나도 모르게 순간 모니터를 보았다.
자켓을 입은 채로 복근을 드러냈던 우리 다섯 명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 찍혀 있었다.
특별할 것 없이 자연스러워 보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가는 사진이었다.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한 번 봤는데 자꾸 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장난스럽게 미소짓는 우주.
최대한 웃음을 참으려는 호진.
농담에도 미소 대신 진중한 얼굴로 우주를 보는 성훈.
진지하게 임하자면서도 입꼬리는 올라가 있는 정민.
그리고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나.
별거 아닌 거 같은 이 사진의 구도가 묘하게 조화로워 보였다.
“흠,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기습적으로 찍었는데…. 예상보다 느낌이 더 사는군. 이번에는 처음에 얘기했던 대로 날카로운 느낌으로 가보죠.”
에터슨의 말이 끝나자마자 통역사가 의미를 전달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에터슨의 디렉팅을 따라 표정을 지었고, 플래시가 터졌다.
[인생샷!]
아무래도 이번 화보, 어쩌면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