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46화 (146/236)

<제146화>

앨범 준비는 꾸준히 이어졌다.

정규 앨범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보니,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대부분을 연습실과 녹음실에서 보냈다.

“으으으….”

멤버 모두가 진이 빠진 얼굴로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무리 해도 복귀 전에 하는 연습은 적응이 되지 않네.”

“활동 때만큼이나 바쁠 때긴 하지.”

나는 정민의 투정에 답해주며 머리에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숨이 벅찰 정도로 연습에 매진했다.

연습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지겨울 정도로 봤다.

“오늘 우리가 몇 시간 잤지?”

바닥에 드러누운 정민의 질문에 나는 손가락 네 개를 들었다.

“4시간.”

“으으, 지금 당장 소원이 있다면 딱 8시간 동안만 침대에 누워서 안 나가는 거야.”

“저번 주에는 빨리 컴백하는 게 소원이라며.”

“그랬는데…. 연습 시간을 내가 생각 안 했더라고.”

실없는 대화를 하면서 쉬는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떠들지라도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고된 일정이었다.

열정의 채남영 트레이너는 우리가 안무를 완벽히 외울 때까지 놓아주질 않았다.

“나는 저기 압구정 골목에 있는 철판 구이집에 가고 싶어…. 거기서 파는 곱창볶음이 엄청 맛있는데.”

우주가 옆에서 침이 고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 주부터 식단 관리에 들어가서 뭔가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평소 쉬고 있을 때에도 확 찌는 것을 대비해서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온 덕분에 목표 몸무게와 현재 몸무게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딱 한 명.

“아아…. 고기 먹고 싶다.”

우리 중에서 유독 음식을 좋아했던 우주는 목표 몸무게와 상당히 차이가 났다.

제일 식단을 빡빡하게 하고 있는 멤버였다.

이렇게 호된 일정 사이에서도 탄수화물 섭취는 아예 끊고 단백질마저도 적게 섭취하고 있으니까.

퍼스널 트레이너는 특히 우주가 빡세게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전담마크했다.

“너희들 너무 힘들어하는 거 아니냐.”

성훈이 우리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 옆에서 호진이 거울을 보며 다시 한번 춤을 복기하기 있었다.

괴물들.

그중에서 성훈이야말로 진짜 체력 괴물이었다.

아마 우리 중에서 제일 체력이 강한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성훈을 꼽을 거다.

호진이는 춤을 좋아해서 악바리 근성으로 버틴다는 느낌이면, 성훈은 강철로 근육을 만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멀쩡했다.

두 사람은 우리와 같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했지만, 늘 제일 마지막까지 서 있었다.

“형이 괴물인 거야. 우리가 약한 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랑 같이 아침 구보를 한 덕분이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랑 아침 구보를 했다고…? 어디에서? 설마….”

“아버지 군부대에서 당시 현역분들과 같이 달렸었다. 아버지도 함께.”

“몇 살 때였는데?”

“초등학교 때부터였나?”

“우와.”

진심으로 감탄했다.

초딩 때부터 군대에서 아침 구보라니.

이게 한국식 스파르타인가 싶었다.

저렇게 어렸을 때부터 체력 단련을 했으니, 체력이 강철 같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 애들아!”

문이 열리고 채남영 트레이너가 들어왔다.

꿀맛 같은 휴식이 끝나고 다시 지옥이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내가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를 가지고 왔다. 뭐부터 들을래?”

“좋은 소식은 뭔가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대꾸했다.

이해한다는 듯 채남영 트레이너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번 주 주말에도 너희의 안무를 맞춰보기 위해 출근하기로 했다.”

신이시여, 제발.

지옥문이 열린다는 선언을 듣는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다.

그래도 주말에는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빌어먹을.

“그럼 나쁜 소식은 뭡니까?”

아직 체력이 짱짱한 성훈이 물었다.

좋은 소식이 토요일 방문인데 나쁜 소식은 대체 얼마나 독하려고.

듣고 싶지 않았다.

성훈의 질문에 채남영 프로듀서가 혀를 찼다.

“흐음, 프로듀서님이 너희 내일부터 모레까지 화보 촬영이 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하시더라.”

“그건 확실히 나쁜 소식이네요. 연습이 더 필요한 상황이긴 한데….”

아쉬워하는 채남영과 성훈의 말에 나와 정민, 우주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쌤, 그럼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인 건가요?”

우주가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방금 전까지 죽을 거 같다며 울부짖었던 게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기운을 잔뜩 차린 얼굴이었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다. 그래서 주말에 더 한다는 거야. 오늘은 평소보다 진도가 덜 나갔으니까 보충으로 때워야지.”

채남영 트레이너가 주말에 오는 이유였다.

내일을 위해 오늘 해야 할 안무 연습을 하지 못하니, 주말에 출근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도 주말엔 쉬어야 하는데, 휴일을 반납하고 우리의 연습을 돕겠다고 한다.

직장인에게 주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고 있기에 별다른 투정은 부리지 않았다.

“다들 샤워실에서 씻고 옷 갈아입고 숙소로 돌아가. 오늘 고생 많았다.”

“감사합니다!”

고된 연습이 끝났다.

*    *    *

그리고 그다음 날.

“여깁니다!”

우리는 로비 막스에서 진행하는 몬스터즈와 올리오스의 콜라보 화보 촬영을 위해 서울 강남에 있는 스튜디오를 찾았다.

역시 명품 패션 회사라 그런가.

목 좋은 곳에 스튜디오를 잡았네.

위치에 감탄하며 스튜디오에 들어가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어머, 일찍 왔네요?”

“박한솔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이번에 몬스터즈와 올리오스 콜라보 화보를 찍게 된 박한솔 작가예요.”

“안녕하십니까.”

“요즘 올리오스가 잘 나가는 모습을 보니 보기가 좋네요.”

“잘 나간다니요.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내 대답에 박한솔 작가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성공한 거 맞죠. 나랑 같이 연달아서 작업을 계속 하잖아요? 대한민국에서 나랑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함께 한 사람은 별로 없어요. 호호호, 농담이에요.”

농담이라고는 하지만, 그 말투 속에 담긴 자신감은 허영이 아니었다.

박한솔 작가는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의 사진 작가라는 자부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자신과 연달아서 함께 작업하는 우리에게 성공했다고 말한 건 진심일 거다.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박한솔 작가의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 있었다.

한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우리 역시 최고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내가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저번에 말했죠? 올리오스는 잘될 거 같다고요.”

그런 말을 했다.

앞으로 계속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말도 함께 남겼었다.

이렇게 빨리 다시 볼 줄이야.

“여기에 작가님이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 이렇게나 큰 규모로 들어가는 작업에 내가 빠질 수는 없죠.”

말을 마친 그녀가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도착한 스튜디오는 그녀가 대표로 지내는 오리진 픽처스의 공간이 아니었다.

“여긴 로비 막스 쪽에서 따로 빌린 곳이라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미국에서 많은 작가들이 오늘 한국에 찾아왔죠.”

“…그렇다는 건.”

“저는 오늘 로비 막스 소속의 작가들이랑 협업하기 위해 왔어요.”

“아아.”

“생각보다 큰 작업이죠?”

우리를 보는 박한솔 작가의 눈동자가 빛났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요? 로비 막스에서 본사 소속 사진 작가를 데려왔다는 게.”

그녀가 원하는 답을 알고 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아는 지식을 필요 이상으로 뽐내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박한솔 작가의 말에 우주가 큰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작가님, 무슨 뜻인가요? 혹시 뭔가 두근거리는 비밀 같은 게 있나요?”

“올리오스에게 아주 좋은 비밀이 숨겨져 있죠.”

그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올리오스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뜻이에요.”

“세계적으로요?”

반사적으로 외친 우주가 손으로 스스로의 입을 막았다.

“그렇게 놀란 얼굴 안 해도 돼요.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몬스터즈 선배님 덕분이 아닌가 싶은데요.”

정민의 질문에 박한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 있죠. 몬스터즈는 예전부터 해외 활동을 해왔고, 실제로 해외 팬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녀가 주위를 잠시 살핀 뒤에 목소리를 낮췄다.

“둘을 따로 찍는 게 아니라, 콜라보로 한 번에 찍는다는 건 같은 선상에 두고 있는 거죠.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

우리 멤버 중 아무도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대답을 하는 순간 말이 되고 언어가 된다.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의 힘은 강해서, 그 순간 의식을 건드리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곤 했다.

몬스터즈와 같은 선이라.

박한솔 작가는 로비 막스가 우리와 몬스터즈를 같은 선에 두고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아직은 이른 이야기야.’

로비 막스가 원하는 건 두 그룹의 동등함이 아니었다.

묘하게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닮은 두 그룹을 이용하고 싶은 것뿐이다.

발칙하고 패기 넘치는 신인과 인기가 절정에 이른 베테랑의 조화.

로비 막스가 원하는 그림이었다.

언젠가는 우리가 몬스터즈와 어깨를 나란히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곤란해.’

나는 멤버들을 보았다.

몬스터즈와 같은 급으로 묶는 걸지도 모른다는 박한솔의 말에 눈을 반짝이는 애들을.

자신감이 과하면 자만이 되고, 그것이 심해지면 오만이 된다.

자만과 오만.

내가 제일 경계하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지금 멤버들이 자만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졌다.

박한솔이 나쁜 뜻으로 말하는 건 아니었겠지.

우리를 칭찬하고 싶은 마음에 얘기를 건넨 걸 테다.

자라나는 새싹이 더 크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주는 이슬비였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화분에 주는 물도 너무 과하면 식물을 썩게 만든다는 것.

여기서 막아야만 했다.

“과찬이세요, 작가님.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흐음, 그래요? 건하 씨답지 않네. 원래 자신감 넘쳤던 거 같은데.”

“자신감과 자만은 한 끗 차이니까요.”

그 말에 뭔가 깨달았다는 듯 박한솔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미안해요. 방금 얘기는 조금 이른 얘기였을 수도 있겠네.”

“지금은 저희를 좋게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끝내주는 작업물이 나올 거 같네.”

나를 보던 박한솔이 말했다.

그녀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을 때.

“벌써 와 있었구나?”

한진성을 비롯한 몬스터즈가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그들의 등장에 한순간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로비 막스에서 부른 유명 미국 사진 작가들도, 현장을 찾아온 관계자들도, 여러 스태프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저게 스타를 보는 얼굴이다.

우리는 아직은 부족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인지하는 것이, 더 앞으로 나아가는 연료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멤버들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던 멤버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좋은 얼굴이 됐네.’

단지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는 것이 아닌, 눈앞에 있는 거대한 벽에 도전하려는 전사들처럼 보였다.

그래, 이 정도 투쟁심은 있어야지.

나는 멤버들의 자만을 걱정했던 마음을 접었다.

저런 표정을 짓는 이들이라면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확신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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