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45화 (145/236)

<제145화>

“그러니까 아무래도 이번 앨범의 전체적인 컨셉은….”

“현재 생방 무대 구성으로 생각하고 있는 방식은 두 종류다. 타이틀곡인 ‘For you’가 가진 노래 컨셉을 확실히 살리거나….”

“뮤직 비디오는 3일에 걸쳐서 두 개를 찍을 계획이다. 하나는 ‘For you’, 다른 하나는 유력 타이틀곡 후보였던 ‘유화’다. 저번 정규 1집 때처럼 메인 두 곡의 뮤비를 전부 찍을 생각….”

“의상은 새로 제작이 들어가서 다음 주면 나올 거고.”

“안무는 당장 내일부터….”

황이서가 컴백까지의 전체적인 그림부터 일정, 의상과 앞으로 이어질 준비 과정을 전부 설명했다.

말만 들어도 얼마나 바쁠지 예상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 일정들, X-라이브부터 화보 촬영, 우주는 이제 <우주카페 시즌2> 준비를 슬슬 시작한다고도 했다.

아득하네.

어쩌면 투어를 한창 진행할 때보다 훨씬 바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 그리고 말이다. 이번 앨범 회의를 위해 모인 김에 좋은 소식을 하나 전하려고 한다.”

“좋은 소식이요?”

“그래. 그것도 두 가지. 하나는 너희 이번 앨범 활동이 끝나면 곧바로 해외 투어를 가기로 했다.”

“해외 투어요?”

“그래. 일본, 태국 그리고 중국 3개국을 돌아서 올 거야.”

해외 투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말이었다.

우리의 무대를 국내에 한정 짓지 않겠다는 말도 되었지만, 동시에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해외 팬층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설레발을 치는 걸지도 모르지.’

팬을 만들기 위해 해외로 가는 걸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과거 몬스터즈 해외 투어 때 함께 했던 프로덕션이랑 함께 가기로 했다. 이 친구들 실력 하나만큼은 괜찮으니까 문제 생길 일은 없을 거다.”

“그럼 저희 외국어 공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인사말 정도는 알아야 할 거 같은데.”

우주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국가별로 기본적인 일상 회화 정도는 몇 개 외우고 가면 현지에서도 반응이 괜찮을 거야.”

황이서가 그런 우주의 말에 동조했다.

‘시기가 좋네.’

번역 스킬이 멤버들을 위해 활약할 시기였다.

스킬의 효과로 약간만 공부해도 기본 회화 정도는 쉽게 익힐 수 있을 테니까.

‘번역 스킬이 쓰일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해외 활동의 시작이 빨랐다.

좋은 현상이었다.

우리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는 것도, 새로 얻은 스킬을 활용해 외국어에 친숙해질 수 있다는 것도.

이건 더 큰 전진을 위한 위대한 한 걸음이었다.

“일본에 가면 역시 초밥이나 우동을 먹는 게 좋겠지?”

우주가 신난 얼굴로 맛집 노트를 꺼냈다.

“스미마셍, 스시 오네가이시마스…. 이거 맞나?”

“일본 음식점 주인분들이 이랏샤이마세! 이렇게 말하는 거 듣고 싶어.”

정민이도 우주와 함께 덩달아 신이 난 얼굴이었다.

국내 투어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나간다는 사실에 다들 신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해외 투어….”

성훈이마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해외여행을 하는 환상을 꿈꿨다.

잔뜩 기대한 애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해외 투어가 그리 낭만만 가득하지는 않을 거다.

비행기는 좁고, 기나긴 비행 시간은 생각보다 지루했다.

‘처음 한 번은 신나고 재밌지.’

하지만 차를 타고 국내를 이동하는 것과는 피로 누적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꽤 지치고 힘들 거다.

비행기 여행에 맞지 않는 애들이 멀미라도 한다면….

‘쉽지 않겠어.’

이제는 진짜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체력이 부족해서 쓰러지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왜 이렇게 지레 걱정부터 하냐고?

경험에서 우러나는 걱정이었다.

내가 비행기를 탈 때마다 영 맥을 못 추렸거든.

유독 비행기 멀미가 심했다.

자동차를 타도 배를 타도 멀미가 나지 않았는데, 유독 비행기만 타면 심하게 났다.

얼마나 힘들던지.

멀미가 심해서 비행기 한 번 타면 그거 회복하겠다고 하루를 통으로 쉬어야 했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었다.

해외 투어 일정을 어떻게 잡을지 아직 모르겠지만, 빡빡하다면….

‘컨디션 조절이 제일 큰 문제일지도 몰라.’

의외의 복병 같은 거다.

턱 밑에 숨겨진 송곳처럼 신경 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지만, 그러다가 방심하면 어느 순간 내 턱에 상처를 내는 그런 존재.

“그래. 다들 설레는 건 알겠는데, 좋은 일만 있지는 않을 거다. 컨디션 조절이랑 시차 적응이 제일 중요해. 아시아권만 다닐 거라 체감이 크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물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니까.”

황이서도 이 이상은 얘기하지 않았다.

굳이 설레하는 애들에게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두 번째 소식, 아마 이걸 더 좋아할 거라 생각해.”

잠시 뜸을 들인 황이서가 곧이어 입을 열었다.

“이번 로비 막스 화보 촬영이 끝나면 너희도 본격적인 정산금을 받게 될 거다.”

“정산금이요?”

해외 투어를 꿈꾸며 설레어 하던 멤버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고개를 돌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무슨 미어캣 무리인 줄 알았다.

“그래, 정산금.”

“저번처럼 저희 활동 보조를 위한 돈입니까?”

성훈의 질문에 황이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 로비 막스 화보 촬영이 끝나면 우리가 너희에게 투자했던 비용의 회수가 끝날 거다. 손익 분기점을 넘겼다는 뜻이고, 앞으로 받는 돈은 정산 비율에 따라 꼬박꼬박 너희의 통장에 들어갈 거라는 뜻이기도 하지.”

“그, 그렇게 빨리요? 저희 이제 1년 됐는데….”

“그래, 이제 1년 됐지. 그런데 앨범이 정규 두 개에 싱글 한 개지. 그중 하나는 음원 차트 1위에 너희가 출연한 예능과 라디오, 투어에서 벌어들인 돈, 그리고 기타 광고 수입까지…. 너희 엄청 바쁘게 일했잖아. 이제 그 대가를 받아야지.”

“와….”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적어도 1년 정도는 더 일해야 본격적인 정산금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돌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을 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리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정산을 벌써 받는다고?’

우리의 표정을 본 황이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원래는 다음 앨범 출시하고 해외 투어가 끝나면 손익 분기점이 넘어가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로비 막스가 너희의 광고 페이를 세게 불러줬거든.”

“대체 얼마나 부르셨길래….”

“몬스터즈의 절반.”

“예?”

뭐라고?

몬스터즈의 절반?

그렇게나 많은 돈을 지급한다고?

“정말입니까?”

“그래. 두 그룹이 같이 콜라보해서 화보를 찍는 거니, 최대한 몬스터즈와 금액을 맞춰 주겠다고 하더라. 우리야 나쁠 게 없어서 그대로 받았지.”

몬스터즈와 올리오스의 인지도 차이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큰 금액이었다.

“와…. 왜 그렇게 많이 주셨대요?”

우주가 놀라 묻자, 황이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고.”

“…….”

그 말에 회의실에는 가벼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부담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로비 막스의 인정이 충격으로 다가와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설렘에 가깝다고 말하는 게 좋을 법했다.

그 말을 들은 멤버들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위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역시 명품 회사라서 그런가, 사람을 볼 줄 아시네요.”

정민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대를 배신할 수 없으니 멋진 모습 보여줘야겠네요.”

우주가 말을 더했다.

이제는 다들 자신감이 더해진 모습이었다.

마냥 겸손하기만 한 것보단 이렇게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았다.

아마 옛날이었다면.

‘왜, 왜 이렇게 큰돈을….’

‘저희가 받아도 되는 거예요?’

‘우와.’

하면서 감탄하고 충격받았을 텐데 말이다.

이제는 나름의 여유도 생겼다.

풋풋했던 느낌도 좋았는데, 아쉽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사람도 달라지는 거니까.

“그, 그럼 정산금은 얼마나 나오는 건가요?”

호진이 물었다.

정산금에 대해 가장 호기심을 가진 모습이었다.

“첫 달이라 그리 많지 않지만, 지금까지 극히 일부만 정산받았던 것보다는 훨씬 많이 받을 것 같아.”

“우와….”

놀라는 멤버들의 반응에 황이서가 귀엽다는 듯 보며 턱을 긁었다.

“그렇게 좋냐?”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요!”

황이서의 말에 애들이 신나서 외쳤다.

직장인들의 최대 행복은 월급날이라고 했던가.

모두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두근두근.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선 둔감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손익 분기점을 넘기고 본격적인 첫 정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렜다.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이제 진짜 성과를 얻었다는 증거였으니까.

‘나도 이제 아이돌이 다 됐구나.’

사업가 윤건하였다면, 이 정도의 돈으로 설레진 않았을 테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다들 좋아하는 걸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네.”

황이서까지 웃었다.

그가 건넨 기분 좋은 소식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어서 다음 앨범에 대한 회의와 앞으로 일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    *    *

앨범을 위한 본격적인 안무 연습을 시작했다.

열정 넘치는 채남영의 지도하에, 우리는 첫 앨범을 준비했을 때만큼이나 열정적으로 안무를 연습했다.

트레이닝복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각자 활동성 좋은 옷을 입고 왔는데, 땀에 젖지 않은 멤버가 없었다.

머리카락까지 흠뻑 젖은 모습이 꼭 물을 끼얹은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가 되어서야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짬짬이 쉬는 시간을 얻을 때마다, 나는 핸드폰으로 몇 번이고 로비 막스의 패션쇼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흐음….”

영상을 돌리고 돌리면서 로비 막스라는 브랜드가 주는 멋의 핵심을 찾았다.

로비 막스의 브랜드의 핵심은 무엇일까.

다른 명품 회사와는 다르게 조금 더 친숙한 느낌에 어떤 디자인에도 잘 어울리게끔 조형한 디자인.

그러면서도 제품의 가격이 비싸질수록 혼자서 티가 나는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끔은 옷과 가방이 모델의 옆에서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신기하네.’

여러 가지 색을 가진 브랜드였다.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뭐해?”

한진성이었다.

“아, 형.”

“로비 막스 옷들 보고 있었네?”

“촬영 전에 사전 준비는 필요하니까요.”

“그건 맞지. 너희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는 거 보면, 우리도 잔뜩 긴장해야겠는데?”

“그러시라고 바짝 준비하고 있습니다.”

“뭐? 하하하.”

한진성이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이제 막 연습 끝나서 땀 냄새 날 텐데요.”

“괜찮아. 우리한테야 일상이잖아.”

가만히 내가 영상을 돌려보는 걸 바라보던 한진성이 물었다.

“곧 손익 분기 넘겨서 정산받는다고 들었어. 기분이 어때?”

“아직도 얼떨떨하죠.”

“정산금 받으면 뭐부터 할 거야?”

“…글쎄요. 일단 저금부터 할 겁니다. 그리고 이 돈을 불릴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죠.”

머리 아픈 일이 되겠지만, 돈을 불리는 건 한 번 해봤던 일이다.

“이제 제대로 한 걸음 걸었네.”

“선배들 뛰어넘겠다고 한 거요?”

“그래.”

한진성이 나를 보는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참고로 말하는데, 거기서 대충하고 봐줄 생각 없다. 광고 모델이라는 게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겠지만…. 선배가 돼서 후배보다 못한다는 소리는 절대 안 듣고 싶거든.”

“알고 있어요. 전력을 다할 거라는 것도,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

한진성이 나를 한참 동안 마주 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노려봤다.

“열심히 한번 해보자.”

“예, 형. 최선을 다해 덤벼 보겠습니다.”

“후후, 그래. 연습 열심히 하고, 다음 앨범 성공하길 빈다. 뒤에서 응원할게.”

“감사합니다.”

한진성이 땀에 젖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까마득해서 보이지 않았다고만 느껴졌는데….

‘어쩌면 아주 조금은 보일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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