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44화 (144/236)

<제144화>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다들 브르누의 제안에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몬스터즈와 콜라보 화보 촬영.

그들과 같은 소속사였기에 함께 화보를 찍어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투어 홍보용 화보 촬영을 위해 각기 다른 시간에 스튜디오를 사용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전혀 다른 시간대에 따로 화보를 찍어 서로의 결과물을 비교했던 것.

브르누가 제안한 화보는.

-같은 컨셉으로 몬스터즈와 올리오스가 번갈아 가며 함께 촬영을 한다.

-개인 촬영, 단체 촬영, 그룹 콜라보 촬영까지 전부 함께한다.

-몬스터즈는 숙련된 베테랑 아이돌의 멋을, 올리오스는 패기 있는 신인 아이돌의 신선함을 강조.

사실상 두 그룹을 한 공간에서 같이 촬영하겠다는 의도가 가득 들어 있었다.

비교를 위해선 아닐 거다.

상반된 컨셉을 가진 아이돌 그룹이 서로의 작품을 보면서 자극을 받도록 의도한 거 같았다.

“이거 진짜야?”

로비 막스가 보낸 기획서를 읽은 우주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우리를 보았다.

“아마 촬영을 하는 내내 선배님들이랑 같이 다닐 거 같네.”

성훈도 떨리는 듯 주먹을 연달아 말아쥐었다.

동경하는 몬스터즈와 함께 카메라에 선다는 사실에 올리오스 멤버들이 설렌 얼굴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괜찮아. 우, 우리가 못할 게 뭐가 있어. 광고도 찍어봤잖아. 카메라에 서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하, 하하하.”

호진이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 짜내며 의지를 다졌다.

잔뜩 긴장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보였다.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지금의 분위기를 씻어내리는 좋은 말이었다.

“그래. 우리 지금까지 잘해왔으니까, 이번에도 다들 힘내보자.”

단지 걸리는 점은 상대가 몬스터즈라는 건데, 서로 성적을 겨루는 것도 아니다. 광고를 위해 함께 화보를 찍는 것이다.

긴장할 게 전혀 없다.

물론 몬스터즈라는 거대한 벽이 높아 보이긴 할지라도, 우리 역시 꿀리지 않는다.

몇 번이고 같이 무대에도 서보지 않았던가.

“열심히 하자. 그럼 될 거야.”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내 심장도.

두근두근.

거칠게 뛰고 있었다.

‘이런 화보 촬영만 가지고 우리를 몬스터즈와 동급으로 본다는 건 이르지만….’

올리오스가 그만큼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었다.

데뷔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는 신인 아이돌 그룹을 이렇게 좋게 봐 준다는 것이, 얼마나 흔치 않은 일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걱정은.

‘너무 빠른 성공으로 애들이 자만심을 가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지만, 만약 그런 기미가 보인다면 내가 어떻게든 막을 생각이었다.

젊을 때 얻은 성공으로 거만해지면 남은 일생이 피곤해질 테니까.

“로비 막스 쪽에서 정해 주겠지만, 우리도 어떻게 찍을지 천천히 생각해보자.”

“형, 형. 그런데 이거 진짜 우리가 써도 되는 거야?”

우주가 로비 막스 측에서 선물로 보내준 지갑과 벨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화보를 찍기 전에 자사의 여러 제품을 미리 사용해 보라며 선물로 챙겨준 물건이었다.

이걸 받아도 되나 싶었지만, 정말 이 제품의 화보를 찍어야 한다면 제품의 착용감과 제품이 갖는 이미지를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배우로 성공한 방송계의 유명 선배는 소주의 광고 모델이 되었을 때, 그 소주를 광고하는 동안 다른 경쟁사 제품엔 손도 대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제품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것 역시 광고 모델의 기본 자세였다.

‘실제로 모델이 그렇게 해주면 광고 회사도 좋아하니까.’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충성도가 올라가는 효과를 얻는 경우도 있었다.

“프로듀서님도 괜찮다고 하셨으니까 상관없을 거야.”

숙소로 돌아오기 전, 황이서 프로듀서는 소식을 들었다며 로비 막스에서 보내준 선물을 우리에게 건넸다.

‘언제든 써도 좋다! 너무 명품으로 둘둘 두르지만 마라!’

두 그룹의 콜라보 광고가 갑자기 선물로 뚝 떨어졌으니 신나지 않을 리가.

때마침 우리의 복귀 시기와 잘 맞는다는 게 황이서를 더욱 즐겁게 만든 걸 거다.

“나 로비 막스 제품 처음 써 봐.”

“나도….”

“좀 싸게 살 수는 없나? 현진이도 하나 주고 싶은데….”

다들 선물 받은 지갑과 벨트, 옷가지를 어떻게 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이거면 된다. 이참에 부모님한테도 하나 선물로 드려야겠네.”

성훈은 자기한테 온 물건 중에서 반지갑과 벨트, 그리고 작은 스카프 하나씩만 가져갔다.

애초에 패션에는 관심이 없던 터라 그런 걸 거다.

성훈의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진 정민과 우주는 남은 건 자기들이 써도 되냐고 묻고 싶어 보였지만, 서로 눈치만 슬슬 보느라 말은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지갑만 챙기고는 나머지는 다른 멤버들에게 건넸다.

“얘들아, 이거 알아서 나눠.”

“어? 왜…?”

“그거 형한테 온 선물 아니야?”

“나는 이거면 충분하니까, 너희 더 쓰고 싶은 거 있으면 써.”

내 말에 다들 눈치를 살살 보았다.

“빨리 챙겨. 마음 바뀌기 전에.”

“응, 고마워. 잘 쓸게.”

“역시 건하 형이야! 우리 형 최고!”

“고맙다.”

멤버들의 담백한 인사를 받으며 애들에게 내 몫의 로비 막스 명품 물건을 넘겼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어차피 명품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다. 당장 필요한 것들만 챙기면 충분했다.

그래서 애들에게 선물로 줬다.

보다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좋아할 사람에게 주는 게 맞지.

애들에게 선물을 전해주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호진이 종종종, 내 뒤를 따라 들어왔다.

“건하야….”

“무슨 일이야?”

“이거 받아.”

호진이 손에 쥔 로비 막스의 티셔츠를 내게 내밀었다.

“네가 입지….”

“티셔츠는 나도 하나 있어. 옷이야 여러 벌 있으니까….”

“그래서 이걸 고른 거야?”

“응. 너한테 주려고.”

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줄 수 있는 게 이런 거밖에 없잖아.”

“…….”

나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는 호진을 모았다.

애가 참 착하다.

자기보다 남을 챙기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잘생긴 얼굴에 말수가 적은 성격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깐깐할 거 같다는 인상을 주지만, 사실 정이 많은 친구였다.

“내가 주는데도 안 입을 거야?”

“그런 건 아닌데….”

“네가 로비 막스 제품이 싫어서 우리한테 준 건 아닐 거고. 왜 안 입는다고 한 거야?”

“원래 나는 명품이 좀 불편하거든. 그래서 화보를 위한 최소한만 사용하고 싶었어. 그래서 그런 거 같아.”

사업가였을 때, 나를 꾸미겠다며 수많은 명품으로 내 몸을 도배한 적이 있었다.

수천만 원짜리 시계를 차고, 천만 원이 넘는 정장을 입고, 수백만 원짜리 신발을 신은 채로 다녔다.

그래야 거래 업체의 사장에게 꿀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30대에 성공을 하고, 수천억대의 부자가 된 이후엔 오히려 그것들이 전부 무의미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다.

굳이 비싼 옷을 입지 않으려는 것은.

‘광고 모델이 된 이상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니까.’

지갑을 고른 건 그런 의미에서였다.

호진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건하야.”

“응?”

“몇 번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호진이 나를 유심히 보며 입을 열었다.

“너 인생 2회차인 거 아니야?”

“무, 뭐?”

그 말에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말하는 걸 보면 가끔 나보다 한참 형이라는 생각이 느껴지니까. 리액션이나 방금 같은 말 들어보면 말이야.”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2회차라.

진짜 2회차는 아니지만, 유사 2회차 인생을 사는 건 맞으니까 맞다고 말해야 하나?

나는 가만히 호진을 보았다.

나를 응시하던 호진이 눈웃음을 지었다.

“농담이야. 가끔 진짜 아재 같을 때가 있어서 농담 한번 해봤어. 너무 놀라는 거 아니야?”

“아…. 2회차라는 얘기는 처음 들어서.”

“왜, 그런 농담 있잖아. 어린 애들이 어른 같은 리액션 보이면 2회차 아니냐고 하는 것처럼 나도 한번 써봤어. 어때? 이거 통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나는. 그런 건 우주한테 묻는 게 좋지 않을까?”

괜히 찔려서 호진의 눈을 피했다.

저 순수한 눈을 마주할 자신이 나는 없었다.

“아무튼 선물 고마워. 잘 입을게.”

“내가 산 것도 아닌데 뭘. 우리 광고주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그래도 네 걸 우리한테 선물해준 거잖아.”

호진이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잘생긴 애가 저렇게 웃으니, 심장 폭행 당하겠다.

로비 막스의 선물 배분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    *    *

“우리 다음 앨범의 메인 컨셉과 안무, 타이틀곡을 알려주려고 불렀다.”

황이서가 주관하는 올리오스 차기작 앨범 관련 회의였다.

프로듀서와 아이돌 2팀, 안무가인 채남영, 그리고 앨범 제작에 참여한 여러 작곡가가 이미 회의를 마치고 우리에게 그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이번 메인 타이틀곡을 정하는 데 많이 고민했다. 최종 후보였던 둘 다 너무 좋은 노래라서.”

황이서는 우리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특히 정민의 얼굴에 시선이 한참 가 있는 걸 보아하니.

‘안 됐네.’

‘For You’가 타이틀곡에서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한참을 고민했다. 전체적인 앨범의 균형을 지키느냐, 앨범의 균형은 무너트리지만 제일 좋은 노래를 하나 고르느냐 사이에서.”

눈을 감고 다시 숨을 고르는 황이서의 입에서 타이틀곡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내부 회의에서도 반반으로 갈렸다. 그래서 선택했지.”

쿵!

황이서가 테이블을 내리치며 정민을 보았다.

“‘For you’를 타이틀곡으로 가져갈 거다.”

그 말에 정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인가요?”

“그래. 앨범의 타이틀곡에 들어가기엔 다른 노래와의 조화성을 생각하면 조금 걱정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올리오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생각하면 해볼 만하다는 게 나와 우리 팀의 결론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얘들아.”

우리를 보는 황이서의 눈빛에 믿음이 실려 있었다.

우리를 믿지 않는다면 내리지 않았을 선택.

“믿어주신 만큼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프로듀서와 아이돌 팀이 내린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하도록.

본격적인 다음 앨범 회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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