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43화 (143/236)

<제143화>

리옹 브르누.

5년 전부터 로비 막스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어 현재의 로비 막스를 이끌고 있는 남자.

프랑스 출신의 디자이너이며, 최근 로비 막스의 디자인 품질 상승에는 이 남자의 공이 크다고 우주가 말해줬다.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라던가.

도수가 높은 동그란 안경을 쓴 검은 머리의 중년 프랑스 디자이너의 머리에는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젊게 보면 40대 중반 정도는 되어 보이는, 이 중후한 멋을 가진 남자는 생각보다 심플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심플 이즈 베스트라는 말을 직접 몸으로 시행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올리오스의 윤건하입니다.”

“최우주라고 합니다! 로비 막스를 이끄는 리옹 브르누 디자이너님을 뵙게 되다니, 영광이에요!”

“정민입니다! 안녕하세요!”

“호진…입니다.”

다들 짧은 영어를 더듬더듬 이어가며 말했다.

아직 번역 스킬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탓에 영어로 말하는 게 어색해 보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른 멤버들보다 발음이 조금 더 부드럽다는 느낌을 제외하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하, 얘기는 전부 들었습니다. 진성이 자주 얘기해 줬거든요.”

브르누가 프랑스 억양이 짙게 묻어나는 영어를 구사하며 웃었다.

깊은 주름이 보이도록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우주와 정민, 호진의 반응이 아주 격렬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세 사람이 로비 막스에 진심이라는 건 알겠다.

“진성이 보내준 올리오스의 화보와 무대, 그리고 여러 광고를 봤습니다. 한국에서 올리오스가 갖는 이미지 역시 확인했고요.”

손가락으로 안경을 톡톡 두드린 그가 말을 이었다.

“좋았습니다. 흥미로운 모습을 많이 봤어요. 데뷔한 지 이제 1년 가까이 되어가는 그룹이 갖기 어려운 실력과 능숙함을 갖고 있더라고요.”

한진성의 추천으로 우리가 이곳 패션쇼의 갤러리로 참석했다는 말을 들었다.

단순히 올리오스를 추천하기만 한 게 아니라 관련 자료들을 죄다 넘겨줬던 모양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가진 애정이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 미팅이 끝나면 고맙다고 인사해야겠다.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번 패션쇼 이후에 한국에서 로비 막스를 어떻게 알릴지를 말이죠.”

다시 한번 짓는 의미심장한 미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머니에서 내 핸드폰이 울렸다.

이 상황에서 내 핸드폰이 울렸다는 건 딱 하나밖에 없었다.

‘돌발 퀘스트, 혹은 업적 완수.’

브르누가 우리를 먼저 알고 있다고 해서 업적이 완료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소거법으로 가능성을 하나하나 차단하고 나니.

‘퀘스트밖에 없어.’

당장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넘실거렸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게 매너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국은 패션에서, 특히 명품 패션 시장에서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아시아에서도 여러 문화 컨텐츠를 선도하고 있는 곳이죠.”

브르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브랜드를 더욱 고급스럽게 만들지, 더욱 친숙하게 만들지.”

사업적인 안목이 뛰어난 디자이너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브르누의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평범하지는 않네.’

자사의 브랜드에 친숙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명품 회사가 취하는 마케팅과는 전혀 반대되는 말이었다.

명품 회사들이 취하는 전략은 고급화.

자신들의 제품이 특별하다는 것을 몇 번이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중과 친숙한 아이돌을 모델로 쓰기보다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배우들을 자사의 메인 모델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흥미로웠다.

이 남자가 가진 생각이 말이다.

그는 우리와 몬스터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미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즈와 그런 그들의 후배 아이돌 올리오스.”

넓은 방에선 오로지 브르누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한국을 넘어 범아시아적인 홍보를 위해서라면, 이 두 그룹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획이 무엇일지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컨텐츠인 K-POP. 이를 선도하는 형제 그룹의 콜라보.”

우리를 보는 그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저는 두 그룹의 관계성을 로비 막스의 한국, 나아가 아시아 시장 공략에 사용하고 싶습니다. 연륜과 관록, 신인의 패기.”

말을 마친 브르누가 곧바로 우리를 보며 외쳤다.

“저는 이번 기회에, 몬스터즈와 올리오스의 콜라보로 저희 로비 막스를 한국 시장에 알리고 싶습니다.”

몬스터즈와 올리오스의 콜라보.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한창 주가의 최고점을 갱신하고 있는 몬스터즈와 콜라보 제안.

그 제안을 먼저 한 것이 명품 시장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로비 막스의 수석 디자이너라는 것이.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희랑 몬스터즈 선배님이랑 콜라보를…요?”

놀란 우주가 되물었다.

너무 놀라 자기가 한국어로 말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브르누의 옆에 있던 통역사가 우주의 말을 전해줬고, 우주의 반응에 껄껄 웃었다.

“그래요, 콜라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선 젊은 사람들의 명품 소비가 늘었죠. 그들의 관점에서 조금 더 익숙한 모델들이 우리의 제품을 소비하고 모델이 되어준다면, 접근성이 높아지겠죠.”

브르누의 말을 들은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일반적인 명품 회사가 갖는 홍보 노선과는 결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명품 회사는 보통 자사의 제품이 갖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하고, 누구나 가질 수 없음을 알리는 것으로 마케팅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 로비 막스가 추구하는 마케팅 방식은 그런 명품 회사의 길과는 전혀 반대 방향이 아닌가.

“뭔가 의문이 있나 보군요, 건하 씨.”

브르누가 그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니요. 별거 아닙니다.”

“흠,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욱 신경 쓰이는데요. 혹시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게 말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내 생각을 그에게 전했다.

명품의 마케팅 방식과 지금 현재 브르누가 생각하는 로비 막스의 구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사이에 느껴지는 약간의 의문.

“로비 막스에서 일반적인 명품 회사들과 다른 방식의 홍보 방식을 택하는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내 말을 들은 브르누의 눈이 반짝였다.

“호오, 그 부분이 궁금하셨군요.”

“주제 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갤러리 때는 조금 관심이 적어 보이셨는데, 적극적인 의견을 주신 것에 놀랐을 뿐입니다.”

리옹 브르누는 이어, 내가 앞서 제시한 의문에 대한 답변을 던졌다.

“그런 의문이 들 만합니다.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고요. 다른 회사와는 다른 길을 걸으려는 거니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명품 시장에서 아시아 시장은 가장 큰 시장이고, 이곳에서 승리하는 자가 명품 패션에서 최강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브르누가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단순한 고급화 전략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특별함’을 위한 고급화 전략을 모두가 취한다면, 그로 인한 특별함은 사라지는 거니까요. 대중과 고급, 그 사이에서의 선을 어떻게 타느냐가 핵심입니다.”

그 전략이 어떻게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로비 막스의 전략이 우리 올리오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파도에 잘 올라타는 것도 방법이겠지.

“잘 알겠습니다.”

나를 보던 브르누가 주름진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기대가 되네요. 두 그룹이 어떻게 우리들의 제품을 소화해줄지 말입니다.”

나는 다른 멤버들을 보았다.

그들의 눈에 새겨진 열정이 보였다.

특히 패션에 관심이 있는 세 사람의 눈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뜨거운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긴, 로비 막스가 남녀 구분 없이 인기 있는 명품이었으니까.

그렇게 브루누와의 짧은 만남이 끝이 났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퀘스트를 확인했다.

[돌발 퀘스트: 몬스터즈×올리오스]

[몬스터즈×올리오스 콜라보 화보 제작]

[떠오르는 신인, 올리오스를 아시아에 증명할 수 있는 기회]

[성공 시: 오픈 마일리지 20, 아시아 해외 팬 상승]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역시나 퀘스트.

보상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아시아 해외 팬이라….’

해외 팬.

국내 팬들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팬까지 챙길 수 있는 퀘스트.

탐이 났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실패에 대한 페널티는 보이지 않는, 내게는 나쁠 것 없는 퀘스트.

“고맙습니다, 진성이 형.”

나는 이 자리가 만들어지게끔 힘을 써준 한진성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나는 그냥 추천만 해준 건데 뭘.”

“콜라보 화보에 대해서는 알고 계셨나요?”

“아니, 나도 브르누 씨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움직일 줄은 몰랐어. 그냥 갤러리에 초대한 줄만 알았거든. 하하하.”

한진성도 당황한 기색이었으니까.

몬스터즈 역시 현장에서 바로 들은 모양이었다.

“아마 여기저기서 올리오스를 좋게 보는 사람이 많을 거야.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자리까지 올라왔으니까.”

그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가 같이 콜라보 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네.”

“그러게요. 작년 연말 콘서트 이후로 두 번째죠.”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거 같아?”

많이 달라진 거 같냐라….

한 가지는 확실했다.

분명 우리가 앞으로 나아갔다는 건 말이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첫걸음도 떼지 못한 신인 아이돌에서 조금은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잘은 모르겠는데, 그래도 어디 가서 올리오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된 거 같아요.”

“자신감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나는 네 이런 모습이 좋아.”

어린 후배를 바라보는 선배의 눈빛이 따사로웠다.

동시에 그 따뜻함 속에서 맹렬한 투지 역시 느껴졌다.

“한번 잘 해보자. 기대가 많이 하고 있을게. 후배라고 해서 살살 하는 거 없다?”

무서운 말이었다.

전력을 다하겠다니.

“까마득한 후배 상대로 너무하네요.”

“나는 누구를 상대로 하든 전력을 다해.”

말을 마친 한진성이 씨익 웃었다.

그 미소엔 자신감과 동시에 성공한 후배에 대한 대견함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밀리지 않는 너희도 더 빛나지 않겠어?”

“밀리지 않는 모습 보일 생각 없습니다, 선배님.”

갑자기 선배님이라며 거리를 두는 말투에 한진성이 살짝 움찔했다.

“이길 거예요, 몬스터즈.”

함께 찍는 화보에 승패가 어디 있겠느냐만.

나는 선언했다.

감히 몬스터즈를 한번 이겨 보겠다고.

“이기겠다고?”

“네, 무조건 이길 겁니다. 진성이 형이랑 구희성 선배, 카이 선배, 그리고 다른 분들 전부.”

“그럼 우리도 설렁설렁해서는 안 되겠네.”

“네.”

나는 한진성을 응시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투지를 다졌다.

조만간 있을 로비 막스의 화보, 몬스터즈×올리오스 콜라보 촬영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    *    *

재민그룹의 이창종 부회장은 패션쇼에서 돌아온 이후에 사무실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황룡그룹 윤택수 회장의 아들 윤건하.

중학교 이후로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갑자기 아이돌이 되어 나타난 윤택수 회장의 외동아들.

당연히 자신처럼 회사를 물려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뜸 아이돌이라니.

무슨 생각인 거지?

“실장님.”

“네, 부회장님.”

“그 말이 진짜일까요?”

“윤건하 군이 회사를 이어받지 않는다는 거 말씀이십니까?”

“예.”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짧은 식견으로는 사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굳이 아이돌로 시간을 보낼 이유가….”

“한번 확인해 주세요. 윤건하 그 애가 왜 아이돌을 하려는 건지, 황룡그룹의 생각은 뭔지.”

“알겠습니다.”

이창종 부회장은 패션쇼에서 만난 윤건하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다.

“아이돌을 하겠다고?”

웃기는 소리.

아이돌에 전념하겠다,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놈이 그런 눈빛을 할 리가.

호랑이의 눈빛이었다.

이창종 부회장이 처음 윤택수 회장을 봤을 때 느꼈던 거대한 존재감을.

머리를 화려하게 염색한 그의 아들에게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생에게서 느꼈다.

거대한 호랑이의 기세가 건하에게서 느껴졌다.

무슨 꿍꿍이가 있어 아이돌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은 무조건 돌아올 거야.’

윤건하의 거짓말을 낱낱이 파헤치겠노라 다짐하는 이창종 부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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