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41화 (141/236)

<제141화>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로비 막스의 갤러리로 참가할 수 있는 초대권이 왔다니.

“진짜요?”

로비 막스!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명품 패션 브랜드였다.

프랑스의 패션을 이끌어가는 최고의 브랜드 중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팔로워를 갖고 있는 회사.

특히 동아시아 3국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갖고 있는 명품 회사.

그런 회사의 초대라니.

“내가 추천했어.”

우리에게 초대장을 내민 한진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가 내민 하얀색 초대장에는 금박으로 영어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INVITATION

.

선명하게 박힌 로비 막스의 로고 아래 우리를 초대하겠다는 간결한 메시지.

이번에 로비 막스의 F/W 패션쇼가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온갖 스타들이 참석한다는 그 유명한 패션쇼에 우리가 간다니.

“내가 우리 올리오스 어떠냐고 추천하면서 영상이랑 간단한 이력을 보냈는데, 그쪽에서 바로 초대장을 내밀더라.”

“와….”

우주와 정민, 호진 세 사람의 입이 도무지 닫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 중에 패션에 관심이 많은 세 사람이라 더 그런 것 같았다.

패션에 관심 많은 사람 중에서 로비 막스가 갖고 있는 브랜드 파워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고마워요, 형.”

나는 진성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보고 초대장을 보냈다고 해도, 진성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초대장은 애초에 나오지 않았을 거다.

이번 로비 막스의 초대는 한진성의 덕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하하, 고맙긴. 잠재력 있는 후배들이 더 높은 곳을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인 거지.”

한진성이 내 어깨를 감쌌다.

“이번 무대에서 보여줬잖아. 올리오스도 이제 우리 못지 않은 티켓 파워를 갖고 있는 그룹이라는 거. 팬들 앞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자던 영상 보고 나 진짜 감동했어.”

얼마 전에 올라온 마지막 무대 비하인드 영상 이야기였다.

“좋은 형한테 배웠죠.”

“뭐? 하하하하! 너 진짜 사회생활 잘한다.”

한진성을 보며 너스레를 떨자, 방이 떠나가라 웃었다.

“그럼 자랑스럽게 얘기해도 돼?”

“뭐를요?”

“올리오스 후배들 내가 키웠다고.”

“물론이죠. 그렇게 말해주시면 영광인데요.”

장난스럽게 미소짓던 한진성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런데 너희 정말 많이 올라왔네.”

“저번에 말씀드렸잖습니까. 높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건방진 각오인데, 그것도 올리오스다워서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이번 로비 막스의 갤러리 참석은 앞으로 더 큰 무대로 가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섞여 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는, 해외로 가기 전 우리의 이름을 알리는 작은 무대.

“눈이 이글이글 타고 있네.”

“티 났습니까?”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

“알겠습니다.”

한발 앞선 선배의 조언을 잘 들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럼 코엑스에서 보자.”

“네. 고마워요, 진성이 형.”

“그래.”

“감사합니다!”

멤버들 모두가 한진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도움을 받아 한 걸음 더 나아갈 기회를 얻었기에.

“근데 이거 진짜야?”

우주가 진성에게 받은 초대장을 이리저리 살폈다.

초대장을 보는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가짜는 아니겠지. 진성이 형이 주고 가셨는데.”

정민이 그 말을 거들었다.

그런 정민의 목소리엔 설렘이 가득했다.

“거기에 스타분들 엄청 많이 온다던데….”

호진은 기대와 걱정이 반반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성훈은 그런 동생들을 보며 묵묵히 웃었다.

패션 쪽에 관심이 그리 많지 않은 그였기에 다른 멤버들처럼 환하게 즐거워하기보단 조용하게 분위기에 동조할 뿐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로비 막스 갤러리 초대는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스텝업의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하나 더 찾자면,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정민이나 우주, 호진처럼 좋아할 이유는 없었다.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하지? 스타일리스트 예리 누나한테 부탁할까? 아니면 내가 직접 스타일링 하는 게 좋을까?”

“나는 이미 생각해뒀어.”

“진짜? 어떻게 입을 건데?”

“비밀.”

정민과 우주, 호진은 벌써 패션쇼에 참석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는 누나한테 부탁하는 게 낫겠다.”

“그러게.”

나와 성훈은 우리의 실력을 알기에 더는 패션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    *    *

로비 막스의 패션쇼가 열리는 서울 코엑스 앞에는 기자들로 빼곡했다.

“아직 초대 갤러리 리스트 받은 거 없죠?”

“없습니다, 선배님.”

“하아, 소문으로는 유명 배우 오진세 씨랑 라이언이 온다고들 하던데.”

“요즘 핫한 여배우인 양한별 씨도 오늘 오지 않나요?”

“양한별 씨도 오나요?”

기자들은 각자 소스로 들은 정보를 공유하며 패션쇼를 찾을 스타들을 기다렸다.

2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로비 막스의 패션쇼에 많은 스타가 참가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연예계 스타는 물론이고 재계 유명 인사들도 참여한다는 소식에 온갖 기자들이 몰려, 코엑스 앞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재민그룹의 이창종 부회장도 참석한다던데요?”

“이창종 부회장? 그 사람도 온답니까?”

연예부 기자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낯선 이름이 나왔다.

이창종 부회장.

재민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손꼽히고 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젊은 나이에 능력을 인정받아 서른이 조금 넘는 나이에 벌써 부회장의 자리를 따낸 차기 오너.

호감형 발언들과 훤칠한 외모 때문에, 작은 행보 하나도 기사화가 될 만큼 세간의 주목을 끄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까지 온다니.

로비 막스보다는 보다 더 하이엔드 명품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당연하지.

재민그룹은 황룡그룹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재계 서열 50위권 안에 드는 거대 기업이니까.

그런 회사의 후계자는 로비 막스보다 더 고품질의 브랜드를 찾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관심은 금방 꺼졌다.

이곳은 경제부 기자들이 아닌, 연예부 기자들이 모인 곳.

경제 관련 인사의 이야기는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졌다.

“몬스터즈도 이번에 참석한다던데, 들으셨습니까?”

“올리오스도 초대받았다던데요?”

“아, 그 황룡그룹 외동아들이 있다던?”

“네.”

“역시, 로비 막스도 이러니 저러니 해도 주목하는 포인트는 다 똑같네요.”

“그 이창종 부회장이 온 것도 올리오스 윤건하 씨 때문이 아닐까요?”

한 번 불어난 소문이 기자들 사이에 전염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기자들의 상상력은 과할 정도로 풍부했다.

작은 소스 하나로 스토리 하나 뽑아내는 것 정도야 그들에겐 일도 아니었다.

재민그룹과 황룡그룹은 예전부터 라이벌 관계.

이창종 부회장이 윤건하를 인식해서 이 패션쇼까지 찾아왔다.

올리오스의 윤건하가 결국 황룡그룹을 이어받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추측으로 시작된 소문은 점점 몸집을 키워,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기자들의 머릿속에 새로운 기사가 한 줄 올라갔다.

-이창종, 윤건하. 재벌 후계자들의 패션 전쟁.

한쪽은 아이돌, 한쪽은 부회장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매치업이었지만, 기자들의 상상력은 그런 불협화음 정도는 무시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몬스터즈 한진성이 도착했습니다!”

최근 가장 핫한 아이돌, 몬스터즈의 등장에 기자들의 수군거림은 곧 사라졌다.

찰칵! 찰칵! 찰칵!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몬스터즈 한진성이 차에서 내리고, 포토존에 설 때까지 플래시가 끊임없이 터졌다.

카이, 최도현, 이진규 그리고 구희성까지.

이제는 개인 활동도 활발하게 하는 몬스터즈 멤버들이 각기 다른 차를 타고 등장하며 레드카펫을 가득 채웠다.

몬스터즈가 지나가고 여러 스타가 계속해서 포토존에 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이번 패션쇼에서 기자들 사이에 가장 많이 이름이 오르내렸던 윤건하의 올리오스가 입장했다.

그들이 포토존에 섰을 때, 어느 때보다 많은 플래시가 터졌다.

본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러 스타보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올리오스를 찍는 카메라가 훨씬 더 많았으니까.

다들 혹시 우리가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 하는 얼굴이었지만, 곧 프로답게 표정 관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리오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플래시는 끊임없이 터졌다.

*    *    *

“뭐지?”

우주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우리 무슨 큰일 저지른 거 아니지?”

우리는 벙찐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고라도 터진 걸까?

그게 아니라면 올리오스의 사진을 찍으려고 그렇게 살벌하게 카메라를 들이댈 리가 없는데.

“유독 건하한테 카메라가 몰려가던데,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흠…. 건하야, 뭐 들은 거 없어?”

멤버들 모두가 나를 보며 물었다.

들은 거?

글쎄, 이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내가 모르는 윤건하의 과거사라도 터진 걸까?

그런데 터질 것도 없을 거다.

어린 윤건하가 한 거라고는 연습실에서 연습한 게 전부였으니까.

학폭 논란 같은 게 터질 것도 없단 말이야.

뭐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울 때였다.

“건하야!”

매니저 이두현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뭔가 터지긴 터진 모양이었다.

“두현이 형, 무슨 일 있어요?”

“잠깐 너만 일로 와. 따로 얘기하자.”

나는 두현의 손에 이끌려 계단으로 통하는 작은 통로로 이동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이두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게… 프로듀서님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지금 패션쇼 갤러리에 이창종 부회장이 와 있대.”

이창종 부회장?

그게 누구?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두현이 한숨을 퍽 내쉬었다.

“몰라? 재민그룹 부회장. 거기랑 황룡그룹이랑 요새 기류가 묘하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아.

왜, 기자들이 그렇게 가열차게 우리를 찍어댔는지.

“설마 그분이랑 엮여서 기사가 났습니까?”

“그럴 거 같더라. 우리도 방금 소스를 들었어. 아무래도 로비 막스 갤러리 리스트는 당일 될 때까지 비밀에 부치니까.”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그래서 지금 갤러리에서 빠지는 게 어떠냐는 얘기가 오고 갔어.”

“우리한테 악재인가요?”

“그런 건 아니지. 네가 윤 회장님 아들이라는 건 이제 다들 아는 사실이니까.”

그거 때문에 이미지 손실이 나지도 않는다면, 차라리 이걸로 화제를 이끄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패션쇼에서 빠지는 것보단, 계속 참가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기자들이 너랑 이창종 부회장을 비교하면서 기삿거리로 쓸 텐데.”

“쓰라죠. 이창종 부회장은 무대에서 거리가 얼마인데, 나는 얼마다. 이런 얘기나 나오겠죠.”

“괜찮겠어?”

“전 괜찮아요. 저는 회사가 더 걱정되는데요?”

“프로듀서님은 관련 기사 뜨면 바로 대응하겠다고 하셨어. 홍보팀도 대기 중이고.”

굳이 대응하지 않아도 될 거다.

오히려 어설프게 대응해서 좋을 건 없었다.

이런 건 차라리 자연스럽게 떠들게 두는 게 좋으니까.

가십거리다.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을 가십거리.

이창종.

그 인간이 뭐 하는 인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긁어 부스럼만 만들지 않는다면.

‘어쩌면 제일 이슈를 끌어당긴 그룹은 우리가 될지도 모르겠네.’

운이 좋다.

어쩐지 오늘따라 머리가 잘 먹더니만.

“들어가죠. 저는 꿀릴 거 없어요. 이창종 부회장님이랑 트러블만 안 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두현은 불안한지, 입술을 핥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날 거예요.”

패션쇼에서 무슨 일이 터질 일은 없을 거다.

내가 먼저 들이박지만 않는다면.

*    *    *

“오랜만이네, 건하야.”

이창종 부회장이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잠깐, 이런 전개는 예상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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