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40화 (140/236)

<제140화>

연습실로 출근한 나는 저번에 얻은 번역 스킬을 멤버 전원에게 복사해서 붙여넣었다.

[유성훈에게 번역(SS)을 수여합니다.]

[정민에게 번역(SS)을 수여합니다.]

[안호진에게 번역(SS)을 수여합니다.]

[최우주에게 번역(SS)을 수여합니다.]

[여러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스킬을 수여했다.

이제 이 스킬은 천천히 그리고 치밀하게 멤버들에게 자리 잡을 것이다.

아마 미국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나라의 언어가 익숙해짐을 느낄 거다.

자연스럽게 외국어와 친해지고, 현지의 말을 따라 할 수 있겠지.

굳이 그들에게 영어를 배우자고 압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이 스킬은 그 정도로 효과가 좋은 녀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막 없이 미드를 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걸?

그때가 되면 멤버 전원이 굳이 통역사를 붙이지 않아도 외국에서 인터뷰를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될 거다.

‘우주는 영어로 랩도 가능해질 수도?’

해외 활동에 여러모로 호재 아니겠어?

물론 당장의 큰 변화는 없을 수 있다.

애초에 처음부터 장기적인 관점으로 새로 얻었던 스킬이었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내가 자신들에게 번역 스킬을 선사했다는 걸 알 리 없는 멤버들은 헬스장에서 한창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직 노래가 나온 것도 없고, 안무는 대략적인 틀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다들 연습실에 출근하기보단 헬스장에서 자신의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던 우주가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형, 늦었네?”

“어, 연습실에 잠깐 들렀다 왔어.”

“춤 연습했던 거야?”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루틴 같은 거야. 괜히 마음이 놓이니까.”

우주가 러닝머신 위에서 내려와 목에 걸친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피부에 맺힌 땀방울 때문에 근육이 평소보다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물병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신 우주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후우, 나는 유산소 다 끝내고 이제 근력운동 하려고 하는데…. 참, 형 오늘 올라온 영상 봤어?”

“영상?”

“기재율 PD님이 만든 올리오스 비하인드 영상 말이야.”

“아니. 아직 못 봤는데.”

“그거 한번 봐봐. 엄청 재밌게 나왔어. 형이 주인공이던데?”

“내가?”

“응. 우리 마지막 공연 때 형이 한 말들 있잖아. 아니다, 말보다는 직접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우주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너튜브에 들어가더니 올리오스의 마지막 투어 브이로그 영상을 틀었다.

연습실 바닥에서 다들 탈진한 채로 쓰러져 있는 우리의 모습으로 영상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여러 투어 공연, 인터뷰나 라디오 출연, 거기에 대학 축제 무대, 부가적으로 생긴 스케줄을 소화하는 모습이 연습하는 모습과 교차하여 상영되었다.

수차례 이어진 강행군에 다들 지쳐버린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다들 집중력이 흐트러져, 연습 중에 실수하는 모습도 종종 나왔다.

마지막 무대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다들 많이 지친 거 아는데, 조금만 더 힘내자!”

영상 속의 나는 박수를 치며 연습실에 드러누운 멤버들에게 외쳤다.

“이제 마지막 무대 하나 남았어. 이것만 끝내면, 복귀 전까지 한동안 쉴 수 있잖아. 나도 힘들고 우리 모두 힘들지만…. 다들 알잖아. 우리한테는 수많은 무대 중에 하나지만, 공연을 찾아온 팬들에겐 평생 단 한 번의 무대일 수도 있다는 거.”

나는 화면 속의 나를 보며 얼굴이 화끈해지는 걸 느꼈다.

“나, 저런 부끄러운 말을 서슴없이 했구나.”

“왜, 맞는 말인걸. 나도 저 말 듣고 정신 차렸잖아. 진짜 다리도 덜덜 떨렸는데, 팬들한텐 딱 한 번 있는 무대라는 말에 힘이 나더라고.”

“비행기 띄우지 마. 고소공포증 있다니까.”

“히히, 근데 다 사실인데 뭘.”

이후 영상에선 다들 이전만큼 실수하진 않았다.

-건하는 진짜 프로다.

-울 건하는 야무지게 말하고 표현하는 게 매력이야.

-마음 진짜 예쁘다.

브이로그 영상에 달린 영어 자막 때문일까.

영어로 달린 댓글도 상당히 많았다.

나는 번역 스킬을 활용해 영어 댓글을 읽었다.

-이 남자는 누구입니까? 너무 잘생겼습니다.

-나는 올리오스의 브이로그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귀엽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멋진 춤을 추는 모습에 마음이 치유됩니다.

아직까지는 번역 스킬이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해, 특유의 번역투가 남아 있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워지겠지.

‘영상에 달린 영어 댓글 읽는 것도 좋은 연습이 되겠는데?’

번역 스킬을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외국어에 자주 노출될 필요가 있었다.

이보다 좋은 매체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영상을 모니터링 하는 것만으로 스킬을 발전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나 다름없었다.

-연출한 영상 아님? 너무 작위적인데.

악플도 달렸지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런 악플은 인기를 얻는 이상 늘 따라다니는, 피할 수 없는 종류였으니까.

“사람들이 형의 저 말을 엄청 좋아하더라. 우리에겐 많은 무대 중에 하나지만 팬들에겐 유일한 무대일 수 있다는 말 말이야.”

우주가 감동을 받았는지, 몇 번이고 그 말을 되뇌었다.

“나중에 이거 똑같이 써먹어도 되지?”

“네가 진심으로 그 말을 실행하고 있으면.”

모든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거면 될 거다.

“좋아! 그건 어렵지 않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왜 이렇게 불안한 건지.

“둘이 뭐 하고 있어?”

그때 바벨을 어깨에 얹은 채 스쿼트를 하고 있던 성훈이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성훈이나 우주나 운동의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오늘 올라온 브이로그 보고 있었지!”

“아, 그거. 멋지게 나왔더라.”

“우리 건하 형이 참 리더감이지. 안 그래?”

“응. 마지막 무대가 생각이 나서 계속 보게 되더라.”

성훈이도 감명을 받았는지, 브이로그에 대해 몇 번이고 말했다.

“나중에 기 PD님한테 밥이라도 한 끼 사야 되는 거 아니야? 영상을 엄청 잘 만들어 주셨잖아.”

“나중에 감사 인사 전하면 될 거다.”

우주와 성훈은 기재율 PD에게 어떻게 보답할지에 대해 꽤나 진지한 토론을 이어갔다.

“우리 굿즈를 드리는 건 좀 그러니, 밥을 한 끼 사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PD님은 바쁘셔서 힘들 수도 있다. 차라리 감사 케이크 같은 거라도….”

진지하게 이어지는 토론에, 나는 도망치듯 탈의실로 향했다.

여기 계속 있다간 나도 저 진지한 토론에 끼어들어야 할 거 같아서.

“아으, 운동해야지. 몸이 찌뿌둥하네.”

*    *    *

“대표님, 올리오스 1주년 기념으로 진행할 해외 투어 관련 보고서입니다.”

황이서는 건너편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최강훈 대표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벌써 1년이나 됐나? 데뷔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일이 너무 바빠서 1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주년 기념으로 해외 투어라…. 조금 이르지 않나?”

“성장세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해도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투어라…. 한번은 가야지. 다양한 팬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기도 하고, 올리오스는 해외 반응도 좋으니까.”

최강훈 대표가 커피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해외 무대 중에서 일정에 맞는 곳들이 있나? 이미 예약이 가득 찼을 텐데?”

“이미 얘기를 해뒀습니다. 대표님 승낙만 떨어지면 바로 진행 가능합니다.”

“역시 황 프로가 실행력이 좋아.”

“밥 먹고 하는 일이 이런 거밖에 없는 걸요. 하하하.”

최강훈 대표가 보고서를 읽었다.

“일본, 태국, 마지막엔 중국까지 가는 건가.”

“네. 일본과 동남아를 거쳐 돌아오는 길에 중국에서 마무리를 짓는 일정입니다.”

“동선은 낭비 없이 깔끔하니 좋네.”

“일정은 타이트하지만, 몬스터즈 해외 공연하면서 구축해둔 연락망이 있습니다. 현지 스태프와 협업해서 전부 세팅해 뒀으니까 일정에 맞춰 무리 없이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해외 무대 공연장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네.”

“예, 초안이 작성됐을 때가 애들 데뷔하기 직전이어서….”

그때도 ‘잘됐을 때’를 상정해서 만든 기대감이 섞인 기획안이었지만 이 정도로 잘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강훈 대표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쯧, 어쩔 수 없지. 애들이 그렇게 처음부터 뜰 줄은 몰랐으니까.”

“더 큰 공연장으로 변경할 수 있으면 변경해 보겠습니다.”

“그래. 너무 무리해서 진행하지는 말고.”

“예.”

최강훈 대표가 최종 보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아, 그리고 로비 막스에서 연락이 왔는데 말이야.”

“로비 막스 말입니까?”

“그래. 그, 프랑스에서 명품백이랑 옷이랑 만드는 회사.”

“거기서 왜….”

“이번에 F/W시즌에 맞춰 서울에서 패션쇼를 하는데, 우리 올리오스랑 몬스터즈가 갤러리로 참가해 줬으면 한다네?”

“올리오스도 말입니까?”

“그래. 거기 관계자들이 우리 애들을 좋게 본 거 같아.”

최 대표가 남은 커피를 마셨다.

“모델도 아니고, 갤러리로 초청한 건 의외네요. 어느 정도는 성공한 연예인들만 갤러리로 초청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 그런 걸로 유명하지.”

까다로운 회사였다.

프랑스 명품 회사들이 다 그렇다.

갤러리에 참석하는 스타들을 컨택하는 것에 있어서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지곤 했다.

특히 로비 막스는 더 심했다.

거기 CEO가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갤러리에 초대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모델부터 갤러리까지 조목조목 따지는 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 때문일 거다.

“해외 투어만큼이나 좋은 일이네요.”

“그래. 그 까다로운 인간들이 우리 애들을 인정했다는 뜻이니까.”

“어떻게 봤답니까?”

“그거?”

최강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진성이가 추천했다고 하더라.”

“진성이가요?”

“그래. 진성이가 로비 막스에 추천했다네. 거기 관계자한테 올리오스 영상들을 주르륵 소개해 줬다고.”

“진짜 많이 아끼나 보네요.”

“올리오스가 데뷔할 때부터 유별났지.”

최강훈은 올리오스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한진성이 고맙고 기특했다.

아끼는 후배의 성공을 위해서 앞장서서 나서주는 선배 아이돌.

기획사 대표로는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어쭙잖은 홍보를 한다고 오히려 역효과가 났을 거다.

그랬다가 잘못됐으면, 로비 막스에 GH 엔터의 연예인들은 출입조차 할 수 없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스타의 추천은 달랐다.

영업을 위한 추천이 아닌, 잘 나가는 스타가 후배를 추천하는 건 오히려 권장하는 곳이었다.

영업맨과 스타를 엄격하게 분리하며 운영했다.

로비 막스는 그런 곳이다.

혹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기획사 대표가 스타를 시켜서 소속 연예인을 푸시하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로비 막스는 그런 어설픈 꼼수가 통할 곳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스타를 보는 눈이 있다.

그 기준에 들어가지 못하면, 추천한 스타도 미운털이 제대로 박히니까.

정말 확신하는 게 아니라면 가볍게 추천하는 것조차 어려운 곳이었다.

한진성의 추천을 받아들였다는 건, 로비 막스 역시 올리오스의 잠재력을 좋게 봐줬다는 뜻이었다.

황이서가 해외 투어 만큼이나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애들이 좋아하겠어요. 쉽게 가지 못하는 곳이니까요.”

“견문도 넓히고 여러모로 좋은 일일 거다.”

“진성이한테 전하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 부분은 황 프로가 알아서 해줘요.”

“알겠습니다.”

오늘따라 커피에서 느껴지는 풍미가 깊었다.

“맛있네, 커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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