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돈을 어떻게 버는 게 좋을까.’
한참을 생각했다.
주식으로 돈을 버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과거로 회귀했다거나 평소에도 이곳의 기업들을 살필 시간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업을 시작하는 건 이른 선택이었다.
아이돌에 전념하기 위해 구희성의 연기 제안도 거절했는데, 사업이라니.
아이돌이 해야 할 일을 모두 놓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을 오래 잡아먹어선 안 돼.’
그러면서 확실한 투자여야만 해.
‘그런 게 세상에 있나?’
시간을 많이 쓰지 않음에도 내게 확실한 수익을 보장해주는 아이템이?
결국 명쾌한 답 없이 사무실로 출근했다.
결정하지 않는다고 시드 머니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 신중하게 고민을 하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따로 스케줄이 없는 날이었다.
그럼에도 사무실로 출근한 건, 다음 앨범의 노래를 작곡하는 정민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간다고 음악적으로 별다른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정민의 멘탈 부분은 충분히 도와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 정말 왔구나.”
“그럼 가짜로 오겠어?”
“다른 애들은?”
“다들 집에서 쉬고 있지. 오늘은 따로 스케줄이 없는 날이니까.”
“후우, 부럽네. 나도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
나나 정민이나 이제는 숙소를 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익숙해졌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모두가 지금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옆에 앉아 정민이가 하는 작업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전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노래를 진심으로 느끼며, 코드를 만지고 멜로디를 만들었다.
“흐응~ 흐으음~.”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노래를 만들던 정민의 얼굴에 미세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이전의 고민은 모두 잊은 듯 노래에 온전히 집중했다.
“오늘 작곡하는 노래는 건하 네가 진짜 좋아할 노래야.”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응. 들어보면 알걸?”
무슨 노랜지는 모르겠지만, 흥얼거리는 모습만 봐도 노래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각조각 따로 놀던 노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점차 모양을 갖추며 곧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여러 코드가 모여 멜로디가 되었고, 멜로디가 모여 하나의 노래가 되었다.
벌스와 훅, 브릿지가 구분되어 있는 약간 힙합 느낌의 댄스곡이었다.
나는 완성한 곡을 잠시 들었다.
“좋은 거 같은데.”
“그치? 나도 같은 생각이야.”
스킬이 마에스트로로 진화한 이후에 정민의 폼은 그야말로 최상을 찍고 있었다.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거다.
오죽하면 출근하는 동안에도 콧노래를 부르고 다닐까.
“여기 부분에서 우리 둘이서 하모니를 낼 거야. 이 뒤에 성훈이 형이 파고들어서 고음을 쨍!”
정민의 머릿속엔 이미 어떻게 노래를 부를지에 대한 것도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어때? 익숙하지 않아? 뭔가 딱 오는 거 없어?”
“음…. 잠깐만.”
그런데 어째, 이 노래 귀에 익은데?
정민의 노래를 계속 듣다 보니, 마치 예전부터 몇 번이고 들은 것 같은 친숙함이 느껴졌다.
왜지?
내가 이 노래를 어디서 들었지?
단순히 데자뷰 현상인가?
“가사도 있어. 아마 건하 너는 잘 알고 있을 거야.”
“내가 알고 있다고?”
“응. 보면 단번에 알걸? 한번 볼래?”
고개를 끄덕였다.
“자, 여기 있어. 딱 보면 알 거야.”
정민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담겼다.
“건하 너는 내 뮤즈야. 진짜 최고의 뮤즈.”
가사를 받아든 나는 가사와 정민을 번갈아 보았다.
“이건….”
“역시 단번에 알아 보는구나?”
이렇게 단번에 알아보는 이유.
그건 내가 이곳 GH 엔터로 오기 전에 봤던 오디션에서 불렀던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For you’.
그대라는 사람을 만나
나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항상 내 옆에서 힘이 돼주고
기댈 수 있게 해줘서.
늘 말하고 싶었지만
겁이 나 말하지 못했던 말.
고마워요.
나와 함께해줘서.
익숙한 가사, 익숙한 멜로디.
<마이 아이돌>의 메인 OST임과 동시에 게임 팬들에게 오랜 시간, 다양하게 사랑받았던 노래.
이게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그날 내가 최강훈 대표와 황이서 프로듀서 앞에서 불렀던 건, 그저 오디션에 통과하기 위함이었다.
왜냐고?
나는 작곡을 할 능력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정민에게 먼저 추천하지도 않았다.
되는 노래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내가 개입하는 순간, 원래 노래가 갖는 매력이 사라질 수 있었으니까.
‘New Taste’ 때와는 달랐다.
‘New Taste’ 때는 이미 완성된 노래에 내 경험에 기반한 감상을 살짝 더한 거라면, ‘For you’는 내가 기획부터 가이드 라인까지 다 잡아줘야 했다.
헌데 그런 ‘For you’가 이런 식으로 세상에 나오다니.
“프로듀서님이 예전에 네가 오디션에 불렀던 영상을 갖고 계시더라고. 우연히 보게 됐는데 노래가 너무 좋아서 곡을 꼭 구체화하고 싶었어.”
“…….”
나는 멍하니 정민을 봤다.
그 눈빛을 오해한 걸까.
“미안해. 아무래도 미리 협의하지 않고 만드는 건 좀 그렇겠지?”
난감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그런 정민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천만에. 놀라서 그래. 노래가… 너무 좋네.”
“정말?”
“응.”
솔직히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멜로디에 가사를 붙이는 장면을 잠시 상상했는데, 노래가 너무 똑같았다.
내가 원래 세계에서 즐겨 들었던 <마이 아이돌>의 메인 OST인 ‘For you’와.
“이렇게 좋은 노래가 나올 줄은 몰랐네.”
뜻밖의 선물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For you’가 이 세상에 나오는 건 한참 뒤의 일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나오다니.
‘마에스트로 효과인가.’
여러모로 좋은 선물을 받았다.
진심 어린 감탄에 정민이 부끄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헤헤, 네가 칭찬을 해주니 마음이 놓이네.”
“한번 불러봐도 되지?”
“당연하지. 가이드 녹음을 건하 너한테 맡기고 싶었거든.”
“알았어.”
나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부스 밖에는 프로듀서가 아닌, 정민이 나를 보고 있었다.
-우선 한마디씩 해볼까?
“아니야. 괜찮아. 한 번에 끝까지 불러볼게.”
-정말?
“내가 불렀던 노래에 영감을 받아서 만든 멜로디잖아. 어떻게 라인을 잡았는지는 옆에서 다 봤으니까.”
-오케이. 알겠어.
반주가 시작되었다.
힙합 리듬에 킥드럼이 박자를 맞추고, 신시사이저가 멜로디를 이끌었다.
익숙하지만 조금은 낯선 반주를 들으며 이 노래를 부르고 들었던 과거를 추억했다.
그게 게임을 즐기던 사업가 시절 윤건하인지, 아니면 이 세계에 빙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혼란을 겪던 연습생 시절 윤건하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하나.
이 노래를 부르며 진심으로 즐겼다는 것은 확신했다.
그대라는 사람을 만나
나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항상 내 옆에서 힘이 돼주고
기댈 수 있게 해줘서.
눈을 감으며 멜로디에 집중했다.
가사집은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
몇백 번은 들었던 노래였으니까.
노래를 부르고, 멜로디를 느끼며 가사의 의미를 되새겼다.
사랑 노래.
정확히는 이별하는 너를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사랑 노래.
그러나 단순히 이별하는 이에게 부르는 사랑 노래라기엔 과하게 신나는 노래였다.
마치 자신의 슬픔을 억지로 숨기려는 듯이.
자신의 본심을 숨기겠다는 가사가 당시의 내게 강하게 들어왔다.
회사 대표라는 자리는 자신의 본심을 절대로 내비쳐서는 안 되는 자리였으니까.
그 진심이 약점이 되고, 약점은 회사를 무너트리는 비수가 될 수 있었다.
항상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야만 했고, 타인에게 내 본심을 숨겨야만 했다.
그랬기에 그 가사가 더 내 마음에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For you’는 내게 조금 더 특별한 노래였다.
이 게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만든 노래이기도 했다.
그래. 어쩌면 이 세계에 빙의된 건 돌고 돌아 이 노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하네, 나는.’
본심을 숨겨야 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원래 윤건하가 아니라는 말을 절대 하지 못하고 끝까지 숨겨야만 하는.
나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네.
전혀 다른 세계, 다른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윤건하라는 사람은 끝까지 솔직하지 못하는 거 같았다.
그 감정을 노래로 표현했다.
끝까지 나를 숨기며, 신나게 내 과거의 사랑을 말하는 노래를 말이다.
마지막 박자가 끝이 났다.
“어땠어?”
나는 부스 밖에 있는 정민에게 물었다.
-프로듀서 형들이 왜 너랑 작업할 때 항상 별다른 코멘트를 안 주는지 알겠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최고야. 가이드는 이거면 충분하겠어.
“작곡가의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공동 작곡이지. 네 노래를 듣고 만든 노래니까.
정민이 부스 밖에서 엄지를 추어올렸다.
그렇게 얘기해주면 나야 고맙지.
부스에 나가서 녹음된 ‘For you’를 들었고.
내가 들었던 그 노래라는 걸 다시금 깨달으며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둔 제목이 있어?”
“‘For you’, 예전에 그렇게 적었어. 이미 헤어지고 잃어버린 연인을 위한 노래라고 생각했거든.”
“좋네. 좋아.”
정민의 얼굴에 해냈다는 성취감이 깃들었다.
“노래가 너무 좋다. 다른 애들이 들으면 깜짝 놀라겠는데.”
새로 나온 노래에 만족해 웃고 있었는데.
우우웅!
전화가 왔다.
윤택수 회장이었다.
-최 실장 보냈다. 같이 차 타고 집으로 와라.
회장이 갑자기 왜?
* * *
집에 도착하니, 점심 식사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윤택수 회장은 별다른 말이 없었고 우린 조용히 식사를 했다.
“아직도 다음 활동에 대한 게 감감무소식이더구나.”
식사를 다 마친 윤택수 회장이 내게 물었다.
“아….”
“두려운 게냐? 네가 이기지 못할 거 같아서?”
왜 집으로 불렀는가 싶었는데, 역시 내기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일에는 우선순위가 따로 있기에 시간이 걸린 것뿐입니다.”
“그러냐?”
“예.”
“아직도 소식이 없기에 네가 겁을 집어먹은 것이 아닌가 오해했다.”
“그걸 물어보려고 부르신 겁니까?”
“그래.”
“의외네요. 내기에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요.”
“흥, 내가 관심이 왜 없겠냐. 네가 우리 기업의 후계자가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내기인데.”
“절대 그렇게 될 일 없을 겁니다.”
“1등을 할 수 있다는 거냐?”
“예.”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근거가 있는 자신감입니다.”
원래 자신감은 넘쳤다.
무조건 할 수 있다 믿었다.
그러나 오늘 정민과 녹음한 노래, ‘For you’를 듣는 순간 마음을 더 굳힐 수 있었다.
이번 앨범이 무조건 성공할 거라는 걸.
다소 이른 감상이긴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For you’는 게임의 메인 OST가 될 정도 좋은 노래였다.
그런 좋은 무기를 들고 어떻게 실패할 수 있겠어.
성공할 거다.
그래서 윤 회장과 했던 내기에서 이기고, 그의 투자를 받아낼 거다.
반드시.
그런데 내 눈빛을 본 윤 회장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건 기분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