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나를 보는 정민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눈동자엔 분노가 가득했다.
그 분노가 나를 향한 게 아님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지금 상황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투어를 다니면서 어떻게든 다음 앨범의 수록곡을 완성하겠다는, 스스로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걸 거다.
저런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은 건 아무래도.
‘질책해 달라는 거지.’
처음처럼.
정민과 만났을 때 해줬던 조언처럼 말이다.
처음처럼이라.
만약 정민이 내게 신곡을 내밀었다면…. 글쎄, 나는 대답하지 못했을 거다.
그날의 일은 아귀가 맞은 퍼즐처럼 잘 맞춰진 우연이 엮여 만들어진 필연이었으니까.
전문 지식보단 게임에서 보았던 성공과 현재의 비교.
그때 느껴졌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입에 올렸을 뿐이고, 정민이 그 조언을 잘 받아먹었던 거다.
지금 정민은 내게 상업성에 대한 걸 묻고 있었다.
대중의 요구를 맞추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자신의 색이 강한 노래를 하는 게 맞는지.
“대중적인 노래와 신선한 노래라….”
양자택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달라는 질문처럼 들리겠지만, 이건 나의 답을 원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동의를 구하는 거다.
자신이 생각한 정답이 맞는지 말이다.
‘정민은 이미 그 정답을 정해둔 거 같고.’
다만, 본인의 정답에 대한 확신이 없어 아직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보였다.
정민이 선택한 답이.
“갑자기 그런 고민은 왜 한 거야?”
정민의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졌다.
궁금했다.
갑자기 정민이 왜 이런 고민을 갖게 됐는지를.
알고 싶었다.
혹시 그 고민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아닌지를.
‘New Taste’부터 ‘All we once’까지.
전부 대중적인 노래였다.
머니코드를 사용한 친숙하고 듣기 좋은 노래.
본인 역시 노래를 만들면서 스스로 즐길 정도로 만족스러운 곡이었던 걸로 기억했다.
예전에 작업했던 걸 보지 않았던가.
언제나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고개를 까딱거릴 정도로 자신의 노래에 애정을 가진 정민이었다.
적어도 대중성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 때문에 고민할 애는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나와 눈을 마주친 정민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흐음, 그게 말이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한숨을 푹 내쉰 정민이 말문을 열었다.
“카이 선배님 작업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느꼈어. 선배가 가진 노래의 색깔이 확고하다는 걸.”
“그래서?”
“나는 그렇지 못하잖아. 솔직히 카이 선배님처럼 자기 색이 확실한 싱어송라이터들이 아티스트로 대접받는데, 나는 그런 것보다는….”
“너무 대중적이라, 아티스트로서의 개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거야?”
“맞아.”
자기혐오가 섞인 말이었다.
정민은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그것도 소속사 선배이자 최고의 아티스트 중 한 명이라고도 불리는 카이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그래서 갑자기 너만의 색을 찾으려고 했던 거구나.”
“맞아.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떠오르는 건 없더라. 흔하고 뻔한 멜로디만 떠올라.”
말하는 정민의 목소리에 스트레스가 가득 쌓인 게 느껴졌다.
그만큼 오랫동안 고민했다는 뜻이겠지.
폭탄의 심지가 점점 짧아지는 게 보였다.
지금 자신의 노래에 만족하지 못해 분노하는 정민은 자신을 태우면서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던 거다.
자신보다 앞서 나간 선배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면서 자신의 길을 정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선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건, 성장에 있어 좋은 밑거름이 되니까.
하지만 그것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면.
‘과감히 끊어내는 것도 필요하지.’
카이와의 관계를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마다 장점은 다르다.
심지어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도 각기 다른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는데, 같은 스킬을 지녔다고 똑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었다.
‘이게 지뢰일지도 모르지만….’
문제를 피한다고 답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정민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면 정민 본인은 물론 팀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 분명했다.
“그게 뭐가 문젠데?”
“응?”
“대중적인 노래만 작곡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정민이라는 작곡가가 만든 노래에 뚜렷한 색이 없으니까.”
“왜 없어?”
“어?”
“나는 보이는데. 정민이 네가 가진 또렷한 색이.”
전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는 정민.
나는 그런 정민의 눈을 마주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New Taste’, ‘All we once’, 그리고 저번에 정민의 작업실에서 들었던 제목 미정의 노래까지.
“흐으음~ 흐음~ 으음~.”
발로 박자를 맞춰가며 흥얼거리는 내 모습에 정민의 얼굴이 빨개졌다.
“뭐, 뭐 하는 거야. 부끄럽게.”
“이게 정민이 네 노래의 색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야.”
“응?”
“한 번 들어도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직관적이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 저번에 네 작업실에서 잠깐 들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날 정도로 이미 색이 또렷한데….”
발 박자를 멈추며 정민을 보았다.
“굳이 더 여기서 난해하게 색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
“…….”
“이게 아까 질문에 대한 답이야. 대중적인 노래와 색깔이 뚜렷한 노래 중에 뭐가 좋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이미 정민이 너는 그 두 가지를 다 하고 있잖아?”
“…….”
“정민이 너는 대중적인 노래를 쓰고 싶은 거지?”
“…맞아.”
“그럼 지금처럼 해. 잘하고 있잖아. 잘 닦여 있는 도로가 있는데 굳이 돌아서 갈 필요 없지.”
정민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고민이 생긴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작품성이 높은 노래를 만들고 싶어서 이런 고민을 시작한 것도 아닐 것이다.
더 좋은 노래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내린 고민이었겠지.
그 고민이 오히려 정민의 자유로운 사고를 막아버린 걸 테고.
엑셀이 고장 난 자동차처럼 앞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버둥거렸을 거다.
노래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그 고민 때문에 나아가지 못한 진도, 그로 인한 자기혐오와 실력에 대한 의심.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스트레스가 되었던 거다.
하지만 정민이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우리는 고작 데뷔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신인 아이돌이라는 것.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실수할 수도 있다.
다 그러면서 배워가는 거 아니겠어?
실수도 하고, 잠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거지.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정민이 이렇게까지 고민하진 않았을지도.
“카이 선배님이 대단한 아티스트는 맞지만, 정민이 너는 너야. 카이 선배가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알았어.”
정민의 얼굴이 한결 편해졌다.
아무래도 무사히 정민의 고민을 해결해준 듯했다.
솔직히 조마조마했다.
작곡에 대한 스트레스를 말 몇 마디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민의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민이 내게 갖고 있는 신뢰 덕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너무 카이 선배를 따라 하려고만 했었던 거 같아.”
하긴, 그건 그랬어.
카이의 사무실에 자주 찾아가고, 그에게 여러 작곡 방식을 배우면서 카이의 스타일에 꽤나 감명을 받은 듯 자주 따라 하곤 했다.
특히 사복 패션은 같은 매장을 다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솔직히 조금 걱정도 됐었다.
“네 말대로 카이 선배는 카이 선배고 나는 난데 말이야.”
“이제 좀 나아졌어?”
“응. 카이 선배처럼 작품성 있고, 색깔이 확실한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었거든. 그거 때문에 잘 나오던 노래들도 괜히 안 쓰고 있었어.”
정민이 한숨을 내쉬며 그간의 고민과 고생을 털어놓았다.
“카이 선배 노래랑 내 노래를 몇 번이고 비교했어. 들을 때마다 한참 부족한 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더 카이 선배처럼 개성이 강한 곡에 집착했던 거 같아.”
정민이 한숨을 퍽 내쉬었다.
“이제야 머리가 좀 맑아지네.”
후련한 얼굴로 우리를 보는 정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해. 최근에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분위기를 서먹하게 만든 거 같아서.”
“괜찮아, 형. 다 이해해.”
“네가 고생하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다.”
“힘내, 정민아.”
정민의 사과에 멤버들이 손사래를 치며 그를 달랬다.
물론 내 말 한마디에 정민이 가진 모든 고민이 해결된 건 아닐 것이다.
여전히 말하지 않은 고민이 산재해 있을 거고, 더 나아가 곡의 성공 여부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정민이 가졌던 가장 큰 고민은 해결한 거 같아 마음이 놓였다.
어떻게 그걸 확신하냐고?
우우웅!
핸드폰이 울렸거든.
이 타이밍에 핸드폰이 울렸다는 건, 딱 하나의 이유밖에 없었다.
[정민이 작곡가로서 자신의 색을 찾았습니다.]
[이제 멘토에게만 기대지 않게 됩니다.]
[미래의 마에스트로(S)가 마에스트로(SS)로 진화합니다.]
[축하합니다.]
[멤버 히든 업적 ? 나이스 어시스트]
[당신의 도움으로 정민의 성장을 위한 부족한 한 조각을 채웠습니다.]
[보상: 10 오픈 마일리지]
역시.
‘지금까지 진화하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했던 건….’
자기의 색깔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였던 걸까?
아무래도 그거 같았다.
예술가들은, 특히 실력이 있는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으니까.
“잘됐네.”
정민이에게도 나에게도.
정민이는 자신의 색과 길을 찾아서, 나는 당장 성장할 수 있는 포인트를 얻어서.
‘이제 투어가 끝나서 얻는 보상까지 전부 다 더하면….’
예능도 A급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평범함이라는 디버프를 없앨 수 있는 조건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겠지.’
기대가 되었다.
마지막 투어가 끝나고 얻을 포인트와, 앞으로 더욱 성장할 우리가.
* * *
“다들 진짜 고생 많았다!”
투어가 끝난 마지막.
황이서 프로듀서가 맥주잔을 들며 외쳤다.
GH 엔터의 투어가 끝나는 것을 기념하는 자리.
스태프, 가수, 매니저 모두가 참여한 회식 자리가 떠들썩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케줄이 있어 참여하지 못한 출연자도 많았다.
몬스터즈도 그중 하나였다.
조금은 아쉬웠다.
한진성이 취한 모습을 또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잔뜩 취한 그를 골려 먹는 맛이 있었는데.
조금 많이 귀찮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이라면 그런 귀찮음 정도야 웃어넘길 수 있었다.
왜냐고?
[돌발퀘스트: GH 투어 (1)]
[돌발퀘스트: GH 투어 (2)]
[돌발퀘스트: GH 투어 (3)]
[오픈 마일리지를 획득합니다.]
[보상: 5 오픈 마일리지]
[보상: 12 오픈 마일리지]
[보상: 20 오픈 마일리지, 팬들의 관심도 상승]
모든 투어 무대에서 S 랭크를 받은 덕분에 막대한 양의 포인트를 얻었으니까 말이다.
‘기가 막히네.’
기쁜 날이다.
GH 엔터에게나, 내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