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올리오스 메인의 투어 콘서트가 매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몬스터즈와 함께 할 때보다는 확실히 규모가 작았지만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하아, 힘들다.”
“이제 투어도 거의 막바지네.”
정민과 내가 혀를 내두르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아무리 체력 단련을 많이 했다지만, 곡소리가 절로 나는 일정이었다.
투어는 물론, 잡지와 신문사 인터뷰도 다니고 라디오 방송도 출연했다.
무대에 오른다고 끝이 아니었다.
우리의 무대를 보고 피드백을 하고, 더 나아질 방향을 모색하며 연습하는 시간까지.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하루에 잘 수 있는 시간이 다섯 시간도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물론 우리보다 더한 그룹도 많다고 들었다.
GH는 나름대로 소속 연예인의 스케줄을 배려해 주기로 유명한 기획사였으니.
‘사업가일 때도 중요 프로젝트가 코앞일 때는 며칠 날밤을 깠던 적도 많은데 뭘.’
내게는 익숙한 작업이었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투어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며칠 뒤에, 우리의 무대 영상이 너튜브 숏츠로 올라갔다.
-드디어 떴다!
-성훈이 가창력 미쳤다.
-이렇게 잘 불러도 됨?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현장 분위기 엄청 좋았어요. 무대 매너도 좋아서 진짜 재밌었음.
-진짜 인생 콘서트였다. 다음에 올리오스 단콘 열리면 무조건 티케팅 한다.
우주의 MC 타임, 나와 정민의 하모니, 호진의 댄스와 성훈의 마지막 클라이맥스까지.
올리오스 멤버들의 여러 모습을 담은 영상이 많이 올라왔다.
GH 엔터의 공식 너튜브 채널에서 올라왔고, 위치를 보니 기재율 PD의 작품으로 보였다.
적절한 포커스 아웃과 관객 환호성이 적절한 음향, 아마 따로 후처리 편집을 한 거겠지?
깔끔한 영상이었다.
공연을 이어가는 우리의 머리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다 보일 정도로.
열정을 불태우는 다섯 남자의 무대.
두근두근.
그저 영상을 보고 있을 뿐인데도, 마치 내가 무대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벌써 그립네.’
고작 며칠 지났다고, 속이 근질거렸다.
빨리 다음 무대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내가 이렇게 무대 체질이었던가.”
나도 몰랐다.
이렇게 무대가 즐겁게 느껴질 줄은.
-와아아아!!!
숏츠 영상의 마지막에 들리는 팬들의 환호성.
남자의 심장을 들끓게 만들기 충분했다.
눈앞에 영상이 재생되었다.
무대 위에 선 올리오스.
우리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와, 귀에서 들리는 반주.
끝을 알리며 터지는 폭죽.
그 아래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관객들.
그들이 보내는 함성에 가슴이 울리는 내가 있었다.
‘무대에서 들리는 관객들의 환호성에 중독된 사람은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한다는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관객들의 함성에 울렸던 심장의 고동.
거칠게 뛰는 심장에 방금 전까지 느껴졌던 탈력감이 물에 씻은 것처럼 사라졌다.
“우리가 이렇게 멋졌구나.”
화면 속에 있는 우리를 보던 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모두의 눈이 나를 향했다.
“우리가 좀 잘 생기긴 했지. 하하하!”
“솔직히 화면빨 생각 안 해도 진짜 멋지지 않아?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서 막….”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웃으며 말하는 멤버들의 얼굴엔 후련한 미소가 지어졌다.
모두 말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이었던 거 같았다.
우리의 무대를 성공적으로 꾸몄다는 것.
몬스터즈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는 것.
그리고 화면에 담긴 멋진 모습 등.
무대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마저 뽕이 찰 수밖에 없는 여러 요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저 무대는 최고였어.”
“아직도 가슴이 뛰는 거 같다니까.”
“맞아.”
성훈도 눈을 감고 그 장면을 상상하며 되새겼다.
우리는 아주 잠깐 우리의 무대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숏츠가 올라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각 멤버들의 직캠 영상이 올라왔다.
이건 GH 엔터 공식 영상은 아니었다.
콘서트에 온, 팬들이 올린 영상이었다.
우리의 움직임을 따라서 빠르게 따라가면서도 포커스가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 게, 거의 프로의 수준이었다.
우주, 정민, 나, 호진, 그리고 성훈까지.
모두의 직캠 동영상이 하나씩 올라왔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내 모습은 참 어색했다.
원래 내가 아닌 다른 윤건하의 모습이라서일지도 모르겠다.
거기다가 무대 화장을 잔뜩 칠하고 춤을 추는 거잖아.
어색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그럼에도 딱딱 맞는 군무는 감탄을 자아냈다.
그래. 저거 맞추려고 얼마나 연습했는데.
절대 틀리면 안 된다고.
직캠 영상 이후로 기다렸다는 듯이 기재율 PD가 투어 기간에 찍었던 올리오스의 비하인드 영상을 올렸다.
-악보는 아까 다 봤죠? 준비되면 말해주세요. 그럼 바로 비트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투어에 쓸 MR과 음원을 새로 녹음하기 위해서 부스에 들어가 있던 모습부터, 녹음을 하는 장면까지.
투어 전에 우리가 보였던 다양한 행적이 기재율 PD의 카메라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투어 전에 다들 지쳐서 이동하는 차에서 뻗는 장면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
자는 모습을 찍는 건 반칙인데.
다들 아이돌이라 그런가.
자는 모습을 찍어도 굴욕샷은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우와! 형들, 이거 봐! 진짜 맛있겠다.
처음 콘서트가 있었던 부산의 거리였다.
기재율 PD가 찍은 카메라 속 우리는 부산의 맛집 골목을 거닐고 있었다.
“여기가 내 맛집 노트에 적혀 있는 집이야. 부산 사는 지인들에게 추천받았어. 인터넷에 보니까 후기도 좋은 얘기밖에 없더라고.”
“사람이 많다.”
우물쭈물 안으로 들어간 우리가 국밥을 먹기 전까지 나눈 수다가 영상에 기록되어 있었다.
“내일 공연이라 그런지 엄청 떨린다.”
“으으, 돌아가서 연습을 조금 더 할까?”
“가끔은 쉬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어. 지금은 쉴 때다.”
“근데 돼지국밥은 부산에만 있는 거야?”
“부산 사람들은 순대를 쌈장에 찍어 먹는다던데, 맞아?”
“순대엔 소금이지. 떡볶이 국물이나.”
“그런데 쌈장 찍어 먹는 거 맛있대.”
영상 속 우리는 영양가 없는 수다를 떨며 자기들끼리 좋아하고 난리였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아마 오랜만에 허락받은 외식이라 들뜬 거겠지.
“우와! 미친! 이거 진짜 개 맛있다. 아….”
돼지국밥을 한 숟가락 떠먹은 우주가 놀라 소리쳤다.
뒤늦게 입을 가렸지만, 이미 화면에 가득 담겼다.
“이거 쓰실 건가요?”
우주의 질문에 카메라가 위아래로 까딱거렸다.
“으으, 안 되는데.”
“괜찮아요. 뒤에 화들짝 놀란 거 때문에 더 귀엽게 담겼어요. 하하하!”
“영상에 안 올리시면 안 돼요? 제발요.”
우주의 간절한 바람과는 다르게 기재율 PD는 해당 장면을 영상에 올렸다.
“으악! 배신자! 절대 안 올린다고 하셨으면서!”
우주가 우는 소리를 냈지만, 오히려 그의 솔직한 리액션이 영상미를 더했다.
“근데 욕 나올 정도로 맛있긴 했어.”
호텔에서 방방 놀고 감탄하는 영상과 무대 뒤에서 잔뜩 긴장한 채로 우리의 차례를 기다리는 영상이 이어졌다.
몬스터즈 다음으로 올라갔던 무대 영상을 짧게 보여주고, 무대가 끝난 이후 우리의 반응까지.
15분의 짧은 영상에는 우리의 사전 준비와 무대, 그리고 비하인드까지 전부 담겨 있었다.
“아니, 기 PD님 매일 우리랑 같이 다니지 않았었어? 언제 이렇게 퀄리티 있는 영상을 만든 거야?”
“그 PD님도 괴물이다.”
첫 브이로그 영상을 본 우리의 감상이었다.
거의 매일 우리를 따라 다녔던 기재율 PD가 무슨 시간이 남아서 영상 편집까지 다 했나 싶었다.
그 정도로 잘 빠진 영상이었다.
“영상 진짜 좋다.”
솔직히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뭔가 영상으로 쓸법한 일들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투어 준비, 이동, 근처 맛집 탐방, 무대 대기, 공연, 복귀.
이게 전부였다.
그나마 일정을 더한다면 각자 개인 스케줄과 투어 중에 잡힌 여러 인터뷰들.
하지만 영상으로 쓰기엔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잘 만들었다.”
역시 영상은 편집 빨이라고 누가 했던 거 같은데.
그걸 여실히 느끼는 영상이었다.
괜히 몬스터즈 브이로그가 대박난 게 아니었다.
편집 감각부터, 임팩트 없는 평범한 일상 영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힘내자.”
이런 영상까지 올라왔는데, 마지막이라고 힘 빼는 건 곤란했다.
조금 지치고 힘들긴 했지만, 적어도 끝까지 불태우고 지금을 추억하는 게 낫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그러자.”
모두 같은 생각인 거 같았다.
* * *
“휴가 가고 싶다아.”
하지만 우리도 사람이었다.
의지로 다지는 것도 한계가 있지.
다들 대기실에서 축 늘어진 채로 천장을 바라봤다.
멍한 눈동자에는 힘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성훈마저도 읽던 책을 내려놓고 눈을 감을 정도였으니.
강행군에 다들 지쳐갔다.
그중 가장 데미지가 큰 건 역시.
“으으으….”
정민이었다.
얼마 전부터 다음 앨범 곡 작업에 들어갔다.
투어가 끝나고 시작해도 된다는 황이서의 말에도 본인이 작업을 고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대에 올라 서 있을 때 곡을 작업해보고 싶어요.’
현장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금, 곡을 쓰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활동하지 않는 기간 동안 나름대로 여러 프로토 타입을 다 만들었다고는 했지만, 컨펌까지 난 완성본이 아직 없다고 들었다.
정민이 앨범의 모든 곡을 담당하는 건 아니라고는 해도, 부담스러운 스케줄이었다.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죽을 거 같아. 악상은 안 떠오르지. 시간은 흐르지. 무대에는 올라야 하지. 미칠 거 같아. 아아아. 괜히 한다고 했나.”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되는 듯 까칠한 모습까지 보였다.
“카이 선배는 어떻게 하신 거지?”
중얼거리는 정민의 목소리엔 짙은 짜증이 실려 있었다.
“당분간은 정민이를 건드리지 말자.”
정민을 제외한 세 명을 따로 불러 경고했다.
지금 저 상태까지 간 정민을 잘못 건드렸다간 진짜로 싸움 난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지만, 이건 상황이 다르다.
싸우면서 크는 게 아니라, 싸우다 절연할 정도로 심각했다.
사업하면서 얻은 눈치라는 게 있다.
거래처, 경쟁사 CEO, 부하 직원 등등.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챙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늘어난 눈치가 내게 경고했다.
-이건 건드리면 터진다.
폭탄이다.
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이라는 걸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
“하아….”
정민의 깊은 한숨에는 많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건하야.”
한참을 고민한 정민이 나를 보며 말했다.
“모두가 인정하는 머니 코드를 범벅으로 섞은 대중적인 노래, 신선하지만 대중과는 거리가 아득히 먼 노래. 둘 중에 어느 게 더 나을 거 같아?”
정민이 자신이 들고 있던 폭탄을 내게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