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
몇 번이고 뛰었던 콘서트 무대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두근. 두근.
왜 매번 이렇게 무대에 오를 때마다 심장이 뛰는 건지.
두려움의 고동 소리가 아니었다.
기대감.
그리고 어제보다 더 좋은 오늘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
이 두 가지 감정이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는 거다.
“후우.”
현장 MC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GH 투어, 대전 편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순서!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 올리오스의 무대입니다!
와아아아!
가장 먼저 무대에 올라설 그룹으로 우리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몬스터즈가 아닌, 우리의 이름을.
관중의 환호와 함께 PD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갑니다!
신호와 함께 우리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우리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사방에서 들리는 환호성.
나는 보았다.
무대 객석을 가득 채운 팬들을.
투어의 앞선 무대보다 훨씬 작은 크기였지만,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빼곡하게 자리잡은 응원봉이 우리의 등장과 함께 빠르게 흔들거렸다.
-♩♬♪♬♪~.
익숙한 반주에 맞춰 심장이 두근거렸다.
반주에 맞춰 우리는 칼군무를 이어갔다.
실수는 절대 없다.
몬스터즈가 없어서 무대가 약해 보이더라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보다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우리의 역량이 부족하다고는 느끼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대 위에는 각자 높이가 다른 단상이 있었고, 우리는 각자 다른 위치에 서 있었다.
첫곡으로 나오는 의 컨셉에 맞게 각자 다른 메뉴판에 있다는 설정의 무대였다.
각기 다른 높이, 다른 위치에서 우리는 춤을 췄다.
이렇게 서로 떨어진 채로 춤을 춰본 건 처음이라, 조금은 낯설었지만 괜찮다.
오늘을 위해서 몇 번이고 연습했으니까.
각기 다른 멤버들 앞의 카메라가 우리를 찍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저 뒤에 있는 거대한 모니터에 비춰 보일 거다.
멀리 있는 관객들에게도 또렷하게 보이겠지.
그러니 무대에 오른 이상 조금도 방심해서는 안 됐다.
모든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무대에 오른 우리들의 자세였다.
가 거의 끝나갈 무렵.
무대 위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첫 무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무대 연출이었다.
터지는 불꽃과 함께 각기 다른 위치에 섰던 우리는 처음 섰던 장소에서 내려와 메인 무대로 향했다.
카메라맨이 우리를 쫓았다.
나는 그런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꺄아악!
환호가 들린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 감탄하고 좋아해 주는 팬들 덕분에 이런 무대가 더 마음에 들었다.
환호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더 두근거렸다.
손하트를 만든 뒤, 다음 노래를 기다렸다.
저번 팬미팅에서 댄스까지 새로 맞췄던 수록곡, 의 반주가 흘러나왔다.
둥. 둥. 둥. 둥.
강한 비트가 우리를 재촉했다.
춤을 더욱 빠르게 추라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라고.
그래.
할 수 있다.
다른 멤버들도 같은 생각처럼 보였다.
우리는 서로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팟!
모두가 동시에 손을 뻗었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 * *
‘자식들….’
황이서는 무대 위에서 빛나는 올리오스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기대를 했지만, 그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무대였다.
몬스터즈 없이 올리오스를 필두로 내세우는 콘서트 투어를 내보자는 건의에 최 대표가 다소 걱정을 했었다.
-괜찮겠어? 올리오스가 잠재력 좋은 건 아는데, 객석 다 못채울 수도 있는데.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이었다.
지금까지 GH 투어는 늘 몬스터즈가 중심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단독 콘서트를 해야 하는 올리오스였다.
콘서트의 메인이 돼서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결국 몬스터즈 빨을 받아 떴던 그저 그런 아이돌로 남을 뿐이었다.
황이서는 알았다.
여기서 증명해야 한다는 걸.
그래서 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우리가 계획했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일정이었다.
여기서 애들이 본인의 역량을 잘 보여주길 바랐다.
‘잘하네.’
그리고 올리오스는 황이서의 기대를 아주 훌륭하게 채워줬다.
임팩트 있는 시작 무대, 그리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다음 곡.
투어에서 보여줬던 그 모습이었다.
몬스터즈한테도 밀리지 않던 올리오스 최고의 모습.
무대 위에서의 마이크 워크도 좋았다.
우주를 중심으로 멤버들의 멘트가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팬들은 웃어줬다.
원래 팬이란 게 그렇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하는 모든 것에 웃고 즐겨준다.
이유는 간단했다.
좋아하니까.
보기 좋으니까.
특히 지금 이 무대를 찾은 팬들은 대부분 올리오스를 좋아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최고의 호응이었다.
“어때?”
황이서 프로듀서가 옆에 선 기재율 PD에게 물었다.
비하인드컷을 찍는 업무를 하고 있는 기 PD는 황이서와 함께 무대 뒤편에서 올리오스의 무대를 촬영하고 있었다.
카메라 속의 올리오스를 유심히 바라보던 기재율 PD가 웃으며 대답했다.
“원하시는 대답이 뭡니까?”
“뭐긴, 솔직한 감상이지. 사실상 이번 투어 기간 동안 가장 애들이랑 가까이 있던 사람이 너잖아. 두현이를 제외하면.”
“솔직한 감상이라…. 냉철한 한마디를 원하시는 겁니까?”
“그래.”
“…….”
기재율 PD는 여전히 카메라 속 올리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가지 의미로 좋은 팀이죠. 확실한 리더십을 가진 비주얼 담당이자 리더, 활발한 분위기 메이커 막내에, 냉철한 맏형과 잘생긴 메인 댄서, 그리고 작곡가까지. 솔직히 당장 완벽한 팀은 아닐지 몰라도 이미 완성된 팀이죠.”
“완성된 팀이라?”
“음방 1등이야 앨범 판매량이 높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원 1등은 그게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그렇긴 하지.”
“그런데 쟤들은 해냈습니다. 기존에 팬덤이 있던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물론 진효원이나 몬스터즈 진성이의 지원 사격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거로 음원 1등을 차지할 수 있으면 누구나 다 선배 가수들의 리스펙트를 원했을 것이다.
“전부 부차적인 거죠. 그래서 완성된 팀이라고 한 겁니다.”
“그게 끝인가?”
모니터를 가만히 바라보던 기재율 PD가 입을 다물었다.
“더 할 말이 남아 있는 거 같은데.”
“하나 있죠.”
“뭐지?”
“급하게 쌓아 올린 아슬아슬한 모래성 같습니다.”
“모래성이라.”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멤버들이 건하라는 구심점으로 모여 만든 모래성. 저 중 한 명이 무너지는 어느 한 순간, 올리오스의 성장세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렇게 봤어?”
“예.”
황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 PD가 눈이 좋네.”
황이서가 애써 무시했던 현실이었다.
데뷔한 이래 폭발적으로 성장한 올리오스.
하지만 그렇기에 내재된 문제를 여럿 안고 있었다.
기 PD가 말한 것처럼 한 명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거라는 것도 문제 중 하나였다.
한 명 한 명이 대체될 수 없는 애들이었다.
‘애들이 스스로 그만두거나 무너질 애들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세상 일은 모른다.
당장 지금도 올리오스가 이 정도로 대성공을 할지도 몰랐으니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무너지지 않도록 내가 옆에서 도와줘야겠지.’
그게 소속사의 역할이니까.
“그런데 왜 물어보신 겁니까?”
“그냥 자네 생각이 궁금했어. 기 PD가 이번 투어의 비하인드 컷을 찍어줘야 하는데, 우리 애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했거든.”
“통과한 거 같네요.”
“그래. 가슴 아플 정도로.”
황이서는 다시 무대를 보았다.
무대 위의 올리오스 멤버들이 반주에 맞춰 칼군무를 선보였다.
화려한 동작 사이사이에 느껴지는 강렬한 힘.
황이서는 감탄을 삼키며 이번 투어가 끝나고 있을 다음 앨범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다.
‘애들아, 잘한다.’
성공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빠의 눈빛으로 무대를 보았다.
올리오스의 무대가 끝나고, GH 소속 다른 가수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무대는 점점 절정으로 다다랐다.
올리오스와 선배 가수의 합동 콜라보 무대였다.
* * *
널 잊었다 말하며 태연한 척하지만.
아직 내 가슴은 널 향해 있는걸.
이종민의 매끄러운 보이스 위에 성훈의 시원한 보컬이 더해졌다.
선배 가수인 이종민과 성훈의 콜라보 무대였다.
혹시나 어울리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듀엣 무대는 무엇보다 화음이 중요하다.
성훈이 혹시나 너무 과하게 치고 나갈 때면, 베테랑인 이종민이 적당히 템포를 맞춰 부드럽게 화음을 맞췄다.
‘저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콜라보 무대였다.
다른 멤버들과 함께한 선배 가수들의 무대들도 많았다.
우주와 정민이 선배 여가수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고, 나와 호진 역시 다른 선배와 콜라보 무대를 소화했다.
그러나 가장 훌륭했던 건, 역시 메인 보컬인 성훈과 이종민의 무대였다.
“확실히 다른데.”
호진의 감탄 어린 목소리와 함께 우리는 그의 무대를 가만히 감상했다.
* * *
대전에서 있었던 GH 투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정말 잘했다.”
무대를 끝내고 내려가자, 황이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보았다.
눈동자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무대 아래에서 봤는데, 진짜 흠잡을 곳 없이 좋았다. 물론 나중에 피드백은 따로 주겠지만, 지금은 성공적인 마무리의 여운을 즐기자.”
“프로듀서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크크,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너희가 다 했지.”
아무것도 한 게 없다지만, 사실상 이번 투어를 총괄한 사람이 황이서 프로듀서였다.
우리가 단독이나 다름없는 투어 콘서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도 황이서의 푸시 덕분이라고 들었다.
전체적인 기획을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을 텐데, 우리들의 단독 콘서트를 위해 여러 가수를 찾아가 협상하고, 콜라보를 제안했다고도 들었다.
그가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이번에 잡지사와 인터뷰도 있고, 라디오 출연도 있으니 앞으로 조금만 더 노력하자.”
“예, 알겠습니다!”
“이제 진짜 너희 단독 콘서트를 해도 되겠다.”
대견하다는 듯 우리를 보며 말한 황이서가 어깨를 꽉 쥐며 지나갔다.
“그럼 숙소로 들어가서 쉬어. 오늘은 쉬어도 된다.”
황이서가 나가기가 무섭게 새로운 사람이 다가왔다.
“아, 여기 있었네. 축하해. 이 정도면 진짜 단독 콘서트 해도 되겠는걸?”
이종민 선배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우리 후배들 실력에 약간 주눅 들었잖아. 하하하.”
선배다운 여유로움을 갖춘 이종민이 낮게 웃었다.
“아, 그리고 성훈 군?”
“예, 선배님.”
“오늘 무대에 대한 피드백을 하고 싶어서 그런데 잠깐 시간 되나?”
“됩니다. 선배님.”
“그럼 잠깐 들어가지.”
“예.”
두 사람은 따로 마련된 별실에 들어가 대화를 나눴다.
안에서 나눈 대화는 정확히 모르지만, 문을 열고 나온 성훈의 얼굴이 밝은 것을 보면, 좋은 얘기가 오갔음은 분명했다.
[폭포수 같은 고음(A) - 성장 중: 담당 멘토 이종민]
성훈의 정보창에 새로운 단어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