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31화 (131/236)

<제131화>

“잘 하고 와.”

나는 아침 일찍 녹화를 나가는 성훈을 배웅했다.

“후우, 이게 뭐라고 떨리네.”

평소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성훈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유독 떨리는 듯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형은 잘할 수 있을 거야.”

“건하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되네.”

“성훈이 형, 벌써 가는 거야?”

우주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토요일에 있을 무대 준비 때문에 거의 밤새며 준비한 탓에 피곤했을 거다.

“그래. 다녀온다.”

“헤헤, 형 그렇게 말하니까 아빠 같다.”

“…그럼 우주 너는 내 아들이냐?”

“그렇게 되는구나.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빠.”

우주가 잠이 덜 깬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오냐.”

성훈이 의외로 우주의 농담을 받아주며 밖으로 나갔다.

호진과 정민이도 손을 흔들며 큰형의 단독 활동을 응원했다.

성훈이 나가고.

“우리도 준비하자.”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멤버들에게 말했다.

성훈이 고생하는 만큼, 우리도 우리의 일을 해야겠지.

* * *

-열심히 하고, 1등에 너무 목매지 말고, 무리한다고 더 나아지는 거 아니니까 투어 생각해서 목 관리도 잘하고, 선배님들한테 잘하고, 카메라 마사지 잘 받고 와.

조언과 응원이 섞인 건하의 문자에.

-형 파이팅! 너무 무리하지 말고, 우리가 옆에 없지만 늘 응원하고 있다는 거 알아줘.

정민의 성격이 드러나는 문자.

-힘내. 파이팅.

호진의 짧지만 정이 느껴지는 문자.

-형! 오늘의 운세 봤는데, 형 오늘 운수가 좋대. 하고 싶은 일 모두 이룰 수 있는 날이라니까 기죽지 말고, 힘내길 바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주의 장난기 어린 문자까지.

“자식들.”

성훈은 동생들의 문자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침 일찍 방송국으로 향했지만, 피곤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늘 촬영을 위해 조금 더 일찍 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심이 가득한 동생들의 응원에 힘이 솟구쳤다.

이렇게 개별 활동을 하면서 느꼈다.

우주나 정민이나 혼자서도 활동하던 애들이 정말 대단한 거였구나, 라는 걸.

‘우주한테는 나중에 미안하다고 해야겠네.’

예전에 우주카페 때문에 힘들어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경험해 보니 알겠다.

스케줄 여러 개를 한 번에 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투어, 연습, 녹음에 녹화.

정식 스케줄은 투어와 예능 출연이 전부였지만, 그에 따라오는 부가적인 활동이 너무 많았다.

이동하는 것도 그렇고, 투어 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 고되었다.

‘정신 차리자.’

앞으로 이보다 더 많은 스케줄이 기다릴 거다.

다시 앨범 활동을 시작하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빠질 테니까.

‘연습이라 생각하자.’

성훈은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리고 자신이 오늘 부를 ‘님의 열차’를 다시금 떠올렸다.

매니저 두현이 모는 차가 방송국에 도착했고.

“오? 왔네.”

가장 먼저 방송국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역시 제일 먼저 왔구먼. 신인이라 빠릿빠릿해서 좋네.”

김준환 PD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선배들 오기 전에 리허설부터 할까?”

“예, 한번 맞춰 보겠습니다.”

“성훈 씨, 잘 부탁해.”

성훈은 <명곡 배틀>의 세트장인 무대 위로 올라가 리허설을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준비하는 건 이제 익숙했다.

다만 오늘은 다른 멤버 한 명 없이 오롯이 그의 무대라는 게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조금 떨렸지만, 괜찮다.

응원도 받았고, 노래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으니까.

리허설의 분위기도 좋았다.

지금까지 함께 녹음했던 밴드 세션과 함께 무대 위에 올라갔고, 그들과 최고의 리허설을 펼쳤다.

총괄 프로듀서 김준환 PD는 리허설 무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음향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표정도 밝았다.

리허설을 마치고 아래로 내려오자, 최수혁 선배가 보였다.

발라드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가진 가수, 그리고 올리오스의 ‘All we once’와 마지막까지 음원 차트, 음방 1위를 다투던 선배 가수였다.

“어? 성훈 후배?”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성훈 후배도 <명곡 배틀> 나왔구나.”

“예, 그렇습니다. 그럼 선배님도 출연하시는 겁니까?”

“그래. 이번에 나오게 됐지. 우리 후배님 오는 줄 알았으면 연습을 더 했을 텐데.”

너스레를 떨며 웃은 최수혁이 성훈의 등을 두드렸다.

“그런데 다른 멤버들은?”

“이번에는 저 혼자 무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아, 성우경 선배님의 노래가 여럿이서 부르기엔 안 어울리긴 하지. 무슨 노래 부르나?”

“‘님의 열차’입니다.”

“아아, 명곡이네. 나는 ‘무정의 데이트’를 부를 거야. 김 PD와 무대를 어떻게 연출했는지 기대되는군.”

최수혁이 씨익 웃으며 성훈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이번엔 내가 이길 테니, 그리 알게. 하하하!”

“절대 밀리지 않을 겁니다.”

“패기가 보기 좋아. 하하하!”

최수혁이 리허설을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성훈은 일부러 그의 리허설을 확인하지 않았다.

자신의 무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지만, 대선배가 만든 온전한 무대를 보면서 감동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스태프와 함께 무대용 메이크업을 위해 분장실로 향했다.

“성훈 씨, 메이크업 받으면서 들으세요. 녹화 들어가면 강정수 MC님이 노래 컨셉 얘기해 달라고 하실 텐데, 절대 얘기해 주면 안 돼요.”

“안 되는 겁니까?”

“네. 살짝 힌트만 드린다고, 가죽조끼를 잡아서 흔드는 정도만 보여주시면 돼요.”

“아, 네. 어떤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게 아닌, 간접적인 힌트를 주라는 뜻이었다.

사실 자신이 입고 갈 검은색 가죽조끼만 봐도 곡 컨셉을 굳이 묻지 않아도 될 정도로 노골적이었지만, 직접 언급하는 건 프로그램의 방향성과 어긋난다고 했다.

“잘하실 거라 믿어요. 혹시 궁금한 거 있으면 대기하는 동안 물어봐 주세요.”

“넵.”

분장을 받고 있는데.

“어? 아, 오늘 새로 왔다던 아이돌이군요? 반가워요. MC 강정수예요.”

“안녕하십니까.”

“혼자 왔네요? 너무 긴장 마시고 늘 있는 공연 무대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 끝나고 회식 하는데 참여하시나요?”

“힘들 거 같습니다. 내일도 투어 일정이 있어서요.”

“크으, 아쉽네. 지금 한창 바쁠 때죠. 식단 관리도 해야 하고, 쉽지 않겠더라고. 아마 저보고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했을 거예요. 애초에 시켜주지도 않겠지만.”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옆자리에 앉아 함께 메이크업을 받은 강정수 MC가 쉴새 없이 수다를 떨어준 덕분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두 시간이 넘는 리허설과 대기시간, 인터뷰가 끝이 나고.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최고의 경연 서바이벌, <명곡 배틀>! 인사드립니다. MC 강정수라고 합니다.”

녹화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경연을 위해 많은 분이 와주셨는데, 정말 다들 쟁쟁하신 분이네요. 오늘 무대에 오르실 일곱 분 중 대부분은 한 번씩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으시지만, 오늘! 유일한 뉴페이스가 있습니다.”

강정수 MC의 눈이 성훈에게 향했다.

노래보다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의 유성훈입니다!”

“이야, 오늘 록 가수처럼 입고 오셨는데, 노래 컨셉이 뭔가요?”

“PD님께서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희끼린데 뭐 어때요.”

“죄송합니다. 무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기대되는데요.”

그리고 녹화가 시작되었다.

제비뽑기로 뽑은 성훈의 순서는 다섯 번째였다.

여섯 번째가 최수혁.

다행이었다.

만약 최수혁이 자신보다 먼저였다면, 긴장해서 무대 위에서 떨었을 테니까.

앞의 네 명의 무대는 전부 훌륭했다.

각자 자신의 보컬 스타일에 맞게 트로트계의 대선배인 성우경의 노래를 소화해냈다.

관객으로 참여한 평가단들의 점수도 높은 편이었다.

평균 점수가 400점 만점에 370점이었다.

제일 높은 가수의 점수가 381점인 걸 생각하면.

‘거의 만점을 맞아야 하네.’

“성훈 씨, 잠시만 대기실에서 대기해 주세요.”

“대기요?”

“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딜레이가 된 겁니까?”

“그런 건 아니에요.”

한우리 작가가 대기실에 들어와 말하고는 다시금 사라졌다.

대기실에서 녹화를 기다리고 있던 성훈은 얼떨떨한 얼굴로 한우리 작가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이야, 정말 훌륭한 무대였습니다. 이제 다섯 번째 순서 올리오스의 성훈 씨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오늘 <명곡 배틀>에 첫 출전하는 성훈 씨를 위한 선물이 있다고 합니다. 잠시 보시죠.”

“선물?”

화면 속 강정수 MC가 웃으며 무대를 가리켰다.

무대 위 모니터가 켜지며.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건하를 비롯한 멤버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

성훈은 눈을 끔뻑거리며 화면을 보았다.

너희가 거기서 왜 나와?

우주 옆에는 정민과 호진, 그리고 건하까지 함께 서 있었다.

-성훈이 형! 안녕? 오늘 형이 <명곡 배틀> 녹화를 들어가는 날이잖아. 그래서 형이 리허설 준비하는 동안 메시지를 남겼어.

우주가 먼저 말하고 정민이 우주의 말을 이었다.

-투어 중에 무대 공연 준비한다고 새벽 일찍 나가던 모습이 자꾸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우리도 뭔가 형을 위해서 하나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힘을 줄 수 있으면 어떨까 싶었어.

호진의 짧은 멘트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건하의 차례였다.

-1등 해서 상금으로 소고기 사줘. 농담이고, 최선을 다해서 좋은 무대 만들었으면 좋겠다.

건하의 말이 끝나고, 영상이 꺼지며 장면이 전환되었다.

그리고 전환된 영상은.

“어?”

대기실 밖을 비추고 있었다.

화면 속 대기실 문이 열리고.

덜컥!

“성훈이 형!”

대기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멤버들이 문을 열고 우르르 몰려왔다.

“뭐, 뭐야?”

“우와아아!! 올리오스 유성훈! 세계 최고의 보컬!”

요란하게 들어온 멤버들이 성훈의 손에 마이크를 쥐여주었다.

우주는 ‘최강 보컬 유성훈’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왜, 왜 왔어?”

“왜 오긴. 응원하러 왔지.”

건하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훈은 진심으로 당황한 얼굴로 건하와 멤버들을 봤다.

도무지 상상도 못 한 전개였다.

이런 식의 몰래카메라라니.

듣지도 못했는데?

“힘내. 저기 무대 뒤에서 보고 있을게.”

“성훈이 형 파이팅!”

“1등 못하면 오늘 저녁 없다!”

“와아아아!”

카메라와 함께 바람처럼 들어왔다가 번개처럼 응원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

성훈은 멤버들이 나간 대기실 문을 바라봤다.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굳이 표정을 꾸미지 않았다.

성훈은 지금 자기가 짓는 표정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미소였다.

‘1등 못하면 저녁도 없다니.’

어차피 닭가슴살에다 샐러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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